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투 삼달리’, 이 멜로라 휴먼을 품는 방식

웰컴투 삼달리

“아, 여, 여보, 여보, 아.. 여보, 나, 나 뭐라 그래야 돼? 뭐라 불러야 되지?” JTBC 토일드라마 <웰컴투 삼달리>에서 제주 고향집으로 내려온 조진달(신동미)을 찾아온 전 남편 전대영(양경원)은 저도 모르게 ‘여보’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물론 그 먼 곳을 달려와 집앞을 서성이는 것 자체도 그렇지만, 갑자기 나타난 조진달에게 당황해서 습관적으로 튀어나온 그 말은 전대영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잘 드러낸다. 

 

전대영은 AS그룹 재벌가의 막내다. 그런 그가 싸움 잘하고 머리도 좋은 쎈 언니 조진달에게 마음을 빼앗긴 건 비행기 안에서다. 승무원이었던 조진달이 난동을 피우는 진상 승객을 한 방에 제압하는 모습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결혼까지 했지만, 갑질이 일상인 재벌가는 조진달에게는 맞지 않는다. 결국 이혼했지만, 전대영은 여전히 조진달을 잊지 못한다. 저도 모르게 “여보”라는 말이 튀어나오고 “잘 지냈어요?”라는 조심스러운 말에는 걱정과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웰컴투 삼달리>가 이제 제주로 내려온 조삼달네 세 자매의 멜로를 본격화하고 있다. 조삼달을 오래도록 짝사랑해왔지만 절친인 조용필(지창욱)이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 때문에 다가서지 못하고 바라만봤던 부상도(강영석)는 “아직도 잊지 못하냐”고 조용필에게 묻는다. 다시 제주로 내려온 조삼달에게 자기 마음을 전하려 했지만 어딘가 조용필과 그녀가 여전히 서로에게 마음이 있다고 느껴져서다. 하지만 조용필은 말한다. 자신은 헤어진 이후에도 한번도 “잊지 못한” 적이 없다고. “잊지 않은” 것이지. 

 

그러면서 부상도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 좋아하는 거 그거 남 눈치 볼만한 일은 아니지 않냐?” 즉 조용필은 자신도 여전히 조삼달을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부상도가 그녀를 좋아하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는 것. 이런 훈훈한 사랑의 경쟁은 조삼달이 겪었던 도시의 그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뭐든 쟁취의 대상이 되는 도시의 삶에서, 사랑조차 이기고 가져야 하는 어떤 것으로 치부되는 그런 인간들 때문에 조삼달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바람을 피워 남자친구를 빼앗아간 후배는 조삼달의 포트폴리오까지 훔쳐 갔으니 말이다. 

 

이러한 비교는 <웰컴투 삼달리>가 하려는 이야기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건 가진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그래서 사랑조차 소유물처럼 여기는 속물적인 도시의 삶이 과연 진짜 행복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AS그룹 대표인 전대영이 돈 많은 부자지만 조진달의 집 앞을 여전히 서성대고 습관처럼 ‘여보’라는 말이 튀어나오고 걱정스럽게 “잘 지냈어요?”라고 묻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웰컴투 삼달리>가 그리는 사랑은 이처럼 달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휴먼드라마의 훈훈함이 묻어난다. 

 

한편 세 자매의 막내지만 어린 나이에 떡 하니 딸을 가졌지만 남편이 사고로 사망해 과부가 된 조해달(강미나)의 멜로 역시 이러한 휴먼드라마의 결을 갖고 있다. 아직 서른도 안된 젊은 나이지만 딸 차하율(김도은)이 있다는 사실이 또 다른 사랑을 만나는 걸 허락하지 않는 세태 속에서 너무 일찍 성숙해버린 아홉 살 딸이 이제 ‘사랑의 오작교’가 될 참이다. 

 

우연히 바닷가에서 만난 공지찬(김민철)이 그 인물이다. 제주남방큰돌고래 보호단체 돌핀 센터 대표인 그는 수족관에 갇혀 있던 돌고래를 제주 바다로 돌려보내기 위해 20대 청춘을 다 보냈는데, 그 중 한 마리인 남춘이는 자식이나 다름없다. 어느 날 남춘이 신호가 끊겨 제 정신이 아니던 중에 조해달과 인연이 맺어진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으로 오인하게 된 것. 그런데 엄마 조해달을 기다리고 있다가 공지찬과의 묘한 기류를 우연히 보게 된 이 조숙한 딸이 하는 말이 가슴을 툭 친다. “가자. 이모! 아 가자고 이모.” 

 

이 조숙한 아이는 자신이 엄마 인생의 딸린 혹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엄마가 아니라 이모인 척 거짓말을 한 것. 엄마를 생각하는 딸의 마음이 먹먹하게 다가오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 ‘자식’이라는 공통분모는 이제 조해달과 공지천을 연결해주는 고리가 되어줄 것으로 보인다. “자식이 실종됐는데 제정신인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남춘이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하는 공지찬이 조해달의 저렇게 착한 딸을 딸린 혹으로 생각할 리 만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주로 내려온 세 자매의 멜로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웰컴투 삼달리>의 멜로는 달달하기만 한 게 아니다. 보다 보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그건 각박한 도시의 삶이 만들어낸 속물적 사랑과는 대비되는 사람냄새 나는 훈훈함이 더해져 있어서다. (사진:JTBC)

‘안나라수마나라’, 괴물신인 최성은의 마법이 던지는 질문

안나라수마나라

뮤지컬 드라마라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안나라수마나라>가 뮤지컬 드라마라는 이야기는 어딘가 이 작품이 비현실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진지한 장면에서 대사가 아닌 노래를 부르는 광경이 만들어내는 비현실적 풍경. 마치 인도 영화를 보다보면 갑자기 출연자들이 튀어나와 노래하고 춤추는 그런 광경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안나라수마나라>? 제목이 뭐 이래? 발음하기도 기억하기도 쉽지 않은 제목은 더더욱 이 드라마가 그릴 세계가 현실에서 몇 발짝 위 허공으로 띄워 올려진 그런 세계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리고 그건 실제로도 그렇다. 엄마는 집을 나갔고 아빠는 빚쟁이에 몰려 역시 도망친 윤아이(최성은)가 어느 날 폐쇄된 유원지에서 대뜸 “당신은 마술을 믿습니까?”라고 묻고는 갖가지 마술을 보여주는 마술사(지창욱)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 

 

고등학생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현실이지만 동생 유이까지 챙겨야 하는 윤아이는 가끔씩 찾아오는 빚쟁이들에게 시달리고, 학교에서는 돈이 없어 구멍 난 스타킹을 신고 다니는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반 아이들의 시선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알바를 전전하다 편의점 사장에게 성추행까지 당할 뻔한 윤아이는 다행히 마술사의 도움을 받고, 마술사가 보여주는 마법 같은 시간 속에서 잠시 현실을 잊고 행복해한다. 

 

하지만 그건 잠시 동안의 행복일 뿐, 부모 없이 살아남아야 하는 윤아이는 이름과 나이와는 걸맞지 않게 점점 어른 같은 고민과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반면 어른이지만 여전히 아이 같은 해맑은 얼굴로 나타나 마술을 믿냐고 묻는 마술사는 윤아이에게 마술과 마법이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무언가를 나타나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건 마술이지만, 그걸로 누군가 행복해하고 웃는 건 마법이라고. 

 

<안나라수마나라>는 마술이라는 소재를 가져와 그걸 믿느냐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아이와 어른을 구분한다. 마치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믿는 아이와 그런 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어른의 차이를 마술이라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신기한 광경들로 구분해내는 것. 그러면서 마술이라는 어찌 보면 그다지 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일과, 이른바 지위나 돈 같은 걸로 평가되는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일 앞에서 힘겨워하는 아이들을 보여준다. 

 

윤아이를 좋아하는 나일등(황인엽)은 검사장인 아버지(유재명)가 재력과 지위의 힘으로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을 앞서 달려 나가는 삶을 살아왔다. 늘 일등인 것만 중요하고, 그 끝에는 아버지가 원하는 법조인이 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삶. 하지만 윤아이를 통해 마술사를 만나면서 나일등을 깨닫게 된다. 정작 그 삶에 ‘나’는 없다는 걸. 내가 원하는 삶은 애초부터 지워져 있었다는 걸. 그는 윤아이가 마술사에게 마술을 배우며 행복해하는 그 광경을 보면서 자신도 그런 꽃밭 같은 길을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안나라수마나라>는 오로지 성공해 돈과 지위를 얻어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만들어내는 폭력을 이야기한다. 그 모두가 정해놓은 길과 틀을 벗어나며 실패자가 되고 정신병자가 되며 심지어 범죄자로 몰린다. 그래서 그 공포 속에서 아이들은 꿈을 꾸지 않고 그저 어른들이 정해 놓은 길을 더 앞서 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그런 세상을 만든 건 어른들이다. 윤아이는 어른들에게 진실을 이야기해도 제멋대로 왜곡되는 현실을 겪으며 말한다. 자신이 힘든 게 돈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어른들 때문이었다고. 

 

과연 당신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 <안나라수마나라>는 부모 없는 세상에 내던져진 윤아이와 부모가 깔아놓은 아스팔트 위만을 달려오며 정작 저 편의 꽃길로는 들어가 볼 엄두도 내지 않았던 나일등, 그리고 무거운 현실로부터 튕겨져 나가버림으로써 그 누구도 믿지 않는 사람처럼 되어버린 마술사가 겪는 사건들을 통해 그런 질문을 던진다. 

 

뮤지컬이라는 다소 비현실적으로 여겨졌던 요소들은 이러한 묵직한 현실적인 질문을 마술이라는 소재를 통해 던지는 과정에서 정말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한다. 믿을 수 없는 마술적인 풍경들이 음악과 더해지면서 오히려 믿고 싶은 광경으로 바뀐다고나 할까. 마술사 역할을 연기한 지창욱이야 이미 여러 다른 작품들을 통해 그 연기력이 잘 알려진 배우지만, 이 작품에서 놀라운 건 윤아이라는 역할을 연기한 최성은이다. 

 

아직 아이지만 어른들의 세상에 내던져져 갖게 되는 깊은 슬픔을 그가 작품 전체에 깔아줬기 때문에 마법 같은 많은 순간들이 ‘믿고 싶게’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그의 눈물과 환한 웃음에 담겨 강렬해진 이 작품의 질문이 그렇다. 끝내 버텨낸 윤아이는 그래서 이 작품 속 어떤 어른들과도 다른 어른의 면모를 갖게 된다. 

 

흔히들 마술에 비유되는 영화나 드라마의 영상들은 편집과 CG와 촬영술의 결합으로 환상적인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건 현실에는 없는 판타지일 수 있지만 믿고 싶은 세계다. 꿈보다는 돈과 지위를 얻는 성공을 믿고, 마술 같은 행복감을 주는 경험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수치들로 채워진 경험들만을 믿는 세상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안나라수마나라>는 꿈을 믿고 산타클로스를 믿으며 마술을 믿는 아이 같은 순수한 세계를 화두로 던짐으로써 우리가 마주한 차가운 ‘어른들의 현실’을 보게 해준다. 6부작의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윤아이라는 인물이 외운 주문으로 마법 같은 위로를 주는. 안나라- 수마나라.(사진:넷플릭스)

박서준과 지창욱, 멜로가 발견한 대세 현실 직진남

KBS <쌈마이웨이>도 가고 SBS <수상한 파트너>도 끝나고... 특별했던 두 멜로드라마가 나란히 종영했다. 다른 드라마지만 어딘지 닮은 느낌을 가진 두 드라마. 그것은 굉장한 재벌이나 심지어 외계인, 도깨비, 신으로까지 판타지가 확장되던 남자주인공들과 이 두 드라마의 남자주인공들이 사뭇 달랐다는 점이다. 다른 드라마들과 비교해 보통의 평범한 남자주인공을 내세웠던 <쌈마이웨이>와 <수상한 파트너>. 이들 드라마가 괜찮은 호응을 얻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수상한 파트너(사진출처:SBS)'

<쌈마이웨이>의 고동만(박서준)은 격투기 선수다. 태권도 유망주였으나 가난이 죄가 되어 조작경기를 하게 되고 결국 영구 제명당한다. 그래서 모든 꿈을 접은 채 진드기 잡는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지만 단 한 시도 꿈을 잊은 적이 없다. 가진 것 없는 청춘의 초상이지만 이 인물은 그래서 더 현실감 있게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수상한 파트너>의 노지욱(지창욱)은 검사였지만 살해용의자 누명을 쓴 은봉희(남지현)의 기소를 포기함으로써 검사직에서 물러나 변호사가 된다. 물론 변호사라는 전문직을 갖고 남부럽지 않게 잘 사는 남자지만 드라마는 그런 점들을 그리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과거 부모가 모두 화재로 죽음을 맞은 후 여전히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노지욱이 은봉희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재력 같은 현실적 판타지가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는 그 점이다. 은봉희의 누명을 벗겨주고 그녀의 아버지가 가진 누명 또한 끝까지 벗겨주려는 노력에 담긴 진심. 

멜로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은 당대의 판타지를 대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판타지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차원까지 나가고 있다. <별에서 온 그대>가 외계인이어서 죽지 않고 늙지 않는 남자주인공을 세워 초현실적인 능력으로 여자주인공을 보호하는 판타지를 그려냈다면, 신드롬을 만들었던 <도깨비>는 도깨비와 저승사자가 여자주인공이 원하는 것들을 해결해주는 판타지를 그렸다. 

문제는 이렇게 판타지가 초현실적인 차원으로까지 넘어가게 되면서 생겨나는 현실성의 결여다. 신까지 등장한 마당에 도대체 그 이상의 어떤 능력을 가진 남자주인공을 더 세울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쌈마이웨이>나 <수상한 파트너>가 담아내는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남자주인공들의 이야기는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가 허공에 붕 띄워져 있던 남자주인공들의 발을 다시 땅바닥으로 내려앉혔다. 그리고 그런 선택에 시청자들은 반색했다. 

중요한 건 남자주인공들이 이렇게 현실로 내려오면서 여자주인공들의 능동적인 면들이 더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초현실적인 능력을 가진 남자주인공은 결국 여자주인공들로 하여금 ‘보호받는 존재’로 그려지게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쌈마이웨이>의 최애라(김지원)는 일에 있어서도 사랑에 있어서도 능동적인 존재였고, <수상한 파트너>의 은봉희 역시 변호사로서 자기 성장을 이뤄가는 능동적인 여성이었다.

<쌈마이웨이>의 박서준과 <수상한 파트너>의 지창욱은 이러한 현실 남자친구의 매력을 200% 연기해 보여줌으로써 멜로드라마의 연기장인으로 거듭나게 됐다. 뭐든 해줄 수 있는 굉장한 능력보다는 남다른 직진 사랑의 면면으로 보는 이들을 가슴 설레게 했다. 남사친와 남자 사이에서 애매한 관계를 보이던 그들이 더 이상 친구는 안된다고 선을 긋고 직진할 때 아마도 많은 여성들의 마음은 두근거렸을 것이다. 

그 누가 사랑이 아닌 우정으로만 관계를 유지하고 싶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이 아닌 남사친 여사친이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 등장하고 있는 건 그 친구 관계를 넘어서는 일을 현실적인 문제들이 가로막기 때문일 게다. 결혼도 그렇고 육아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그 적정한 거리에서 남사친 여사친을 주장하며 관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일 지도. <쌈마이웨이>나 <수상한 파트너>가 현실적인 남자주인공으로 건드리고 있는 건 어쩌면 이 우정의 차원을 훅 넘어 들어오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아닐까. 박서준과 지창욱의 그 직진이 우리를 설레게 했던 건.

‘수상한 파트너’, 그들은 기억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을까

끔찍한 사건이 만들어낸 기억의 트라우마는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바꾸는 걸까. SBS 수목드라마 <수상한 파트너>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주인공인 노지욱(지창욱)과 은봉희(남지현)가 어린 시절 부모들로부터 얽힌 사건 이야기를 다루기 시작했다. 노지욱의 부모가 은봉희의 아버지의 보복 방화로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는 것이 당시 공식 보도된 내용이었다. 

'수상한 파트너(사진출처:SBS)'

서로 사랑을 확인하게 된 노지욱과 은봉희는 이 과거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별을 선택했다. 제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그 과거의 고통스런 기억을 떨쳐낼 수는 없었던 것. 하지만 노지욱은 차츰 자신의 기억이 당시 조사관이었던 장무영(김홍파)에 의해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 채기 시작한다.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아이가 범인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해낸다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다. 결국 장무영이 은봉희의 부친을 범인으로 지목함으로써 어린 노지욱은 그렇게 믿고 증언하게 됐고, 결국 부친이 방화범으로 체포되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은봉희의 부친과 은봉희는 똑같이 누명을 쓰는 운명을 반복했다. 그녀의 부친이 그러했던 것처럼 은봉희 역시 장무영의 아들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던 것. 하지만 그 누명을 풀어준 것이 바로 노지욱이다. 물론 그렇게 함으로써 노지욱 자신은 검사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변호사로 살아가게 되지만. 

<수상한 파트너>는 지금껏 여러 사건들을 에피소드로 다뤄왔고 그러면서 노지욱과 은봉희 사이에 생겨난 사랑의 감정을 키워왔지만, 궁극적으로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이 과거에 얽힌 악연을 어떻게 두 사람이 극복해나가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기억의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이다. 

그러고 보면 드라마 전편에 걸쳐 연쇄살인범으로 등장해 쫄깃한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있는 정현수(동하) 역시 그 살인의 저변에는 ‘기억의 트라우마’가 자리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도망치다 교통사고를 당해 기억을 잃게 된 그는 자신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자신이 살인범이라는 걸 알게 된 그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졸업앨범을 통해 첫 사랑을 보며 기억을 되찾은 그는 눈물을 쏟아낸다. 그 역시 과거의 아픈 기억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재는 과거가 모여 만들어진다. 그런데 그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건 과거에 대한 기억이다. 그 기억이 만일 행복이 아닌 불행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그것은 행복해지려는 현재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 트라우마는 그래서 기억을 지워버리거나 왜곡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분노로 터져 나오기도 한다. 어떻게든 그 고통스런 기억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그래서 과거를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수상한 파트너>가 굳이 기억의 문제를 가져온 건 그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지금 처한 많은 현실들의 문제의 연원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것이 많은 과거의 아픈 기억들이니 말이다. 누군가는 전쟁의 기억을 트라우마로 안고 살아가고, 누군가는 개발독재시절 국가가 저지른 폭력의 기억을 트라우마로 안고 살아가며, 누군가는 안전불감증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 사고의 기억을 트라우마로 안고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을 직접 겪지 않았어도 늘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으로 보며 살고 있는 우리들 역시 어떤 기억의 트라우마가 있을 지도 모른다. 

<수상한 파트너>가 건드리고 있는 기억이라는 지옥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노지욱과 은봉희도 넘어서야 하는 것이고, 연쇄살인범인 정현수도 극복해야할 문제다. 또한 아들을 잃고 폭주하는 장무영 검찰총장 역시 자신이 과거 누군가에게 저질렀던 사법적 폭력을 인정함으로써 그 기억의 문제들을 넘어서야 한다. 로맨틱 코미디의 외피로 덧씌워져 있지만 <수상한 파트너>가 하려는 진짜 이야기는 바로 이 우리 사회에 공기처럼 스며있는 기억의 트라우마가 아닐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