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조', 최덕문 같은 비현실 사이다가 주는 놀라운 카타르시스

 

세입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동원된 깡패들의 폭력.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이제 이런 장면은 전형적이라고 할 정도로 익숙하다. 그만큼 우리네 사회악을 담는 콘텐츠들 속에서 늘 등장하는 게 재개발이고, 여기에 동원되는 게 조폭들이었기 때문이다. tvN 토일드라마 <빈센조>가 굳이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까지 등장시켜가며 굳이 한 상가건물의 재건축을 하려는 세력과 맞서게 한 건, 너무나 전형적이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네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개발'을 앞세워 벌어지는 부정축재의 카르텔을 저격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빈센조>가 다루는 이 카르텔에 대한 풍자가 흥미로운 건, 어찌 보면 가장 현실적인 이 문제들을 가장 비현실적인 방식(과연 저런 인물이나 상황이 가능한가 싶은)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처음 동원된 깡패였던 앤트컴퍼니 박석도(김영웅)가 빈센조(송중기)에 의해 간단하게 제압당하고, 저들 바벨그룹과 우상에 의해 팽 당한 후 금가프라자에 여행사를 차려 입주자들편에 서게 되는 상황은 지극히 비현실적이지만, 그 자체가 주는 블랙코미디적 풍자가 웃음을 준다. 카르텔의 개 역할을 해도 언제든 상황이 바뀌면 자신들도 입주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는 걸 이 비현실적 캐릭터들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더 피도 눈물도 없는 조폭이 동원되지만, 놀랍게도 이들을 가위 하나로 모조리 쓸어버리는 세탁소 주인 탁홍식(최덕문)이 은둔 고수의 반전을 선사한다. "이게 아닌디. 가위는 옷감 자를 때만 쓰기로 맹세했는디. 오지마. 모가지에 아가미 생겨." 구수한 사투리가 곁들여진 탁홍식의 반전 사이다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상황이지만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그런데 이런 금가프라자의 반전 캐릭터는 탁홍식만이 아니다. 늘 자신을 무도인이라며 입으로만 싸우던 전당포 사장 이철욱(양경원)과 그의 아내 장연진(서예화) 역시 빈센조의 집에 침입한 자들을 상대로 숨겨졌던 반전 실체를 드러낸 바 있다. 모자에 가려져 있던 만두귀를 드러내며 이철욱은 전직 레슬러 같은 실력으로 침입자들을 제압했고, 장연진 역시 괴력을 발휘하며 침입자를 통째로 들어 올려 던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탁홍식이나 이철욱, 장연진 같은 반전 고수들이 현실적인 인물일 수는 없다. 게다가 이런 인물들이 하필이면 금가프라자에 모여 있다는 것도 그렇다. 여기에 마피아 변호사인 빈센조까지 더해져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들 비현실적 인물들이 오히려 더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현실에서는 결코 벌어지지 않을 세입자들의 반격을 판타지로서 전해줄 때 느껴지는 통쾌함이고, 다른 하나는 이 비현실적 캐릭터들을 은유해 던지는 작가의 목소리에 대한 공감이다.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한다. "서민들이라고 우습게 보지 마라. 저마다 분야에서 숨겨진 고수들이니."

 

이건 <빈센조>가 주는 독특한 카타르시스의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가 늘상 신문지상을 통해 봐왔던 우리네 사회의 너무나 분명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가져와, 작가와 시청자들이 공조해 가능해진 지극히 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의 반격을 통해 통쾌한 사이다를 주는 방식. 너무나 허구이고 비현실이기 때문에 그 적폐의 대상이 되는 이들도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그걸 보는 서민들은 키득키득 웃으며 그 풍자의 공모자가 되는 유대감의 즐거움. 우리는 웃지만 저들은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허구로서의 풍자의 힘이 거기 들어 있다.(사진:tvN)

‘사랑의 불시착’ 살리는 현빈의 진지순수·손예진의 엉뚱발랄

 

6% 시청률(닐슨 코리아)로 시작한 tvN 토일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4회만에 8.4%로 고공행진을 시작했다. 첫 시청률은 아무래도 현빈과 손예진이라는 배우가 출연한다는 사실이 주는 기대감이 만든 수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지속적인 시청률 상승과 화제가 이어지고 있는 건 이 작품이 가진 재미요소들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첫 회에 대한 대중적 호불호는 분명히 나뉘었다. 현 시국이 남북한 긴장국면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그랬고, 판타지와 병맛이 뒤섞인 듯한 코미디 설정이 그랬다. 하지만 윤세리(손예진)가 리정혁(현빈)의 집에 ‘불시착’하듯 들어와 마을 사람들에게 약혼녀라 소개되면서 본격화된 로맨틱 코미디는 시청자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사랑의 불시착>이 가진 가장 큰 힘은 역시 캐릭터와 그 케미에서 비롯된다. 리정혁이라는 북한 총정치국장 아들은 북한 소재 버전으로 새롭게 해석된 판타지 남자주인공의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북한 내 권력자의 아들이지만 민경대대 5중대에서 복역하고 있는 이 인물은 연애 좀 해본 듯한 윤세리의 시각으로 보면 순수와 순진이 뒤섞인 남성이다. 무뚝뚝하고 별로 웃지 않으며 매사 진지하지만 그러면서도 보이지 않게 마음을 쓰는 인물. 게다가 그는 스위스에서 유학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세상 사람들이 로망하는 권력자의 아들이면서 순수하고 순진하며 진지하면서도 로맨틱한 감성까지 갖춘 판타지적 존재가 바로 리정혁이다.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불시착한 윤세리는 꼬리가 아홉은 달린 듯한 여우짓(?)을 하면서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이 느껴지는 캐릭터다. 리정혁과 부대원들의 그 순진함 속에서 윤세리가 허세를 부리거나 머리를 굴려 그들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상황들은 그래서 이 ‘북한에 떨어졌다’는 무거운 상황을 가벼운 코미디로 전환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윤세리와 리정혁 그리고 그 부대원들과의 케미는 그래서 이 드라마에 시청자들이 몰입하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윤세리를 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해 마음을 쓰는 리정혁의 모습은 드라마 속 북한 동네 아줌마들이 표현하듯, “심장을 나대게” 만든다. 검열을 들어온 조철강(오만석) 앞에서 자신의 약혼녀라고 말하거나, 배를 타고 월남하려다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키스를 해 연인처럼 위장하고, 장터에서 길을 잃은 윤세리를 찾아내기 위해 등대처럼 향초를 켜 들고 서는 모습은 다소 과장되어 있지만 리정혁이라는 캐릭터에는 의외로 어울리는 면이 있다.

 

윤세리와 부대원들 간의 케미도 시선을 잡아끄는 중요한 재미요소들이다. 조개에 불을 붙여 구워 익혀 먹고 그 조개껍질에 소주를 마시는 그런 풍경이 촌스럽지만 그래서 더더욱 즐겁게 느껴지고, 그런 해물에는 소비뇽블랑 아니면 안 마신다는 윤세리가 소주 한 잔을 마셔보고 “여기 설탕 탔니?”라고 말하는 대목이 주는 웃음이 그렇다. 여기서 표치수(양경원) 같은 캐릭터는 윤세리의 허세를 북한 군인의 시선으로 툭툭 건드리고 눌러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웃음과 은근한 통쾌함을 선사한다. 한국드라마에 푹 빠져 마치 남북한 언어의 통역사 같은 역할을 하는 김주먹(유수빈)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사랑의 불시착>은 물론 상당한 북한의 현실과 언어 등을 고증하려 노력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평양의 카페 메뉴판이나, 장터의 풍경들, 꽃제비의 현실 등등. 특히 북한 언어들을 이렇게 드라마를 통해 우리의 언어와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그 고증 위에 이 드라마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와 판타지를 섞어 놓았다. 한 마디로 북한에서 벌어지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시도인데, 이런 퓨전은 결코 쉽지만은 않은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갑자기 윤세리가 어디서 구한 지 알 수 없는 낙하산을 리정혁과 함께 타고 뛰어내리는(이 장면은 꿈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장면 같은 비현실적인 상황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약점들을 충분히 덮어주는 건 캐릭터들의 매력이다. 리정혁이 든든히 진지함을 떠받치고 있다면 윤세리의 엉뚱발랄함이 그 위에서 설렘과 웃음을 주고, 부대원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코미디 설정들을 풍부하게 한다. 심지어 이들을 도청하고 있는 정만복(김영민)이 끝말잇기 하는 저들의 이야기를 적고 있는 장면까지 코미디가 녹아들어있다.

 

<사랑의 불시착>은 자잘한 상황들이 주는 웃음과 설렘이 하나하나 모여 한 편을 구성하고 있는 듯한 작품이다. 그래서 전체 큰 틀의 서사의 관점으로 보면 다소 황당할 수 있는 상황들이 그려지지만, 의외로 그 안을 들여다보면 계속해서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역시 캐릭터와 연기자들의 힘이 큰 작품이다. 현빈과 손예진의 밀고 당기는 로맨틱 코미디에 시청자들은 저도 모르게 점점 빠져들고 있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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