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관 구해령’, 이 좋은 소재를 가져와서도 멜로만?

 

지금 지상파 수목드라마는 전반적인 부진에 빠져있다. 그나마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MBC <신입사관 구해령>을 보면 어째서 이런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가를 가늠하게 된다. 조선의 첫 번째 문제적 여사(女史) 구해령(신세경)이라는 꽤 흥미진진한 가상의 인물을 세워두고도 이 드라마는 어째 여자 사관과 왕자 이림(차은우)의 사랑타령에만 거의 머물러 있어서다.

 

왕자와 궁에 들어오게 된 여인의 로맨스는 이미 KBS <구르미 그린 달빛> 같은 작품에서도 시도된 바 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여자 주인공이 남장여자 내시로 궁에 들어왔다면, MBC <신입사관 구해령>의 여자 주인공 구해령은 여사로 궁에 들어온 게 다를 뿐이다.

 

소재가 아깝다 여겨지는 건, 초반 연애소설을 쓰는 ‘매화선생’으로 도성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인물인 도원대군 이림과 소설을 읽어주는 구연자인 구해령이라는 인물이 만나는 대목에서 무언가 자유로운 글쓰기와 표현에 대한 메시지들이 멜로의 표피를 가진 이 드라마에 단단한 골격이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서가 되어 책으로 만들어지는 것 자체가 봉쇄되는 호담선생전에 대한 궁금증은 향후 이 금서를 두고 벌어질 어떤 사건들이 멜로 그 이상의 이야기를 향해 나갈 것으로 예상됐다. 게다가 정해진 혼례를 거부하고 당당히 사관으로서의 길을 선택하는 구해령이라는 인물의 능동적인 모습은 조선사회를 배경으로 사회진출을 꾀하는 진취적인 여성상의 등장이라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드라마는 점점 화제성을 동반한 문제작이 될 거라는 기대감과는 전혀 달리, 구해령과 이림 사이의 알콩달콩한 멜로의 틀로만 한 회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갑자기 번진 역병을 해결하기 위해 구해령과 함께 이림이 우두를 시행해 백성들을 구하는 대목은 흥미롭지만, 이것이 여자 사관의 이야기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게다가 이 드라마의 악역으로 등장하는 왕(김민상)은 왕세자인 이진(박기웅)과 대립하며 이림은 아예 사지로 내모는 인물이다. 그런데 왕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왕은 그저 이 달달한 멜로가 너무 잔잔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가끔 등장해 긴장감을 만들기 위해 난폭한 언사와 폭력을 보여주는 그런 인물 정도로 그려진다.

 

만일 자유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거나, 표현의 자유 혹은 사생활의 자유와 기록 사이의 대립을 그려내려 했다면 드라마는 좀 더 위기감이 강조되어야 한다. 구해령과 이림이 가까워지는 건 그 자체로 부적절한 일이 될 수 있다. 또 여사로서 무엇이든 기록을 해야 하는 일로서의 의무와 또 지켜주고픈 사생활이 누군가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상황 사이에서 구해령은 더 곤혹스런 입장에 처해야 드라마는 팽팽해진다.

 

하지만 이런 많은 가능성들을 이 드라마는 거의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저 그런 멜로로만 빠지다 보니 신세경과 차은우라는 선남선녀가 눈을 마주치고 스킨십을 하는 그 장면들로 시청자들의 눈을 붙잡아 두려는 것처럼 보인다. 한 회가 다 끝나도 별다른 이야기가 진전되지 않았다 여겨지는 건 그래서다.

 

시청률도 그래서 4%에서 6% 사이를 오가는 고만고만한 수치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그나마 지상파 드라마들 중 최고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는 건 어딘지 쓸쓸한 느낌마저 준다. 어째서 <신입사관 구해령>은 메시지가 잘 보이지 않는 그저 그런 뻔한 멜로의 틀에만 갇히게 된 걸까. 이래서는 지상파 드라마에 현재 감지되는 위기를 넘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사진:MBC)

청춘멜로 외피 썼지만 씁쓸한 현실 담은 사회극

도대체 우리네 외모지상주의는 얼마나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 것일까. JTBC 금토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은 제목에 담겨져 있듯 성형을 통해 미인이 된 강미래(임수향)의 대학생활을 담고 있다. 외모 때문에 오크라 불리며 일상적으로 왕따를 당해왔던 강미래. 착하고 예쁜 심성을 가졌지만 그 누구도 그걸 들여다봐 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향기를 좋아하게 된다. 보이는 것만이 아닌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 바로 향기기 때문이다. 아마도 화학과를 선택한 것도 그것 때문이었을 게다. 하지만 막상 들어온 한국대 화학과는 ‘외모지상주의’가 공기처럼 퍼져 있는 곳이다. 대학부터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성형수술로 완전한 ‘강남미인’이 된 미래는 그래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대접을 받지만, 어딘지 그것 또한 마냥 기분 좋은 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화학과 신입생에서 단연 주목을 끄는 인물은 강미래와 조각미남 도경석(차은우) 그리고 자연 미인 현수아(조우리)다. 이들은 외모 때문에 선배들의 대시를 받는다. 복학생 김찬우(오희준)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부터 노골적으로 강미래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진심이라고는 1도 없는 이 복학생은 외모지상주의의 첨단을 걷는 인물이다. 선배라는 지위를 이용해 강미래를 어떻게 해보려는 성범죄에 가까운 짓을 저지르지만, 그 때마다 도경석(차은우)이 나타나 강미래를 도와준다.

도경석은 여자 선배들의 대시를 관심도 없다는 듯 밀어낸다. 그는 외모 또한 관심이 없다. 그것은 엄청난 미모를 가졌지만 이혼 후 떠나버린 엄마의 영향 때문이다. 예쁜 여자를 보면 인간성을 먼저 의심한다. 반면 모두에게 예쁨 받지만 마치 자신은 예쁘다는 걸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는 현수아는 도경석이나 복학생 김찬우가 강미래에게 다가가는 것처럼 보이자 은근히 미래에게 접근해 친구처럼 행동하면서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강미래와 도경석 그리고 현수아는 외모지상주의의 현실을 각각 드러내는 인물들이다. 강미래는 성형으로 달라진 주변사람들이 처음에는 낯설고 신기하게 다가오지만, 그것 역시 사람의 실체를 보지 않는 ‘외모지상주의’의 또 다른 면이라는 걸 알아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외모 하나로 이토록 바뀌는 현실이 그의 눈앞에서 적나라하게 보일 때 갖게 될 씁쓸함이 예감된다.

현수아는 이 드라마의 악역을 자처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 잘 들여다보면 외모지상주의가 만들어낸 피해자라고 여겨진다. 그가 강미래에게 접근하는 복학생 김찬우에게 마치 마음이 있는 것처럼 얘기해 그 관계를 끊어놓고 다가오는 김찬우 역시 밀어내는 모습은 아닌 척 하지만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 아니라면 못견뎌하는 속내를 드러낸다. 그는 친구인 척 강미래에게 접근하지만, 사실은 성형을 한 ‘강남미인’인 그가 자연미인인 자신과 같은 급으로 여겨지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다.

도경석은 외모만 보며 접근하는 이들을 경멸한다. 또 화학과에서 외모지상주의를 드러내는 모든 행태들을 보면서 거기에 당하는 강미래에게 “너 바보냐”고 묻는다. 그는 그래서 강미래가 같은 동창이었다는 게 드러나자 “(성형을 한 사실을) 비밀로 해달라”는 말도 엉뚱하게 들린다. 과거 버스정류장에서 음악에 맞춰 발로 춤을 추던 그 모습을 좋게 바라봤던 도경석은 강미래가 왜 그렇게 성형한 사실을 숨기려 하려하는 지 의아해 한다.

강남미인 강미래와 자연미인 현수아의 비교점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외모로만 따지만 현수아가 “더 예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드라마는 여우짓 하는 그보다 착하고 심성 고운 강미래가 더 예쁘게 다가온다. 화학과 학생들은 모르지만,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현수아의 뒤통수를 치는 행동들을 통해 그 실체를 들여다보게 되기 때문이다. 외모가 전부가 아님을 드라마는 이 비교점을 통해 드러낸다.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은 한국대 화학과라는 한 지점을 통해 외모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우리네 현실을 아프게도 꼬집는다. 착하디착한 강미래는 그래서 이 현실 속에서 계속 당하는 고구마 캐릭터이고, 이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도경석은 거기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사이다 캐릭터다. 물론 도경석 역시 그 내면에는 아픈 상처가 들어 있지만.

외모에 의해 사랑받고 미움 받거나, 외모로 늘 사랑받아와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아닌 것을 견디지 못하거나, 외모에만 빠져 진짜를 보지 못하는 이들이 한심하게만 여겨지는 이 세 사람은 그래서 외모 지상주의에 빠진 우리네 사회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는가 하는 청춘 멜로의 외피를 썼지만 이 드라마는 결코 멜로드라마에 머물지 않는다. 그 안에 우리 사회를 해부하는 날카로운 비판의식이 느껴져서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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