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들이 대세, 정보와 쇼와 인성까지 갖췄다

 

셰프들의 시대가 맞긴 맞나보다. SBS <힐링캠프>에서 이경규는 요리사들의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그건 그저 그날 출연한 이연복 대가와 최현석 셰프를 위한 멘트가 아니었다. 월요일 밤, <힐링캠프>는 물론이고 JTBC <냉장고를 부탁해> 그리고 MBC <다큐스페셜>이 모두 셰프들을 방송에 내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힐링캠프(사진출처:SBS)'

이것은 단지 월요일만의 얘기가 아니다. 화요일에는 tvN <집밥 백선생>의 백종원 셰프가 나와 네 명의 요리무식자들을 상대로 쉽지만 효과적인 요리 비법을 알려준다. 목요일 올리브 TV에서는 심영순, 백종원, 최현석 셰프가 심사위원으로 자리하는 <한식대첩>이 방영된다. 토요일 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도 단연 주목받는 건 백종원의 쿡방이다.

 

항간에는 너무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에서 셰프들을 캐스팅해 쉽게 방송을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사실이다. 이미 하나의 방송 트렌드가 되어버린 상황이기 때문에 셰프들을 출연시키면 확실히 주목을 끌 수 있다. 웬만한 연예인을 섭외하느니 셰프가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셰프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만의 콘텐츠를 갖고 있다. 그것은 요리 비법이다. 그것을 선선히 알려주고 때로는 쇼를 보여주듯 시연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방송은 흥미로워진다. 일종의 정보와 쇼가 결합된 프로그램이 되는 것. 여기에 자연스럽게 먹방이 이어지고 대결구도까지 조미료처럼 처지면 금상첨화다. 요리의 즐거움과 함께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는 듯한 긴장감까지 만들어주니 말이다.

 

그런데 <힐링캠프><다큐스페셜>을 들여다보면 셰프의 전성시대가 단지 요리라는 콘텐츠 때문만은 아니라는 게 느껴진다. 물론 요리가 주는 푸근함과 넉넉함, 요리하는 모습이 주는 그 신기함이 어떤 아우라를 만드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보다 주목되는 건 이들의 인간적인 면모다.

 

<힐링캠프>에 출연한 최현석 셰프와 이연복 대가는 너무나 상반된 매력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허세라고 불릴 정도로 유쾌한 요리를 보여주는 최현석 셰프는 멘트에서도 자신감과 진지함이 묻어났다. 물론 거기에는 시청자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유머 코드가 섞여 있었지만 그 근원은 결국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반면 이연복 대가는 그 인간적인 매력이 돋보였다. 고생했던 과거의 경험들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그 푸근함은 소탈함과 소박함의 끝을 보여주었다. 이런 상반된 매력은 자신들의 음식점에서의 모습에서도 드러났다. 최현석 셰프가 저 드라마 <파스타>에서의 카리스마 넘치는 셰프 스타일이라면, 이연복 대가는 솔선수범해 굳은 일을 도맡아 하는 스타일이었다.

 

결국 이들 셰프들은 요리라는 정보와 함께 요리기술이 주는 쇼적인 요소 게다가 자신들의 인성까지를 보여줌으로써 전성기를 갖게 됐다는 점이다. 이건 최근 점점 방송에서 입지가 줄어들고 있는 연예인들이 한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연예인들은 말주변이 좋거나, 웃기거나, 개인기가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고 여겨졌었다. 하지만 지금의 시청자들은 무언가 방송을 통해 얻어가고 싶어한다. 콘텐츠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금의 시청자들은 그저 연기하듯 자신의 역할을 보여주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들의 인성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공감하고 싶어 한다. 좀 더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주고 그것이 인성적으로 호감을 갖게 해줘야 한다는 점이다. 셰프들의 시대는 그냥 만들어진 트렌드가 아니다. 거기에는 달라진 대중들의 요구가 느껴진다. 이러한 셰프들의 면면은 이제 연예인들이라면 한번쯤 고려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백종원, 사업가 소유진 남편 그리고 서글서글 요리사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최종 우승자는 요리사 백종원에게 돌아갔다. 6명의 출연자가 전후반으로 나뉘어 인터넷 개인방송을 하고 그 시청률이 가장 높은 사람을 우승자를 가리는 이 프로그램에는 백종원을 포함해 김구라, 정준일, 홍진영, 김영철, AOA 초아가 참여했다. 전반전에는 중간 순위 정도의 시청률을 내던 백종원이 후반전에 이르러 우승자가 된 원동력은 뭘까.

 

'마이 리틀 텔레비전(사진출처:MBC)'

물론 쿡방과 먹방을 오가는 그 콘셉트가 최근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는 점이 요리 방송을 보여준 백종원을 유리하게 작용한 면이 있지만 거기에는 또한 단지 그것만으로 단정할 수 없는 그만의 매력이 있었다. 샘킴이나 최현석 셰프처럼 최근 일련의 쿡방으로 주목받는 셰프들이 젊고 잘 생긴 훈남들이 대부분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차라리 동네 아저씨 같은 푸근한 외모의 백종원에게 이토록 열화와 같은 반응이 쏟아진 건 이례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보여준 백종원의 개인 방송은 그만의 구수하게 고급진쿡방의 매력을 보여주었다. 이런 방송 자체가 익숙하지 못해 어색해하면서도 요리사 특유의 자기만의 요리 노하우를 살짝 살짝 알려주는 모습과, 요리할 때 어떻게 하면 멋있게 보이는가에 대한 팁까지 백종원은 그 방송에 참여한 네티즌들의 반응처럼 준비된 방송인의 면모를 과시했다.

 

물론 여기서 준비됐다는 얘기는 무언가를 준비해왔다는 것이 아니라 요즘처럼 가식 없는 방송에 백종원 같은 인물이 잘 어울린다는 뜻이다. 계란말이를 쉽게 하는 노하우를 알려준다면서 실패하게 되자 이런 저런 변명을 늘어놓는 모습은 차라리 귀엽게까지 다가왔다. 야채를 손질할 때 자신이 쓰는 커다란 칼을 사용하는 이유가 그게 더 있어 보인다는 얘기도 여타의 요리사들이 보이는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네티즌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무얼 만드는 걸 보여줬으면 하냐고 즉석에서 물었고, 거기 올라온 의견들을 반영해 요리를 해 보이는 소통의 자세도 보여줬다. 다른 출연자의 공격으로 소리가 나가지 않게 되자 스케치북에 삐뚤빼뚤 글씨로 요리에 대한 정보를 적어 보여주는 모습은 오히려 더 네티즌들을 반하게 만들었다. <러브 액추얼리>의 스케치북 프로포즈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그 장면에 네티즌은 백종원의 스케치북이라는 댓글을 달아주었다.

 

무엇보다 백종원에 대한 반응이 좋았던 것은 그의 쿡방이 요리 실력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요리를 매개로 네티즌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가 거기서 만든 요리들은 샌드위치, 닭볶음탕, 계란말이, 짜장 같은 일상적으로 누구나 시도해볼만한 것들이었다. 다만 그 일상 요리에 요리사로서의 자신만의 쿨팁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훨씬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우승을 한 백종원에게 주어진 1분 간의 자기 PR시간에 그는 아내 소유진에 대한 사랑을 재확인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업가와 소유진 남편으로 더 알려져 온 백종원은 이 방송을 통해 서글서글한 요리사로서 시청자들에게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실로 구수한 아저씨처럼 털털하지만 자기 분야에 확실한 노하우를 가진 고급진 백종원을 재발견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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