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오·진희경, 묵묵히 청춘 지지하는 ‘쌈마이’의 숨은 주역들

격투기 데뷔 무대에서 허무할 정도로 쉽게 상대를 무너뜨리고 링에서 내려오는 고동만(박서준)을 보는 코치 황장호(김성오)는 금세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습니다. 영영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라 여겨졌던 고동만의 돌려차기 한 방이 마치 그의 가슴을 강타한 것처럼 그를 먹먹하게 만들었죠. 붉게 충혈되어버린 그의 눈은 그간 그가 얼마나 이 고동만이라는 청춘의 비상을 보기를 바랐는가를 미루어 짐작하게 했습니다.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는 청춘 멜로를 담고 있지만, 그 청춘들만큼 주목되는 어른들도 있습니다. 고동만의 코치 황장호가 그렇죠. 누구보다 고동만의 재능을 잘 알고 있던 코치였기에 그가 동생의 병원비 때문에 부정 시합을 하고 그게 발각되어 더 이상 태권도를 할 수 없게 된 것이 안타까운 그였습니다. 이종격투기 도장을 연 황장호는 그래서 마치 구애라도 하듯 고동만을 따라다니며 그가 격투기로 제2의 인생을 열기를 바라죠. 

고동만을 지원하기 위해 순대 장사를 하며 뒷바라지를 하는 황장호는 그렇다고 고동만에게 그런 자신을 생색내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현실을 전혀 모르는 인물도 아니죠. 그저 묵묵히 옆에서 고동만을 지원해주며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김탁수(김건우) 같은 금수저의 농간에 휘둘리지 않게 하기위해 기자를 동원할 줄도 압니다. 돈에 의해 승부조차 조작되는 냉정한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실력’으로 정정당당하게 서야 한다고 말하는 황장호. 고동만이라는 청춘에 대한 지지만큼, 그를 지지하는 황장호라는 어른을 지지하는 마음이 생기는 건 그런 점들 때문이 아닐까요. 

<쌈마이웨이>에는 또한 전지적 건물주 황복희(진희경) 같은 미스터리하지만 매력적인 어른도 있습니다. 흔히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일컫는 현실이지만, 전혀 건물주 같지 않은 모습으로 건물 곳곳을 직접 손보는 이 걸크러시가 느껴지는 어른은 이 건물에 사는 청춘들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며 보이지 않는 힘을 발휘합니다. 백화점에서 최애라(김지원)가 VIP에게 갑질을 당하자 백화점 점장을 찾아가 그 VIP를 아예 제명시켜버리는 인물이죠. 또 고동만과의 대결을 피하려는 김탁수가 황장호가 운영하는 도장이 있는 건물을 아예 인수해 도장 자체를 없애려 하자 자신이 먼저 인수해 계속 도장이 운영될 수 있게 해주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백수가 되어버린 고동만과 최애라에게 “일하지 않는 자들이 가장 한심하다”고 콕 찌르는 한편, 그 청춘들이 갑질하는 현실 앞에서 억울하게 무릎 꿇는 일이 없도록 이에 맞서는 어른입니다. 그녀는 마치 키다리 아저씨가 아니라 키다리 아줌마 같죠. 고동만과 최애라 둘 중 누군가와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미스터리한 인물이지만, 그 진짜 정체보다 더 중요한 건 그녀가 주는 진정한 어른에 대한 판타지입니다. 할 말은 하면서도 청춘들이 현실 앞에서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되는 것에는 맞서는 어른.

<쌈마이웨이>는 그 청춘들의 모습이 자꾸만 설레고 또 예뻐 보이는 드라마지만, 그것을 뒤에서 보이지 않게 지지해주는 어른들에 대한 판타지 역시 적지 않은 드라마입니다. 진정한 어른이라면 청춘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정정당당하게 살 수 있는 현실적 바탕으로 위해 싸워줄 수 있는 그런 존재여야 하지 않을까요. 황장호와 황복희가 이 청춘들을 위해 드러내지 않고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이런 어른들이 현실에도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쌈마이웨이’ 김지원, 신데렐라 걷어차고 내 길 간다

“무빈 씨 생각엔 백마 태워 호강시켜 주길 바라는 여자들이 세상에 널렸을 거 같은가 본데 그 신데렐라는 이제 드라마에서도 안 먹혀요. 진짜 현실에선요, 자기 인생 피 터지게 사는 자수성가 또라이형 여자들이 수두룩 짱짱하다고. 그니까 유리구두! 개나 주라고!”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최애라(김지원)은 박무빈(최우식)이 선물한 구두를 벗어던졌다. 사실은 결혼할 사람이 있는데도 자신을 사귀어온 박무빈의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신데렐라가 되게 해주겠다며 그가 사준 구두를 벗어던지고 맨발로 갔던 길을 돌아온다. 그녀를 걱정해 찾아온 고동만(박서준)은 떨고 있는 그녀를 안아주며 분노하고, 그런 그에게 그녀는 가슴이 떨린다.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의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보통의 멜로와 어떻게 결이 다른가를 정확히 보여준다. 최애라가 대사로 얘기했듯이 이제 더 이상 ‘신데렐라 이야기’는 드라마에서도 먹히지 않는 시대다. 그렇게 된 건 ‘인생 피 터지게 사는 자수성가 또라이형 여자들’이 현실에는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런 현실에 신데렐라가 가당키나 한 판타지인가.

<쌈마이웨이>가 청춘멜로의 전형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그 안에 ‘갑질하는 현실’의 그림자를 제대로 드리워놓고 있어서다. 최애라도 고동만도 갑질을 당하는 건 ‘일’에 있어서만이 아니다. 그들은 일터에서 이른바 비정규직으로 아무렇게나 쓰다 버려지지만, 그런 갑질은 사적인 영역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진다. 

박무빈이 최애라에게 이끌리게 된 계기를 보라. “걔가 좀 나대잖아요? 쥐뿔도 없는 놈이 항상 신나 있고. 그게 거슬린다.”고 말하는 박무빈에게서 느껴지는 건 가진 자의 오만과 독선이다. 그는 단지 고동만처럼 ‘없는 놈’이 항상 즐겁게 살아가는 꼴이 거슬려 그의 것을 빼앗으려 했을 뿐이라는 것. 

일터에서 청춘들이 일상처럼 만나는 갑질은 이제 남녀 간의 사랑에도 끼어들었다. 과거 많은 멜로드라마들이 부자들에 의해 신데렐라가 되는 여주인공을 통해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자극했다면, <쌈마이웨이>는 보기 좋게 그 유리구두의 판타지를 부숴버린다. 그렇게 드러난 실체는 달달하기는커녕 너무나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이것은 고동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몇 차례 헤어져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가 이혼하기를 반복하며 그 지독한 현실의 신데렐라가 된 박혜란(이엘리야)은 뻔뻔하게도 다시 고동만 앞에 나타나 그를 자기남자로 만들려 한다. 그녀는 이제 고동만을 위해 뭐든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에서 느껴지는 건 그녀가 이제 돈이면 사랑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선택이 그랬으므로.

하지만 고동만도 최애라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고동만은 박혜란에게 자꾸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고 최애라는 박무빈이 만들어주겠다던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벗어던진다. 그래서 그들은 오롯이 맨발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돈과는 상관없는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지켜낸다. 이 맨발의 청춘이 현실에 치여 사랑하면서도 사랑하는 줄 모르는 그 모습이 못내 안쓰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건 그래서다. 

일도 사랑도 갑질 투성이인 세상, <쌈마이웨이>는 쌈마이 취급을 받아도 마이웨이를 걷는 청춘이 더 당당하다고 말한다. 그 당당한 <쌈마이웨이>에 대한 지지의 마음이 깔려 있어 이 청춘멜로는 각별하게 다가온다. 이들이 갑질 세상에 날릴 통렬한 돌려차기를 기대하게 된다.

‘수상한’·‘쌈마이’ 같은 멜로라면...장르물과 결합하고 현실 담아내고

사실 우리네 시청자들에게 멜로에 대한 반응은 양면적이다. 우리네 드라마에서 멜로드라마적 전통은 드라마의 전통과 맞닿아 있을 정도로 뿌리 깊다. 지금껏 드라마 하면 그것이 어떤 장르를 갖고 있든 멜로가 빠지면 어딘지 빈자리가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드라마의 ‘멜로 코드’가 식상하다는 반응도 어김없이 나온다. 특히 장르물이나 사극에서 갑자기 멜로 코드가 등장하면, “멜로 없이는 안 되냐”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오곤 한다. 어딘지 빠지면 아쉽고, 들어가면 식상해지는 멜로. 그래서 멜로는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수상한 파트너(사진출처:SBS)'

SBS 수목드라마 <수상한 파트너>는 멜로에 법정드라마라는 장르물을 엮어냈다. 물론 법정드라마 속에 간간이 멜로 코드가 섞인 드라마는 이전부터 꽤 많이 등장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저 멜로 코드를 살짝 넣은 것이 아니라, 멜로와 법정드라마 장르를 보다 긴밀하게 엮어내고 있다. 즉 제목에서 드러나듯 법정드라마의 공적 관계 속에서는 ‘파트너’이지만, 그것이 멜로의 사적 관계로 얽히며 멜로와 법정드라마 양면에 모두 긴장감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일인지 7명을 죽이려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해 여주인공인 은봉희(남지현)에 접근하는 그 장면들은 장르물의 긴장감을 높이지만, 여기에 그녀에 대한 마음이 점점 커져가는 노지욱(지창욱)의 절절함이 더해지며 멜로의 강도도 높이고 있는 것. 그저 멜로가 양념으로 더해진 것이 아니라 장르물의 긴장감 또한 높여주는 효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수상한 파트너>의 멜로를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다. 

한편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의 경우 답답한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있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멜로와 엮어냈다. 즉 갑질 하는 현실에서 질식해가는 청춘들이 그들만의 연대와 사랑, 우정 등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고 자신들만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이야기의 골자다. 아나운서가 꿈이지만 백화점 안내원인 최애라(김지원)와 태권도 선수의 꿈을 접고 근근이 살아가던 고동만(박서준)이 그 현실의 벽 앞에서 서로를 지지해주며 차츰 친구 그 이상의 감정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은 그래서 청춘 멜로에 현실적 질감을 더해준다. 

태생적으로 가진 자들이 스펙을 통해 저들만의 세상을 꾸려나가고, 거기서 빗겨난 ‘쌈마이’ 청춘들이 그래도 ‘마이웨이’를 가겠다고 선언하는 이야기는 다분히 사회에 대한 도발적 메시지를 담아낸다. 그러면서 그 청춘의 도발을 연대하는 친구들의 훈훈한 우정 속에서 멜로가 은근히 피어난다. <쌈마이웨이>가 다루는 청춘멜로가 뻔해 보이지 않고 어떤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이유는 이러한 현실적 질감이 그 밑바닥 정서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멜로의 이종결합이 그 자체만으로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멜로가 그저 보조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르물이든 현실적인 이야기이든 그 안에 제대로 녹아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수상한 파트너>와 <쌈마이웨이>의 멜로는 이러한 이종결합의 정답지 같은 느낌을 준다. 장르물 속에서 또 현실적인 공감대 위에서 그 멜로의 화학작용이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으니.

‘쌈마이웨이’, 송하윤의 눈물과 엄마의 피눈물

“결혼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 엎으고 우리 설희 앞에 다신 얼씬대지도 마러라. 그 따우 집구석에 나는 우리 딸 안 보낸다.” 이렇게 적으려던 엄마는 썼던 문자를 지워버리고 다시 적는다. “주만아, 잘 지내지? 본지가 오래 되었구나. 설희가 혼자 돌잔치에 가 있다. 설희가 너를 참 많이 좋아한다. 우리 설희 그저 많이 예뻐해다오.” 본래 쓰려던 문자와 보낸 문자 사이에, 엄마의 마음이 느껴진다. 참을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이 느껴지던 본래 쓰려던 문자는 한껏 정제되고 차분한 문자로 바뀌었다. 엄마가 딸을 생각하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진다.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엄마와 딸은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읽어내는 걸까. 딸 백설희(송하윤)는 엄마가 주만(안재홍)에게 보낸 문자를 읽는 순간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 날 낮 예비시댁의 백일잔치에서 종업원처럼 일하던 자신의 모습을 엄마가 봤을 거라는 걸 그녀는 단박에 알아차린다. 한쪽으로 치워져 있던 쓰레기를 엄마가 치워놓았다는 것 역시.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자기가 좋아 하는 일이라고는 했지만 그걸 봤을 엄마의 마음이 설희를 눈물 흘리게 한다.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에서 백설희라는 청춘은 지나치게 저자세다. 회사에서 회식을 할 때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나서 고기를 잘라준다. 그녀는 6년 동안이나 남자친구 주만의 뒷바라지를 해왔다. 그 덕에 주만은 홈쇼핑 회사에 들어가 대리를 달고 살아간다. 하지만 백설희는 여전히 주만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습관처럼 살아가고, 그것은 그녀의 삶 전체를 저자세로 만들어버린다.

주만은 그녀에게 “네가 모자란 게 뭐가 있냐?”고 질책하며 제발 저자세로 그러지 말라고 한다. 누나네 백일잔치에서 고무장갑을 끼고 허드렛일을 하고 있는 설희를 보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 사람들이나 주만의 집안사람들은 설희의 그런 희생에 고마운 마음을 갖지 않는다. 늘 그래왔기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주만의 집안사람들은 설희가 주만과 당연히 결혼할 것이라는 사실도 부정한다. 

그래도 온전히 그녀를 챙겨주고 그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건 주만이다. 그는 집안 사람들에게 설희를 무시하지 말라고 호통치고, 설희와 결혼을 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아니면 자신은 결코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에게 무작정 달려드는 인턴 장예진(표예진)에게 철벽을 치고, 혹여나 이를 신경 쓸 설희를 걱정한다. 

<쌈마이웨이>는 빈부 격차로 인해 태생적으로 스펙이 결정되는 사회 속에서 가지지 못한 청춘들이 겪는 현실을 멜로로 엮어낸 드라마다. 하지만 그 짠내 나는 현실은 청춘들만의 것이 아니다. 그 청춘의 부모들은 그 현실 앞에서 아무 잘못도 없이 죄인이 된다. 백설희라는 청춘이 눈물을 흘릴 때, 그걸 바라보는 엄마는 피눈물이 흐른다. 

족발집을 하는 설희네 가게에서 족발을 자르는 남편에게 설희 엄마가 슬쩍 한 마디를 던져본다. “우리 족발집 때려치고 레스토랑이나 하나 할까?” 낮에 백일잔치에서 주만네 집 사람들이 설희네가 족발집을 한다고 한 말이 떠올라서다. 주만에게 선이 들어왔는데 그 집이 레스토랑을 한다는 이야기에 설희 엄마는 괜스레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왜 그러냐는 남편의 물음에 설희 엄마는 말한다. “그냥 설희가 족발집 딸이라는 게 싫어서.” 

힘겨운 청춘들, 어째서 부모가 죄인이 되어야 할까. <쌈마이웨이>가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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