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망가진 이들은 과연 진짜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나의 해방일지

“사람들은 천둥번개가 치면 무서워하는데 전 이상하게 차분해져요. 드디어 세상이 끝나는구나. 바라는 바다. 갇힌 거 같은데 어딜 어떻게 뚫어야 될지 모르겠어서 그냥 다 같이 끝나길 바라는 것 같아요. 불행하지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다. 이대로 끝나도 상관없다. 다 무덤으로 가는 길인데 뭐 그렇게 신나고 좋을까. 어쩔 땐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 사람들보다 망가진 사람들이 더 정직한 사람들 아닐까 그래요.”

 

JTBC 토일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미정(김지원)은 이른바 해방클럽에 들어온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렇게 답한다. 그 해방클럽은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만들어진 행복지원센터에서 하도 동호회에 가입을 권유받지만 도무지 동호회에 들어가고픈 마음이 없는 세 사람, 염미정, 조태훈(이기우), 박상민(박수영)이 더 이상의 강권을 피하고자 만든 클럽이다. ‘행복지원센터’라는 지칭에 담긴 ‘행복’이라는 단어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이게 정말 행복일까. 이게 정말 제대로 사는 걸까.

 

<나의 해방일지>는 경기도민으로 살아 서울 중심으로 삶으로부터 비껴가고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서울에서 살면서 짐짓 웃으며 살아가는 삶이 과연 진짜 행복인가를 묻는다. 하루하루 힘겹게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휴가 때 어디 놀러갈까, 놀러가서 수영복은 뭘 입을까, 비키니는 무슨 색으로 입을까를 이야기하며 버텨내는 삶. 맞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로또 몇 장을 마치 행복전도사나 되는 듯 나눠주는 이사와 그것조차 받지 못해 “왜 나만 건너 뛰냐”고 하소연하는 삶. 언제 넘어질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하이힐을 신고, 시술만 하면 예뻐진다는 말에 되지도 않는 시술을 받고는 더 나빠진 상태를 애써 나아질 거라 위안하며 사는 삶.... 

 

기정(이엘)은 이런 삶을 계란 흰자 같은 삶이라 농담하지만 너무 힘든데 쓰러지지도 않고 코피도 안 난다며 로또 열장을 사과하듯 챙겨주는 이사에게 그 답답함을 털어놓는다. 그런데 이 이사는 기정에게 심호흡을 해보라 권한다. “힘들 때 잠깐 심호흡하면 그것도 휴식이라고 괜찮아져요.” 과연 이래서 진짜 괜찮아질까. 기정은 뜬금없이 머리를 밀어버리고 싶다고 말한다. 머리카락이 붙어 있는 것조차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이사는 끝없이 긍정을 얘기한다. “그래서 제가 쉬지 않고 사랑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한 지칠 수 없거든요.” 긍정한다고 불행이 행복으로 바뀔까. 삶의 본질의 문제에서 오는 답답함이 심호흡 한 번으로 괜찮아질까. 퇴근 길 전철 안에서 저 편에 보이는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같은 긍정의 문구가 진짜 좋은 일을 만들어줄까. 

 

<나의 해방일지>가 보여주는 인물들은 정확히 두 부류로 나뉜다. 너무 망가져 아슬아슬하게 버텨내는 사람들과 망가졌지만 아무렇지도 않는 척 잘 사는 사람들. 점주를 고객으로 상대하는 창희(이민기)는 퇴근해서도 1시간 넘게 전화 응대를 해줘야 하고, 그런 아들을 아버지 염제호(천호진)는 계획 없이 살아서 그렇게 사는 거라 답답해한다. 그런 아버지에게 아들은 아버지의 삶 역시 계획을 잘 세워서 농사에 싱크대 설치 투잡 뛰며 사느냐고 비수를 꽂는다. 일해주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상황에서도 자기가 잘못한 것처럼 주눅 들며 살아가는 아버지가 아닌가. 

 

미정의 가족들은 망가졌다. 그건 단지 서울 외곽 경기도에서 살아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저 우리가 사는 삶이 불행하고, 그럼에도 가짜 행복으로 채워져 가짜 위로를 던지는 삶이기 때문이다. 고층 건물에 사는 사람들을 올려다보며 거기 사는 사람들이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위험 속에 살아간다며 그래서 안전한 반지하에 산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삶이 우리가 사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렇게 망가진 미정의 가족들보다 더 망가진 구씨(손석구) 같은 인물도 있다. 그는 이름도 밝히지 않고, 대화도 거의 없고, 밥도 잘 챙겨먹지 않은 채 매일 염제호의 일을 도와주며 살아간다. 거의 유일한 낙처럼 보이는 게 저녁에 홀로 평상에 앉아 깡소주는 마시는 일이다. 그의 존재는 그에게 말을 걸어오는 창희나 미정을 통해 그런 식으로 돌파구는 절대 없다고 외치는 듯하다. 심지어 이 사회 시스템 바깥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듯 보이는 그에게 창희는 ‘로망’이라고까지 말하지만 그건 그가 선택한 삶이 아니다. 그저 ‘잘못 내린’ 밀려난 삶일 뿐. 

 

<나의 해방일지>는 거의 블랙 코미디에 가깝게 대사 하나하나 상황 하나하나가 빵빵 터지는 웃음을 준다. ‘추앙’ 같은 낯선 대사를 던질 때 그것이 너무 낯설어서 어색하고 그래서 헛웃음이 터진다. 하지만 동시에 이 인물이 얼마나 절망적이면 이런 잘 쓰지 않는 단어까지 꺼낼까 생각하게 만들면서 짠해진다. 그러면서 이 드라마는 이 답답한 가짜 행복들에 둘러싸여 사는 이곳의 삶을 뚫고 저기로 넘어갈 거라는 기대감을 준다. 

 

“어디에 갇힌 건지 모르겠지만 뚫고 나가고 싶어요. 진짜로 행복해서 진짜로 좋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아 이게 인생이지 이게 사는 거지 그런 말을 해보고 싶어요.” 미정의 이 말은 그래서 박해영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허위로 가득한 세상과 얼마나 날선 대결의식을 갖고 있는가를 드러낸다. 바람에 훅 날아간 모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빙 돌아 저편까지 갔다 와야 하는 상황 속에서 마치 넓이 뛰기 선수처럼 단번에 그걸 뛰어넘는 그런 통쾌한 비상을 그려낼 거라는 기대감. 

 

망가진 자들이 서로 연대해 넌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된다며 추앙함으로서 단 한 번이라도 가짜가 아닌 진짜 행복을 느끼는 걸 <나의 해방일지>가 보여주길 기대한다. 구씨가 마치 새처럼 날아오르는 그 순간의 비상이 될 지라도. 그것은 지금 현재 사실은 불행하지만 우린 행복하다고 애써 강변하는 가짜 세상의 허위를 잠시라도 깨칠 수 있는 길이 될 테니.(사진:JTBC)

‘황금빛’이 출생의 비밀을 활용하는 색다른 방식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은 대놓고 ‘출생의 비밀’ 코드를 쓰고 있다. 사실 무수한 막장드라마들이 이 출생의 비밀을 활용하고 있어서 이걸 또 쓴다는 것이 KBS 주말드라마 같은 성격에는 부담이 될 수도 있었을 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금빛 내 인생>은 어째서 이런 부담을 감수하려 했던 걸까.

'황금빛 내인생(사진출처:KBS)'

그것은 <황금빛 내 인생>이 궁극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금수저 흙수저 계급으로 나뉘는 사회의 허위의식을 드러내는데 있어서 바로 이 ‘출생의 비밀’ 코드만큼 효과적인 게 없기 때문이다. 보통의 ‘출생의 비밀’ 코드를 활용한 드라마들은 금수저 흙수저 계급 사회가 가진 판타지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곤 했다. 사실은 금수저인 ‘출생의 비밀’을 가진 주인공이 흙수저 인생을 살다가 부모를 만나 다시 금수저 인생으로 신데렐라가 되는 과정이 그 천편일률적인 활용법이었던 것.

하지만 <황금빛 내 인생>의 출생의 비밀 코드는 이 방향과는 정반대다. 그걸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장면이, 하루아침에 금수저가 되어 재벌가 딸로 둔갑한 서지안(신혜선)이 노명희(나영희)의 미술관 모임에 불려와 자신의 미술지식을 통해 인정을 받는 장면 같은 것이다. 혹여나 실수를 하면 어쩌나 하고 노심초사했지만 서지안은 그들 앞에서 전혀 주눅들지 않고 미술에 대한 자신의 식견을 드러낸다. 

그런 일이 있었던 걸 알게 된 최재성(전노민)이 노명희에게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딸을 그런 위험한 상황에 내놓은 걸 나무라자 노명희는 말한다. “내 딸이니까” 잘 할 거라 믿었다고. 핏줄이 어디 가는 것이 아니라고. 또 서지안이 해성그룹 마케팅팀에 들어가자마자 자신이 예전에 내놨던 기획안으로 성과를 내기 시작하자 이 집안은 또 그놈의 핏줄을 꺼내놓는다. 그 피가 어디 가냐는 말은 이 집안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서지안은 그들의 친딸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서태수(천호진)와 양미정(김혜옥)의 딸일 뿐이다. 그런 그가 이른바 저들의 세계에서도 인정받고, 회사에서도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는 건 그래서 핏줄과는 아무 상관없는 그의 노력 때문이다. 이것이 <황금빛 내 인생>이 출생의 비밀 코드를 활용하는 색다른 방식이다. 이것은 금수저 흙수저의 세계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판타지를 공고히 하는 게 아니라, 그 허위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황금빛 내 인생>의 출생의 비밀 코드가 굉장한 속도로 전개되는 건 그래서다. 판타지를 지속시키려면 그 비밀을 오래 유지해야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 50부작 드라마는 고작 10회 남짓 넘었을 뿐인데, 출생의 비밀의 당사자가 되어버린 서지안이 스스로 자신이 그 주인공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이런 전개는 향후 서지안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에 시청자들을 주목하게 만든다. 계속 가짜노릇을 할 것인가 아니면 진짜의 자신으로 돌아올 것인가. 

물론 이런 방식으로 출생의 비밀을 활용하려다 보니 양미정이 진짜 재벌가 딸인 서지수(서은수) 대신 친딸인 서지안을 재벌가 딸로 둔갑시키는 다소 과한 설정이 들어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선택 역시 출생의 비밀을 안고 재벌가에 들어가는 것이 막연히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부모의 편견 또한 깨기 위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태생으로 누군가는 선택받고 누군가는 힘겨운 삶을 살게 되는 금수저 흙수저 사회가 가진 부조리에 대한 폭로다. ‘출생의 비밀’ 따위는 사실 허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흙수저가 금수저로 둔갑하자마자 그 능력을 발휘하는 건 핏줄 때문이 아니고 다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짜 인생을 황금빛으로 반드는 건 그래서 그 수저를 나누는 ‘황금’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공평해야할 기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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