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딩 인생’, 이건 교육인가 학대인가 혹은 육아인가 전쟁인가

라이딩 인생

“자 엄마표 롤러코스터 출발한다! 꽉 잡아 홍서윤.” 운동화로 갈아신은 정은(전혜진)은 딸 서윤이(김사랑)를 안고 달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라이딩을 해주던 시터가 일이 있어 아이를 학원까지 보내주지 못하게 됐다고 하자 점심도 못먹고 달려온 정은이다. 반 승급이 달린 스피치대회를 앞두고 있어 딸을 영어 수업 시간에 늦지 않게 하기 위해 그녀는 달린다. 평상시라면 혼자서도 못달렸을 거리를 그것도 경사진 계단까지 쉬지 않고 달려 겨우 학원에 도착한다. 그렇게 딸을 데려다주고 차로 돌아가는 정은은 그 경사진 계단 위에서 말한다. “아깐 여길 어떻게 뛴거야?”

 

ENA 월화드라마 <라이딩 인생>은 이른바 ‘대치맘’들의 치열한 자식교육 경쟁, 아니 전쟁을 다룬다. 물론 정은은 대치맘처럼 보이지 않는다. 대치맘이 되고 싶은 워킹맘일 뿐. 아이를 키워본 엄마들이라면 안다. 일하면서 육아를 하는 것으로 대치맘, 아니 그같이 자식교육에 열성인 엄마들이 되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래서 워킹맘들은 사실 학부모 모임에 가서도 자식교육에만 전담하는 엄마들 사이에서 겉돌기 마련이다. 정은은 현실적으로 돈을 벌어야 서윤이 학원도 보내고 시터도 고용할 수 있어 일을 해야만 하는 워킹맘이지만 마음은 육아에서도 대치맘처럼 완벽하고 싶어한다. 

 

일도 육아도 다 해야하는 워킹맘이니, 남편이 육아에 동참안하는 건 아닌가 싶지만 정은의 남편 재만(전석호)은 그런 인물이 아니다. 돈을 잘 못벌어도 서윤을 위해 뛰고 또 뛰는 정은을 어떻게든 도와주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다. 하다못해 제사 상차림도 자신이 먼저 나서서 다 챙기고 뒤늦게 온 아내를 두둔하는 그런 인물. 또 서윤도 이런 엄마의 교육열에 그다지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 착한 아이다. 학원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어하는데 그건 엄마가 기뻐할 것 같아서라고 말하는 아이. 하지만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아 고민한다. 

 

진짜 대치맘은 송호경(박보경)과 그 주변에 모여드는 엄마들이다. 토미로 불리는 아들이 늘 학원성적 1등이라 예비초 맘들은 모두 그녀 주변에 모여든다. 하지만 이들 대치맘의 아이들은 이제 겨우 7세로 초등학교도 가지 않은 나이에 이런 생활이 너무 가혹하다. 그래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불안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정은의 엄마 지아(조민수)에게 그림 수업을 받는 수찬이는 그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과호흡으로 쓰러지기도 하고, 호경의 아들 토미도 불안증세로 손톱을 물어뜯는다. 

 

라이딩을 대신 해줄 시터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 전전긍긍하는 정은 같은 워킹맘도 불안과 스트레스에 쩔어 살아간다. 갑자기 시터가 사라지자 어쩔 수 없이 엄마 지아에게 부탁을 하는데, 학원이 늦을까 걱정되어(그러면 엄마가 실망할 걸 알기에) 혼자 택시를 타고 학원에 가다가 길을 잃은 지아는 다행히 경찰의 도움으로 정은의 품에 안긴다. 아이를 잃어버릴 수도 있었을 사건 속에서 정은의 절실함은 이 학원 경쟁이 경쟁의 차원을 넘은 전쟁이라는 걸 보여준다. 드라마가 순식간에 스릴러 같은 긴박감을 줄 정도니 말이다. 

 

이 정도면 이 요지경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건 상식적인 일이다. 그래서 이 모두가 앞뒤 보지 않고 아이들을 학원 경쟁에 몰아넣고 이 학원 저 학원 ‘라이딩’을 하는 인생이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라이딩 인생>의 지아는 이 상식적인 시선으로 대치맘들의 요지경에 일침을 가하는 인물이다. 수찬이가 과호흡으로 쓰러진 이후에도 “학원가자”고 아이의 등을 떠미는 엄마에게 그녀는 말한다. “자꾸 이러시면 아동학대로 신고할 수밖에 없어요.” 

 

이건 교육인가 학대인가. 아니 육아라고 이름 붙여져 있지만 이건 사실상 전쟁이 아닐까. <라이딩 인생>은 정은의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저 아이들의 교육에 전쟁하듯 뛰고 있는 엄마들의 삶을 통해 이런 교육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걸 꼬집는다. 이른바 대치맘이라 불리는 특정 엄마들의 치맛바람을 비판한다기보다는 왜 이들이 이렇게 극한까지 ‘라이딩’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우리 사회의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상식을 뛰어넘는 절벽 끝으로 몰아세우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학대에 가까운 일들을 교육이라며 당하고 있는 걸까. 

 

최근 대치맘이 화제다. 개그우먼 이수지의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에서 ‘휴먼페이크다큐 자식이 좋다’라는 코너에 이수지가 제이미맘으로 나와 보여주는 패러디는 예상 외로 뜨거운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엉뚱하게 ‘한가인 저격’으로 불똥이 튀기도 했고, 대치맘들의 교복이라 불리는 패딩을 입고 나와 풍자의 대상이 되면서 중고거래 플랫폼에 매물이 쏟아지는 기현상이 생겨나기도 했다. 대치맘들이 이 화제로 인해 패딩 대신 밍크코트를 입게 됐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제이미맘은 바로 그 다음편에 밍크코트를 입고 나와 빵터지는 웃음을 주기도 했다. 

 

아이를 수학학원에 보내고 온다는 제이미맘에게 피디가 이제 겨우 네 살 아니냐고 묻자 그녀는 아이에게 까까를 줬더니 그 수를 세고 왜 이렇게 적게 주냐고 했다며 그건 “영재적인 모먼트”라고 말한다. 또 <오징어 게임>이 인기라 제기차기 선생님을 구하러 간다는 이야기도 한다. 이건 빵 터지는 패러디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사실에서 엇나간 이야기는 아니다. 실제로 엄마들은 아이가 뭘 해도 ‘영재 아닐까’ 하는 착각 속에 스스로를 몰아넣고 모두가 인기있는 놀이에도 아이가 겉돌지 않기 위해 학원을 보내는 게 일상적인 현실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치맘을 넘어 이제는 ‘대치파파’까지 등장할 정도로 이 이슈는 우리 안의 어떤 버튼을 누른다. 그건 비상식적인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위해서라면 더한 일도 하게 되는 대치맘에 대해 그저 비판적 관점만이 아닌 선망의 시선을 같이 갖는 양가감정 속에 우리가 빠져 있어서다. 우스우면서도 눈물나고 미친 것 아니냐고 말하면서도 그런 게 있냐고 관심이 쏠리는 이 감정은, 저 아이들이 손톱을 물어 뜯을 정도로 겪고 있는 혼란과 정서적 불안만큼 부모들도 똑같은 불안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다. 

 

요는 대치맘이 누굴 저격했는가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거야 말로 이 복잡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사태를 직시하기보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내세움으로써 간단히 외면하려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웃음 뒤에 존재하는 기괴함을 애써 봐야하고, 저 엄마들을 전전긍긍하게 하는 이면의 너무나 폭력적이면서도 방치되어 있는 교육 정책들을 봐야한다. 그게 아니면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 ‘라이딩 인생’이라는 지옥 속에서 살아가게 될 테니 말이다. (사진:ENA)

‘전,란’의 진지함과 ‘아마존 활명수’의 발랄함을 넘나드는 배우

아마존 활명수

“저는 이번에 통역을 맡은 장 프리크손 빵게라입니다.” 영화 ‘아마존 활명수’에서 진선규 배우가 맡은 역할은 아마존에 있는 볼레도르라는 작은 나라에 양궁 감독으로 초빙받아 가게 된 진봉(류승룡)의 통역사다. 한국계 볼레드로인으로서 잘하진 않지만 한국어를 하는 이 인물은 그렇다고 볼레도르 언어 또한 능숙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진봉과, 그가 감독을 맡아 함께 하게 된 신이 내린 활솜씨의 아마존 전사 3인방 사이에서 엉뚱한 통역을 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준다. 그런데 이 이색적인 인물이 구사하는 볼레도르 언어가 예사롭지 않다. 그저 흉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진짜 볼레도르 언어란다. 물론 아쉽게도 영화에서는 볼레도르 언어보다 한국어로 연기하는 모습으로 대부분 채워졌지만, 진선규는 실제로 이 언어를 배우려 노력했고 촬영 당시에는 원어 버전과 한국어 버전을 모두 연기했다고 한다. 어차피 한국인들이라면 잘 알아듣지 못할 언어를 진선규는 왜 그토록 열심히 준비했을까. 이것은 웃음에 초점이 맞춰진 코미디라고 해도 이 배우가 얼마나 연기에 진심을 담으려 하는 인물인가를 보여준다. 

 

사실 ‘아마존 활명수’는 기발하지만 엉뚱한 발상을 담은 코미디 영화다. 한때 양궁 국가대표 메달리스트로서 코리아 활명수(활을 잘 쏜다는 의미)로 불리던 진봉이, 이제는 구조조정 1순위의 회사원이 되어 그 위기를 벗어날 기회로 아마존에 있는 볼레도르의 양궁 감독으로 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아마존에 뚝 떨어진 진봉이 그 곳 원주민들과 벌이는 좌충우돌과 거기서 만난 아마존 전사 3인방을 양궁 선수들로 키워내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서 맹활약하는 과정이 담겼다. 너무나 엉뚱한 이야기지만 한국과 아마존이라는 그 거리감을 단번에 좁혀줌으로써 허공에 붕 뜰 수 있는 이야기에 보다 현실적인 느낌을 얹어주는 인물이 통역사 빵식이다. 그러니 빵빵 터트리는 슬랩스틱류의 코미디 속에서도 양측 문화를 소통시키는 이 인물의 진정성이 필요해진다. 그가 굳이 볼레도르 언어까지 배워가며 연기를 준비한 이유다. 

 

진선규는 그 역할이 악역이든, 선역이든 혹은 지독한 비극이든 아니면 웃음 터지는 발랄한 코미디든 척척 제 몸에 맞는 옷처럼 입어버리는 배우로 정평이 나 있다. ‘범죄도시’에서 빡빡 밀고 나와 위성락이라는 살벌한 악역으로 대중들의 눈도장을 찍었던 그가, ‘극한직업’에서 형사지만 잠복근무 하다 치킨집 요리사가 된 모습으로 빵빵 터지는 웃음을 전해줬을 때 대중들은 전선규가 다채로우면서도 존재감이 확실한 배우라는 걸 알게 됐다. 물론 단독 주역을 맡은 건 작년에 개봉됐던 ‘카운트’에서가 처음이었지만, 다른 인물들과 함께 주연으로 나설 때마다 그는 자기만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한국형 우주 배경의 SF 영화였던 ‘승리호’에서의 타이거 박이나, ‘공조2’에서 현빈과 대적하는 메인 악역 장명준, ‘외계+인2’에서의 능파 역할이나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된 ‘전,란’에서 강동원의 스승으로 등장한 김자령 역할이 그 사례들이다.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극 ‘육룡이 나르샤’에서 남은 역할로 인상적인 연기를 남겼고, 범죄스릴러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통스러워도 범죄자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프로파일러 역할을 소화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갑자기 지진으로 붕괴된 건물 안에서 펼쳐지는 치열한 생존게임을 다룬 ‘몸값’에서는 드라마 내내 팬티 한 장을 입고 하는 액션 코미디를 선보였으며, 오컬트 장르인 ‘악귀’에서는 민속학자 역할로 등장해 특별출연이었지만 마지막회까지 모습을 드러내며 사실상 극을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사극과 현대극, 스릴러와 코미디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변화무쌍한 모습이지만 그에게도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자신이 하는 작품과 역할에 진심을 담는다는 점이다. 

 

이런 모습은 진정성이 점점 중요해진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재작년 tvN에서 방영됐던 ‘텐트 밖은 유럽’은 사실상 이 프로그램을 이끄는 유해진과 여행 예능에 첫 출연한 진선규의 공조로 화제가 됐던 프로그램이었다. 두 사람은 당시 영화 ‘공조2’에서 북한형사와 범죄조직 리더 장명주로 함께 출연해 치열한 대결을 벌인 바 있었다. 하지만 ‘텐트 밖은 유럽’에서 진선규는 너무도 선하고 순수한 소년미를 드러내면서, 서글서글하고 아재미 가득한 매력을 가진 유해진과 기막힌 형동생 케미를 선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 달라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을 때 MC 유재석은 “어떤 게 진짜에요?”라고 물었는데, 그 때 진선규가 한 말이 걸작이다. 그것이 바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며 ‘연기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이라고 했던 것. 그래서인지 최근 쿠팡플레이 ‘SNL코리아’에 출연한 진선규는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자신을 내려놓는(?) 모습으로 큰 웃음을 줬다. 특히 개그우먼 이수지가 보이스피싱을 하는 린쟈오밍 역할로, 진선규가 위씅락 역할로 분한 ‘범죄도시의 사랑법’은 유튜브에도 소개되어 큰 화제가 됐다. ‘개그콘서트’에서 이수지가 했던 보이스피싱 개그와 ‘범죄도시’의 세계관을 엮어 기막힌 ‘격정 멜로’로 풀어낸 이 코미디 영상은 조회수가 160만을 넘기고 댓글이 900여개가 달리는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그의 이러한 카멜레온 같은 완벽한 변신은 그냥 생겨난 결과가 아니다. 그는 작품에 대해 철저히 준비해오는 배우로도 정평이 나 있다. ‘몸값’을 찍을 때 그와 함께 연기했던 전종서는 촬영 2개월 전 리허설 때부터 진선규가 대사를 모두 암기해 와 깜짝 놀랐다고 인터뷰를 한 바 있다. 그만큼 어떤 역할이든 사전에 캐릭터를 분석하고 준비함으로써 남다른 자기만의 아우라를 갖게 됐지만, 진선규는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은 ‘좋은 배우’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상태라고 자신을 낮춘다. 이번 ‘아마존 활명수’에서도 그에 대해 류승룡은 “지금껏 보지 못했던 그런 캐릭터에 대한 연구를 하고 그것을 해내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극찬했지만, 진선규는 오히려 “‘극한직업’ 이후로 다시 한 번 더 형 옆에서 코미디로 배울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선악과 희비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아우라를 그가 어떻게 갖게 됐는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낮은 자세로 진지하게 임하는 변함없는 진정성이 바로 그것이다. (글:국방일보, 사진:영화'아마존 활명수')

‘개콘’, 유민상 같은 캐릭터 발굴만 더 된다면...

드디어 바닥을 친 걸까? 900회 특집 이후 조금씩 KBS <개그콘서트>의 색깔이 살아나고 있다. 물론 아직 두드러진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새롭게 마련된 코너들에서 한동안 잘 느껴보지 못했던 ‘재기발랄함’이 느껴진다. 정체기를 넘어 침체기에까지 들어섰던 <개그콘서트>에서 작은 희망 같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그 중심에서 도드라지는 인물은 단연 유민상이다. <개그콘서트>의 선배답게 그는 여러 코너들 속에서 자기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웃음을 선사한다. 오프닝 무대에 새롭게 마련된 ‘힘을 내요 슈퍼뚱맨’은 유민상의 뚱보 캐릭터를 슈퍼히어로 캐릭터로 만들어놓은 후, 영웅과 악당의 상황을 반전시키는 참신한 발상으로 웃음을 주었다. 즉 슈퍼히어로가 악당을 갖가지 방법으로 무너뜨리지만, 그 때마다 악당의 당하는 모습에 시민들이 동정심을 느껴 오히려 슈퍼히어로에게 손가락질을 한다는 설정. 굉장히 어린아이 놀이 같은 설정이지만 그 안에는 선악구도로 나누어 강자(국가)들이 약자를 힘으로 누르는 논리에 대한 비판의식 같은 것이 느껴진다. 

유민상은 <개그콘서트>에서 늘 먹히던 ‘뚱보’ 캐릭터 중 한 명이지만, 그 특징은 ‘당하는 뚱보’라는 점이다. ‘힘을 내요 슈퍼뚱맨’이 그렇듯, 새로 마련된 ‘퀴즈카페’에서도 그는 난감한 퀴즈에 어떤 답도 내기 어려워 어쩔 줄 몰라 하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원빈과 이나영, 비와 김태희 그리고 지성과 이보영 커플을 차례로 보여준 후, 어떤 커플이 여자가 가장 아까운 커플인가를 묻는 질문을 던지거나,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사진을 보여준 후 어떤 색깔이 가장 마음이 편안해지냐는 질문을 던지고 초록색을 선택하자 그 사진을 확대해 사실은 녹조라떼가 퍼진 장면을 보여줘 당황하게 만드는 식이다. ‘퀴즈카페’는 과거 유민상이 출연했던 정치풍자 코너였던 ‘민상토론’과 궤를 같이 하는 새로운 코너다. 

송영길과 호흡을 맞춘 ‘볼빨간 회춘기’도 유민상의 강점을 잘 보여주는 코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코너는 이제는 운신도 쉽지 않고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아 큰 소리로 외치듯 대화해야 하는 어르신들이 마치 ‘불량할배’처럼 대결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는 코너다. 힙합 음악에 맞춰 건들대며 들어오는 등장부터 웃음을 주는데다, 대결이라고 해도 제기차기 한 번 한 것에 졌다고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는 수준이다. 송영길의 연기가 돋보이는 코너지만 그와 양갱 하나를 두고 대립관계를 만들어내는 유민상의 역할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재미요소가 되고 있다. 

사실 최근 SBS <웃찾사>가 폐지되고 KBS <개그콘서트>마저 예전 같지 않다며 공개코미디 프로그램이 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 위기라는 것도 어찌 보면 간단한 해법으로 풀릴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코미디 프로그램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웃음과 재미를 찾는 일이다.

<개그콘서트>가 최근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이렇다 할 대표적인 캐릭터가 잘 눈에 띄지 않았다는 점이다. 등장하기만 해도 어떤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캐릭터가 존재하는 무대와 그렇지 않은 무대는 확연히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유민상 같은 ‘당하는 뚱보’ 캐릭터가 최근 <개그콘서트>의 여러 코너에서 일관되게 효과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물론 <개그콘서트>에는 유민상 이외에도 충분히 발굴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개그맨들이 많다. 예를 들어 ‘볼빨간 회춘기’에서 발군의 연기를 보여주는 송영길이나, ‘명훈아 명훈아 명훈아’에서 당하면서도 톡톡 쏘는 캐릭터를 선보이는 정명훈, ‘배틀트집’에서 돋보이는 이상훈, 김기열, 송준근, 그리고 개그우먼으로서 다양한 코너에서 맹활약하는 이수지, 박소라 등등의 개그맨들이 그렇다. 

유민상의 사례처럼 이들 각각의 개그맨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살릴 수 있는 코너들이 개발되어 이들 개그맨들의 캐릭터가 안착될 수 있다면 어떨까. <개그콘서트>는 어쩌면 이 위기의 터널을 빠져나와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개콘’, 풍자는 있는데 참신함이 떨어진다

“야 인턴! 넌 뭐가 그렇게 신나서 실실거려?” 직장상사인 부장 박영진이 이제 갓 들어온 인턴에게 그렇게 지청구를 날린다. 그런데 이 인턴 박소영 보통 내기가 아니다. 당하지만 않겠다는 듯 부장이 한 말을 또박 또박 받아 되돌려준다. “부장님은 뭐가 그렇게 화나서 씩씩거리세요?” 그러면서 월급은 언제 주냐고 묻자, 부장은 얄밉게도 “일도 제대로 안하면서 돈 타령”이란다. 그러자 또 이 인턴의 사이다 반박이 이어진다. “그러는 부장님은 돈도 제대로 안주면서 왜 일 타령이세요?” 관객의 박수갈채가 터진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KBS <개그콘서트>의 ‘불상사’에서 인턴 박소영이 등장하는 이 부분은 확실히 눈에 띈다. 그것이 단지 직장 내 부조리에 대한 젊은 세대의 사이다 발언이 담겨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부장으로 대변되는 구세대가 갖고 있는 직장생활에 대한 생각과 인턴으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부딪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건 단지 시원한 일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달라진 세대의 일에 대한 생각 같은 걸 읽게 된다. 

“야 열정페이란 말 몰라?” 부장의 한 마디에 “페이를 주셔야 열정이 생기죠.”라고 재치 있게 받아넘기고, “야 내가 너 땐 이런 식으로 안했어.”라고 논리가 부족해지면 들고 나오는 자세에 대해 “저도 부장님 되면 이런 식으로 안할 거예요.”라고 당차게 대꾸한다. 그러자 부장은 역시 나이를 걸고넘어진다. “30년 전에는 너 같은 애 뽑지도 않았어.” 하지만 인턴은 “30년 전에는 저 태어나지도 않았어요.”라고 물러서지 않고, 급기야 부장이 “이게 어디서 말대답이야?”라고 화를 내자, “말을 하시니까 대답을 하죠.”라고 되받는다. 그리고 퇴근한다며 마지막으로 남기는 “퇴근 후 깨톡으로 일시키지 마세요.”라는 말은 작금의 디지털 세상이 만들어놓은 퇴근 없이 소진될 때까지 계속되는 노동의 현실을 드러낸다. 

<개그콘서트>의 ‘불상사’는 이 박소영이 하는 인턴 역할이 눈에 확 들어오지만 다른 출연자들이 등장하는 부분들은 사실 그리 인상 깊게 남지 않는다. 그건 너무 익숙한 코드를 반복하고 있거나 아직 웃음의 포인트를 정확히 잡아내지 못해 미진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나마 칭찬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잔소리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게 계속 말을 바꾸는 송왕호가 연기하는 이중인격 팀장 캐릭터는 흥미롭지만 생각만큼 공감을 주지는 못한다. 

‘불상사’라는 코너가 어떤 부분은 흥미롭고 또 공감에 웃음까지 주지만 어떤 부분은 그저 구색처럼 붙어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건, 지금의 <개그콘서트>의 전체 상황을 축소해놓은 듯 보인다. 즉 노력하고 있는 건 분명히 느껴지지만 생각만큼 효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는 면들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땀복근무’ 같은 코너는 마치 과거 ‘마빡이’ 같은 노동 강도로 웃음을 주려 안간힘을 쓰지만 몸이 힘든 만큼의 웃음의 강도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대한민국 전설의 미남 개그맨 정명훈’ 같은 코너는 호들갑스럽게 기대감을 만들어내는 정승환으로 인해 정명훈에게 잔뜩 부담을 주는 특이한 콘셉트의 코미디지만 이것 역시 진짜로 웃기지 않는 정명훈의 멘트가 나올 때는 약간 맥이 풀려 버린다. 과정은 흥미롭지만 결과는 큰 임팩트를 남기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세젤예’는 예민한 사람들의 조합을 통해 오해하는 상황들을 빚어내는 것으로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코너다. 하지만 ‘이게 실화냐?’ 같은 코너는 여자들 두 명을 앉혀놓고 화장을 했냐 안했냐 가지고 계속 따지고 드는 상황을 통해 웃음을 만들고자 하지만, 그것이 요즘 같은 현실에 왜 중요한지는 알기가 어렵다. 

‘연기돌’은 도입 부분에 잔뜩 긴장해 대사를 계속 틀리게 말하는 임성욱과 후반부에 지나치게 연기론에 대해 운운해면서 화장실 청소원 연기에 과장되게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뿐만이 아닙니다.”라고 대사를 던져 웃음을 주는 이수지가 주목되지만 오나미 부분은 너무 익숙한 설정이라 그다지 신선한 느낌을 주지 못한다.

‘대통형’은 <개그콘서트>가 풍자가 왜 그 어느 때보다 날이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시청자들의 반응을 얻어가지 못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 코너는 비슷한 외모와 목소리 그리고 실제 이슈가 됐던 말들의 패러디는 나열되어 있지만 그 이상의 참신함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풍자라면 소재를 가져오되 그걸 그 코너가 가진 색깔로 녹여 내거나 비틀어야 비로소 참신한 웃음을 만들 수 있다. 

‘돌아가’처럼 늘 반복되는 조폭개그나 ‘1대1’처럼 너무 오래도록 반복되어 이제는 시들해진 코너들이 곳곳에 채워져 있는 상황으로는 <개그콘서트>가 트렌드를 선도했던 과거의 그 힘을 되찾기가 어려워진다. 물론 그 안을 들여다보면 ‘불상사’의 박소영이나 ‘연기돌’과 ‘부담거래’ 등에서 캐릭터를 200% 살려내는 이수지 같은 보석들이 보이지만, 너무 많은 클리셰들 속에 같이 묻혀 버리는 경향이 있다. 

<개그콘서트>의 힘은 결국 팀플레이에서 나온다. 몇몇 개그맨만의 특별함으로 프로그램이 다시 살아나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너무 쉬운 접근이나 틀에 박힌 캐릭터의 반복 같은 것들을 전반적으로 재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새로운 개그맨이나 개그들도 눈에 들어올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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