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와 남녀관계는 진화 중
언제부턴가 여성 캐릭터가 ‘여성스럽다’는 표현은 더 이상 칭찬이 아닌 것이 되었다. 차라리 ‘섹시하다’거나 ‘도발적이다’라는 도전적인 이미지는 나은 편. ‘여성스럽다’는 이미지는 이제 ‘예쁜 척 한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일까. 여성 캐릭터들은 ‘예쁘고 청순 가련한’ 모습을 버리고, 한껏 ‘씩씩한’ 이미지로 변신 중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의 고은찬(윤은혜)은 이러한 트렌드의 정점에 있는 캐릭터. 남장여자라는 설정 속에 부정적인 의미로 보여지는 ‘여성스러움’은 철저히 가려진다. 그녀의 드러난 모습들은 술 취한 남자 하나 정도는 거뜬히 업을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세고, 불량배들 몇은 두드려 팰 수 있을 정도로 싸움을 잘 하며, 앉은자리에서 자장면 다섯 그릇을 뚝딱 해치울 수 있는 식욕을 가졌다는 것이다.
말투는 물론이고, 걸어다니는 모습이나 다리를 쫙 벌리고 앉는 모습까지 영락없는 남자의 그것을 보여주는 은찬이란 캐릭터는 그러나 분명 여자다. 그러니 남자대 남자(?)로서 사장과 직원이 된 한결(공유)과 은찬에게서 사랑의 감정이 솟아날 즈음, 드라마는 재미를 갖게 된다. 시청자들은 그들이 서로에게 끌리고 사랑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기에 남장여자에게 끌리는 남자로서의 한결이 우스우면서도 귀엽고, 그런 한결에게 끌리지만 다가가기 어려운 남장여자 은찬의 사랑이 애틋해진다.
여기저기 드라마마다 넘쳐나는 도식적인 사랑이 식상하게 느껴질 때, 이들의 사랑은 우정이나 의리의 탈을 쓰고 나타나 그 사랑을 교란한다. 한결이 은찬을 끌고 가 “한번만 안아보자 미치겠다”고 말하며 안을 때나, 은찬이 한결에게 갑자기 기습키스를 하고 변명을 해댈 때, 그리고 의형제를 빙자하면서 서로 곁에 두려는 마음을 전할 때, 사랑은 전면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뒤로 숨는다. 그러니 이들의 관계는 만나면 서로 까칠하고 헤어져 혼자 있을 땐 애틋해진다.
이러한 씩씩한 여성 캐릭터와 남자가 엮어 가는 사랑의 방식은 처음부터 남녀의 관계로 시작되지 않는다. 종영한 ‘메리 대구 공방전’에서 가진 것 없어도 꿈 하나로 씩씩한 메리와 대구가 사랑으로 발전하기 전까지 그들은 동료의식으로 가까워졌다. 입만 열면 ‘배신’이란 단어가 나오는 것은 같은 길을 어렵게 가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공유하고 있던 동료애 때문이다. 그것은 사랑보다는 우정이나 의리에 가까운 관계이다.
이러한 남녀간의 관계는 ‘9회말 2아웃’에 가서는 30년 지기란 설정으로 제시된다. 늘 서로를 까칠하게 대하는 난희(수애)와 형태(이정진)도 서로의 어려움을 봤을 때는 그 우정이 발동해서 마음이 가지만, 그것은 딱 거기까지만이다. 사랑은 아직 어딘가 멀리 있는 것이라고 이들은 착각한다. 그 착각이 주는 재미는 이들의 우정을 빙자한 사랑 얘기에 힘을 실어준다.
이런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의 변화와 이로 인한 남녀관계의 변화는 현 사회상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결과다. 그만큼 여성들은 드라마 속 남녀 관계에 있어서(그것이 연애문제든 사회 속에서의 성별문제든) 남자라는 성에 귀속되지 않고 동등한 위치에 서 있는 모습을 보길 원한다. 이것은 과거 남성 중심적인 멜로드라마에서 여성 중심적인 멜로드라마로 진화한 결과다. 그 속에는 질척하지 않고 상큼 발랄한 순정만화 톤의 사랑을 꿈꾸는 여성들의 로망이 들어있다.
이들 드라마는 과거의 멜로드라마들처럼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지 않는다. 대신 “어이 친구! 우리 연애나 해볼까.”하고 묻는다. 그 엉뚱함에 쿡쿡 웃다가도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것, 이것이 달라진 이들 드라마들의 연애방식이 주는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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