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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세상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범죄스릴러의 진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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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금토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 담은 프로파일러 탄생기

최근 몇 년 간 범죄스릴러는 드라마의 한 분파를 형성할 만큼 쏟아져 나왔다. 이 작품들을 통해 프로파일러라는 범죄 분석 전문가를 우리는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바로 그들의 탄생 과정을 흥미롭게 담아내고 있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우리에게 익숙한 강압수사의 그늘

1993년에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끈 강우석 감독의 영화 <투캅스>에는 강압적으로 용의자의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베테랑인 조형사(안성기)가 자기 스스로를 마구 때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마치 심문 과정에서 형사가 용의자에게 맞은 것처럼 꾸밈으로써 겁을 집어먹은 용의자가 진술을 털어놓게 하는 수법이다. 이 장면은 수사에서 폭력이 자주 벌어지고, 그런 일들을 그리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90년대 당시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당대만 해도 형사들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버티는 범인에게 진술을 강요하며 주먹질을 하는 장면은 흔하게 등장했다. 

 

2003년 방영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에서는 이러한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수사를 풍자적으로 담아낸다. 육감으로 수사하는 형사 박두만(송강호)은 연쇄살인범을 어떻게든 잡겠다는 일념으로 동네 양아치들을 잡아다 족치며 자백을 강요한다. 바보 용의자 백광호(박노식)는 향숙이를 좋아해 연쇄살인범으로 오인되고 처절할 정도로 고문당하는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에게 과학수사라는 개념은 2000년대 넘어서야 비로소 어느 정도 생겨난 일이다. 이전에는 강압수사 장면들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 범죄물에 등장할 정도로.

 

SBS 금토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바로 그 강압수사에서 과학수사로 넘어가는 시점을 그린다. 동부경찰서 강력반 반장 박대웅(정만식)은 그 강압수사의 표본 같은 인물. 살해된 후 옷이 벗겨진 여성의 범인으로 그의 애인 방기훈(오경주)를 체포한 그는 그를 폭력을 동원한 강압수사로 범인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런 그에게 방기훈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송하영(김남길)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런 새끼들 인간 아니야. 인간 아닌 새끼들은 매질이 제일 빠르고 쉬워.” 그는 심지어 방기훈을 당시 세간을 공포에 몰아넣은 성폭행 살인범인 ‘빨간 모자’ 사건의 범인으로 몰아세운다.

 

아직 프로파일링 같은 과학수사의 개념이 자리 잡지 못했던 시절, 박대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감수성을 가진 송하영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증거를 찾기 위한 수사를 계속한다. 사건이 벌어진 집 현관에 숫자로 가족구성원을 일일이 표시해놓은 걸 발견한 송하영은 그런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는 배달원을 탐문 수사하고, 방기훈이 범인을 지목된 사건 현장에서도 신원을 알 수 없는 지문을 발견한다. 그리고 범인의 마음을 읽어내기 위해, 감옥에 있는 연쇄 성폭행범인 양용철(고건한)을 찾아가 조언을 듣는다. 결국 가택침입죄로 끌려온 조강무(오승훈)가 진범이라는 사실을 송하영은 심리적인 압박을 통해 밝혀낸다. 강압수사가 만들어내는 제2, 제3의 피해자들을 막기 위해 과학수사가 절실하다는 걸 드라마는 박대웅과 송하영의 대결구도를 통해 그려낸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 담긴 진정성

강압수사가 아닌 과학수사의 필요성을 전제하고, 우리네 사법 현실에서 드디어 프로파일링이라는 개념이 탄생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은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색다른 관전 포인트를 만든다. 보통의 범죄스릴러들이 잔혹한 범인들이 만들어내는 공포와 공분을 화력으로 삼아 그들을 추적해 잡는 과정의 카타르시스를 담는다면, 이 드라마는 그 과정이 과연 과학적이었고 증거에 근거했으며 나아가 합법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는가에 대한 질문을 더한다. 

 

물론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사건들 역시 엽기적이고 보기 불편할 정도의 끔찍함을 보여준다. 그것은 드라마가 상정하고 있는 세기말과 2000년대의 실제 범죄들이 점점 잔혹해졌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도 서구에서처럼 아무런 이유 없이 살인 자체의 자극을 즐기는 연쇄살인범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던 것. 실제로 이런 범죄양상의 변화들 때문에 프로파일링 개념의 과학수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이유가 되기도 했다. 과거처럼 원한 관계 같은 걸 아무리 들여다봐도 범인을 찾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대신 필요해진 건 그 ‘악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이다. 국내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의 실제 경험들을 바탕으로 쓴 동명의 논픽션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이 드라마는, 그래서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이나 <알쓸신잡> 등을 통해 잘 알려진 권일용 교수의 진심이 묻어난다. 방송을 통해 누구보다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하면서 어떻게든 범인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과학수사를 절실하게 공부하고 현장에서 활용해온 권일용 교수가 아닌가. 창작된 이야기로 ‘인물, 기관,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라는 사전고지로 시작하는 드라마지만, 송하영이라는 가상의 인물에서 권일용 교수의 그림자가 겹쳐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 같은 과학수사에 대한 열망이 고스란히 투영된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진정성은 그래서 이 범죄스릴러가 자극보다 공감을 더 불러일으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살벌한 범죄가 전개되지만, 그보다 과학적인 방법을 총동원해 어떻게든 진범을 잡겠다는 의지에 더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더할 나위 없는 미친 연기의 향연

연기는 단지 표현이 아니라, 실제 상황에 대한 분석과 해석에 의해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연기의 몰입감은 연기자가 사전에 얼마나 그 역할을 제대로 들여다봤는가와 비례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이미 논픽션 원작을 통한 인물 분석이나 권일용 교수와의 교감이 충분했을 디테일한 캐릭터와 사건이 구현된 이 작품의 대본은 연기자들의 연기를 더 빛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됐을 성 싶다. 

 

주인공 송하영 역할을 연기하는 김남길은 <열혈사제>의 그 흥분 가득한 과장 캐릭터와는 너무나 다른 디테일한 연기를 보여준다.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범인을 추적하면서,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하고 나아가 범죄자의 마음까지 읽어내는 감수성의 소유자가 바로 송하영이다. 심지어 양용철 같은 범죄자의 도움을 청하고 그래서 면담을 통해 그의 이야기에 몰입하지만 동시에 그는 자신과 범죄자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는 인물이기도 하다. 김남길의 차분하지만 내적 열정이 가득한 연기를 통해 구현된 송하영이라는 인물의 이런 면모는 그가 얼마나 제대로 된 방식으로 진범을 잡고 싶어 하는가를 잘 표현해낸다. 

 

여기에 이제 직접 범죄행동분석팀을 만들어 송하영에게 날개를 달아줄 국영수 팀장 역할의 진선규나, 만만찮은 카리스마가 예상되는 윤태구 역할의 김소진 같은 배우도 기대되는 대목이다. 이들을 통해 당대 과학수사가 피어나고 빛을 발하는 그 과정 속에서 강력범죄를 해결하려 애쓴 형사들의 마음도 전해지지 않을까. 

 

물론 워낙 많은 범죄스릴러를 접해와서인지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 등장하는 범죄의 사례들이 새롭게만 느껴지지 않는 면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범죄 사례보다 더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그 범죄를 저지른 악의 마음은 물론이고 이를 수사해가는 형사들의 절실한 마음까지 읽어가는 것이란 점에서 이 특별한 범죄스릴러가 주는 기대는 그 어느 작품보다 높다. (글:매일신문,사진: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