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무한도전', 의미는 왜 숨길수록 빛날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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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의미는 왜 숨길수록 빛날까

D.H.Jung 2011. 9. 2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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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이 재미를 통해 의미를 전하는 방식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무한도전' 스피드 특집은 정체모를 목소리의 지시에 의해 긴박하게 흘러가는 미션으로 이어졌다. 차가 폭파되는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단서들을 찾아다니는 미션은 출연진들을 미궁 속으로 빠뜨렸다. 이것은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연관성 없는 미션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 같았고, 중간에 노홍철의 차량이 폭파되는(물론 장난이었지만) 장면은 심지어 충격적이었다. 마지막에 이르러 이 모든 단서들이 '독도'와 연관되어 있다는 암시들이 잠깐 나왔지만, 프로그램에서는 이 의미에 대한 어떤 언급을 해주는 자막도 끝내 없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끝나고 '무한도전' 스피드 특집이 사실은 '독도 특집'이었다는 것은 시청자들에 의해 의미가 부여됐다. 물론 이것은 제작진이 의도한 그대로다. '틀린그림찾기' 미션은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표기해놓은 것을 찾게 함으로써 말 그대로 '틀린 그림'을 드러내주었고, 그들이 단서로 얻은 알파벳 ihb는 국제수로국의 약자였다. 즉 이 미션은 국제수로국에 독도를 자기 땅으로 조작한 일본측의 증거를 찾아 이메일로 보내는 것이었다.

이 미션이 독도 특집이라는 암시가 살짝 드러나자 그간 그들이 달려온 미션 속의 숫자들이 다양한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1964년식 마이크로버스는 한일수교가 이뤄진 1964년을, 그 버스를 따라붙었던 의문의 차량은 일제 차량이었다는 것을,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찾은 책은 고은의 시집으로 미션봉투가 들어있던 페이지는 '독도'라는 시가 있었던 것을, 미션 속에서 나온 799와 805라는 숫자 역시 독도의 우편번호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또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아'라는 반복되는 메시지는 바로 이 독도 영토 주권을 위해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의미가 부여됐다.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이 그 어떤 자막을 통해서도 이 미션들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무한도전'은 마지막까지 의미를 숨겼고, 시청자들 스스로 그 의미를 부여하게 만들었다. 왜 이런 방식을 고수한 걸까. 이것은 물론 이 특집이 미스테리와 스릴러를 그 장르로 채용했기 때문이다. 사건이 미궁 속으로 빠지고 그 미궁 속에서 당황해하는 출연진들의 면면은 이 특집이 가진 재미의 가장 큰 부분이다. 그러니 미션의 의미를 알게 되는 건 장르적으로 볼 때 프로그램을 맥 빠지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의미를 철저히 숨기는 방식은 단지 장르적인 특성 때문만은 아니다. 이것은 '무한도전'이 지금껏 의미를 전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의미화가 가진 교조적인 성격을 탈피하기 위해 '무한도전'은 미션 속에 단서를 남길 뿐, 자막을 통해 의미를 전하는 식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여드름 브레이크' 특집에서 철거촌의 의미를 담아내는 방식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나.

이 철저히 예능의 문법(재미에 중점을 맞추는)을 따르면서 의미는 최대한 감추는 방식은 그러나 오히려 더 의미가 확장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것은 주장이나 설명이 아니라, 보는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자발적으로 저마다의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의 힘이다. 자막이 예능의 중요한 도구로 자리한 것은 맞지만, 때론 지나친 자막의 남발로 인해 공해가 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보면, '무한도전' 스피드 특집의 의미를 숨기는 방식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보여진다. 재미를 근간으로 하는 예능에서 의미는 어쩌면 드러내고 적시하는 것이 아니라 숨길수록 빛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