예능과 시사 교양 모두 실종된 MBC

 

'MBC 뉴스데스크'는 한때 뉴스 프로그램의 간판 격으로 인식되기도 했었다. 특유의 권력에 굴하지 않는 따끔한 멘트와 시각들이 소외된 서민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 뉴스데스크 앵커 출신들은 모두 스타로 자리매김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건 이제 옛말이 된 것 같다. 지금의 뉴스데스크는 편성시간이 확 줄어버렸고 심지어 주말의 뉴스데스크는 단 15분이 고작이다. 대신 '세상보기 시시각각'이라는 VCR물이 뉴스의 빈자리를 때우고 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MBC는 'PD수첩'에서 '시사매거진 2580' 그리고 '100분 토론' 같은 인기 시사 프로그램들이 유독 많았었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렸거나 본질을 잃고 마치 물 타기를 한 듯 프로그램 색깔이 흐릿해져버린 게 사실이다.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이 이런 상황이니, 교양 프로그램인들 온전할 리가 없다. 'MBC스페셜'은 금요일 밤을 대표하는 다큐 프로그램이자, TV 다큐의 성공사례로 지목되었지만 언젠가부터 대중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프로그램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물론 파업 여파가 더 그 변화를 극명하게 보이게 해준 것일 게다. 하지만 이미 파업 이전부터 이런 변화는 눈에 띄게 일어났다는 것. 즉 이 변화가 파업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이런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파업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방송, 특히 현실에 민감한 시사나 교양 프로그램이 통제 받기 시작하면 제대로 된 방송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국민들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할 프로그램이 자칫 그 눈과 귀를 막을 수도 있다. 파업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함이 아니라, 좀 더 제대로 일을 하기 위함이다.

 

뉴스와 시사 교양 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이 다를 수 없다. 예능은 그저 웃음을 주는 것으로 현실과 별 상관이 없는 것처럼 치부되기도 하지만, 어디 그런가. 지금의 예능은 현실과 함께 호흡하지 않으면 대중들의 지지와 공감을 얻지 못하게 된다.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은 대표적이다. 11주째 결방의 이유도 분명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파업에 대해 지지하는 대중들의 마음도 분명하다. 우리는 그저 방영되기만 하는 '무한도전'이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웃음과 감동 그리고 의미를 주는 '무한도전'이 보고 싶은 것이다.

 

'무한도전', '황금어장', '놀러와', '우리 결혼했어요' 등등의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건 모두 제대로 된 프로그램들을 보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외주로 채워 넣은 '일밤'이나 MBC측에서 겨우겨우 채워 넣은 방송이 전혀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타이틀만 같다고 같은 프로그램이 되는 건 아니다. KBS의 '1박2일'이 파업 와중에 편집 인력 몇을 투입해 만든 프로그램이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 되어버리는 건 그 때문이다.

 

남은 건 본래부터 외주로 채워지던 드라마들뿐이다. 그것도 자체 제작하는 주말드라마, '무신'과 '신들의 만찬'은 질적인 면에서 완성도가 너무 떨어지는 드라마들이다. 때 아닌 신파 설정으로 70년대 드라마를 보는 듯한 '무신'과, 이해할 수 없는 멜로 구도의 급변으로 논란마저 겪고 있는 '신들의 만찬'은 한때 드라마 왕국으로 군림하던 MBC의 위상을 옛이야기로 만들어버린다.

 

뉴스의 편성이 줄어들고, 시사교양 프로그램도 사라지고, 예능도 없고, 드라마마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방송. 이것은 어쩌면 파업이 아니라도 잘못된 인력운용으로 파행되는 방송사가 보여줄 풍경 그대로일 것이다. 케이블만큼도 볼 게 없는 작금의 MBC는 그래서 이 본질적인 문제를 그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식'의 인력운용과 버티기로 일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왜 그토록 방송이 하고 싶은 이들이 눈물을 머금고 일선에서 벗어나 있는지, 또 그토록 제대로 된 방송을 보고 싶은 대중들이 긴 시간 동안 결방을 참고 있는지 MBC는 생각해봐야 한다.

시사도 즐거워지는 토크쇼, '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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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광'(사진출처:tvN)

막돼먹은 영애 김현숙씨의 폭탄발언(?). "저 채식을 더 많이 해요. 사람들이 안 믿어줘서 그렇지." '육(肉), 욕(欲), 역(疫)'이라는 독특한 제목으로 고기에 대한 불편한 진실에서부터 그 욕망과 나아가 그것이 만들어내는 구제역 같은 대재앙까지를 다루는 '열광'이라는 시사토크쇼의 첫 멘트는 여타의 시사 대담프로그램과는 이토록 다르다. 믿지 못하겠다는 다른 패널들의 반응에 이어지는 영애씨의 발언이 좌중을 쓰러지게 한다. "육식공룡보다 초식공룡이 더 커요."

그러자 잡학박사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이 특유의 엉뚱한 입담을 시작한다. "전에 절에 갔더니 스님들이 엄청 뚱뚱하시더라구요. 풀만 드셔도 살이 찌나 봐요." 문화평론가 탁현민이 불쑥 끼어든다. "풀만 먹는다는 것도 편견일 수 있어요. 근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원문화(?)를 그렇게 좋아하잖아요. 여기저기 가든이 그렇게 많은 걸 보면." 그러자 이 엉뚱발랄한 시사토크쇼의 중심을 잡아주는 김정운 교수가 촌철살인의 화룡점정을 한다. "우리는 가든에서 먹고 파크에서 자죠."

개인적인 잡담처럼 시작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대중들이 보다 쉽게 시사에 접근하기 위해 밑밥을 던지는 것이다. 차츰 토크쇼가 진행될수록 어떤 진지한 얘기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국내 사육시설이 점점 대형화되고 있고 돼지 한 마리당 면적이 한 평도 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김정운 교수가 화두처럼 꺼내면 호란은 대부분의 돼지들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꺼낸다.

하지만 토크쇼는 그렇게 진지하게 깊이를 향해 달려가지는 않는다. 불쑥 탁현민이 자신과 김태훈을 소에 비유해 얘기를 꺼내면서 분위기는 시사의 무거움을 털어낸다. "집단사육이 계속되는 이유는 입맛하고도 상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김태훈씨가 소라면 저 같이 운동 안하고 회사라는 틀에서 사육되는 소의 육질이 김태훈씨 육질보다 훨씬 맛이 있을 겁니다." 분명 시사적인 이슈를 던졌지만 웃음이 빵빵 터지는 이 순간. 이것이 바로 시사랭크쇼 '열광'만이 가진 독특한 토크의 결이다.

왜 토크쇼 하면 늘 연예인들만 나와서 하는 시시콜콜한 신변잡기를 들어야만 할까. 시사 대담프로그램은 왜 그렇게 늘 딱딱할까. 상대방 얘기는 듣지 않고 자기 얘기만 하는 그런 대담 프로그램을 왜 보고 있어야 할까. '열광'은 분명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바로 이런 기존 예능 토크쇼와 시사 대담프로그램에 대한 도전에서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시사를 좀더 쉽게 접근시키고 재미있게 만드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다. 그래서 신변잡기 같은 각자의 고기 경험이 먼저 얘기되고 그러면서 차츰 차츰 욕망에 대한 이야기, 사회적인 문제들, 그래서 구제역 같은 재앙까지 이야기가 넓혀져 나간다.

'열광'에 열광하게 되는 포인트가 분명히 있다. 먼저 이 시사토크쇼는 시사를 다루면서도 뭔가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이론을 얘기하기 보다는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경험담을 통해 시사에 접근하기 때문에 주장은 설득이 아니라 공감이 된다. 그래 그래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어 하고 수긍하는 순간, 이미 우리는 시사가 그리 먼 세계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양념처럼 유머가 곁들여진다. 시사를 다루기 때문에 이 유머 역시 기존 예능의 웃음과는 사뭇 다르다. 한번 생각해보면 웃음이 터지는 지적 유머는 '열광' 같은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찾기가 쉽지 않다.

시사랭크쇼 '열광'은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어떤 결론을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 김일중 작가는 "그것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야기가 깊어질 때면 다시 예능의 표면으로 되돌리려 노력한다. "웃음을 주어야죠. 물론 그 웃음의 결은 확실히 다르겠지만." 즉 예능과 시사 사이에 어떤 균형점을 잡아주는 것이 이 시사토크쇼의 관건이 된다. 너무 예능쪽으로 가면 알맹이가 사라지고, 너무 시사쪽으로 가면 재미가 반감된다. 그 중간 지점에 방점을 찍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엉뚱발랄 시사토크쇼만의 색깔이 나온다.

지적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을까. 아마도 기존 시사 대담 프로그램에 익숙한 분들에게 이런 질문은 부정적으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한번 '열광'을 보게 된다면 다른 생각을 할 지도 모른다. 그저 재밌게 웃으며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그 지적 유희에 열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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