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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싱어게인', 늘 애매했다는 30호 이승윤을 발굴했다는 것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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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게인', 이토록 개성을 끄집어내준 오디션이 있었던가

 

"저는 어디서나 애매한 사람이었거든요. 충분히 예술적이지도 않고 충분히 대중적이지도 않고 충분히 록도 아니고 충분히 포크도 아니고 그래서 제가 살아남는 거 약간의 환대를 받는 거 이런 게 어리둥절했습니다. 요행이 길다 하고 생각하고 있다가 어쨌든 4라운드까지 와서 '제 존재의 의의를 구체화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고요. 제가 애매한 경계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많은 걸 오히려 대변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JTBC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 4라운드 톱10 결정전 무대에 선 30호 가수 이승윤은 그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후 자신에게 쏟아진 비상한 관심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그가 자기만의 스타일로 부른 이효리의 'Chitty Chitty Bang Bang'은 서태지가 저렇게 등장했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족보 없는 무대'를 선보이며 화제가 됐다. 

 

물론 이승윤에 대한 관심이 호평 일색인 건 아니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가수라는 걸 심사위원들도 지적한 바 있고, 그건 이승윤 자신도 "어디서나 애매한 사람"이었다고 할 정도로 잘 알고 있었던 바였다. 그래서 중요해진 건 다음 무대였다. 그 무대의 파격이 일회적인 일이 아니라 이승윤이라는 가수의 독보적인 색깔인가 아닌가를 판가름하는 건 다음 무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선곡한 이승윤은 놀랍게도 그 노래 역시 그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해 들려주었다.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대안적인 스타일의 음악을 들려주는 그는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강약장단'의 귀재였다. 같은 노래도 그가 맛있게 소화해내는 이유는 때론 강하게 때론 약하게 때론 길게 늘이기도 하고 때론 스타카토식으로 짧게 끊어주는 방식으로 노래를 표현해내기 때문이었다. 그건 리듬이나 그루브를 타는 것과는 또 다른 그만의 색깔을 음악에 부여했다. 

 

그 두 번째 무대로 이승윤은 그저 '겉멋'이 아닌 진짜 자기만의 스타일이 분명히 있는 개성적인 가수라는 게 증명되었다. 이제 다음 무대에서도 그만의 색깔을 기대하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역시 호불호가 갈리긴 했지만 독특한 무대인 것만은 분명했고 "미친 애는 못 이긴다" 같은 호감이 투영된 반응들이 눈에 띠었다. 지난 회에 이승윤의 무대를 보여줄 듯 하다 끝내버린 엔딩은 시청자들의 비판을 사기에 충분했지만, 그 무대를 실제로 보고나니 제작진이 그 무대에 대해 한 주를 미뤄두고 그 기대감만큼을 채울 만한 자신감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놀라운 가창력을 가진 출연자들을 주목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독특하고 개성적인 가수를 주목시키고, 그 가치를 세우며,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세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건 이승윤이 말하는 것처럼 기성 음악시장의 잣대에 의해 애매한 위치에 서 있는 인물을 그만의 색깔 그대로 매력적으로 담아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 모두의 호평이 쏟아졌다. 그 중에서도 이선희 심사위원의 이야기는 <싱어게인>이라는 오디션의 색깔을 잘 보여줬다. "그 애매한 선상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이 바로 30호님의 음악이구나 라는 생각이고, 저는 개인적으로 보컬의 음색이 너무 특색이 있어서 그 장르를 열어가는 가수들은 굉장히 많잖아요. 그런데 음악 자체의 색깔이 특색이 있어서 그 장르를 새롭게 개척해가는 (가수는) 많지 않거든요. 10년, 20년 사이에 그런 장르의 음악을 여는 사람은 없었어요. 전 30호님이 그런 장르의 음악을 열어가는 사람이 돼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전달해드립니다. 꼭 그런 가수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김이나 심사위원의 말은 그간 자신을 애써 부정해오곤 했던 이승윤의 마음을 후벼팠다. "스스로가 자꾸 나한테 왜 이런 평가하지? 나 왜 좋아하지? 난 애매해. 그렇게 하는 게 아마 마인드 콘트롤의 일환일 수도 있지만 30호님이 자연스럽게 애정이나 사랑이나 인정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훨씬 더 멋있어지실 것 같아요." 그 말에 결국 이승윤은 눈물을 보였다. 그는 자존심 강한 가수였다. 자존심이 너무 강해 자기 색깔의 음악을 고집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시선 또한 적지 않았지만 그것을 인정하지는 않았을 게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자신에 대한 칭찬 또한 인정하지 않게 됐던 게 아니었을까. 그가 스스로를 "애매하다" 표현한 이유는 그것이었다. 

 

<싱어게인>은 사실 이승윤 같은 '애매한' 경계에 서 있다 스스로를 치부하며 그러면서도 자기 음악에 대한 자존심으로 버텨내고 있는 무수한 무명가수들에게 크나 큰 위로와 가능성을 알려준 게 되었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출연자들이 어느 하나의 잣대로 평가받기 보다는 저마다의 개성에 맞는 평가와 조언으로 한 걸음씩 성장해갈 수 있게 해주는 무대. 찐무명 63호 이무진이 그렇고, 연어장인 이정권이나 천상 헤비메탈 가수 정홍일, 팔색조의 다채로운 재능을 보여주는 11호 레이디스 코드 소정 같은 이들이 저마다의 색깔이 개성이자 매력일 수 있는 무대를 <싱어게인>은 보여주고 있다.(사진: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