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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이 거둔 성취와 남는 아쉬움

 

<봄밤>은 MBC가 9시 드라마 편성을 시도한 첫 작품으로 꽤 괜찮은 성적을 냈다. 3%대에서 시작해(닐슨 코리아) 8%대 시청률까지 냈으니 말이다. 게다가 화제성도 좋았다. 소소하고 담담한 일상 멜로의 틀 안에서도, 사회비판적 코드들이 만들어내는 극성이 분명히 존재했다. 제목은 달달하기만 할 것 같은 ‘봄밤’이지만, 결코 달달하게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이렇게 된 건 <봄밤>이 멜로라는 소재를 가져와 사실은 속물적이고 시대착오적이며 심지어는 범죄적인 엇나간 인물들을 적나라하게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물론 전면에 보이는 건 이정인(한지민)과 유지호(정해인)의 보고만 있어도 눈 호강을 하게 되는 멜로지만, 이들을 둘러싼 사회적 편견 가득한 인물들은 우리네 사회의 현실적인 부분을 충분히 건드리고도 남았다.

 

두 사람 사이에서 사랑이 아닌 승부욕과 ‘집착’을 보이는 권기석(김준한)은 그 사회비판적 시각을 담아내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가 보여주는 권력적인 관계들은 심지어 남녀 사이라는 사적인 관계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누군가를 사랑하기보다는 결코 지는 걸 용납할 수 없는 엇나간 집착. 그것은 자신이 유지호 같은 비혼부에게 밀린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는 비정상적인 집착이었다.

 

이를 둘러싼 부모 세대의 이야기는 그래도 자식들의 행복을 더 빌어주려는 진정한 어른들과 자식의 행복은커녕 그 결혼조차 자신의 입지로 바라보려는 속물적인 어른들의 대비로 그려졌다. 이정인의 엄마 신형선(길해연)이 전자라면 그 남편이자 이정인의 아빠인 이태학(송승환)은 후자였다. 여기에 권기석의 아버지 권영국(김창완) 같은 갑을관계로 세상을 바라보는 인물이 가세하면서 이 대결구도는 팽팽해졌다.

 

즉 이정인과 유지호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봄밤에 만나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달달한 멜로는 이런 외부적 상황들과 대결하게 된다. 시청자들은 이들의 멜로가 이뤄지길 바라면서 동시에 그들을 힘겹게 만드는 외부적 상황들이 얼마나 비뚤어져 있는가를 자연스럽게 들여다보게 된다.

 

사실 드라마 초반 <봄밤>은 안판석 감독과 김은 작가 그리고 정해인과 꽤 많은 안판석 라인 배우들(?)의 출연으로 전작이었던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또 다른 버전이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다. 실제로도 유사한 지점들이 있었다. 일상 현실 연애를 담고 있다는 것과, 그 안에 우리 사회의 현실을 담아내는 방식이 그것이다.

 

하지만 <봄밤>의 종영에 이르러 생각해보면 이것은 어찌 보면 안판석표 멜로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아주 현실적인 일상 연애를 특유의 섬세한 연출로 담아내면서 동시에 그 위에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얹어 넣는 그런 멜로. 그저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 속에 치열한 대결의식을 담아내는 방식. 그것이 안판석표 멜로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남는 의구심도 분명히 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 이어 <봄밤>까지는 어떻게 몰입해서 본다고 해도 또 비슷한 멜로가 나온다면 과연 시청자들이 반색할 수 있을까. 이제 안판석 감독 같은 장인이 만든 조금은 야심이 엿보이는 그런 작품을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사진:M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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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특별한 일도 없었는데 이토록 애틋해진 건

 

“왜 피하는데요. 우리가 뭘했는데. 지호씨하고 내가 뭐라도 했냐고.” MBC 수목드라마 <봄밤>에서 이정인(한지민)은 유지호(정해인)에게 그렇게 말한다. 연락도 없이 무작정 이정인이 일하는 도서관에 왔던 유지호는 마침 그 곳에 그의 남자친구인 권기석(김준한)이 나타나자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그러자 이정인이 유지호에게 전화를 걸어 그렇게 되물었다.

 

그런데 이 질문은 새삼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기는 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정인의 말대로 그들은 우연히 약국에서 지갑을 안 가져와 돈도 지불하지 않고 숙취해소약을 먹은 게 인연이 되어 알게 됐고, 마침 권기석의 후배인 유지호가 그와 농구경기를 하는 걸 이정인이 보러오면서 함께 술자리를 하게 됐다.

 

그러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신들도 모르는 어떤 자력 같은 게 만들어졌다. 괜스레 유지호가 일하는 약국 앞을 이정인이 서성이기도 하고, 아이를 데리고 이정인이 일하는 도서관을 유지호가 굳이 찾아가기도 한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무언가 깊은 이야기를 나눈 것도 별로 없다. 다만 불쑥 이정인이 유지호에게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했고 유지호가 이정인에게 아이가 있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액면으로만 보면 별 일도 벌어지지 않은 사이. 그래서 시청자들에 따라서는 <봄밤>의 이야기가 너무 지지부진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특별한 일이 벌어진다기보다는 두 사람의 일상들이 교차되고 그들이 만나도 그리 극적인(?) 대화나 행동이 이어지지도 않는다. 일상적 대화와 만나고 헤어짐의 연속. 그러니 이정인이 화를 내듯 “우리가 뭘했는데”하고 되묻는 건 마치 시청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묘미는 바로 그 이정인이 “우리가 뭘했는데”라고 되묻는 그 말 속에 담긴 진짜 의미를 읽어내는데 있다. 그 말은 달리 해석하면 “뭘 하고 싶다”는 욕망이 담긴 말이기도 하다. 또한 굳이 무언가 극적인 말이나 행동을 해야 애틋한 감정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는 걸 돌려 말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미 그런 말 속에는 이정인의 흔들리는 감정이 담겨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자세히 이들이 무엇이 끌렸던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건 특별한 말이나 행동이 아니라, 어떤 일들을 대할 때 드러나는 태도나 삶의 자세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첫 만남에서 숙취해소 드링크를 마개를 따서 주고, 지갑을 놓고 왔다고 하자 오히려 몇 만 원을 더 챙겨주던 지호에게서 이정인은 자신도 모르게 끌렸을 지도 모른다. 그의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해온 배려 없는 결혼 강권의 상황들을 염두에 두고 보면 이정인이 지호의 행동들에 담긴 배려를 남달리 보게 됐을 거라는 짐작을 하게 한다.

 

이정인이 남자친구가 있다는 말에, 유지호가 자신은 애가 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도 유지호가 이정인에게 끌렸던 건 그게 뭐 대수냐는 태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비혼부라는 늘 사회적 편견 속에서 살아가는 유지호가 아닌가. 아이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그가 굳이 아이를 부모님댁에 맡기고 살아가는 건 그런 편견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그에게 그게 뭐 잘못된 일이냐고 말하는 이정인에게서 유지호의 마음은 흔들렸을 게다.

 

이미 서로에 대한 호감이 선을 넘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갈등을 일으키는 그 과정들 속에서 약국에서 만나게 된 두 사람이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은 흥미롭다. 이렇게 서로에게 빠져버린 것이 자신 탓이 아니라는 걸 변명하듯 말다툼을 하던 끝에 이정인이 “겨우 이럴 거면서 도서관에 왜 찾아왔어”라고 말하고 돌아서려 할 때 유지호는 드디어 속마음을 드러낸다. “보고 싶어서.” 그리고 진심을 털어놓으려고 “나는...”을 반복하는데 마침 약국 문 앞 공사현장에서 들려오는 소리 때문에 말을 잇지 못한다. 그 예기치 못한 상황에 이정인은 웃음이 터진다.

 

사실 이 상황에서 유지호의 말이 뭐 그리 중요할까. 이미 그 말을 잇지 못하는 그 상황 속에 그의 마음이 이정인에게 전달되었는데 말이다. 이것은 <봄밤>이 보여주는 멜로의 풍경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보기에는 별 일도 벌어지지 않았고 별 말도 오고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별 거 없는 일들과 말들 속에서 마음이 오고간다. 그리고 굳이 표현되지 못한 말은 그만큼 더 애틋해지고 더 깊어진다. 말하지 않아서 일이 벌어지지 않아서 더 애틋해지는 감정들. 그것이 사랑이 피어나는 과정이라는 걸 <봄밤>은 보여주고 있다.(사진:M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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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해 보여도 흥미진진한 '봄밤'의 멜로

 

MBC 수목드라마 <봄밤>의 멜로는 보는 맛이 있다. 물론 처음에는 너무 일상적인 멜로가 아닌가 여겨지기도 했다. 또 전작이었던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잔상이 눈을 가렸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꾸만 들여다보자 이 멜로 어딘가 다르다. 보통의 멜로에서 늘상 벌어지는 사건들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인물의 심리와 감정변화에 대한 섬세한 시선이 느껴진다.

 

예를 들어 정인(한지민)이 동생과 함께 기석(김준한)의 농구시합을 보러갔다가, 거기서 경기를 벌이는 지호(정해인)를 보게 되고, 그들이 다 같이 뒷풀이를 하게 되는 에피소드가 그렇다. 그건 어떤 멜로에서도 자주 등장하던 시퀀스지만, 이 장면에서 가게 바깥에 있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나온 정인이 마침 거기서 아들과 전화통화를 하는 지호를 보게 되는 상황이 들어가면서 둘 사이에 묘한 관계가 생겨나는 지점이 그렇다.

 

두 사람은 이미 아는 사이고, 정인이 지호에게 친구가 되자고까지 얘기했던 사이다. 그래서 정인의 남자친구인 기석 모르게 둘이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둘 사이에 내밀한 관계를 구성한다. 게다가 아들과 전화통화를 하며 술 안마셨다 거짓말을 하는 지호의 이야기를 슬쩍 엿 듣고는 “거짓말이 싫다”고 농담 반 섞어 말한 정인이 막상 남자친구에게 거짓말을 하는 대목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거짓말의 공유’라는 그 상황 하나만으로 정인과 지호의 내밀한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니 말이다.

 

술을 마시고 몇몇이 함께 간 노래방에서 정인의 감정 변화는 더 흥미롭다. 어쩌다 지호와 같은 노래를 신청하게 된 정인은 내심 기쁜 마음을 드러내지만, 갑자기 아들이 아파 전화를 받고 나가버리자 혼자 노래 부르다 중간에 끊어버리는 정인에게서는 그를 걱정하는 마음이 묻어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정인에게 동생 재인(주민경)이 마치 화가 난 듯 말이 없어진 것에 대해 “안 좋은 일 있냐”고 묻는 대목도 상당히 의도적이다. 그것으로 정인의 지호를 생각하는 마음을 은근슬쩍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인이 지호에게 친구가 되자고 하고, 지호는 “그럴 수 없다”고 하다가 결국 “친구하자”고 하는 장면도 표면적으로는 별거 아닌 대화처럼 보이지만 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담아내는 대목이다. 즉 정인은 지호에게 “친구가 별거냐”고 말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생 재인이 정인의 친구와 길거리에서 만나고 있는 걸 보고는 의외로 보수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집으로 돌아와 재인에게 그 친구를 만난 걸 따져 묻는 것. 하지만 “친군데 어떠냐”고 오히려 말하는 재인을 통해 드라마는 정인이 말과는 달리 남녀 사이의 ‘친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밖에도 <봄밤>은 그저 스쳐 지나치지 않고 그 말과 행동의 의미들을 곱씹어보면 새록새록 그 숨겨진 감정들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섬세한 표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정인이 자신이 일하는 도서관에서 우연히 한 아빠와 같이 온 아이를 바라보는 장면도 그냥 허투루 들어간 게 아니다. 그건 스토리상 없어도 되는 장면이지만, 그 아이를 통해 정인이 아이가 있는 지호를 떠올리는 것으로 그 끌리는 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지호의 차 안에서 공룡스티커가 붙어있는 걸 본 정인이 아이와 함께 온다는 소식에 공룡책을 찾는 대목도 그렇다.

 

사실 우리가 현실적으로 겪는 사랑이란 굉장히 특별하고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아닐 것이다. 어찌 보면 아주 평범한 일상들이 지나치고 있었지만, 그것들에 투영되는 우리의 감정들이 달라지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에 빠져 그 일상적 상황들을 특별하게 느끼게 되는 것일 게다. <봄밤>은 그런 점에서 액면의 드러나 있는 사건보다 그 사건이 야기하는 미묘하고 섬세한 감정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너무나 일상적인 사건들만 담고 있어 심지어 평이해 보이는 드라마를 보며 우리가 의외로 설레게 되는 건 바로 이런 섬세함을 담아내는 디테일들 때문이다.(사진:M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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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풍문'의 화학실험, 신데렐라 아닌 갇힌 소녀

 

요즘 같은 시대에 귀족이 어디 있습니까.” 한정호(유준상)은 그렇게 말하면서 시민사회의 자유와 평등을 운운한다. 하지만 그렇게 평등한 시민사회의 한 일원인 척 하는 한정호의 실상은 뼛속까지 귀족인 양 특권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실제로 그는 엄청난 대기업들의 대리를 해주는 로펌의 대표로서 권력을 행사한다. 비상한 머리로 타인의 치부를 들춰서라도 얻을 건 얻어내는 그런 인물이다.

 

'풍문으로 들었소(사진출처:SBS)'

SBS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는 그 대부분의 공간적 배경이 바로 이 한정호의 집이다. 벌써 7회를 넘기고 있지만 이 집의 구조는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 집을 무작정 쳐들어온 서봄(고아성)의 엄마 김진애(윤복인)너무 커서어지럼증을 느낄 정도다. 공간과 조명을 잘 활용하는 안판석 감독 특유의 연출은 한정호의 집을 거대한 미로처럼 만들어놓는다. 어두침침한 그 곳은 늘 문이 닫혀 있고 그 문 안쪽에서는 누군가의 수군거림이 들려온다. ‘풍문이라는 어감이 가장 잘 시현된 공간구성이다.

 

집이 갖고 있는 이 겉모습의 고요함과 그 안에서의 소란은 한정호라는 인물의 이율배반적인 삶과 일치한다. 교양인으로서 모든 걸 이성과 대화로 차분하게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이려 하지만 그들의 내부에서는 무언가 뜨거운 것들이 울컥 울컥 밖으로 빠져 나온다. 인간이 아닌 완벽한 존재처럼 보이고 싶어 하지만 한정호는 탈모 때문에 고민하고 그의 아내 최연희(유호정)는 허한 마음을 부적으로 달래는 인사다.

 

이런 집에 그의 아들 한인상(이준)이 임신한 서봄을 데리고 오고 바로 그 날 최연희의 침대에서 아기를 낳는다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흥미로운 실험의 첫 단계다. 너무나 이질적인 환경에서 자라온 서봄이라는 서민이 이 이성과 교양을 가장하고 있지만 어찌 보면 시대착오적이고 때로는 기괴한 느낌마저 주는 이 집에 들어옴으로써 어떤 파장과 변화가 벌어지는가 하는 점이 이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다.

 

이 화학실험은 우리가 흔히 보던 신데렐라 이야기와는 정반대의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즉 서봄이라는 똑똑하고 현명하며 생명력이 넘치는 서민이 마치 죽은 관 속의 삶을 살아가는 듯한 한정호의 집에 들어와 신데렐라로서의 부유한 삶을 누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해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답답해하고 괴로워하는 이야기다. 그녀는 신데렐라가 아니라 마치 괴물의 성에 갇힌 소녀처럼 보인다.

 

안판석 감독과 정성주 작가의 <밀회>가 상류층이 가진 허위의식을 시종일관 진지한 시선으로 비판하는 작품이었다면 <풍문으로 들었소>는 다소 블랙코미디적인 여유가 느껴진다. 한정호의 갑질은 분노를 일으키기보다는 실소를 터트리게 한다. 그토록 외치는 평정심은 사실 자주 깨지는 모습을 통해 웃음으로 전화된다. 양갓집이 함께 만난 자리의 그 의전이 깨질 때 그 진짜 속내가 드러나는 것처럼, 한정호와 최연희의 그 데드마스크가 어떤 감정을 드러낼 때 <풍문으로 들었소>의 통쾌한 풍자가 시작된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그래서 그 상황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피식피식 웃음이 비어져 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게 만든다. 서봄과 한인상의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라며 과외선생에게 한정호가 요청하자 그가 해주는 명료한 세계관강의는 그것이 섬뜩한 현실이면서도 실소를 짓게 만든다. 한정호는 사람은 괴물이라고 말하면서 결국 그래서 필요한 것이 훈육임을 강조하지만 그 훈육이란 다름 아닌 모든 것을 누르는 힘의 세계를 받아들이라는 것일 뿐이다. 괴물은 결국 한정호인 셈이다.

 

하지만 힘과 윤리라는 명료한 세계관’ 2탄 강의에서 서봄은 그런 비윤리적인 사람을 변호해주는 것이 맞는 일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한정호의 집이라는 괴물의 성에 갇혀 있는 서봄이라는 소녀는 그녀의 엄마인 김진애의 증언처럼 결코 호락호락하게 잡혀먹힐 위인이 아니다. 그녀는 그래서 처음에는 구속된 존재처럼 보이다가 차츰 이 성을 변화시키는 인물처럼 보인다. 아니 이미 한인상이라는 인물을 변화시켰을 때 그래서 둘 사이에 아이가 생겨났을 때부터 그녀가 일으킨 변화는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정호의 세계와 서봄의 세계의 부딪침. 그 화학작용을 웃음으로써 그려내는 이 작품은 그래서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과연 어떤 세계의 삶을 진정으로 원하는가. 서봄의 가족들은 가난하고 사업에 실패해 부채도 많다. 또 첫째 딸은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 시험을 치르고 있지만 배경이 없어 1차에서 번번이 떨어진다. 그들의 이런 약점을 이용해 한정호는 거래를 하려 하지만 그 때마다 이 서봄의 가족들은 흔들리기는 해도 결코 꺾어지는 않는다. ‘돈으로 빤스 벗게 만드는세상에 대해 항변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가능한 건 서봄이라는 사랑하는 가족의 존재와 그 서봄이 낳은 아기라는 축복받아야 하는 생명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부유한 데드마스크의 삶을 살아가는 한정호와 최연희보다 때로는 툭탁거리며 지지고 볶는 서형식(장현성)과 김진애의 삶이 더 건강하게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함만이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서봄은 그 이름처럼 이렇게 자본에 의해 화려해졌지만 그만큼 메말라버린 차가운 현실 속에서 봄 같은 생명력을 돋보이는 존재다. 과연 서봄은 이 괴물의 집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아니면 그 괴물에게 먹혀버릴까. 이 드라마가 흥미진진해지는 대목이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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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사랑과 욕망의 완벽한 변주곡

 

너는 어쩌다 나한테 와서 할 일을 다 해줬어. 사랑해줬고, 다 뺏기게 해줬고, 내 의지로는 못 했을 거야. 그래서 고마워. 그냥 떠나도 돼.” 스스로 죗값을 치르러 교도소를 선택한 오혜원(김희애)이 이선재(유아인)에게 건네는 이 말은 <밀회>라는 드라마가 무엇을 그리려 했는지가 드러난다. 그것은 사랑과 욕망의 완벽한 변주곡이었다.

 

'밀회(사진출처:JTBC)'

자기 자신까지도 욕망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오혜원의 법정 최후진술 속에는 젊은 날의 순수와 열정과 사랑을 잃어버리고 욕망의 끝단을 달렸던 자의 참회가 들어 있다. 그녀는 피아노에 대한 열정마저 접어버렸고 대신 상류층의 삶에 동화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 그런 그녀 앞에 이선재가 나타났고 그가 들려준 피아노와 사랑의 속삭임은 그녀를 욕망으로부터 깨어나게 했던 것.

 

자신의 죄를 낱낱이 고백하고 죗값을 치르는 것으로 모든 욕망을 털어낸 후 그녀는 비로소 진짜 사랑과 자기 자신의 삶을 얻었다. 허름한 죄수복을 입고 교도소 한 귀퉁이에 기대 있는 그녀가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곤 떨어지는 햇살 한 조각뿐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했다. 작은 행복이지만 그것은 욕망의 것이 아닌 온전한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밀회>격정멜로라는 수식어로 시작했지만 치정극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사랑으로 시작해 욕망으로 변질되는 치정극들은 넘쳐나지만, 거꾸로 욕망 속에 있던 인물이 사랑으로 변화하는 이야기는 흔치 않다. 이 과정에서 상류층의 부조리나 추악한 욕망의 이야기와 사랑 이야기가 동시에 다뤄질 수 있었다. 비리로 점철된 학교 재단의 이야기는 마치 치열한 사회극을 보는 듯 했지만, 그 비리를 부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랑과 순수의 힘이었다.

 

피아노와 음악은 사랑과 순수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비리로 얼룩진 음대에서는 음악도 일종의 거래처럼 이용되었고 전시되었다. 학교로부터 버려진 친구들과 함께 이선재가 5중주를 준비하고 굿바이콘서트를 하는 에피소드는 그래서 리히테르가 말했듯 음악은 허영이 아닌 진정으로 즐기는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선재의 표현대로 끝까지 즐겨주는 것그것이 장땡인 것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섬뜩할 정도로 날카롭게 해부해내면서, 동시에 스무 살 차이 연인의 미세한 심리적 변화와 떨림을 포착해내고, 또 그 위에 피아노라는 아름다운 예술의 진정한 맛을 드라마 한 편 속에 모두 담아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냉정과 열정을 오가는 정성주 작가의 놀라운 필력과, 조명의 농담과 피아노 선율만으로도 인물들의 감정을 담아내는 안판석 감독의 연출력, 그리고 그 위에서 물오른 연기를 보여준 연기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감성적으로 울리거나 이성적으로 깨우는 드라마들은 많지만 이처럼 감성적이면서 이성적인 드라마는 흔치 않다. 섣부른 해피엔딩을 말하는 드라마나 충격적인 새드엔딩을 말하는 드라마는 많지만 그 둘 다를 아우른 희비극은 많지 않다. <밀회>는 욕망의 끝장이라는 새드엔딩을 그리면서 동시에 사랑의 시작이라는 해피엔딩을 담아냈다. 욕망을 벗어버리고 사랑으로 가게 하는 힘. 그것은 어쩌면 예술의 힘인지도 모른다. <밀회>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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