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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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 '나가수'의 상투를 넘다

D.H.Jung 2011. 12. 2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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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수' 나오면 꼭 해야 되는 것들?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긴장요? 어떤 무대에서든 노래하기 2-3초 전에는 항상 긴장해요. 항상 설레고 내 본인 스스로 이건 평가받기 위한 행동이 아니고 나는 가수니까 나는 공연하러 왔고 노래 부른다... 그 나머지(평가)는 여러분들이 알아서 해주세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몇 점을 받을까 그런 긴장은 전혀 없고 제가 제 입으로 누굴 존경한다고 했는데 그 분 곡을 망칠까봐 그 부분에서는 좀 긴장을 해요."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에 첫 등장한 박완규의 모습은 여느 가수들과는 사뭇 달랐다. 지금껏 이 무대에 오르는 가수들은 모두가 똑같이 "이렇게 긴장될 줄 몰랐는데 정말 긴장 된다"고 말했고, 실제로 그런 긴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래서 첫 출연하는 가수들에 따라붙는 카메라와 질문은 거의 비슷한 것들이었다. "떨리지 않냐?"고 묻고 어떻게든 긴장하는 모습을 찍어 넣는 것. 하지만 박완규는 확실히 달랐다. 윤종신이 계속해서 "떨리지 않냐?"고 묻자 심지어 "안 떨리는 걸 떨린다고 해야 하나?"고 반문하기도 했다.

또 그는 다른 가수들의 노래에 대해 하는 짧은 인터뷰에서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즉 지금껏 모두 다른 가수들의 노래에 놀라는 표정을 지어보이고 "대단하다"는 식의 멘트를 날리는 것에서 벗어나 솔직한 자기 마음을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얘기했다. 김경호가 부른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에 대해서 박완규는 "재해석이 발전적으로 됐다. 그리고 좀 더 강렬하게 표현이 됐다"고 말하면서도 "춤만 좀 안 췄으면 좋겠는데 꼭 춤을 추네 형이."하며 농담을 섞어 할 얘기는 했다. 또 거미의 '날 떠나지마'에 대해서는 "최고의 선곡은 아니었다고 본다."며 "거미씨 정도 가창력 되면 굳이 액션하지 않아도 되요."하고 말했고, 자우림의 무대에 대해서는 "늘 날 설레게 한다. 오늘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그런 느낌."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순위 발표를 하는 순간에도 박완규는 차분했다. 김경호에 이어 2위가 됐지만 거기에 대한 큰 기쁨이나 아쉬움 같은 것도 거의 표현하지 않았다. 그가 인터뷰에서 계속 말했듯이 '나머지는 청중평가단에게 맡긴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금껏 '나가수'에 등장한 가수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난데없는 '태도 논란'이 거론됐다. 하지만 이것을 과연 '불성실한 태도'라고 봐야 하는 것일까.

'나가수'에 나오면 늘 해야 하는 리액션들이 있다. 즉 "긴장 된다"고 말하고 떨어야 하고, 무대에서 노래가 끝난 후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무대를 내려서야 하며, 다른 가수들의 노래에는 무조건 "놀랍다", "대단하다"고 상찬해야 한다. 순위 발표 시간에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순위에 엇갈리는 희비를 표정으로 드러내주어야 하며, 순위 끝에는 다음 경연에 대한 각오를 덧붙여줘야 한다. 이미 이건 '나가수'의 상투적인 장면들이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장면들이 얘기하는 건 하나다. '나가수'라는 무대는 그만큼 가수들을 긴장시키고 그럼으로써 가수로서의 최대치를 보여주는 최고의 무대라는 얘기다.

물론 '나가수'는 여느 무대와는 확실히 다르다. 그만큼 가수로서의 자기 존재 증명을 하는 무대처럼 되어 있기 때문에 긴장감도 높고 그만큼 뽑아내는 능력치도 훨씬 높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 똑같은 형태의 리액션으로만 일관되는 건 '나가수'라는 프로그램에 좋은 일이 아니다. '나가수'는 "나는 가수다"라는 그 제목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가수라는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각자의 무대에 서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간 보이지 못했던 가창력을 보여주고, 누군가는 끼를 보여주며, 또 누군가는 새로운 목소리를 들려준다.

박완규는 모두에서 말했듯이 "선배들의 곡들이 하나둘씩 대중 여러분들께 알려지는 불려지고 또 즐길 수 있는 곡이 되어가는 그런 문화의 흐름을 보면서 걸 그룹이나 아이돌 스타일의 음악에 너무 잠식됐다는 그런 상대적인 피해의식을 극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데서 "처음에는 (점수 매기는 것에) 기분 나빴던" '나가수'를 출연하려 한 것이다. 박완규의 이런 출사표는 지금껏 다른 가수들이 '나가수' 출연을 통해 보여준 스토리와 다른 스토리를 기대하게 한다. 모두가 했던 그래서 그렇게 학습된 리액션을 늘 새로운 가수가 반복해서 보여주는 건 '나가수'를 자칫 정체되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박완규의 '도발'은 '나가수'의 상투성을 넘어선 것으로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보여진다. 박완규의 말대로 가수가 긴장할 것은 순위나 경쟁이 아니라, 자신이 부르는 곡을 망칠까봐 생기는 음악적인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