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꽃은 언제든 핀다, '화양연화'가 삭막한 세상에 전한 위로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꽃은 언제든 핀다, '화양연화'가 삭막한 세상에 전한 위로

D.H.Jung 2020. 6. 1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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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화양연화', 과거는 현재를 어떻게 구원하나

 

"찾았다. 윤지수." tvN 토일드라마 <화양연화>에서 대학시절 재현(박진영)은 지수(전소니) 앞에 나타나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리고 헤어진 후 중년이 되어 어느 눈 내리는 기차역에서 재현(유지태)은 지수(이보영)를 찾아낸다. 그토록 긴 세월동안 아픈 손가락처럼 마음 언저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통증을 남기고 있던 그를.

 

<화양연화>가 그 먼 길을 돌아 재현과 지수를 다시 만나게 한 건, 현재의 그들의 삶을 되돌아보고 이제 다시는 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현실에 다시금 꽃을 피워보기 위함이다. 형성그룹 회장의 사위이자 부사장이지만 사냥개처럼 부려지며 살아가는 재현은 노조를 위해 앞장서다 배신자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의 죽음이 장산 회장(문성근)의 짓이었다는 걸 알고는 복수를 결심한다.

 

또 지수는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 윤형구(장광)와 아들 영민(고우림)을 부양하며 살아간다. 그는 끝없이 이어지는 불행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장산 회장과 결탁해 부정을 저질렀던 아버지로 인해 사랑했던 재현과 헤어졌고, 이세훈(김영훈)과의 불행한 결혼생활 끝에 이혼했다. 백화점 붕괴사고로 엄마와 동생 지영(채원빈)이 죽고 나서 아버지마저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하지만 그 불행 속에서도 지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은 대학시절 재현을 통해 들여다보게 된 약자들의 삶을 그가 놓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형성그룹에서 부당하게 해고된 비정규직들을 위해 시위에 나선다. 젊은 시절 갖고 있던 그 순수하고 선하며 정의로운 그 마음이 있어 그는 부당함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맞서며 살아낸다. 정작 재현은 너무나 먼 곳으로 떠나 달라져 있었지만.

 

그래서 중년이 되어 재현이 지수를 찾아낸 건 어쩌면 그렇게 변해버린 자신을 찾는 과정이었다. 지수를 만나 대학시절의 그 순수하게 피웠던 열정의 꽃을 다시금 들여다 본 그는 현재를 바꾸기 시작한다. 애초에는 복수심과 욕망으로 형성그룹 장산 회장과 맞서려 했지만, 지수를 만난 후 그는 본래 자신이 있었던 약자들을 들여다보고 정의를 위해 싸우기 시작한다. 비리를 고발해 장회장이 죗값을 받게 하고 주주총회를 통해 장 회장과 아내 장서경(박시연) 사장을 물러나게 하고 자신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 전문경영인을 세워 회사를 정상화시킨 것.

 

불행했던 장서경과의 결혼생활을 마무리 지은 재현은 그렇게 먼 길을 돌아 다시 지수 앞에 선다. "찾았다. 윤지수." 재현의 그 말은 아마도 자신이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았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현재의 재현은 지수를 찾아내고, 과거의 지수가 하는 말들을 들었고, 현재의 지수 역시 과거의 재현 앞에서 드디어 활짝 웃게 된다. 그리고 현재의 재현이 과거의 재현을, 현재의 지수가 과거의 지수를 꼭 안아준다.

 

화양연화. 꽃처럼 예쁘던 순간들이 있어 우리는 어쩌면 견딜 수 있는 것이고, 그런 과거들을 매 기억 속에서 만남으로써 변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일 게다. 그 때가 화양연화였다고 말하는 이들은 그래서 지금도 화양연화다. 그건 잘 살고 못 살고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는 화양연화다. 그래서 삶이 꽃이 되는 순간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슬퍼할 것도 이미 지나버렸다고 아쉬워할 것도 없다. 삶은 언제나 흐르고 있고 꽃은 언제든 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먼 거리를 버텨온 이들을 위해 <화양연화>가 건네는 위로다.(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