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손택은 '타인의 고통'을 통해 

전쟁에서 참혹하게 도륙당한 사체가 담긴 사진이

당대의 실제를 온전히 전할 수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 사진은 결국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 선택되고 편집된 것이며

심지어는 '제목'이 붙여짐으로서 사진 찍은 자의 의미로 재해석된다.

그것이 누군가의 '실제적인 고통'을 담은 것이라고 해도

그 사진은 그 고통받는 자를 온전히 드러낼 수 없고

대신 사진 찍은 자의 의도로 재해석된다는 점에서 '착취적'이다.

심지어 그런 사진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연민'과 '동정'을 불러일으킴으로 해서

실제 사건에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마치 개입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렇게 저 바깥의 '타인의 고통'은 방관된다. 

가능한 사랑

이창동 감독의 영화 '가능한 사랑'을 보며

내내 바로 이 '타인의 고통'을 떠올렸다. 

옥쇄 파업까지 하며 형동생하던 동료들과 끝까지 싸우려 했지만

공권력이 투입되어 잔혹한 폭력으로 해산되면서

해고 노동자 호석(설경구)은 숨을 쉬지만 '죽은 자'가 된다.

밥줄이 끊긴 것만큼 아픈 건 형동생하던 동료들과의 연대마저 끊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런 그를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가 인터뷰 하려 한다. 

트라우마 때문에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조차 힘든 호석은 극구 거부하고

예지는 호석의 아내 미옥(전도연)을 인터뷰 하며 친구처럼 친해지고

결국 호석에게도 인터뷰를 허락받는다. 

예지는 다큐 감독은 대상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실제로 예지는 미옥과 호석에게 호의를 갖고 다가가고

그녀의 남편 상우는 그런 예지의 '예술적 열정'을 지지해준다. 

 

하지만 예지의 카메라는 어딘가 욕망을 숨기고 있다. 

미옥이 하는 이야기를 듣다 그것이 뭔가 감흥을 주면

갑자기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카메라를 설치하고 다시 이야기를 해달라는 식이다.

그렇게 예지의 카메라는 슬쩍 슬쩍 미옥과 호석의 삶 속으로 들어오고

급기야는 그들이 원치 않는 이야기나 모습까지 애써 담으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가능한 사랑

일제강점기에 경찰을 지낸 선조들로부터 이어진 부유함으로

서해안에 혼자 발가벗고 수영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개인 해변이 있는 별장까지 가진 상우(조인성)는

예지의 인터뷰를 위해 호석과 미옥 그리고 그 아들을 그곳으로 초대한다.

그건 호의처럼 보이고 실제로 바다가 보이는 창을 가진 방과

화려하고 격식있는 음식들을 대접하는 상우와 예지의 환대는 진심이다. 

하지만 미옥은 새벽녘에 호석이 홀로 바닷가 숲에 들어가 절규하는 모습을 볼 때

그들을 뒤따라와 카메라에 담는 예지를 보고는 이 사태의 실체를 감지한다. 

예지의 카메라가 그 '착취'의 시선을 드러낸 것이다. 

 

호석이 고통을 호소하며 인터뷰를 할 때

예지는 양가감정을 느낀다. 

그가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일수록 자신의 작품은 빛날 것이라 여기며 반색하게 되지만

동시에 너무나 고통스러워하는 호석을 그렇게 인터뷰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걸 동시에 느끼게 된다. 

미옥은 그 광경에서 분명히 깨닫는다.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상우-예지의 삶과 자신 부부들의 삶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선이 있고

그 겹쳐진 부분에서 자신들의 삶이 저들에게 '착취'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가능한 사랑

그들은 똑같은 '달'을 보면서도 

달에 대해 다른 감정을 갖게 되는데

그건 달을 보며 해온 다른 경험들 때문이다. 

 

흔히 다큐는 객관적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더할 나위 없이 주관적이다.

그건 누군가의 시선이 선택되어 찍혀지고 편집되기 때문이다. 

저 하늘의 달은 그래서 누군가의 시선에 포획될 때 똑같은 달이 아니다.

특히 카메라에 찍힌 달은 더더욱 그렇다. 

여기서 사진이나 영상을 활용한 예술이 맞닥뜨리게 되는 윤리적 딜레마가 들어선다.

'타인의 고통'을 담는 일은 과연 누군가에게 그걸 전하기 위한 재현일까 아니면 

그 본질을 깨는 착취일까. 

가능한 사랑

영화 클라이맥스에 미옥과 상우가 해변가에서 벌이는 해프닝은

바로 그 착취에 대한 미옥의 투우사 같은 대응으로 그려지고

영화 마지막에 호석과 미옥이 함께 앉아 바라보는 달에 가득한 달무리는

아무리 실체를 담으려 해도 그걸 담는 시선에 의해 흐릿해지는 피사체를 은유하는 것만 같다. 

 

과연 실체를 온전히 담는, 즉 사랑하는 건

어디까지 가능한 일일까.

아니 가능하긴 한걸까. 

2026.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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