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강한 <자기야>, 이런 판타지가 없다
이만기 같은 사위가 있다면 어떨까. SBS <자기야-백년손님>에서 이만기와 장모는 톰과 제리의 관계를 보여준다. 틈만 나면 소파에 누워 제 집처럼 잠을 자기 일쑤지만 그럴 때 장모는 맛좋은 소라무침에 막걸리를 한 상 내놓고는 사위를 슬슬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는 기다렸다는 듯 일을 시킨다. 그런 장모에게 이만기는 시종일관 투덜투덜 대지만 또 막상 시키는 일은 꼬박꼬박해낸다. 이만기는 마치 머슴살이 들어온 힘 좋은 사내처럼 보인다.
'자기야 백년손님(사진출처:SBS)'
그런데 갑자기 단수가 되어버리자 마을 입구까지 내려가 물을 떠오는 이만기를 보면 역시 천하장사다운 스케일을 보여준다. 자그마한 물통이 아니라 하나 들기도 힘들 것 같은 양동이 두 개를 꽉 채워 옮긴다. 힘들 게 옮기는 물통이지만 동네 어르신이 한통만 달라고 하자 또 그걸 거부하지도 못하는 순박함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마치 순박하고 힘 좋은 머슴이 물을 길러 오는 장면처럼 그려진다.
밭일하기 위해 연장을 챙기러 창고에 온 이만기가 거기 있던 의자에 누워 보고는 아예 장모의 눈을 피해 숨는 장면 역시 톰과 제리의 마름 머슴판처럼 그려진다. 장모의 눈을 피해 그 거대한 몸을 잔뜩 웅크려 숨자, 그 사실을 알게 된 장모는 아예 문을 밖에서 잠가 버린다. 화장실이 급해진 이만기가 결국 “어무이 문 좀 열어 주이소” 하는 모습은 꾀부리다 오히려 당하곤 하는 톰을 떠올리게 만든다.
제리 같은 장모가 톰 같은 이만기를 부리는 방법은 역시 음식이다. 죽통밥을 해주겠다고 꼬드겨서 대나무를 자르러 가서는 아예 한 열 개 정도 잘라 평상을 만들라는 장모의 말에 일이 점점 커지는 걸 실감한다. 하지만 도무지 끌고 올 수 없을 것 같은 그 대나무 여러 개를 한꺼번에 끌고 오는 모습에서는 역시 천하장사의 위용이 느껴진다.
집에 와서 이만기는 그 대나무들을 하나하나 잘라 쉬지 않고 작업을 하고 장모는 잘라낸 죽통으로 죽통밥을 만든다. 일이 너무 많아 한참을 투덜대며 하던 이만기는 그러나 장모가 내온 죽통밥에 순식간에 단순해진다. 너무 맛있다며 힘들었던 노동을 싹 잊어버린 듯 환하게 웃는 모습은 아마도 이 땅의 장모들에게는 우직하고 단순해도 마음 한 구석이 든든해졌을 것이다.
SBS <자기야-백년손님>은 사위들의 강제 처가살이라는 콘셉트를 갖고 있다. 누가 봐도 이 설정이 현실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이 장서관계에 있어서 바람직한 설정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며느리의 시집살이는 이제 옛말이 됐다. 대신 맞벌이 부부들의 육아문제와 함께 점점 사위가 아내의 친정과 가까이 지내게 되면서 사위의 처가살이는 현실적인 일이 됐다.
이만기처럼 든든함을 주는 사위의 모습은 현실적으로는 판타지에 가깝다. 하지만 이 판타지가 주는 힘은 의외로 세다. 톰과 제리, 마름과 머슴처럼 보이지만 그런 격의 없는 툭탁댐은 장모와 사위의 관계라기보다는 엄마와 자식 같은 편안한 관계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사위의 모습이 아닌가. 그것이 판타지라고 해도 자꾸만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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