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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유퀴즈', 시청자들 먹먹하게 만든 기름 가게 부부의 위대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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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퀴즈’ 흉년만 가득했다는 부부가 남긴 삶의 지혜

 

“우리는 얘기를 할 줄 모르는데...” 머리에 고춧가루가 묻은 채로 나와 유재석과 조세호를 맞은 이기향·이송식 부부는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는 걸 겸연쩍어 하셨다. 동네 가득 고소한 기름 냄새를 퍼트리며 참기름 가게를 운영하는 부부. 결혼한 지 37년이 된 부부에게 첫 인상이 어땠는가를 묻자 엉뚱하게도 둘 다 서로가 별로였다는 솔직한 답변이 웃음과 함께 나온다. 시아버님이 자기가 좋다며 중매로 맺어준 인연이라고 밝힌 기향씨는 당시에는 사랑 이런 것도 잘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이 착하고 살아가면서 맞춰가며 살게 되더라고...

 

남편 송식씨는 무뚝뚝했다. 기향씨의 매력을 묻는 질문에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매력을... 어디서 찾노..” 했다. 반면 기향씨는 송식씨의 매력을 묻는 질문에 술술 입을 열었다. “항상 성실하고요. 여보 이러면 다 해결이 되니까. 내가 만약에 TV를 이쪽으로 옮겼다. 벌써 말을 안해도 전기선이 따라와 있어요.” 기향씨가 말하는 그 매력이 너무나 수수하고 소박해서 어딘가 가슴이 저릿해졌다. 말이 아닌 묵묵히 행동으로 보이는 송식씨도 어딘가 달라보였다.

 

그리고 20년 된 기름집을 하게 된 사연이 소개됐다. 본래 화물업을 했다는 송식씨. 화물차 10년, 앰블런스 10년, 직업을 많이 바꿨다고 했다. 그는 그 일이 ‘고독한 직업’이라고 했다. 혼자 계속 가야만 하는. 어딘지 무뚝뚝하고 묵묵히 행동으로 보이는 송식씨의 이런 면들이 이 직업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별거 아닌 것처럼 지난 일을 얘기하지만 사실은 굉장히 고단한 삶이었을 게다.

 

“환경미화원을 했어요. 2년. 그 일 할 때는 밤 12시에 나가요. 비가 막 억수같이 왔어요. (남편이) 우비를 입고 터덜터덜 나가는데 여기 서서 울었어요. 저렇게 해서 먹고 살아야 되나 싶은 게.. 그 뒤로는 잠을 못자는 거예요. 그 때는 분식집을 했어요. 떡볶이 이런 걸 했는데 그걸 해가지고는 아이들 고등학교를 못 보낼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기름집을 시작했어요. 그래서 내가 보탬이 되고 신랑이 한 번이라도 덜 가도 생활할 수 있게 하려고 저도 굉장히 열심히 살았죠. 그래서 이거 해가지고 애들 둘이 고등학교 마치고 대학교 마치고 둘이 다 직장 나가있고...”

 

그렇게 힘겨웠던 삶과 기름집을 하게 된 사연을 얘기하는 기향씨에게 이 날의 ‘공식질문’이었던 “내 인생의 풍년, 흉년은 언제였냐”고 물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변이 너무나 아팠다. “풍년은 뭐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얼마나 삶이 쉽지 않았으면 풍년의 한 순간조차 떠올리기가 어려울까. 대신 흉년을 이야기하며 기향씨는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한 3년 너무 힘들었어요. 죽고 싶어가지고. 큰 아이가 조금 아팠어요. 희귀성이라고 해서... 열다섯 살부터 진행이 됐대요. 그것도 몰랐어요. 엄마 아빠가 너무 바쁘게 살아가지고. 그 죄책감으로 견딜 수가 없어요. 초등학교가 여긴데 운동장 복판에 가서 밤에 수건으로 입을 막고 하느님 하느님 울다가 한 시고 두 시고 되잖아요.”

 

오죽했으면 한 밤 중에 학교 운동장 복판에서 수건으로 입을 막고 오열을 했을까. 그 와중에도 소리 죽여 울었던 기향씨의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우리네 서민들이 사는 삶이 아닐까 싶었다. 누군가는 큰 성공을 꿈꾸겠지만 서민들은 그저 하루하루의 흉년들을 견뎌내며 자식들이라도 그 흉년을 겪지 않으려 애써왔을 게다. 그래서 자식들의 삶이 풍년이 되길 기원하며... 마지막으로 기향씨가 던진 한 마디가 최근 우리네 복잡다단한 현실에 던지는 울림은 그래서 더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서 괜찮아졌고 중한 병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라고... 지금은 건강하세요가 인사에요. 부자도 필요 없고 예쁜 것도 필요 없고 다 필요 없어요. 우리는 어차피 한 번 태어나면 한 번 죽어요. 그러니까 그 사는 날 동안 그냥 건강하게, 정직하게 그냥 욕심 부리지 말고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가는 거예요.”(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