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게더', 넷플릭스여서 가능한 초국적 예능의 세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투게더>는 영어 표기로 'Twogether'라는 조어를 만들었다. 이승기와 대만의 떠오르는 스타 류이호 두 사람이 함께 팬들이 만들어준 코스를 따라 여행을 한다는 의미가 거기에 들어있다.

 

물론 <투게더>의 핵심적인 유인은 이승기와 류이호라는 두 인물이다. 이승기야 가수, 배우는 물론이고 예능인으로서도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다, 글로벌한 인기까지 가진 인물이라는 건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다. 여기에 <안녕, 나의 소녀>, <결혼까지 생각했어> 등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팬층이 두터운 류이호가 합류했다.

 

그리고 이들이 떠나는 여행지는 동남아시아 지역이다. 프로그램 콘셉트가 그냥 여행을 하는 게 아니라 해외의 팬들이 보내준 추천여행코스를 여행하고 궁극적으로는 그 팬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모두 확실한 인지도를 갖고 있는 동남아시아가 그 여행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국적도 다르고,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두 사람이니 첫 만남이 어색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첫 번째 여행지인 인도네시아의 욕야카르타에서 만난 두 사람은 간단한 영어로 인사만을 한 채 조금은 어색한 공기를 느끼며 숙소를 향했다. 진짜로 한 방에서 같이 자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진짜 리얼"이라 말하는 류이호는 그러나 바로 그런 진짜 리얼이 두 사람의 관계를 급진전시킨다는 걸 금세 알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이 프로그램이 가진 가장 괜찮은 정서적 끌림을 만들어낸다. 물론 SBS <런닝맨>은 물론이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범인은 바로 너>를 연출했던 조효진 PD가 진두지휘하고 있으니 이 여행에 미션이 빠질 리 없다. 하지만 <런닝맨>이나 <범인은 바로 너>가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미션을 해결하는 그 오락적 요소에 집중하는 재미를 준다면, <투게더>는 이런 미션에 친구 사이의 우정이나, 현지인들과 팬들과의 교감 같은 정서적 요소들을 더함으로써 가슴까지 따뜻해지는 여정을 선사한다.

 

외모부터 너무나 닮아있는 두 사람이 팬을 만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동굴을 탐험하고 사원에서 또 바다에서 미션을 수행하며 힘겨운 요가를 따라 하기도 하고 패러글라이딩을 타기도 하는 그 과정들은 어찌 보면 그 자체로도 그 나라의 매력을 보여주지만, 이것을 수행해가는 두 사람이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며 친해지는 그 모습은 훈훈함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현지인들과 갑자기 벌어진 배드민턴 대결을 통해 그들과 교감하는 장면들은 자연스럽게 국적과 언어에 대한 장벽을 깨버리는 힘을 발휘한다. 어디서 알고 나타난 것인지 "이승기"를 외치는 팬들의 응원은 글로벌 스타로서의 이승기의 진가를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이제 팬덤은 국적을 훌쩍 뛰어넘은 지 오래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투게더>는 그래서 그 초국적인 기획 자체가 어찌 보면 넷플릭스가 추구하는 탈국적성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콘텐츠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한국의 이승기와 대만의 류이호가 만나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의 낯선 현지인들과 팬을 만나러가는 기획이라니. 잘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것들이 의외로 잘 어우러지고 그래서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만들어줄 때, 자연스럽게 깨져버리는 국적의 벽이란 어찌 보면 넷플릭스가 꿈꾸고 있는 콘텐츠 세상의 그림이 아닐지. 그건 또한 피부색과 국적과 언어는 달라도 함께 할 때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그 가치를 믿고픈 대중들의 바람이기도 할 것이다. 이승기와 류이호가 "해피 투게더!"라고 외치듯이.(사진:넷플릭스)

언어, 국적을 넘어 우리는 과연 소통할 수 있을까

연일 방탄소년단의 이야기로 연예계가 들썩거린다. 빌보드 200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사실은 전 세계의 유력 매체들에 의해 긴급 타전되었고, 국내에서 이례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축하 메시지를 보낸 사실 역시 빌보드의 뉴스에서 다뤄졌다. 게다가 모두가 기대하던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K팝 그룹 최초로 10위로 진입한 사실 역시 모두를 놀라게 했다. 

빌보드의 뉴스는 이들이 보여주는 행보를 ‘현상(Phenimenon)’이라고 표현한다. 즉 단순한 음악적 성취 그 이상의 ‘사건’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비영어권의 음악으로서 방탄소년단이 만들어낸 전 세계적인 열광은 ‘신드롬’이라고 불러야 비로소 합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의 무대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관객들이 보인 반응은 실로 과거 영국의 비틀즈가 미국을 ‘침공’했을 때 벌어졌던 열광적인 모습들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당시는 영어권이라는 공통의 바운더리가 있었다면, 이번 방탄소년단은 국적은 물론이고 언어까지 뛰어넘었다는 점에서 현상이라 부를 만했다. 

생각해보면 이미 새로운 시대는 인터넷이라는 전 세계를 엮어낸 네트워크를 통해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유튜브 같은 공간을 통해 조금씩 글로벌 문화를 공유해왔다. 거기에 국가나 언어는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해외에서 올려진 어떤 영상들도 우리는 그 공간 속에서 동일하게 누리기 시작했다. 마찬가지의 흐름은 정반대로도 이어졌다. 싸이가 ‘강남스타일’이라는 곡으로 보여준 건 미국 시장으로 강제진출하게 된 것만이 아니라, 국적과 언어를 뛰어넘는 글로벌 문화의 가능성이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소거된 이 네트워크 공간의 빠른 소통과 전파 속에서 방탄소년단이 이번 빌보드 차트 입성으로 보여준 것 역시 글로벌 문화라는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다. 그간 문화란 국적, 언어와 떼놓을 수 없는 한계를 보였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한류’니 ‘K팝“이니 하는 용어 속에 국적의 의미들이 담기게 됐던 것이다. 

하지만 문화적 교류의 단계는 이제 국적과 언어의 차원을 넘어서게 되었다. 방탄소년단이 보여주는 음악의 특징은 이런 경계를 넘어선 요소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거기에는 K팝 특유의 색깔(아이돌이니 군무니 하는 것들)이 존재하지만, 동시에 힙합, 댄스, EDM 심지어 라틴 음악까지 공존하고 있다. 이것은 이제 이미 보편화된 음악적 장르가 사실상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새로운 ‘글로벌 언어’로서 자리하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방탄소년단의 성취를 보면서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그간 시간과 공간(국적과 언어를 포함한)의 제약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던 문화가 이제는 디지털에 의해 융합되는 ‘글로벌 문화’로 나아가고 있는 그 흐름이다. 더 이상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또 20세기적인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적 틀에 얽매여 있을 일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지구촌이라는 새로운 글로벌 문화지대에 걸맞는 관점과 문화적 콘텐츠들을 만들어나갈 것인가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방탄소년단 ‘현상’은 그 새로운 세계를 음악이라는 ‘글로벌 언어’를 통해 우리 앞에 증거해 보이고 있다. 그러니 물론 자랑스럽고 즐거운 일이긴 하지만 단지 그 놀라운 성취에 도취될 것만이 아니라, 이제 그 세계에 어떻게 모두가 동참하고 공감해갈 것인가를 생각해봐야할 시점이다.(사진:빅히트엔터테인먼트)

‘비긴어게인2’, 음악이라는 감정의 언어를 발견하게 해주다

포르투갈 리스본의 어느 분위기 좋은 루프탑 카페에서 로이킴과 윤건이 영화 <라라랜드>의 ‘City of Stars’를 부른다. 프로건 아마추어건 상관없이 원하면 사전에 얘기하고 누구나 오를 수 있는 무대. 노래 부르는 그들의 뒤편으로 어둠 속에 점점이 박힌 따뜻한 도시의 불빛들이 별빛처럼 부드럽게 노래 부르는 그들을 감싼다. 윤건의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와 로이킴의 분위기 가득한 음색이 어우러져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은 장면이 연출된다. 

JTBC 예능 <비긴어게인2>가 어느 루프탑 카페에서 보여준 무대는 마치 영화 <비긴어게인>의 한 장면을 재연하는 것처럼 보였다. 함께 테이블에 앉아 있다가 무심한 듯 로이킴이 무대에 올라 자기 소개를 하고 노래를 부른다. 그러자 식사를 하던 손님들이 그 노래에 빠져든다. 그의 노래가 끝나고 윤건이 함께 무대에 올라 피아노 연주에 맞춰 ‘City of Stars’를 부르면서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는다. 영화 <비긴어게인>에서 싱어송라이터인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가 어느 카페에서 노래를 하게 됐을 때 댄(마크 러팔로)이 마침 그 노래를 듣는 그 장면이 연상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비긴어게인2>의 진면목은 그런 영화 같은 장면이 아니었다. 김윤아와 이선규가 무대에 올라 부르는 자우림의 명곡들이 그 진짜 무대의 시작이었다. 김윤아 특유의 서정적인 정서가 묻어나는 ‘봄이 오면’은 의외로 낯선 외국인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로이킴 역시 촬영 당시에는 미발표곡이었던 ‘그 때 헤어지면 돼’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고 나서 한 여성 관객은 “한국어로 노래하는 게 듣기 좋았다”고 말했다. 

이번 <비긴어게인2>에서 주로 팝송 커버곡을 많이 불렀던 로이킴은 그 경험이 특별했었던 것 같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한국어라서 알아듣지 못할까봐 걱정했다”며 “그래서 팝송을 더 커버하려고 했는데 굳이 언어의 장벽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여러 버스킹에서도 행인들이 더 집중한 건 그들에게 익숙한 팝송보다는 낯설 수도 있는 우리 가요들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언어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게 해줬을까. 그건 음악만의 특별한 ‘감정의 언어’가 가진 힘이 아닐까. 물론 가사는 그 의미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음악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것 이전에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감정이 그대로 듣는 사람의 가슴에 와 닿는 그런 경험들이 이번 <비긴어게인2>에서는 그 프로그램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보여지게 됐다. 낯선 이국에서 낯선 언어로 부르는 노래가 그들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발견하게 해줬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비긴어게인2>의 첫 번째 버스킹에서 김윤아가 세월호 추모곡이었던 ‘강’을 불렀을 때 이미 드러난 부분이었다. 그들에게는 가사내용이 들리지 않았을 그 곡에 그들이 감동을 느꼈던 건 바로 그 감정의 언어가 전달된 덕분이었을 것이다. 깊은 슬픔과 추모의 감정들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음색 속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과 표정으로 전해졌을 테니. 

루프탑에서 노래를 듣던 한 외국인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노래하는 건 이상적인 프로젝트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엇이 이상적이라고 하는 걸까. 그건 어쩌면 음악이 가진 본연의 힘을 거기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음률과 목소리와 감정만으로도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 음악이 가진 힘이라는 걸.(사진:JTBC)

기도, 사과, 약속,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가치들을 망칠건가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합니다. 내 사랑하는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억울한 분들의 기도를 들으소서. 빨갱이들이 날뛰는 사탄의 세력을 물리쳐주소서.’ 윤복희가 SNS에 남긴 짧은 글 하나는 엄청난 후폭풍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한 줄에 담겨진 빨갱이’, ‘사탄같은 단어들이 앞부분에 들어간 기도와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부적절함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판타스틱 듀오(사진출처:SBS)'

물론 이 글에는 현 시국에 광화문 광장에 모인 촛불집회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하지만 빨갱이라는 표현과 세력이라는 단어가 붙어 우리들이 어쩔 수 없이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그간 그런 어처구니없는 표현으로 매도되던 우리 사회의 많은 양심의 목소리다. 박정희 독재 시절의 반복. 빨갱이와 종북이란 표현은 독재 장기 집권을 위한 카드로 늘 내세워졌던 것들이다.

 

그래도 한 때 우리는 그녀가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내가 내가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라는 노래를 들으며 깊은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오랜 세월을 뛰어넘어 여러분이라는 곡이 주던 감흥은 단 한 줄의 글 속에 담겨진 빨갱이사탄이라는 표현들로 훌쩍 날아가 버렸다. 그녀가 말한 등불은 누구를 위한 등불이었을까.

 

논란이 거세지면서 윤복희 측은 이 SNS 글이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겨냥한 것이 아니고 국민들을 위한 기도의 글이었다고 해명했다. 또한 SNS를 통해 올라오는 비판 글들에 대한 답글을 통해 자신도 촛불을 들었었다는 이야기까지 달았다. 논란이 더욱 거세지자 윤복희는 기도의 글이었다는 해명을 번복했다. 윤복희 SNS를 통해 직접 촛불을 들고 나온 우리를 얼마받고 나온 사람들이라는 글에 그 사람을 사탄이라 말했고 빨갱이라고 불렀다고 설명했다. 설명을 그대로 믿자면 기도가 아닌 저주였던 것.

 

하지만 아쉽게도 어설픈 변명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에서 여태껏 극우 보수 집권세력을 옹호하는 사람을 빨갱이라는 표현으로 비난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200만 촛불을 든 현명한 대중과 그들을 지지하는 96%의 국민들을 너무 쉽게 생각한 변명에 끊임없는 거짓말로 일관하고 말 바꾸기를 취미로 아는 누구를 닮았다는 조소어린 반응까지 나온다. 더구나 2016년에 1970년대나 어울릴 법한 빨갱이라는 저급한 표현이라니.

 

언어는 안타깝게도 때론 오염된다. 기도라는 표현은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가진 단어인가. 그런데 거기에 빨갱이들이 날뛰는 사탄의 세력을 물리쳐주소서같은 문장이 덧붙여지면서 기도라는 표현은 주문 같은 저주로 전락한다. 그 글이 특정 사안을 지칭해서가 아니라 그 표현의 오염이 대중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는 근원이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은 3차례에 걸쳐 대국민 사과 담화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 담화문이 발표될 때마다 민심은 더 들끓었다. 왜 그랬을까. ‘사과라는 표현에 적절한 담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사과라고 말하지만 실제 내용들은 다른 의도들을 품고 있었다. 우리에게 사과라는 표현 또한 오염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또한 사과 담화문을 통해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 하지만 검찰의 조사 요구에 과연 성실히 임했던가. 대통령 취임식에서 밝혔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그 이야기에 대한 약속은 과연 지키고 있는가. ‘약속이라는 표현 또한 오염되었다.

 

윤복희의 SNS 글과 말 바꾸기, 그리고 어설픈 변명이 남긴 파장은 영향력 있는 사람의 어떤 말이나 글 하나가 얼마나 큰 상처를 줄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또한 표현이 표현으로 끝나지 않고 누군가에게 칼날이 될 수 있다는 건 이미 빨갱이종북같은 표현들로 싸잡아 매도됐던 많은 분들을 통해 확인됐던 일들이다. 기도, 사과, 약속.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가치들을 망칠 건가. 지금도 진실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며,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며 살아가려는 착한 국민들의 좋은 가치들은 지켜져야 마땅한 일이 아닐까. 추운 날씨에도 한 마음으로 광화문 광장에 나온 착한 국민들의 좋은 가치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