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예뻤을 때', 삼각멜로보다 주목되는 자연과 인간의 대결구도

 

"사람한테 기대지 않으면 돼요. 사람은 상처만 주는 존재고 자연만이 인간을 위로해." MBC 수목드라마 <내가 가장 예뻤을 때>에서 서진(하석진)은 오예지(임수향)에게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그 말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힘겹게 만드는 고모 오지영(신이)을 지목한 말이었지만, 달리 들으면 바로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 역시 가족의 불행을 눈앞에서 봐온 터였다. 아버지는 암벽등반을 하다 동생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줄을 끊어 장애를 갖게 됐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버렸다. 그러니 가족이 그에게는 위로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은 상처만 주는 존재"라는 그 말은 서진 그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오예지가 "나를 위로한 건 이런 순간을 경험하게 해준 그 사람 마음"이라고 말하자 서진은 스스로를 부정하며 "내 의도가 뭔지 아냐"고 묻고 "쉽게 마음을 열지도 함부로 닫지도 말라"고 말한다. 그건 자신이 오예지에게 이제 다가갈 것이고, 그런 이끌림이 어쩌면 만들어낼 파국에 대한 복선처럼 들린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아버지를 살해한 엄마로 인해 고모에게 핍박받으며 살아왔던 오예지가 어느 시골마을 학교에 교생으로 오면서 시작한다. 거기서 자기 반 학생으로 만나게 된 서환(지수)은 점점 오예지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지만 그 즈음 군에서 제대하고 돌아온 서진이 나타나 오예지에게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친다.

 

그래서 오예지를 두고 형제가 벌이는 삼각멜로 구도가 벌어지지만 그것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서환과 서진이라는 캐릭터의 대비다. 서환은 시골마을의 그 편안하고 아름다운 풍광 그대로의 자연 같은 캐릭터를 보여주지만, 서진은 자동차 레이서로 도로를 질주하는 도시의 욕망을 그대로 가진 캐릭터를 드러낸다. 서진이 오예지에게 말한 것처럼 자연을 닮은 서환은 그에게 위로를 선사한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서진은 그 유혹이 강렬하지만 어딘지 불안한 느낌을 준다.

 

드라마는 서환과 서진을 자연과 도시를 대변하는 캐릭터로 연출해낸다. 서환이 자전거에 오예지를 태우고 함께 시골길을 달리던 풍광이 주는 그 힐링은 그래서 서진이 스포츠카를 끌고 나타나 오예지를 태워 어느 바닷가로 데려가는 장면과 병치되어 연출된다. 아직 가진 것이 없이 서진을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서환은 혼자 쓸쓸히 자전거를 끌며 시골길을 걸어간다.

 

예고편에 슬쩍 등장한 것처럼 결국 오예지는 서진과 결혼하게 되고, 안타깝게도 서환이 결혼식장에서 오예지의 손을 잡고 들어서주지만, 이야기는 그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제 성장한 서환은 한 발작 떨어진 곳에서 오예지를 줄곧 쳐다보고 있을 테니 말이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사실 삼각멜로의 틀로만 바라보면 너무 뻔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구도를 뻔하지 않게 만드는 건 이 형제가 도시와 자연을 은유하는 캐릭터들로 서 있다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자연을 닮은 지수의 사랑은 아마도 시청자들에게 아련한 아픔으로 전해지는 어떤 위로를 줄 것으로 보인다.

 

오예지라는 인물이 삶이 버거워 자존감조차 없이 살아가게 된 이들을 대변한다면, 언제든 찾아가면 넉넉한 품으로 안아주는 자연처럼 한 걸음 뒤에서 그를 보듬어주는 지수의 사랑은 남다른 공감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게다. 특히 욕망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부대끼며 많은 상처를 갖게 되는 우리네 삶 속에서는 더더욱 그렇다.(사진:MBC)

‘도봉순’, 어째서 멜로와 여성주의 사이에서 방황하나

결국 힘쎈 여자 도봉순(박보영)이라는 슈퍼히어로라고 해도 남자의 구원을 받아야 될 존재여야만 할까. JTBC 금토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이 예상과 달리 엉뚱한 전개를 보이는 것이 대해 시청자들이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제대로 된 여성주의적 관점을 담은 드라마라는 생각과 달리, 슈퍼히어로인 도봉순이 여전히 남자에게 의존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힘쎈여자 도봉순(사진출처:JTBC)'

여성들을 감금해 사육하는 엽기적인 사이코 김장현(장미관)은 도봉순을 유인해 선량한 사람을 자신으로 위장시켜 다치게 함으로써 그녀의 힘을 무력화시켰다. 그런 설정이야 김장현과 도봉순의 팽팽한 대결구도를 만드는 것으로서 필요했던 장면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위기 상황에 나타난 안민혁(박형식)과 인국두(지수)가 결국은 무력화된 도봉순을 구한다는 설정은 너무 쉬우면서도 안이한 해결책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그 장면은 결국 도봉순처럼 힘쎈 슈퍼히어로라고 해도 안민혁이나 인국두 같은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 되는 존재처럼 비춰진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가 지금껏 해오려던 이야기의 긴장감을 일시에 무너뜨렸다. 힘쎈 여자는 과연 예쁘지 않고 사랑받지 못할까라는 드라마가 화두로 던진 문제의식은 끝없이 도움을 갈구하고 남성 캐릭터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도봉순의 각성 없는 모습 앞에 조금씩 휘발되고 있다. 

사실 <힘쎈 여자 도봉순>이 어떤 통쾌함을 주었던 장면들은 동네 조폭들을 단신으로 대적해 모두 병원 신세를 지게 만드는 그런 것들이었다. 결국 애초부터 도봉순이라는 괴력을 이겨낼 수 있는 적수는 찾기 어려웠다는 것. 그것은 여성들만 범행대상으로 삼아 엽기적인 범죄를 저질러온 김장현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결국 꼼수를 쓰게 되는 것이지만 이런 꼼수로 슈퍼히어로가 무너질 리는 없다. 

그러니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도봉순이 가진 진짜 문제는 이런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들이었다. 힘쎈 자신의 존재 그 자체를 스스로 인정하고 그것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주체성의 결여가 그것이다. 그러니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에 종속되어 수동적으로 사랑받는 걸 갈구하는 모습에서 나아가 스스로 가진 자존감을 바탕으로 대등한 관점에서 사랑을 주고받는 그런 도봉순으로 깨어나길 시청자들은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3회 분을 남겨 놓은 상황에서 도봉순은 한 걸음도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된 건 애초의 주제의식을 끝까지 밀어붙이기 보다는 멜로와 여성주의 사이에서 드라마가 지나치게 갈등을 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도봉순과 안민혁의 멜로가 주는 힘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 멜로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새롭게 그려낼 수는 없었을까.

물론 남은 3회 분량을 봐야 결론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지만, 지금의 멜로 구도는 너무 전형적이다. 위기에 상황에 몰린 여성을 구하러 달려오는 왕자님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멜로 상황을 거꾸로 뒤집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위기 상황의 남자들을 오히려 구해내는 보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도봉순이었다면.

‘도봉순’, 어째서 멜로에 대한 기대가 커진 걸까

본격 장르물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본격 장르물에도 멜로나 가족극 요소가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런 멜로의 틈입에 대해 시청자들은 오히려 긴장감을 떨어뜨린다며 비판적인 시선을 갖게 되었다. 최근 방영됐던 <피고인>이나 <보이스> 같은 본격 장르물이 멜로 없이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끈 건 그래서다. 

'힘쎈여자 도봉순(사진출처:JTBC)'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JTBC <힘쎈 여자 도봉순>의 경우는 멜로에 대한 기대가 훨씬 더 커지고 있다. 물론 이 드라마를 본격 장르물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힘쎈 여자 도봉순>은 여러 장르들, 이를 테면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스릴러 장르와 코미디, 게다가 가족드라마적 요소들과 멜로까지 복합적인 장르를 보인다. 

그래도 그 메인으로 깔려 있는 건 여자들만을 공격대상으로 삼는 사이코패스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그 사이코패스와 맞서는 강력계 형사 인국두(지수)와, 재벌가의 승계를 두고 벌어지는 테러 앞에서 위협을 느끼는 안민혁(박형식)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에 도봉순(박보영)이 양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슈퍼히어로로 서 있는 구도. 

이미 도봉순은 자신이 그간 드러내지 않았던 힘을 제대로 써야 한다는 걸 각성했고, 안민혁과의 트레이닝을 통해 그 힘을 조절하는 방법도 배웠다. 그러니 그녀를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사실상 이 드라마 상의 어떤 악역들에게도 없다. 수십 명의 조폭들을 단신으로 상대하며 모두를 병원 중환자실로 몰아넣는 그녀가 아닌가. 백탁(임원희)은 그래서 그녀 앞에 일찌감치 무릎을 꿇는다. 

그렇다면 이미 자신의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도봉순에게 진짜 목표는 무엇일까. 드라마는 결국 주인공의 결핍을 욕망으로 삼아 그것을 어떻게 쟁취하는가에 따라 동력을 얻기 마련이다. 물론 여자들을 감옥 같은 철창에 가둬두고 마치 전리품처럼 여기는 사이코패스가 버젓이 살아있지만 그를 잡는 건 이 드라마의 한 과정일 뿐, 목표 그 자체라고 보기는 어렵다. 

도봉순은 사실 정의의 실현 같은 것에 목을 매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그 자체로 소중하게 느낄 수 있는 것에 더 강력한 욕망을 갖고 있다. 힘이 세다는 것을 그녀는 숨기며 자라왔다. 여자가 힘이 세다는 것을 마치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인 양 받아들였던 것이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그녀는 자신을 부정하고 있었던 것. 

우리가 <힘쎈 여자 도봉순>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도봉순의 멜로를 더욱 기대하게 되는 건 바로 그것이 그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누군가에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다. 숨기고 왔던 괴력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그런 그녀를 그 자체로 사랑하는 남자의 등장은 바로 도봉순이 꿈꾸는 것일 테니 말이다. 

<힘쎈 여자 도봉순>의 멜로는 그저 남녀 간의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거기에는 남녀 간의 성별로 나뉘어지는 역할이나 선입견들을 깨는 요소가 들어가 있다. 남녀의 성역할에 따라 누가 누구를 보호해주고 보호받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사랑의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멜로가 그려내려는 것이다. <힘쎈 여자 도봉순>이 스릴러 장르물의 틀을 가져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로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지는 건 그래서다.

'도봉순' 박보영, 이 슈퍼히어로가 던진 진짜 메시지

“너 왜 이렇게 치마가 짧아? 너무 예쁘게 하고 다니지마.” 인국두(지수)의 이 말에 도봉순(박보영)은 하루 종일 싱글벙글이다. 젊은 여자들만 폭행 납치하는 사이코가 출몰하는 동네, 형사 인국두의 그 말은 물론 도봉순이 걱정 되어 하는 말이겠지만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비뚤어진 여성관을 담고 있다. 세상에 벌어지는 여성관련 성폭력 사건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는 여성 때문인가. 너무 예쁘게 하고 다니기 때문인가. 

'힘쎈여자 도봉순(사진출처:JTBC)'

놀라운 건 인국두의 이런 말에도 도봉순은 아무런 자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오히려 자신이 짝사랑해온 인국두의 이 말 속에 담겨진 “너무 예쁘게”라는 말에만 집중하며 행복해한다. 이런 상황은 시청자들이 JTBC 금토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의 인국두와 도봉순의 관계를 보며 어딘지 잘못됐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두 사람은 너무나 순수해보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들은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에 빠져 있다. 인국두가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처럼, 도봉순도 사회가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여성들에게 부가하는 ‘예뻐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있다.

그래서 도봉순은 그녀가 안민혁(박형식)과 술을 마시다 만취해 클럽에서 봉을 뽑아 흔든 것이 카메라에 찍혀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에 창피해하며 책상 아래로 들어가 우울해한다. 사실 이 장면은 여성을 성적으로만 소비하는 세태에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하다못해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봉 하나를 세워두고 여성들이 봉춤을 추는 장면을 내보내는 시대가 아닌가. 그 봉을 뽑아 휘두르는 도봉순의 모습은 그냥 넣은 장면이 아닐 게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극중 캐릭터 도봉순은 이런 자신에 대한 자각이 없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힘쎈 여자 도봉순>이 그 로맨틱 코미디의 포장 아래 숨겨둔 진짜 메시지가 아닐까. 이 드라마는 그래서 도봉순이 동네에 출몰하는 사이코를 제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가 그녀가 스스로 각성하는 일이다. 사이코가 젊은 여성들을 유괴해 자신의 은신처에 가둬두는 비뚤어진 성의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도봉순도 또 인국두도 마치 공기처럼 되어버린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여성을 성추행하는 치한의 손가락을 비틀어 응징하면서 “내가 힘을 제대로 쓴다면 세상이 좀 더 나아질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도봉순은 그래서 이러한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지만, 자기가 만든 편견에 갇혀 그 힘을 공공연히 세상에 드러내는 걸 창피하게 여기는 존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도봉순 스스로가 이것이 여성으로서 창피한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워할만한 일이라는 걸 깨닫고, 나아가 그러한 편견과 선입견을 깨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걸 알게 되는 과정은 그녀가 놀라운 힘을 가진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된다. 그것은 이 땅의 여성들이 힘이 없어서 때론 핍박받는 대상이 된 것이 아니라, 그 존재하는 힘을 스스로 인정하거나 각성하지 않아서 그렇게 됐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결국 이 도봉순이 ‘힘쎈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 자체를 사랑하게 될 인국두를 기대하게 된다. 그것은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는 멋진 남성으로서의 자각이 될 테니 말이다. 

이 드라마가 이러한 캐릭터의 함의를 담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역시 박보영이라는 연기자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길 수밖에 없다. 힘과 여자를 이토록 멋지면서도 귀엽고 러블리하게 봉합해낼 수 있는 이 연기자의 결이야말로 이미 시청자들에게 ‘힘쎈 여자’ 도봉순이 얼마나 예쁜가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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