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 사이에 선 의사
생사의 갈림길에 선 의사와 환자들이 엮어 가는 본격병원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 이제 본격적인 봉달희(이요원 분)의 위기국면이 시작된다. 그것은 처음부터 예고되었던 일이다. 이 모든 환자들을 자신의 동생처럼, 아버지처럼, 어머니처럼, 아이처럼 여기는 ‘인간적인 의사’라는 존재는 이상일 뿐, 현실은 아니다.
봉달희가 “의사도 사람이에요”라고 말할 때, 안중근(이범수 분)이 “누가 의사가 사람이래?”라고 되묻는 건, 감정이 들어간 판단은 오히려 환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안중근의 말처럼 “너무나 살리고 싶은 환자가 있어 더 빨리 낫게 하려고 수치 이상의 항생제를 쓰면” 결국 환자는 죽게되는 것이다.
그래서 죽게되는 환아가 동건이다. 1차 항암치료에서 별다른 암세포의 변화를 보지 못하자 좀더 강력한 2차 항암치료를 강행했던 동건이는 일시적인 회복을 보이고는 결국 암세포의 급작스런 전이로 사망하게 된다. “왜 내게 희망을 주었냐”는 동건에게 “그래도 이겨낼 수 있다”고 2차 항암치료를 강권한 봉달희는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감정이 개입된 판단’으로 결국 환자의 죽음을 앞당기게 했던 것.
재미있는 것은 여기에 동건의 담당의로서의 조문경(오윤아 분)의 최종 결정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조문경은 사망자컨퍼런스에서 자신은 이제 둔감해져 사라진, 열정을 갖고 있는 봉달희가 부러워 순간적으로 판단을 잘못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녀는 의사가 환자에 대한 열정으로 기적을 바라는 것은 잘못된 판단으로 환자를 괴롭힐 뿐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설상가상으로 위급환자를 돌보다 혈관이 터져 죽게 하자 봉달희는 공황상태에 빠진다. 그녀는 그 두 환자의 죽음을 동일선상에서 보게 된다. 병원에 나오 그녀를 두 남자가 찾아온다. 이건욱(김민준 분)은 집 앞까지 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고, 안중근은 자신만의 버럭 스타일로 봉달희를 사망자컨퍼런스에 나오게 만든다. 여기서 안중근은 봉달희에게 그 두 죽음의 의미가 다르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동건의 경우에는 봉달희의 열정이 문제가 되었지만, 그 후에 사망한 위급환자는 제대로 된 판단과 처치를 다 했지만 사망했으므로 의사로서는 할 일을 다 했다는 판단을 내려준 것이다.
사실 우리는 ‘열정적 인간’과 ‘냉정한 의사’를 봉달희와 안중근, 전공의와 전문의, 신참의사와 고참의사로 나누어 보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안중근의 판단을 통해 그 둘은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 한 고민하는 의사 속에 내재된 두 가지라는 걸 깨닫게 된다. 결국 봉달희에게도, 안중근에게도 이 두 가지는 공존한다는 것. 이것이 공존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의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자신의 판단이 환자를 즉각적인 삶과 죽음으로 갈라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드러운 남자, 이건욱의 걱정이나 버럭 남자 안중근의 채찍질 그 어느 것도 낙오자가 되는 위기에 처한 봉달희를 구해내지는 못한다. 봉달희를 낙오자의 길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건 다름 아닌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 환자들이다. 병원에 있는 환자들이 제대로 처치를 받고 있는가를 자꾸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길을 가다 우연히 본 기흉 환자를 응급처치하는 봉달희는 다시 의사의 길로의 복귀를 예고한다.
결국 의사를 의사답게 만드는 것은 환자가 아닐까. 안타까운 환자 앞에서 인간적인 열정에 휩싸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냉정한 판단을 해야하는 의사라는 직업 속에서 봉달희는 물론 안중근의 면면이 새롭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늘 환자와 전공의들 앞에서는 냉정한 모습을 보이지만 환자 옆에서 잠든 봉달희의 어깨에 아무도 모르게 옷을 덮어주는 열정을 갖고 있는 안중근에서 의사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봉달희와 안중근이 전혀 다른 듯 하면서도 같은 류의 의사로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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