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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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돌풍 '군도'에 대한 반응 왜 양극단으로 나뉠까

D.H.Jung 2014. 7. 2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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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 민란을 웨스턴처럼 보는 즐거움 혹은 불편함

 

역대 최고 오프닝 기록을 갈아치우며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군도 : 민란의 시대>는 제목이 주는 선입견이 있다. ‘군도민란이라는 단어는 분명 우리가 처한 현실과 무관할 수 없다. 그것이 조선을 배경으로 한 사극이라고 해도 그것이 상영되는 건 지금 현재 우리가 사는 이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나 지금의 막막한 현실이 투영된 것으로 군도민란이라는 단어를 읽게 된다.

 

사진출처: 영화 <군도:민란의시대>

실제로 영화가 갖고 있는 이야기 설정 또한 지금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탐관오리가 등장하고 정경유착이 나온다. 그리고 지리산 추설이라는 의적들이 내뿜는 세상을 바꾸자는 목소리에도 현실의 울림이 들어가 있다. ‘뭉치면 백성 흩어지면 도적이라는 반복되는 대사만을 생각해보면 영화는 심지어 민중봉기의 의미를 담은 영화처럼 오인된다.

 

하지만 제목과 이런 이야기 설정들이 주는 선입견을 갖고 <군도>를 보게 되면 100% 실망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군도>의 소재일 뿐, 이 영화가 하려는 스토리텔링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군도>는 철저히 오락영화를 지향했다. 그래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는 있지만 말을 타고 떼 지어 달리며 한 사람 한 사람 스틸 컷으로 캐릭터가 설명되는 장면에서는 이 영화가 전형적인 마카로니 웨스턴 장르를 그리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바로 이 부분에서 호불호는 갈라진다. 만일 <군도>를 여러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웨스턴 오락영화로 받아들인다면 그 안에 펼쳐지는 활극의 묘미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민란이 상기시키는 핍박받는 백성들의 무게감을 떨쳐낼 수 없다면 이런 소재를 이렇게 오락으로 그려도 되나 하는 불편함까지 가질 수 있다.

 

마카로니 웨스턴 장르는 인물이 가진 아픔이나 고통에 집중시키지 않는다. 대신 그렇게 만들어진 캐릭터로 어떤 재미를 보여줄 것인가에 집착한다. <황야의 무법자>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가 왜 그렇게 떠돌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심지어 그는 영화 속에서 이름 없는 자로 불린다). 다만 서로가 서로에게 어떻게 총을 쏘고 머리를 써 상대방을 속이는가 하는 트릭의 재미를 보여줄 뿐이다.

 

이런 사정은 <군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찌 어찌 해 지리산 추설이라는 의적 집단에 들어오게 된 인물들은 그들이 왜 그렇게 됐는가를 정서적으로 공감하게 해주기보다는 짧게 캐릭터를 설명하듯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정서적 공감보다 중요한 건 그들이 각자 가진 능력으로 대변되는 캐릭터다. 천보(마동석)는 힘을 대변하고, 금산(김재영)은 빠른 속공을 대변하며, 땡추(이경영)는 전략가를 대변하는 식이다.

 

이처럼 가볍게 캐릭터화된 인물들이 조윤(강동원)이라는 절대 악인이자 고수와 대결하는 과정은 그래서 절절함이 느껴진다기보다는 액션 활극이 보여주는 재미에 더 치중되어 있다. 심지어 인물의 죽음조차 그다지 슬프게 다가오지 않는다. 마카로니 웨스턴을 보면서 인물의 죽음에 감정이입이 과도하게 되지 않듯이 <군도> 역시 액션 활극으로 그려지면서 인물의 감정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게 만든다.

 

사실 핍박받는 민중의 봉기를 소재로 한다고 해서 모두 절절한 드라마를 깔아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핍박받는 민중들의 죽음이 절절하게 다가오지 못하고 액션 활극의 소재처럼 활용되는 부분은 지금의 대중들의 정서에는 상당부분 부딪치는 면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군도>는 그래서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영화일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액션 활극이거나 혹은 불편한 민중 봉기 소재의 영화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