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모호한 봉합, ‘완벽한 아내’가 외면 받는 까닭

3.5%. KBS 월화드라마 <완벽한 아내>는 5회 만에 최저시청률을 기록했다. 3회에 5.1%로 살짝 반등하는가 싶더니 다시 주저앉고 있는 것. 경쟁작인 SBS <피고인>이 워낙 펄펄 날고 있다고 해도 이러한 <완벽한 아내>의 추락이 외적인 요인에만 비롯된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들고 있는 걸까. 

'완벽한 아내(사진출처:KBS)'

<완벽한 아내>는 그 장르적 경계가 애매하다. 물론 도입부분에 들어간 죽은 정나미(임세미)를 심재복(고소영)이 발견하는 장면은 제목과 달리 심리스릴러 같은 느낌을 줬지만, 곧 이어진 심재복이 로펌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은 인턴 채용이 되지 않고 밀려나는 이야기는 평범한 워킹맘의 성장담처럼 여겨지게 했다. 하지만 심재복의 남편 구정희의 정나미와의 불륜사실이 드러나며 불륜드라마의 틀을 가져가더니 이은희(조여정)라는 미스터리한 여인의 등장으로 다시금 심리스릴러의 느낌이 덧붙여졌다. 

물론 이러한 애매한 장르적 경계를 장점으로 지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평범한 워킹맘 성장스토리나 불륜 소재의 가족극에 심리스릴러와 미스터리를 섞어 긴장감을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중요한 건 이러한 봉합된 장르들 속에서도 시청자들이 일관되게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를테면 주인공인 심재복이라는 워킹맘의 처지에 시청자들이 깊은 공감을 가질만한 인상적인 시퀀스가 있었는가나, 그녀와 살짝 멜로 관계를 만들어가는 강봉구(성준)의 매력이 시청자들을 빠뜨릴만큼 강력했는가 하는 점들이다. 그게 아니라면 도입에 들어갔던 정나미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가 만들어내는 호기심이 시청자들을 못내 궁금하게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라도. 

하지만 4회가 진행되면서 <완벽한 아내>가 끌고 온 힘은 이은희라는 미스터리한 여인이 만들어내는 궁금증이 대부분이었다. 그녀가 왜 심재복과 그 가족을 자신의 집안으로 끌어 들였는가 하는 점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5회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야 살짝 밝혀진다. 그녀의 남편이 첫사랑이었던 심재복을 줄곧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것 때문에 자신이 고통스러웠다는 것. 그래서 의도적으로 심재복에게 접근했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설정이나 의외성 같은 것만 두고 보면 <완벽한 아내>는 이제야 조금 극적 긴장감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긴장감이 무려 5회 동안이나 진행되어서야 겨우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건 이 드라마의 전개가 너무나 느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이런 전개 속에서 심재복이나 이은희 강봉구 그리고 구정희 같은 주요인물들의 매력이 저마다 풀풀 풀어져 나왔다면 얘기가 달라졌을 수 있다. 하지만 느린 이야기전개에 매력적인 인물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은 시청자들이 도대체 어디에 집중해야 될 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완벽한 아내>가 여러 장르들의 봉합을 시도해 새로운 느낌을 만들려한 건 나쁘지 않은 기획이라고 보인다. 하지만 이질적인 것들의 봉합은 더 촘촘하게 진행되지 않으면 제각각 흩어져 오히려 집중을 방해할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확인시켜준다. 제목처럼 좀더 완벽하고 촘촘할 수는 없었을까.

‘김과장’부터 ‘도봉순’까지 드라마에 깔린 사이다 정서

드라마 제작자들은 드라마의 성패는 그 누구도 모른다고 말하곤 한다. 사실이다. 애초의 기획한대로 대중들이 받아들여주는 드라마도 있지만, 기획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되어 난항을 거듭하는 드라마도 있다. 예를 들어 이제 종영한 <미씽나인> 같은 드라마는 결국 용두사미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최악의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기 이전에 방영되었다면 더 주목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태 이후, <미씽나인> 같은 현실의 정서를 반영하기 어려운 장르물을 시청자들로서는 왜 봐야하는가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김과장(사진출처:KBS)'

이런 상황은 KBS에서 새로 시작해 방영되고 있는 월화드라마 <완벽한 아내>도 마찬가지다. 믿었던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고 의외의 미스터리한 사건 속으로 빠져들면서 그간 잊고 살았던 자기 자신을 다시금 자각해나가는 아줌마의 이야기. 이야기 자체로만 보면 흥미로울 수도 있지만 지금의 시국에 이 이야기를 놓고 보면, 역시 봐야할 이유가 별로 없어 보인다. 미드적인 미스터리를 깔고 있지만 결국은 그 많던 아줌마의 성장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 같은 드라마는 이런 드라마들과는 정반대다. 오히려 지금의 시국을 만나 탄력을 받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박정우(지성)가 처한 상황, 즉 무고한 그가 감옥에 갇혀 고통을 당하고 어떻게든 그 감옥을 빠져나와 진실을 밝히며 자신을 그렇게 만든 이들에게 반격하는 그 모습을 시청자들은 마치 탄핵 정국의 결과를 기다리듯 간절히 바라게 된다. 답답한 현실이 이 드라마의 고구마 전개를 그대로 담고 있고, 그래서 그걸 풀어줄 수 있는 반전을 끝없이 갈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MBC 월화드라마 <역적>은 그러고 보면 작품과 현실이 완벽하게 조우하고 있는 느낌을 주는 드라마가 되고 있다.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실존인물 홍길동을 재해석한 이 사극은 그 틀거리 구조만 보면 연산 같은 권력자와 대적하는 길동과 그 일당들의 이야기다. 사람 취급 받지 못하고 살아온 그 민초들이 힘을 모아 자신들을 핍박해온 충원군(김정태)과 나아가 그 위의 연산군(김지석)에게 일격을 가하는 이야기. 어찌 지금의 대중들의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른바 아예 사이다 드라마라고 지칭되는 KBS 수목드라마 <김과장>과 JTBC 금토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은 갑질하며 때로는 폭력을 일삼는 세상 앞에 나선 서민 히어로로서 김과장(남궁민)과 도봉순(박보영)이라는 캐릭터를 세운다는 점에서 이미 현실적 공감대를 가져가는 드라마다. 요즘 같은 시국에 이러한 서민편에 선 한국형 슈퍼히어로들의 이야기는 시청자들이 열렬히 원하는 것이다. 드라마를 보며 심지어 박수를 친다는 시청자들이 있을 정도니 그 현실의 팍팍함과 드라마의 시원함이 얼마나 교차되고 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다. 

드라마의 성패는 그 누구도 모른다는 말은 드라마가 주는 느낌이 그걸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시청자들의 정서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뜻이다. 최근의 드라마들의 성패를 들여다보면 지금의 대중들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가 명쾌하게 드러난다. 답답한 시국과 현실 속에서 속 시원한 그 무엇이 있는가 하는 점은 그래서 최근 드라마들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사이다를 갈망하는 대중들은 드라마 판도까지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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