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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가족입니다', 22살 된 정진영의 가깝고도 먼 가족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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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입니다'의 질문, 당신은 가족을 얼마나 알고 있나

 

"어떤 과학자가 그랬어. 우리는 지구 내부물질보다 태양계의 내부물질을 더 많이 안다고. 지구에 살고 있는데 지구 내부물질을 알면 뭐하니 이런 거지. 가족이 딱 그래."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에서 김은희(한예리)가 자신의 아버지 김상식(정진영)이 야간산행을 했었다는 사실조차 잘 몰랐다는 이야기에 그의 오랜 친구 박찬혁(김지석)은 그렇게 말한다. 김은희는 스스로도 남이라고 할 수 있는 친구 박찬혁이 뭘 좋아하는지 다 알고 있으면서도 가족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자신을 인정한다.

 

이 대사에 담겨 있는 것처럼 <가족입니다>가 그리려는 건 김상식과 이진숙(원미경)네 가족의 진짜 모습이다. 그런데 그 진면목을 끄집어내는 방식이 독특하다. 어느 날 갑자기 이진숙은 김상식에게 졸혼을 요구하고, 그 이야기에 충격을 먹은 김상식은 홀로 야간산행을 갔다가 쓰러져 기억이 22살로 되돌아간다. 그런데 22살의 기억을 가진 김상식은 늘 해오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사랑꾼이 되어 아내 이진숙을 대한다.

 

"진숙씨"라고 꼭 이름을 부르고, 전혀 어울리지 않게 손을 잡고 걸으려 한다. 좋아했던 과일이 귤이었다며 청과물가게에서 귤을 산 김상식은 집에 와서는 그걸 까주며 아플 때 자신이 손이 노래지도록 까줬던 귤 이야기를 한다. 진숙은 그 상황이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언젠가부터 말을 섞으면 싸움이 벌어지고 그래서 마치 없는 사람처럼 데면데면 각자 할 일을 하며 지내온 그들이 아닌가. 진숙은 그래서 기억이 돌아오면 지금의 이 상황이 얼마나 난감할지 깨닫게 될 것이라고 상식에게 말한다.

 

자신이 휴게소에 놔뒀던 트레일러를 가지러 간 상식은 진숙을 옆 자리에 태우고 운전을 한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그 트레일러에 탄 적이 없다는 진숙의 이야기를 상식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도로에서 홀로 적재물을 고정시키는 차를 보고 도와주는 상식을 낯설게 바라본다. 그가 얼마나 성실하게 일해 왔는가를 진숙은 잠시 탄 것만으로도 뻐근해 오는 허리를 통해 느낀다.

 

22살로 돌아가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하는 상식을 통해 두 사람은 자신들의 관계를 다시금 들여다보는 계기를 갖는 것. 상식이 하는 살가운 사랑꾼 같은 말과 행동들은 그가 기억을 되찾았을 때 그에게 어떤 일깨움을 줄까. 그건 저 박찬혁이 말하는 이야기처럼 너무 가까워 소중하게 느끼지 못했던 가족과 아내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을까. 또 그의 그런 행동을 난감하게 받아들이는 진숙 또한 상식의 고단했던 삶을 이로써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가족입니다>가 흥미로운 건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여긴 가족이 어떤 계기를 통해 낯선 존재로 다가오고 그걸 통한 진정한 이해와 소통을 그려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상식과 진숙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은주와 은희가 자매라고는 하지만 하나도 닮은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 관계에 담겨진 '출생의 비밀'이 그렇고, 은주와 그 남편 윤태형(김태훈)이 유산을 경험한 후 멀어진 관계를 되돌아보게 되는 과정이 그렇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사실은 잘 몰랐던 가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만, 좀 더 확장해 보면 우리가 잘 안다는 친구나 동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는 건 별로 없으면서 가족이고, 친구이고 연인이며 동료인 관계들. 그들이 실제로는 타인을 잘 모르는 개인이었다는 걸 드라마는 드러냄으로써 이를 통한 진정한 이해와 소통을 흥미롭게 담아내고 있다.(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