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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객주', 왜 오롯이 장사만 보여주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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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안 보인다는 <객주>, 현실도 그렇지 않을까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KBS에서 드라마화 되며 장사의 신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장사의 신이라는 수식어에 걸맞는 장사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볼 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장사의 신 객주(사진출처:KBS)'

그저 나오는 소리가 아니고 실제가 그렇다. <객주>가 최근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건 육의전을 대표하는 신석주(이덕화)와 보부상들을 대표하는 천봉삼(장혁)의 대결이다. 천봉삼은 대놓고 신석주에게 장사로서 대결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신석주는 번번이 이런 천봉삼의 바람을 무너뜨리고 술수를 써 천봉삼을 궁지로 몰아세우려 한다.

 

조소사(한채아)를 사이에 두고 신석주와 천봉삼이 벌이는 밀고 당기기는 <객주>에 장사는 안보이고 심지어 막장 같다는 얘기가 나오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다. 조소사는 천봉삼의 아이를 낳지만 신석주는 그 아이를 자신의 아들로 두려는 욕망을 멈추지 않는다. 잠깐 안아보자고 조소사로부터 건네받은 아이를 안고는 도주해버리는 장면은 실제로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풍경이었다.

 

용대리에 말뚝이(황태) 덕장을 직접 만들어 신석주의 독점을 막으려는 천봉삼의 노력에, 신석주의 사주를 받은 길소개(유오성)는 덕장 창고에 쌓아둔 말뚝이에 불을 질러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천가객주에 관군을 몰고 가 쫓기는 신세인 쇠살주 조성준(김명수)을 잡는다는 핑계로 토포를 하고, 여기에 질투에 눈이 먼 매월(김민정)까지 조소사를 죽여달라는 요구를 함으로써 대신 방금이(양정아)가 살해되는 일도 벌어진다.

 

이런 사정이니 <객주>에 정작 장사가 보이지 않는다는 불만이 나오는 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객주>가 그리고 있는 것이 온전히 장사 이야기에만 국한되지 않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천봉삼은 신석주의 독점으로 막혀 있는 판로를 뚫고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아예 자체 생산을 하는 장사의 신다운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신석주는 그런 장사를 통한 대결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막장에 가까운 일들을 막후에서 벌임으로써 자신이 갖고 있는 장사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려 한다.

 

지금의 대중들이 원하는 건 아마도 공정한 장사로서의 대결일 지도 모른다. 최소한 공정하기만 하다면 실패한다고 해도 그다지 서럽게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네 현실에서 장사의 성공은 그런 공정함과는 거리가 멀다. 돈이 많은 자들은 자본의 힘으로 영세 상인들이 힘겹게 일궈온 장사 밑천들을 하루아침에 밀어버릴 수 있는 환경이다. 때로는 그 불공정한 경쟁의 우위를 잡기 위해 불법적인 정치적 결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심지어는 법 역시 가난한 자들을 핍박하기 위해 도용되기도 한다. 지리한 소송 끝에 영세한 상인들은 잘못한 일도 없으면서 무너져 내린다.

 

안타깝지만 이게 우리네 현실이다. 장사가 어려운 건 장사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헤게모니들의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행위들 때문이다. <객주>가 온전히 장사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지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는 아닐까. 결국 <객주>가 보여주려는 건 단순히 장사를 잘해 일가를 이룬 장사의 신을 그리려는 게 아니라, 육의전 신석주로 대변되는 기득권자들이 모든 걸 장악한 현실에서 그들과 싸워나가는 그 과정이 아닐까. 장사는 안하고 술수와 모략들만 넘쳐난다는 비판은 공감 가는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네 현실이 그렇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