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유재석도 한 수 배운 춘천의 재밌고 먹먹한 입담꾼들

 

사랑에 대해 제대로 한 수 배웠다.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찾아간 춘천에서 유재석과 조세호가 우연히 만난 부부는 무려 21년 간을 함께 세차를 해왔다고 했다. 매일 같이 얼굴을 보고 있으니 어찌 다툼이 없을까. 웃으며 맨날 싸운다고 털어놓는 아내의 말에 남편은 “부부는 아침에 헤어졌다 저녁에 봐야 제일 좋아요”라고 덧붙인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도 “아침에도 싸웠다”는 남편의 말에 “금방 풀려요”라고 말하는 아내의 말에 따뜻함이 느껴진다.

 

춘천에서 세차장을 운영하는 윤연기(59), 이순자(58) 부부. 보통 여름에 더 세차가 많을 것 같지만 오히려 겨울에 세차가 제일 많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날이 추우면 셀프세차 하시는 분들도 스스로 세차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추우니까 손 발 시린 게 제일 힘들다”는 부부의 말에 성수기인 겨울을 맞는 반가움과 힘겨움이 동시에 묻어난다.

 

하루 종일 함께 있어 매일 다툰다는 부부에게 “혼자 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냐”고 묻는 유재석의 질문에 아내는 냉큼 그럴 때가 있다고 답한다. 하지만 남편의 얼굴은 사뭇 다르다. 그는 진지하게 “전 혼자 하고 싶을 때는 없어요. 매일 옆에 달고 있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그 사랑이 묻어나는 말에 유재석의 광대는 승천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부부의 사랑이야기는 의외였다. 연애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단 세 번 만나 결혼했다는 것. 남편은 “꼭 사랑만 해야 사는 거 아니다”라고 말했고 아내 역시 그 말에 동조했다. 그건 아마도 사랑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시쳇말로 젊은 날 청춘들이 뜨겁게 사랑하다 결혼하는 그런 사랑의 의미는 아니라는 뜻일 게다. “총각 때 삶의 회의를 많이 느꼈다”며 아내를 그 삶에서 건져준 사람이라는 남편과 “진실하고 열심히 사니까. 착하고 오로지 아이와 가정을 위해 사니까”라고 말하는 아내의 목소리에는 이미 사랑이 가득했다.

 

그런데 “다시 태어나도 결혼하겠냐”는 통상적인 유재석의 질문에 의외로 이 부부가 살아왔던 결코 쉽지 않았던 삶과 애틋한 두 사람의 사랑이 전해진다. 단박에 “안한다”고 말하는 아내와 “저는 합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남편. 왜 안한다고 했냐 묻는 질문에 아내는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대신 아내는 꽃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잠시 잠깐이라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꽃으로.

 

남편에게 재차 다시 태어나고 싶냐고 묻자, 남편 역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며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 오고 싶지 않아요. 너무 힘들어요.” 부부가 살아왔던 삶이 얼마나 힘겨웠을까가 그 얘기에 묻어났다. 아내는 조심스럽게 남편이 어렸을 때 겪은 아픈 기억을 꺼냈다. 어머니가 재가를 하셔서 일찍 헤어졌다는 것. 그래서 요맘때 시월만 되면 우울하다고.

 

“초등학교 1학낸 땐가 2학년 절 보러 오셨었어요, 고향으로. 그 때 가시면서 거기 계시는 주소를 알려주고 가셨어요. 그 주소를 잊어버리지 않고 머리에 기억을 했다가 나중에 그 주소를 찾아갔었어요. 어머니가 재가를 하셔서 거기서 다시 살고 계시니까, 같이 융화를 못해요. 남편 분께서 아무래도 어머니하고 계속 트러블 있고 그래 가지고 제가 그냥 두 분이 나 때문에 싸우시지 말고 내가 가면은 두 분 행복하게 사시라고 울면서 떠나왔어요 강릉에서. 밤에 눈물을 흘리고 찾아가서 눈물을 흘리고 나온 데가 강릉이에요.”

 

그 어린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을까 절절히 느껴지는 대목이었지만 남편분의 말에 담긴 존칭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지금도 여전하고 그것이 미움보다 더 크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그 아픔보다 ‘어머니의 밥’을 기억했다.

 

“열여섯 살 때. 한 6개월 정도 어머니의 밥을 먹어봤어요. 밥이 참 맛있어요. 진짜. 맛있어요. 눈물을 흘리면서도 먹는 밥이 되게 맛있더라고요. 처음 해주시는 밥이.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 같아요. 먹을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고.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어머니의 자식을 태어나서 진짜 부모 자식의 정다운 정을 느끼면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어리광도 피워보고 효도도 해보고 싶고 여러 가지 해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솔직히 지금도 될 수만 있다면...”

 

그 말을 들으며 옆에서 눈물을 흘리는 아내를 보니 이 부부가 얼마나 서로를 위하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사랑해야 사는 게 아니라고 했지만 이들은 그 어떤 것보다 큰 사랑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해보지 못한 어리광을 아내에게 한다는 남편과 그것 때문에 싸우기도 한다며 웃는 아내. 사랑을 못 느껴봐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사랑을 줘야 하는지 몰라 힘들었다는 남편이지만 “우리 가족은 모두 행복하다”는 아내에게서 그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춘천에 유독 사랑꾼들이 많은 것인지 <유퀴즈 온 더 블럭>이 찾은 어느 빵집에서의 사연 역시 사랑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울에서 수공예 일을 하다 건물주의 일방적인 통보로 쫓겨나 춘천으로 오게 됐다는 권성기씨와 그 아내 권진미씨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시종일관 웃으며 밝은 모습을 보여준 권성기씨지만 그 사연 속에서 어찌 힘겨운 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도중 외곽에서 카페 한다는 아내에게서 걸려온 전화. 마침 퀴즈 맞혀 100만원 받으면 어떻게 할거냐고 유재석이 묻자, “결혼 10주년인데 아내에게 주고 싶다”고 남편이 말했던 참이었다. 그 말을 유재석이 아내에게 전하자 갑자기 말을 잊지 못하고 눈물 흘리는 아내. “너무 고마워서”라고 말하지만 거기에는 단지 그 10주년과 100만원에 대한 고마움만이 담긴 게 아니었다.

 

“일이 많이 힘들었는데 남편이 옆에서 다 도와주고 이해해주고 그래서 여기까지 버티고 올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자기 거는 하나도 안하고 저한테만 다 주기만 하니까. 그게 너무 고맙고 미안하고 그러네요.”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던 유재석의 눈이 촉촉해졌다. 아마도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게다.

 

낙엽이 익어가는 가을에 춘천을 찾은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청춘(靑春)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아마도 춘천이란 지명에서 청춘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을 게다. 하지만 이번 편이 보여준 건 ‘사랑’이었다. 그런데 그 사랑이 남달랐던 건 그 열렬하고 달달한 사랑이 아니라 이제 겨울을 앞둔 스산한 그 힘겨움들 앞에서 오히려 더 빛나는 사랑이었다. 스산한 가을에 찾아갔지만 거기서 느껴진 따뜻한 봄의 풍경들. 오늘도 사랑에 대해 한 수 배웠다.(사진:tvN)

‘알쓸신잡’, 아재들이 지나간 자리 남은 지식의 향기

여행을 하는 참 많은 방법들이 있는 것 같다. 나영석 PD가 KBS <1박2일>로부터 시작해 현재 tvN <알쓸신잡>까지 이어진 예능 프로그램들을 보면, 국내여행은 물론이고 해외배낭여행, 어르신은 물론이고 청춘들, 어느 한 곳에 폭 박혀 며칠간을 정착하며 즐기는 여행에서부터 지식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여행까지 참 다양하기도 하다. 

'알쓸신잡(사진출처:tvN)'

그 중에서도 최근 뜨거운 <알쓸신잡>은 아마도 여행 풍속도를 바꿔줄 새로운 여행의 색깔을 덧씌워주고 있다. 그저 지나쳤던 풍경이나 유적 그리고 음식들까지 그 안에 담겨진 문화적인 이야기들을 이 프로그램이 끄집어내주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알쓸신잡>이 춘천에서 들려준 그 많은 이야기들을.

당연한 듯 춘천에 가면 먹었던 닭갈비에서 ‘갈비’를 먹고픈 서민들의 욕망을 읽어내고, 에티오피아 카페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에티오피아 전우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책과 인쇄박물관’에서 그 잉크 냄새가 주는 아련한 향수에 빠져들면서 후각이 그 어떤 감각보다 우리네 기억을 더 강렬하게 자극하는 감각이라는 걸 알게 되고, 애니메이션 박물관에서 태권브이의 향수에 젖는다. 

어찌 보면 여행에서 우리가 흔하게 만나게 되는 음식이나 박물관 같은 것들이지만 <알쓸신잡>이 보여준 것처럼 거기 담겨진 이야기들을 알거나 이해하게 되면 새삼 그 체험들이 각별하게 다가온다. 대성리 하면 대학시절 많이 가던 엠티 장소 정도로 기억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거기에도 당대 감시의 눈길을 피해 독재에 항거하던 젊은이들의 행적들이 숨겨져 있다. 

수목원의 꽃들을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찍어 그 이름을 검색할 수 있는 편리해진 시대에, 그만큼 사라져 가는 직업들을 떠올린다. 일일이 활자를 찾아 신문을 찍어냈던 시절에서 이제 컴퓨터가 모든 걸 해버리는 현재까지의 놀라운 변화가 겨우 30년도 되지 않았다는 걸 통해, 얼마나 세상이 빨리 변화해가는가를 실감한다. 

그러니 이제 <알쓸신잡>의 여행을 본 이들은 통영에 가서 새삼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남다른 감회로 떠올릴 것이고, 순천에 가서는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이 떠오를 것이다. 강릉 오죽헌에 가게 되면 유시민과 황교익이 비분강개했던 안내판을 통해 신사임당의, 율곡의 어머니만이 아닌 예술가로서의 위대함을 새삼 떠올릴 것이고, 경주에 가면 최진립 장군과 그와 끝을 함께한 옥동과 기별의 이야기에서 감동할 수 있을 것이다. 공주에 가게 된다면 백마강과 낙화암 앞에서 새로 써야 할 왜곡된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을 게다. 

해외여행이 일반화된 요즘, 휴가철이 되면 공항은 북적인다. 해외여행이 이렇게 일반화되는 만큼 국내여행은 어딘지 너무 소소한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나 큰 착각이고 선입견이라는 걸 <알쓸신잡>을 통해 새삼 확인하게 된다. 우리가 국내여행을 소소하게 느껴왔던 건 진짜 그 곳이 소소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겨진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국내 곳곳에 숨겨져 있는 많은 이야기들, 하다못해 음식 하나에도 깃들어있는 재미있는 삶의 이야기들이 넘쳐난다는 걸 <알쓸신잡> 박사들은 새삼 확인시켜줬다. 거창하게 인문학을 운운할 필요도 없이, 이들이 어떤 여행지에서 나눈 폭풍 지식수다를 먼저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얼마나 많은 재밋거리들이 숨겨져 있는가. 다만 우리가 관심을 주지 않았을 뿐. 여러모로 <알쓸신잡>으로 인해 이번 여름, ‘휴가의 풍경’도 사뭇 달라지지 않을까.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 가까이 충분히 흥미로운 여행은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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