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욱 감독의 야심 찬 풍자 코미디, ‘어쩔 수가 없다’옛글들/이 영화는 봐야해 2025. 10. 7. 18:31
‘어쩔 수가 없다’, 곰곰 생각하면 빵빵 터지는 박찬욱표 블랙코미디
어쩔 수가 없다 “다 죽여버려.” 재취업 면접에 나가는 남편 만수(이병헌)에게 미리(손예진)는 그렇게 말한다. 면접 경쟁 상대들을 이기라는 말이지만, 박찬욱 감독은 이 말을 실제 사건으로 만들어냄으로써 블랙코미디로 그려낸다. “다 이루었다” 생각했던 중년의 가장이 졸지에 정리해고되어 재취업 전쟁에 뛰어들게 되고, 도저히 그 문턱을 넘을 수 없다 생각 하자 엉뚱하게도 경쟁 상대를 제거하는 일에 뛰어들게 되는 것.
이것은 <어쩔 수가 없다>라는 블랙코미디가 가진 웃음의 코드를 드러낸다. 그건 세상에 대한 풍자다. ‘다 죽여버려’ 같은 말이 이제 별 섬뜩함도 없이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경쟁 사회에서 그걸 실제로 감행하는 인물을 통해 그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쿡쿡 웃게 만드는 것이다. 제목이 ‘어쩔 수가 없다’인 이유도 그것이다. 흔히들 ‘어쩔 수가 없다’는 핑계로 저지르는 일들이(사실 누군가에게는 끔찍할 수 있는) 얼마나 많은가.
역시 블랙코미디는 멀쩡하게 보였던(실제로는 아닌) 누군가가 망가져 가는 과정에서 빛이 난다. 만수는 ‘다 이루었다’고 말할 정도로 성공했고 행복하다 자부하는 가장이다. 교외의 아름다운 전원주택에서 아내와 두 아이 그리고 반려견이 바비큐 파티를 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런 정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25년 간 제지 전문가로 일해왔던 회사가 외국계 회사의 투자로 경영권이 바뀌면서 돌연 해고 통보를 받았다. 만수 가족의 행복은 조금씩 균열을 일으킨다.
‘모가지를 자른다’고 표현하는 해고가 실제 누군가의 목을 날려버리는(죽이는) 사건으로 벌어지고, “당신이 사라져야 내가 살아” 같은 대사가 실제로 경쟁자에게 총구를 들이대는 광경으로 펼쳐진다. 그래서 취업 전쟁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살벌한 싸움이 펼쳐지고, 여기서 누락된 자들의 처절한 죽음이 그려지는데, 이것이 모두 세태를 꼬집는 풍자적 은유를 담고 있어 잔혹한 장면에도 웃음이 난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의 야심은 단지 재취업 전쟁에서 싸우는 가장들의 경쟁에만 머물지 않는다. 종이를 생산하는 제지업이라는 산업이 기계화, 자동화 되면서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심지어 한 가정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일들이 벌어지지만, 동시에 그것은 인간이 자연에게 하는 짓과 똑같이 병치된다. 나무를 송두리째 잘라 내어 인간의 문명을 담고 쌓아온 것이 바로 종이를 만든 인간의 자연 파괴적 폭력이 아니던가.
분재를 취미로 가진 만수가 억지로 나뭇가지의 방향을 뒤틀려다 부러뜨리는 것처럼, 그가 취업 전쟁 속에서 경쟁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벌이는 짓은 나무에게 행하는 폭력을 그대로 닮아있다. 차마 사체를 잘라내지 못하는(모가지를 못 자르는) 그는 사체를 분재하듯 뒤틀어 틀을 만들어 놓고 나무를 심듯 땅에 묻는다. 그리고 그 위에 마치 내일 세상이 망해도 자신은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는 위선으로 사과나무를 심는다.
나무나 식물을 자르고, 뽑고, 심는 이미지는 그래서 고스란히 인간의 행위들과 유사한 이미지로 겹쳐진다. 그가 어떻게든 들어가려는 회사의 이름이 ‘문 제지(창업자의 성이 문이다)’인 것은 그래서 이러한 제지 공정을 거쳐 아름다운 예술의 경지로 나오는 종이가 사실은 살벌한 폭력에 기반하고 있다는 ‘문제’라는 걸 드러낸다.
돈이 필요해 사고를 치는 아들이 종이로 말아놓은 담배를 피우고, 첼로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딸이 나무로 만든 악기와 종이로 만든 악보로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건, 이러한 인간이 이룩한 문명의 기반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풍자적으로 담아낸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처해진 폭력은 저 <포카혼타스>라는 작품에서 아메라카 원주민 포카혼타스와 백인 개척자 존 스미스의 미화된 판타지로 그려진 바 있는데 박찬욱 감독은 이 위선을 가장무도회에 참여하는 만수의 미리의 이야기로 꼬집기도 한다.
심지어 누군가를 죽여가면서도 “어쩔 수가 없다”고 변명하듯 말하는 만수의 모습은 그래서 재취업 경쟁에 뛰어든 가장의 서사를 넘어,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자행해온 인간의 보편적인 서사로 확장된다. 영화의 엔딩은 이를 영상 이미지로 담아낸다. 갖가지 우악스런 기계에 의해 마구 잘려지는 나무들, 그 나무들로 공장에서 말끔하게 만들어지는 종이들, 그리고 그 종이 위에 그려진 음표들로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음악들. 문명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며 해온 인간의 폭력이라는 걸 이만큼 영상적으로 압축해 담아낼 수가 있을까.
문명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작품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는 음악이 압도적인 작품이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으로 장중하게 시작한 작품은 조용필의 ‘고추잠자리’와 김창완의 ‘그래 걷자’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아름다운 첼로 연주로 소동극의 코미디 끝에 깊은 여운을 담는 처연한 엔딩을 만든다. 영상만큼 뛰어난 음악의 결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극장에 가야할 이유가 있는 작품이다.
최근 들어 박찬욱 감독의 이야기는 훨씬 더 일상 세계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그래서 <헤어질 결심>에서부터 이번 작품 <어쩔 수가 없다>를 통해 박찬욱 감독 특유의 영상미학이 우리의 일상을 보다 특별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짜릿함을 주고 있다. 한 번 봤지만 또 보고 싶은 영상미학과 그 안에 담겨진 풍자적 코미디들이 가득한 작품이다. 결코 그 야심찬 기획을 안 보고는 넘어갈 수가 없는. (사진:영화'어쩔 수가 없다')
'옛글들 > 이 영화는 봐야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정도면 조정석표 코미디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2) 2025.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