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결> 논란이 환기시킨 사생활 엿보기에 대한 불감증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라는 프로그램이 사생활과 밀접하다는 것은 이미 그 제목에서부터 드러난다. 즉 결혼이라는 사적인 영역을 들여다보겠다는 의도가 그 안에는 들어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결혼을 도둑촬영 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결혼이고, 그 대상이 일반인이 아니라 연예인이라는 점은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엿본다는 다소 우리네 정서에 민감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에 일종의 착시로서의 안전장치를 제공한다. <우결>은 그래서 어찌 보면 리얼한(?) 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드라마.
'우리 결혼했어요4'(사진출처:MBC)
하지만 가상과 현실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는 이 아슬아슬함은 보는 이들에게 ‘안전한(?) 도촬 장면을 훔쳐보는 것 같은 자극을 주기 마련이다. 시청자들은 ‘저건 드라마 같은 가상일 거야’하고 치부하며, 남의 사생활을 바라본다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문제를 가볍게 회피하면서, 동시에 저건 진짜 리얼한 반응이 맞을 거라는 본능적인 자극을 즐긴다. 게다가 이것이 다름 아닌 연예인의 사생활이라는 점은 대중들로 하여금 이 양가적 감정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연예인 사생활은 <우결> 같은 프로그램이 나오기 이전에도 이미 연예 매체를 통해 일상적으로 유통되던 가십이었으니까.
바로 이런 양가적 입장을 받아들이던 대중들의 입장에서 보면, <우결>에서 이준과 가상 부부로 출연한 오연서가, <오자룡이 간다>라는 일일극을 통해 가까워진 이장우와 열애 중이라는 보도는 그 자체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만일 이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꾸로 <우결>이라는 프로그램에게는 섭섭한 일이 될 수도 있을 게다. <우결>이 보여준 일련의 리얼한 장면들이 사실은 모두 가상이었다는 것을 대중들에게 들켜버렸다는 얘기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결>은 늘 이 상황이 가상이긴 하지만 거기서 나오는 반응들은 리얼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해옴으로써 이준과 오연서가 실제로도 가깝다는 걸 강조해왔다.
보도가 나왔을 때 오연서 소속사측의 반응은 “드라마 촬영을 하며 만남을 가져 서로 알아가는 단계로 보인다”고 밝혀 열애설에 수긍하는 입장을 내비쳤다. 4일 발표된 소속사의 공식자료는 실로 애매했다. 두 사람은 “같은 드라마에서 연인 역할로 등장하다 보니 부딪히는 시간도 많고 학교 선후배 관계이기도 해 친한 사이가 됐다”고 말하면서도 아직 “정식으로 사귄다고 말하기도 부담스러운 입장”이며 “더 많은 시간이 지나 감정이 통하면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겠지만 아직은 연인 관계로 단정 짓기에 조심스럽고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애매모호한 관계라는 얘기다.
하지만 하루 지나 발표된 <우결>측의 공식 입장은 ‘열애설 공식 부인’이었다. 알아보니 “좋은 선후배 사이”이지 “이성적인 감정은 전혀 없으며 열애설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렇게 소속사 측의 발표와 <우결>측의 입장에서 온도차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이 사안이 <우결>이라는 프로그램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양측의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었을 게다. 당장 하와이에서 촬영된 분량들을 모두 버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준과 오연서 커플만 나오는 것도 아니고 세 커플 모두가 함께 모여 있으니 이 방송분량의 문제는 단지 이들 커플의 문제로만 다룰 수 없게 된다. 그 피해는 누가 보상해줄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 강행된 방송분량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미 드러날 대로 드러난 사실을 알고 있는 시청자라면 이준과 오연서가 ‘첫날밤’ 콘셉트로 침대에 함께 누워 손깍지를 끼는 장면을 보며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게다. 게다가 이번 시즌 들어서 <우결>은 그 표현 수위를 더 높이기까지 했다. 과거에도 커플이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는 모습이 있었지만 그래도 각자의 방에서 자는 모습으로 연출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번 하와이 여행은 아예 내놓고 ‘첫날밤’이라는 타이틀로 야릇한 대화와 스킨십을 나누는 장면으로 연출되었다. 하필 오연서의 행동이 가식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과도함까지 얹어진 격이다.
그런데 이 갑작스런 열애설로 가식과 과도함이 새삼 느껴지는 지점에서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다. 프로그램의 진정성이 훼손된 상황에서 저런 장면들은 왜 굳이 연출해서 보여주는 것일까. 아무리 가상이라고 해도 사랑 같은 진정성 있는 감정이 사라진 곳에 남는 것은 자극밖에 없다. 그 자극은 결국 <우결>이라는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연예인의 내밀한 사생활을 엿본다는 것에서 나오는 것일 게다. 아무리 설정이지만 저토록 첫날밤의 침실까지 들여다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게 된 우리들은(특히 청소년들에겐 더더욱) 얼마나 타인의 프라이버시에 둔감하게 된 걸까.
사실 오연서의 마음이 어느 쪽에 있는 것일까 하고 궁금해 한다는 사실조차 사생활이 아무렇지 않게 소비되는 시대에 대한 우리의 불감증을 잘 말해주는 일이다. 그래서 오연서 열애설로 번진 이번 <우결>의 문제는 이 프로그램이 가진 사생활 소비의 측면을, 둔감해진 대중들에게 각성시킨 결과가 되기도 했다. 진짜 사생활이 노출되면서 그것이 <우결>과 부딪친 것은, 그 자체로 <우결>이 보여준 것이 다름 아닌 연예인들의 사생활 소비였다는 것을 일깨워준 셈이니 말이다.
사생활 노출에 대한 대중들의 감각의 차원에서 바라보면, 오연서가 누굴 진짜로 좋아하는가 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제 버젓이 사생활을 팔고 사는 데 있어서 이제는 둔감해진 우리의 정서가 될 것이다. 연예인들의 일이라고 치부하며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이것은 곧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타인의 사생활을 바라보고 즐길 때, 그것은 고스란히 부메랑이 되어 내 자신의 사생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할 시점이다. 그것이 오연서의 마음이 이준인지 아니면 이장우인지를 궁금해 하고 있는 우리들이 진짜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아닐까. <우결>은 우리에게 그 디스토피아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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