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김삼순 2024’, 웨이브의 뉴클래식이 시작됐다

내 이름은 김삼순

웨이브에는 최근 드라마, 예능, 영화, 애니 등의 분류 맨 앞에 ‘뉴클래식’이라는 새로운 꼭지가 생겼다. 클래식은 ‘고전’을 의미하는데 여기에 ‘뉴’가 붙었다는 건,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마치 ‘레트로’에 ‘뉴’가 더해져 ‘뉴트로’라고 불리는 것처럼 읽힌다. 

 

‘뉴클래식’으로 내놓은 첫 작품은 ‘내 이름은 김삼순 2024’. 2005년에 방영됐던 ‘내 이름은 김삼순’에 2024년 버전이라는 의미다. 김선아와 현빈, 정려원, 다니엘 헤니를 단박에 스타덤에 올렸던 그 드라마. 최고시청률이 무려 50%를 기록했던 레전드 드라마다. 19년의 세월을 뚫고 이 드라마는 어떻게 다시 돌아왔을까. 

 

이것은 최근 웨이브가 시작한 ‘뉴클래식’ 프로젝트의 첫 발일 뿐이다. 이미 예전부터 웨이브가 가진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는 방대한 아카이브 콘텐츠라는 이야기가 업계에서는 공공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상파 3사가 그간 오래도록 방영해왔던 옛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들이 웨이브에 독점적으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한때 ‘전원일기’가 다시 화제로 떠올랐을 때도 웨이브는 그 드라마를 다시 정주행 할 수 있는 유일한 OTT였다. 19년 전 레전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 2024년 버전으로 리마스터링해 돌아오게 된 건 그런 의미였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웨이브는 보유하고 있는 아카이브 중 레전드 작품들을 대상으로 뉴클래식 프로젝트를 이어갈 작정이다. 다음 작품으로는 역시 레전드 드라마인 이경희 작가의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서비스될 예정이다. 

 

물론 19년의 세월이 주는 간극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뉴클래식 프로젝트는 16부작을 8부작으로 압축 재편집했고 화질을 4K로 업스케일링했다. 또 OST 역시 클래지콰이의 ‘쉬 이즈(She is)’를 가수 이무진과 쏠이 재해석해서 다시 불렀다. 현재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하다. 

 

중요한 건 내용이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도 여전히 공감 가능한가 하는 지점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은 촌스러운 이름과 뚱뚱한 체형 그리고 노처녀라는 콤플렉스를 가진 파티쉐 김삼순(김선아)이 고급 레스토랑 사장 현진헌(현빈)과 티격태격 로맨스를 그려나가는 드라마다. 시대의 흐름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건 나이 서른을 노처녀라고 불렀던 당대와 현재의 차이다. 지금의 서른이라면 결혼은 아직 먼 한창 연애할 청춘으로 여겨지니 말이다. 

 

그래서 현재의 관점으로 ‘내 이름은 김삼순 2024’를 통해 당대를 들여다보면 오히려 그 시대의 김삼순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간 멋진 인물이었는가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누구 앞에서도 당당하고, 자기 일에 있어서는 프로페셔널하며, 또 ‘예쁜 척’ 같은 가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인간적인 매력이 풀풀 피어난다. 

 

또한 현재 이른바 K드라마라고도 불릴 정도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각광받는 한국드라마(그 중에서도 로맨틱 코미디)의 원형적인 서사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작품에 들어 있는 ‘계약 연애’를 담은 로맨스 서사나, 전문적인 일의 영역을 드라마 인물들의 직업으로 가져와 풀어나가는 방식, 또 남녀 간의 티키타카와 관계의 진전을 기막힌 코미디로 풀어내는 과정들은 ‘고전’이라는 말이 공감갈 정도로 웃음과 설렘을 준다. 

 

반응은 어떨까. 이미 2005년에 MBC를 통해 이 드라마를 접했던 세대들에게는 향수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뉴’라는 접두어를 붙였듯이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젊은 세대들 역시 이 ‘빈티지’한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사랑의 불시착’ 같은 작품으로 글로벌한 인기를 끌고 있는 현빈의 젊은 시절이 등장하고, ‘키스 먼저 할까요?’, ‘붉은 달 푸른 해’, ‘가면의 여왕’에 출연했던 김선아와 ‘졸업’으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정려원 또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 등의 작품으로 국내와 해외를 종횡무진하는 다니엘 헤니의 젊은 시절이 등장한다. 일종의 ‘레어템’ 같은 작품이랄까. 

 

웨이브의 뉴클래식 프로젝트는 요즘처럼 K콘텐츠가 글로벌하게 저변을 넓혀가는 상황에는 그만큼 가치있는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콘텐츠 팬덤이 점점 형성되고 있어 이들의 소비욕구 또한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과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이어 앞으로도 더 많은 레전드 드라마들의 귀환을 기대한다. 그것은 어쩌면 웨이브라는 지상파를 베이스로 하고 있어 아카이브가 충분한 OTT가 던지는 회심의 일격이 될 수도 있을 테니. (사진:웨이브, MBC)

‘졸업’이 달달한 로맨스로

졸업

교육 현실을 꺼내 놓는 방식

 

“풀이 스킬, 예상 문제 그런 거 말고 애들이 스스로 텍스트를 읽을 수 있게요.” 이준호(위하준)는 지금까지 해왔던 서혜진(정려원)의 방식 대신 완전히 새로운 걸 해보자고 제안한다. 그건 서혜진이 황당해하는 것처럼, 학원이 해야할 일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그저 이걸 외워라 하고 하는 방식이 아니고, 제대로 텍스트를 읽고 느끼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보겠다는 것. 그래서 학생들이 국어 시험을 볼 때 선생님이 해주지 않은 데서 문제가 나올까봐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tvN 토일드라마 ‘졸업’은 서혜진과 이준호의 달달한 멜로로만 흘러갈 것 같던 분위기에서 갑자기 교육 방식의 차이로 인한 갈등 상황을 그려낸다. 이미 일타강사로서 성공한 서혜진 앞에서 이제 막 강사의 길에 들어선 이준호가 하는 말들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이런 이야기는 두 사람의 관계가 연인 관계가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같은 학원 선후배 동료의 관계라면 팀장인 서혜진의 한 마디만으로도 이준호는 아무런 대꾸도 못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연인 관계로 발전한 상황에서 이준호의 말들은 꽤 도발적이다. 서혜진은 심지어 이준호의 이런 말들이 자신이 그간 쌓아온 경력들을 무시하고 모욕주는 것처럼 느끼기까지 한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준호에게 “너 나 이렇게 자극하고 모욕해서 대체 얻는 게 뭐야?”라고 소리친다. 그런데 여기에 이준호가 툭 던지는 말에 이들의 말다툼을 듣던 사람들이 빵 터진다. “백년해로?” 

 

즉 서혜진과 교육방법에 대한 생각의 차이 때문에 맞붙는 상황 속에서도 이준호는 서혜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자신이 하는 제안과 조언이 혼자 잘 먹고 잘 살자는 이야기도 아니라 두 사람이 다 같이 잘 살기 위함이라는 걸 콕 짚어낸다. 서혜진은 화가 나다가도 이준호가 드러내는 이 진심 앞에 슬쩍 슬쩍 감정이 수그러든다. 사실상 이 대화는 토론에 가까운 것이지만, 멜로적 감정이 더해지면서 흥미진진해진다. 

 

이건 ‘졸업’이 멜로를 활용하는 방식이고, 안판석 감독의 로맨스가 현실문제들을 꺼내놓는 방식이기도 하다. 안판석 감독이 최근 연달아 연출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봄밤’에 이어 ‘졸업’도 비슷한 결의 멜로드라마로, 그 달달함의 이면에는 지금껏 문제의식을 별로 느껴지 않고 살아왔던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일침이 담겨 있다. 

 

이를 테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윤진아(손예진)는 서준희(정해인)의 사랑고백을 받기 전까지 회사생활에 있어서 자신의 소중함을 모른 채 살아왔다. 심지어 성차별에 성희롱을 해도 그런게 다 회사생활이라 여기며 살아왔던 것. 하지만 서준희라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윤진아는 변화하게 되고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 싸워나가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 

 

‘졸업’도 마찬가지 스토리 구조를 가진 멜로드라마다. 이준호가 나타나기 전까지 서혜진은 잘 나가는 대치동 일타강사로 별 문제의식도 없이 수강생을 늘리고 통장 잔고가 늘어나는 재미로 살아왔다. 하지만 이준호라는 첫 제자였고 동료 선생님으로 다가와 이제 연인이 된 존재가 그의 삶에 들어오자 서혜진은 변화한다. 

 

이준호의 친구 최승규(신주협)는 서혜진과 이준호가 다니는 학원 상담실장인 엄마 김효임(길해연)에게 이준호가 하려는 수업의 기획서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꽝은 아니에요. 서혜진 선생님 초창기 방식. 나도 이렇게 배웠어요.” 즉 이준호가 하려고 하는, 학생들이 스스로 텍스트를 읽을 수 있게 해주는 방식은 사실 서혜진이 초창기 이준호를 가르쳤던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건 서혜진이 성공과 더불어 초심을 잃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서혜진 선생님은 10년 동안 진화를 거듭하면서 찬영고 최종병기가 됐고 준호는 시장을 다르게 잡은 거죠.”

 

이준호는 서혜진의 국어 수업이 좋았던 건 단지 국어만이 아니라 그 문해력을 높여주는 수업을 통해 전 과목의 성적을 올릴 수 있어서라고 했다. ‘졸업’이 굳이 다른 과목도 아닌 국어라는 과목을 소재로 가져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어는 결코 암기과목이 아니지만, 당장 계속 되는 시험을 치르고 등급이 나뉘어지는 상황 속에서 암기과목처럼 취급된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준호는 국어를 암기과목처럼 대하는 방식의 수업을 벗어나게 해줌으로써 다른 과목들까지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있고 그건 다름 아닌 이준호가 국어를 좋아하게 되고 또 서혜진을 좋아하게 됐던 이유이기도 했다. 

 

첫 회에 등장해 서혜진에게 모욕을 당하면서도 고집스런 모습으로 그려져 ‘공교육 비하’라는 논란까지 불러 일으켰던 표상섭(김송일) 역시 이준호처럼 서혜진을 자극하는 인물이다. 그 때의 일에서 비롯해 결국 학교를 나와 학원강사의 길을 선택한 표상섭에 서혜진은 충격을 받지만, 표상섭은 이준호의 이야기를 듣고는 “헛소리가 아니라 로망 같은 데요?”라며 이준호와 비슷한 자신의 로망을 드러낸다. “애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울 필요 없이 제대로 읽게 만들고, 감상할 수 있게 만들고, 그걸 위해 자기 방식대로 애들을 가르쳐 보는 거. 그거 모든 선생님들 꿈일 거예요. 그걸 할 수 있는 곳이 학교가 아니라 학원이라는 게 역설입니다만.”

 

결국 서혜진은 이준호 앞에 항복을 선언한다. “이준호 니가 이겼어. 니가 이겼다.” 달달한 멜로를 그리고 있지만, 이를 통해 ‘졸업’은 입시경쟁으로 인해 비뚤어진 교육현실의 문제들을 저마다의 위치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학교선생님, 학원강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꺼내놓는다. 문제의식 없던 한 인물의 삶에 어느 날 갑자기 들어온 이가 만들어내는 로맨스와 삶의 변화. 이것이 안판석 감독이 이어오고 있는 멜로의 방식이다. (사진:tvN)

졸업

촉촉이 내리는 비, 창가에 앉아 기다리는 남자주인공, 따뜻한 가게의 조명, 예쁜 색감이 돋보이는 빨간 우산을 쓰고 다가오는 여자주인공 그리고 그 위로 잔잔히 흐르는 음악... tvN 토일드라마 ‘졸업’의 장면들은 어딘가 익숙하다. 거기에는 ‘안판석’이라는 감독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봄밤’에 이어 ‘졸업’까지, 연달아 멜로에 뛰어듬으로써 이제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안판석 감독표 로맨스물의 색깔이 그것이다. 

 

물론 안판석 감독의 로맨스에는 멜로 이외에도 디테일한 사회생활의 이야기가 담기곤 했는데, 이번 ‘졸업’은 대치동 학원가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막연히 수십 억 연봉의 스타 강사들의 이야기로만 알려져 있지만, ‘졸업’이 보여주는 건 그 수치 이면에 담긴 강사들의 치열한 경쟁과 노력이다. 서혜진(정려원)은 그 경쟁을 뚫고 대치동 학원가에서 인정받는 국어 일타강사다. 한 명 두 명 수강생들이 늘고 통장 잔고가 늘어가는 걸 보람으로 여기며 살던 그의 평탄한 삶에 갑자기 그의 첫 번째 제자 이준호(위하준)가 불쑥 들어온다. 8등급 꼴통이었지만 서혜진을 만나 기적의 1등급을 받고 명문대에 합격했고 졸업 후에는 모두가 선망하는 대기업에도 들어갔지만 그는 갑자기 회사에 사표를 내고 학원강사로의 길로 뛰어든다. 서혜진은 학원강사의 삶이 보기와는 다르다며 완강히 반대하지만 끝내 그가 일하는 학원으로 들어온 이준호는 함께 ‘사제출격’이라는 콘셉트로 공동강의를 시도한다. 

 

등급을 올려주기 위해 아이들 학교의 시험 출제 경향을 파악하고 대비해 나가야 하며, 때론 오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 국어선생님과 각을 세우기도 하고, 학생들을 빼가려는 경쟁 학원과의 전쟁 같은 대결을 벌이면서, 점점 높아진 위상에 자신을 견제하려는 학원 내부의 움직임과도 부딪쳐야 하는 치열한 대치동 학원가의 삶. 그 치열함 속으로 어느 날 불쑥 들어온 이준호는 서혜진의 잔잔했던 마음에 돌을 던진다. 

 

그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의 돌이다. 하나가 첫 제자로만 알던 이준호가 ‘동료 선생님’으로 오면서 느끼게 되는 멜로 감정이라면, 다른 하나는 이준호로 인해 다시금 피어나게 된 잃어버렸던 열정 같은 것이다. 첫 제자였던 이준호를 가르칠 때 그저 문제 푸는 법만 알려준 게 아니라 국어를 사랑하게 만들었던 서혜진이었다. 스타 강사로 자리매김한 이후에는 그런 교육방식을 비효율적이라 생각하게 됐지만, 갑자기 나타난 이준호와 공동강의를 준비하면서 그 초심의 열정이 되살아난다. 

 

그래서 ‘졸업’은 서혜진과 이준호의 로맨스를 그리면서 동시에 변해버린 서혜진의 교육에 대한 진짜 열정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는다. ‘졸업’이라는 제목은 그래서 다의적이다. “선생님.. 이라고 불러 보세요. 선생님이라고 불러 보시라고요. 꽤 기분 좋을 것 같은데.” 다시 나타난 이준호가 서혜진에게 그렇게 말하듯, ‘졸업’은 사제지간의 관계를 졸업하려는 이준호의 마음을 담은 제목이다. 하지만 동시에 서혜진이 스타 강사로 하루하루를 경쟁적으로 살아오면서 잃었던 것들을 이준호를 통해 되찾게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졸업’하고 교육의 새 길을 찾아가겠다는 의미를 담은 제목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그 이야기의 틀거리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유사해 보인다. 그저 가끔 만나 밥 사주는 예쁜 누나로 알고 지냈지만 서로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로 발전해가고, 그 과정에서는 직장에서 심지어 성추행을 당해도 그러려니 하며 살던 누나가 자신의 존재가치를 자꾸만 일깨워주는 남자를 통해 그 삶에 변화를 갖게 되는 이야기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아니었던가. 마찬가지로 ‘졸업’도 선생님과 제자로만 지내던 사이에게 연인 관계로 변해가는 로맨스를 그리면서 동시에 그 과정에서 선생님의 삶이 변화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비슷한 틀이지만 대치동 학원가라는 디테일한 스토리들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지고, 거기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감정들이 안판석 감독 특유의 차곡차곡 쌓아가는 서사에 의해 폭발력을 만든다. 빼놓을 수 없는 게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만들어낸 OST의 힘이다. 전곡에 참여한 뉴욕 출신 3인조 밴드 The Resless Age의 모던하면서도 노스탈직한 사운드는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졸업’만의 감성을 만들어낸다. (글:일간스포츠, 사진:tvN)

‘졸업’, 살벌한 대치동 학원가에서 교육이 낭만을 이야기할 때

졸업

“나 기분이 너무 이상한데 그, 무료 강의 하기 전 서혜진이랑, 하고 난 다음의 서혜진이 다른 사람 같아. 나 네 말대로 그 두 장짜리 약정서에 내가 원하는 조건 넣고 뒤도 안 돌아보고 가는 게 맞거든? 지금 학원에 침 뱉고 가는 게 맞아. 근데 왜 이렇게 발이 안 떨어지지? 나 그 전까지 아무 문제 없었거든? 열심히 가르치고 그만큼 벌고 그걸로 애들 불어나면 또 통장 잔고도 불어나고 아 나 그 보람 하나로 살았는데 다시 그 전으로 못 돌아갈 것 같아.”

 

tvN 토일드라마 ‘졸업’에서 서혜진(정려원)은 경쟁학원인 최선국어 최형선(서정연) 원장의 파격적인 스카웃 제의에도 불구하고 갈등하는 자신에 대해 친구인 차소영(황은후) 변호사에게 그렇게 토로한다. 그 말처럼 일타강사로서 잘 나가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던 그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그건 자신의 첫 제자이자 이제 같은 학원에 청운의 꿈을 품고 들어온 후배 강사 이준호(위하준) 때문이다. 갑자기 좋은 회사도 때려치고 강사의 길을 걷겠다며 나타난 이준호가 굳이 그런 선택을 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서혜진이다. 학창시절 서혜진으로 인해 받았던 좋은 영향이 그 역시 그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픈 이유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챙겨주면서 진짜 공부를 좋아하게 만들었던 이가 바로 서혜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서혜진의 모습은 대치동 학원가에서 일타강사로 성장하면서 점점 사라져갔다. 그의 말대로 열심히 가르치고 수강생들이 불어나고 통장 잔고가 늘어나는 것을 ‘유일한’ 보람으로 살게 됐다. 당연히 이준호를 가르치며 가졌던 ‘첫 제자’ 같은 다분히 낭만적인 교육은 저만치 멀어졌다. 그런데 잊고 있다 생각했던 그 교육의 낭만을 떠올리게 하는 첫 제자가 등장한 것이다. 

 

그와 함께 ‘사제출격’이라는 새로운 강의를 준비하면서 서혜진은 아주 조금씩 본래의 자신의 모습을 되찾아간다. 그건 마치 사제지간이었지만 이제 똑같이 ‘선생님’이라 불리게 되어 ‘동료’가 된 이준호에 대해 갖게 되는 감정 같은 것들이 겹쳐져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본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준호가 과거 자신을 가르쳤던 서혜진을 생각하며 하려 준비해온 강의들은, 서혜진에게는 너무 ‘낭만적’으로 느껴져 고쳐지고 바뀌어지지만, 무료특강을 하던 날 최형선 원장에 의해 청강생들이 단 한 명밖에 나타나지 않은 당혹스런 상황을 맞이하면서 서혜진은 마음을 바꾼다. 어떻게 하면 문제 하나를 더 맞춰 등급을 올리는가에만 골몰해 준비했던 강의가 아니라, 그의 첫 제자였던 이준호에게 했던 다소 낭만적이지만 진짜 공부가 되는 강의를 꺼내놓는다. 

 

그 단 한 명의 수강생인 이시우(차강윤)는 다름 아닌 최형선이 이들의 강의가 궁금해 심어 놓은 일종의 ‘스파이 학생’이었지만, 그 진심어린 강의는 이 학생의 마음을 돌려 놓는다. 그 강의가 어땠는가를 묻는 최형선에게 이시우는 솔직하게 자신이 국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를 털어 놓는다. “문법 같은 건 공식이 있으니까 크게 어렵지 않은데 문학은 사실 잘 모르겠어서 그냥 열심히 외웁니다. 그런데 언제나 불안했어요. 국어를 좋아하기 때문에 잘하는 애들이 있으니까.”

 

그러면서 다소 낭만적인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교과서 첫 장에 보면 국어 공부의 목적은 인간답게 사는데 있다고 쓰여 있거든요. 이거 읽는다고 내가 더 인간다워지거나 그런 것 같지 않고, 아니 인간다운게 뭔지 모르겠고 아무튼 국어는 좀 뜬구름 잡는 과목 같아서 싫었거든요. 근데 어제 수업을 듣고 나선 제가 왜 국어를 싫어했는지 알 것 같았어요. 학년 바뀌고 처음 교실에 들어가서 오늘 점심은 누구랑 먹을지 막 눈치 볼 때랑 비슷한 기분이었던 것 같아요.”

 

이건 실상 지금의 수험생들이 국어를 어려워하는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문학의 경우, 그 작가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천천히 숙고하고 음미하며 감상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입시에 맞춰진 국어 수업은 당장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만 맞춰져 있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면 작품을 쓴 작가도 초면이고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도 나랑 초면인데 걔들이랑 밥도 먹어야 되고 그 사람들의 생각이나 입장을 엄청 빨리 막 맞혀야 되고 하는 게 힘들었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처음 보는 지문에 당황하고 감에 의존하고 그랬는데 근데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다가가니까 처음으로 조금 재미있었어요.”

 

이시우의 이야기는 확실히 낭만적이다. 또한 단 한 명의 청강생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성심성의껏 수업을 함으로써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것으로 완패했다 싶었던 서혜진과 이준호의 ‘사제출격’이 반전의 서사를 그려내는 이야기도 대치동의 현실을 들이대면 낭만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또한 서혜진이 첫 제자의 등장과 함께 초심으로 돌아가고 그래서 다시는 전으로 못돌아갈 것 같다 말하는 것 역시 낭만적이다. 

 

하지만 어째서 교육이 낭만적이면 안될까. 아니 오히려 교육이란 꿈이나 희망 같은 낭만을 가져야 의미있는 것이 아닐까. ‘졸업’은 서혜진과 이준호의 로맨스를 밑그림으로 그리고 있지만, 동시에 교육이 잃어가고 있는 낭만에 대한 이야기도 꺼내놓고 있다. 살벌한 경쟁이 벌어지는 대치동 학원가에서 꺼내놓은 교육의 낭만이라니. 그래서일까. ‘졸업’이라는 드라마가 건네는 설렘 속에는 세태에 대한 날선 일침 같은 통쾌함도 묻어난다. 이러니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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