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식당’, 백종원이 퍼주는 걸 걱정하는 상황이라니

 

“괜찮으시겠어요? 식당을 해서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심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일한만큼의 수익이... 보람이라는 게 손님이 맛있게 드시는 것도 보람 있지만 저도 제 인건비 플러스 조금 더 나오면 좋죠. 그게 100점 만 점에 100점이지. 사장님이 잘 되시는 모습을 보여줘야 사장님만 행복한 게 아니라 이 모습을 보고 누군가 감명을 받아서 시작하는 사람들한테 귀감이 되셔야 하잖아. 그런데 손님들한테 뭐 자꾸 퍼주고 좋기는 하지만 돈도 못벌고 뭐 버는 거 없어요 이래 버리면 그렇잖아요.”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공릉동 기찻길 골목 찌개백반집을 찾은 백종원은 먹다 말고 그렇게 걱정 가득한 조언을 내놨다. 얘기의 발단은 제육볶음을 추가하는 가격으로 3천원이 비쌀 거 같아서 2천원으로 내리겠다는 사장님 모녀의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도대체 장사를 해서 돈을 벌겠다는 건 차치하고 이 집은 손님들에게 부담될 수 있는 가격 걱정이었다.

 

지금껏 많은 식당들이 이 프로그램에 등장했지만 가격을 내리는 걸 걱정하는 백종원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대부분 가격이 너무 높게 책정되어 있는 걸 백종원이 지적하고 그래서 레시피와 솔루션이 제공된 이후 가격을 내리는 게 일반적으로 이 프로그램이 보여줬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 집은 백반 가격이 6천원이다. 정성스레 매일 새벽 같이 나와 지은 따뜻한 밥에 국과 메인요리 그리고 8가지나 되는 반찬을 내놓는 백반의 가격치고는 싼 편이다. 그 가격도 심지어 일 년 전에 올린 거란다. 그 전에는 5천원을 받았다는 것. 그 집을 단골로 찾는 분들이 어째서 이 백반집을 마치 집밥 먹으러 온 가족처럼 대했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방송이 나간 후 손님이 늘면 단골손님들이 불편해지실 것을 걱정해 아침 10시까지는 그 분들을 위한 아침 식사시간으로 아예 공고를 붙여놓는 사장님의 마음이 그렇고, 그 집을 찾아와 달라진 제육볶음을 먹으며 이런저런 조언을 아낌없이 내놓는 단골손님들의 마음이 그렇다. 백종원은 육가공업체에 일하는 저런 전문가분들이 이전 제육볶음의 고기가 이상했다는 걸 몰랐을 리 없다며 그렇지만 별 얘기 없이 먹었을 정도로 그 분들이 이 집을 가족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거라고 했다.

 

잠깐 달라진 제육볶음의 맛을 한 번 보기 위해 들렀던 백종원에게 다른 반찬들도 내놓고 밥도 챙기고 또 바꾼 해물순두부를 맛보게 하는 등, 그를 탈탈 털어 배우려는 사장님의 자세를 보며 정인선은 저 연세에도 저런 열정이 놀랍다고 했다. 그러니 백종원도 기꺼이 탈탈 털려줄 수밖에 없다. 아침밥을 먹고 왔는데도 고맙다며 사장님이 내주는 음식들의 맛을 기꺼이 봐준다. 그러면서 ‘퍼주는 걸’ 걱정하는 이야기를 진심을 담아 전한다.

 

“이 일을 보고 많은 젊은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이 돈만 보고 일을 하려 하지 않아요. 내 꿈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해봐야지 하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되게 많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점점 떠나버리면 안되잖아요. 이 업계를. 그러니까 그 분들한테 모범이 되셔야 하는 거예요.”

매일 같이 코로나 19로 뒤숭숭한 시국이다. 그래서인가 유독 이번 공릉동 기찻길 골목 찌개백반집이 전하는 갓 지은 밥처럼 따뜻하고 훈훈한 미담이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는 느낌이다. 이 집이 잘 됐으면 좋겠고, 나아가 이런 집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으며, 그런 집들이 또 돈도 잘 버는 그런 날들이 오길 바라는 마음은 백종원이나 시청자들이나 마찬가지였을 게다.(사진:SBS)

요리, 음식, 장사까지 섭렵한 백종원의 저력

MBC 예능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등장해 독특한 쿡방을 선보일 때만 해도 백종원이 이 정도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예능 프로그램을 섭렵할 것인가를 예상하긴 어려웠다. 독특한 레시피를 선보이긴 했지만 ‘슈가보이’ 같은 과장된 CG에서 엿보였듯이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특성상 요리 그 자체보다는 재미적인 요소가 더 부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tvN 예능 <스트리트 푸드파이터>의 아쉬운 시즌 종영을 알리는 시점에 되돌아보면 백종원에게는 확고한 자기만의 로드맵이 있었다고 여겨지며, 무엇보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음식에 대한 애정이 그 로드맵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집밥 백선생>을 통해 요리무식자들도 쉽게 요리에 친숙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고, <스트리트 푸드파이터>를 통해서는 세계 곳곳에 서민들이 즐기는 무수히 많은 음식들을 소개했다. 또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는 자신의 음식점 장사 노하우를 전파하기도 했다. 

같은 먹방이나 쿡방이라도 백종원이 하면 다르게 느껴진 건, 그가 가진 나름의 음식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집밥 백선생>의 요리가 남달랐던 건 그가 생각하는 ‘집밥’의 개념이 달라서였다. 집에서 간편하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요리가 바로 ‘집밥’이라고 설파하는 그의 요리는 그래서 ‘요리의 대중화’를 이끌며 심지어 아저씨들조차 주방에 서게 만들었다. 

<스트리트 푸드파이터>는 해외 음식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선입견을 깨주었다. 사실 낯선 곳에서의 낯선 음식은 도전적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백종원은 그 음식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알려줌으로써 그 맛에 대한 낯설음과 두려움을 독특함과 새로움으로 바꾸었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나면 심지어 그 음식을 맛보기 위해 그 나라에 가보고픈 마음까지 들게 되었다. 

자국음식의 우수성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다양한 음식들을 저마다의 개성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다양성’ 사회로 가는 문화적 지반 역할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스트리트 푸드파이터>는 음식 소개 프로그램 그 이상의 가치와 의미를 보여줬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골목 상권’을 살린다는 취지로 시작했다. 외진 곳에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골목을 다양한 음식들을 즐길 수 있는 상권으로 되살린다는 것. 하지만 최근 뚝섬편에서 백종원은 찾아간 음식점에서 “기본조차 되어 있지 않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바 있다. 음식점이 단지 돈을 벌기 위한 곳이 아니라, 손님들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대접하는 곳이라는 그의 생각이 기본조차 되지 않은 음식점들에 대한 분노로 이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백종원은 자신이 출연했던 모든 프로그램에 확실한 자기만의 아우라를 남겼다. 프로그램들도 성적이 좋았고 무엇보다 화제성은 그 어떤 프로그램들보다 높았다. 이건 백종원이 가진 독특한 개성과 생각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스트리트 푸드파이터>의 종영에 벌써부터 시즌2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건 그래서다. 이쯤 되면 예능 블루칩이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사진:tvN)

‘집밥 백선생’과는 다른 ‘수미네 반찬’이 지향해야할 것들

사실 스튜디오의 풍경만 보면 tvN 새 예능프로그램 <수미네 반찬>은 이전에 시즌3까지 방영된 <집밥 백선생>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백종원이 있던 자리에 김수미가 서 있고, 요리무식자들이 서 있던 자리에 최현석, 여경래, 미카엘 같은 스타 요리사들이 서 있다는 차이가 있지만, 그 정경 자체가 다르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이 프로그램은 중심에 선 김수미가 자신이 수십 년 간 쌓아온 요리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집밥 백선생>의 백종원이 겹쳐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형식이 비슷하다고 해서 내용도 같을까. 그렇지 않다. 그건 백종원이라는 인물과 김수미라는 인물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백종원이 ‘요리연구가’라고 불린다면 김수미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오랜 요리 경험을 축적해온 ‘엄마’에 가깝다. 요리연구가인 백종원은 그래서 요리무식자들에게 간단하게 요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만, 엄마의 손맛을 전면에 내건 김수미는 간편해지는 식문화에 의해 사라져가는 우리네 밥상을 되살리는 요리에 가깝다. 그래서 이미 요리에 정통한 스타요리사들이 ‘자격증 없는’ 이 엄마의 제자를 자처하는 이색적인 풍경이 가능해진다. 

물론 <집밥 백선생>에서도 일품요리가 아닌 반찬을 만드는 노하우가 공개되긴 했지만 <수미네 반찬>은 여기서 더 나아가 본격적인 ‘반찬 요리’에 집중한다. 사실 우리들의 식단을 보면 예전처럼 여러 반찬과 국 그리고 밥을 먹는 방식에서, 좀 더 간편한 일품요리를 해먹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 게 사실이다. 워낙 바쁘게 살아가는 삶이다 보니 일일이 반찬을 여러 개 만들어 준비하는 밥상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서다. 그래서 <수미네 반찬>이 지향하는 바는 기획의도에도 들어가 있듯이 ‘조연으로 물러났던 반찬을 우리의 밥상으로 옮겨오자’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집밥 백선생>이 보여줬던 ‘집밥’과 <수미네 반찬>이 보여주려는 ‘집밥’의 개념이 달라진다. <집밥 백선생>은 ‘집밥’하면 괜스레 신격화해버린 ‘엄마의 밥상’ 같은 무게감을 덜어내고 ‘집에서 누구나 간편히 해먹을 수 있는 밥’으로서의 ‘집밥’을 전면에 내건 바 있다. 반면 <수미네 반찬>은 거꾸로다. 사라져가는 ‘엄마의 밥상’과 그 ‘손맛’을 전수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수미네 반찬>이 끄집어낸 ‘엄마의 밥상’이라는 소재가 요리라는 세계를 다시금 ‘엄마들의 의무’로 퇴행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건 이 프로그램의 풍경으로 제시되어 있듯이, 김수미가 가르치는 제자들이 엄마들이 아니라 최현석, 여경래, 미카엘 같은 남성 요리사들이라는 점에서 드러난다. 요리는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다만 엄마들이 그간 쌓아놓았던 그 손맛의 노하우가 사라지지 않고 복원해보겠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속뜻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미네 반찬>이 처음 선보인 고사리 굴비조림이나 연근전 같은 레시피는 생각보다 훨씬 쉬워 보였다. 우리가 막연히 ‘엄마의 손맛’이나 ‘엄마의 밥상’ 하면 떠올리던 그 어마어마한 ‘정성’의 무게 때문에 요리도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 여겼던 그 생각을 간단히 깨줬기 때문이다. 특히 연근의 그 구멍에 갈아서 양념을 한 고기나 명란젓을 채워 넣어 만드는 연근전은 간편하게 만들 수 있으면서도 영양과 맛도 기대되는 레시피였다. ‘엄마의 손맛’이란 그 요리 자체가 어렵다기보다는 오랜 세월동안 누적된 노하우가 있어 간단히 해도 맛을 낼 수 있는 요리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김수미가 보여주는 찰진 멘트들과 설렁설렁 하는 듯 보이지만 공력이 있어 보이는 요리 실력은 <수미네 반찬>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사실 엄마들에게만 부과되어 오던 집밥의 의무를 이제는 모두가 분담하는 것에 누구나 공감대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아깝게 느껴지는 건 그 의무 속에서 엄마들이 축적해온 노하우마저 사라지는 일이 아닐까. 쉽지만 확실한 효과를 내는 그 노하우를 이제 엄마든 아빠든 혹은 자녀들이든 상관없이 공유할 수 있는 시간. 이것이 <수미네 반찬>이 지향해야 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사진:tvN)

‘집밥’, 신화 버리자 활짝 열린 상상초월 요리신세계

백종원은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할 때부터 자주 했던 말이 “야매”, “우리끼리의 비밀”이었다. 그것은 그가 하는 요리가 가진 파격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요리 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곤 했던 어떤 이미지를 깨는 면이 있었다. 그것은 파격이지만 또한 요리를 정석으로만 알고 있던 이들에게는 심리적 저항감이 생기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이것을 ‘야매’라고 낮춰 마치 웃음을 위한 것인 양 포장하곤 했다.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하지만 tvN <집밥 백선생>이 지금껏 해왔던 요리들의 신세계를 돌아오면 그 ‘야매’가 의도치 않게 해온 놀라운 일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건 우리가 요리하면 생각하는 그 정형화된 이미지를 깬 것이고 무엇보다 놀라운 건 ‘집밥’의 이미지를 깬 것이다. ‘엄마의 밥상’만을 집밥으로 생각했었다면 <집밥 백선생>은 ‘집에서 먹는 밥’, 즉 누구나 다 해먹을 수 있는 밥을 ‘집밥’으로 새로 이미지화시켰다. 그건 ‘집안일 분담’을 위한 그 어떤 주장들보다 더 강력한 효과가 아닐 수 없었다. 

집밥의 신화를 깬 자리에 들어온 건 상상을 초월하는 요리의 세계다. 식빵을 구워서 잼 발라 먹을 줄만 알았던 우리들은 그걸 밀대로 밀고 돌돌 베이컨과 함께 말아서 구워 마치 롤처럼 잘라먹는 방식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 것이야 어딘가의 레시피가 있을 수도 있지만 마트에 가면 1+1의 단골메뉴처럼 나와 있는 양념돼지갈비를 가지고 간단하게 갈비고추장찌개, 갈비된장찌개를 만드는 건 집밥을 하는 사람이라면 반색할만한 레시피가 아닐 수 없다. 

굴소스가 없을 때 굴소스 비슷하게 만들어 사용하고, 굴전을 만들 때 굴에 부침가루를 조물조물 묻혀 달걀을 넣고 바로 전을 붙여내는 간단함을 보여준다. 값싼 냉동낚지를 사다가 소금으로 빡빡 닦아내고 살짝 물에 데쳐 탱글탱글하게 심폐소생을 해내는 방법을 알려주고, 게를 넣어서 만드는 뿌팟퐁커리를 게살로 뚝딱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맛의 상상을 통해 상식을 깨는 요리가 가능해진 건 모두 그 ‘야매’ 정신 덕분이었다. 

물론 이건 백종원이 의도해서 만든 건 아닐 것이다. 그는 요리사업가로서 다양한 신메뉴를 개발해온 전력이 있고, 그러니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된 노하우가 이러한 상식 파괴 요리 레시피들이었을 게다. 하지만 그가 이것을 혼자 보유하고 개인적 사업으로만 활용하기보다는 방송을 통해 그 노하우를 알려주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집밥’의 개념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런 요리의 세계를 <마이 리틀 텔레비전>처럼 캠핑 요리 같은 개념이 아니라 <집밥 백선생>이라는 ‘집밥’의 틀로 묶어놓은 연출의 묘가 한 몫을 차지했다. 

<집밥 백선생>은 현재 시즌3로 33회를 마쳤다. 시즌1이 37부작이었고 시즌2가 36부작이었으니 전체 분량이 100회를 훌쩍 넘긴 셈이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된 2015년부터 현재 2017년까지 그 2년 간의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다. 하지만 그 기간 사이에 우리가 오래도록 갖고 있던 그 ‘집밥’의 이미지가 깨지고 요리의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는 건 이 프로그램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던 중요한 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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