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 어른들은 어떻게 아이들을 망치고 있나

 

JTBC 금토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의 제목은 역설적이다. 그 어디에서도 아름다운 세상의 모습을 찾기가 어려워서다. 학교 옥상에서 추락해 의식불명이 된 선호(남다름). 학교는 서둘러 자살시도라 단정 짓고 사안을 덮으려 한다. 심지어 선호가 친구들에게 이른바 ‘어벤져스 게임’이라며 집단 구타를 당하는 영상이 발견되지만 가해학생들은 ‘장난’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결코 장난 수준이 아니다. 거기에는 항상 교실에서는 착한 우등생의 얼굴을 하고 있는 학교 재단 이사장 아들 오준석(서동현)의 보이지 않는 ‘조종’이 존재한다.

 

준석은 이 드라마에서 천사와 악마의 얼굴을 오가는 형상으로 묘사된다. 공부도 잘하고 집도 부자인데다 권력까지 갖고 있는 이사장 아들이라는 사실은 그가 아이들을 지능적으로 조종하고 괴롭히며 군림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는 겉으론 친절한 척, 착한 척 하지만 한동희(이재인)처럼 이미 왕따 경험을 하고 전학 온 약한 아이를 또 다시 왕따시키고, 친한 친구로 지냈던 선호가 그것이 옳지 않은 일이라며 그에게 반기를 들자 그조차 집단 괴롭힘을 조장한다.

 

심지어 자신이 뒤에서 어벤져스 게임의 배역을 정해주고 지시를 내렸다는 사실이 학폭위에 의해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그 장소에 함께 있었던 조영철(금준현)에게 선물을 주며 자기 편으로 만들고 진실을 말한 이기찬(양한열)을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운다. 아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무표정한 얼굴과 가장된 눈물 그리고 뒤돌아서 보이는 미소는 시청자들을 끔찍하게 만든다.

 

그런데 <아름다운 세상>이 하려는 이야기는 학교 폭력을 저지른 아이의 잘못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이 아이가 어떻게 해서 이런 괴물이 되어가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준석은 어쩌다 친구까지도 왕따시키고 집단 폭력을 당하게 만드는 그런 인물이 되었을까. 그것은 그의 아버지인 세아교육재단 이사장 오진표(오만석)의 엇나간 자식 교육에서부터 비롯된다.

 

오진표는 세상을 움직이는 건 단 몇 프로의 상위그룹이라고 생각한다. 준석이 100년이 넘은 세아교육재단을 이어받을 후계자로서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다고 그는 말한다. 준석은 이러한 ‘위계’가 심지어 친구 사이에도 당연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반기를 든 선호를 집단 린치하게 만들고는 친구 사이에도 서열이 있다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결국 그래서 사건이 벌어진다. 학교 옥상에서 준석은 선호와 다퉜고, 그 와중에 선호는 추락했다. 그건 사고일 수도 있었지만 문제는 그 사고가 ‘사건’이 되게 만든 준석의 엄마 서은주(조여정)다. 그 날 옥상에서 준석을 발견한 서은주는 선호의 추락을 자살기도로 위장하기 위해 현장을 조작한다. 훗날 준석은 엄마에게 말한다. 그 날 자신이 모든 걸 다 봤다고. 일을 이렇게 만든 건 그래서 엄마 때문이라고.

 

<아름다운 세상>이 날카롭게 들이대고 있는 시선은 바로 이 지점이다.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고,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어른들은 서둘러 진실을 덮으려 하거나 조작하려 하고 심지어 피해자를 주변 사람들까지 피해를 주는 인물로 몰아세운다. 인간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이지만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다는 그 명목은 모든 걸 정당화하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킨다.

 

그런데 결과는 어떨까. 그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다는 그 일련의 행동들은 오히려 아이들을 망가뜨린다. 아이들은 부모들이 하는 일련의 행동들을 보며 그것이 세상이라고 배운다. 그래서 잘못을 저질러도 힘이 있으면 벌을 받지 않을 수 있고, 죄에 가담했어도 무조건 우기면 죄가 아닌 것이 될 수도 있으며, 심지어 힘 있는 사람에게 붙어야 살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거짓도 불사하며 친구도 버려야 한다는 걸 배운다.

 

반면 아이가 옥상에서 추락하는 그 사건을 통해 그 부모는 자신들이 얼마나 어른으로서 잘못해왔는가를 뼈저리게 깨닫는다. 선호의 아버지 박무진(박희순)은 학교선생님으로서 입바른 소리를 해왔지만 실제로 한 발 더 나아가 아이들의 사정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자신을 ‘후진 어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깨달음이나 후회, 자책감을 보이는 인물조차 없는 이 비정한 세상에서 그는 결코 ‘후진 어른’이 아니다. 그야말로 이제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하는가를 알게 된 진정한 어른이다.

 

동생 동희가 왕따를 당해왔고 심지어 너무 괴로워 죽을 생각까지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동수는 동생을 괴롭힌 아이들을 죽도록 때려주겠다며 분노를 드러낸다. 하지만 박무진은 그것이 아무 것도 해결해줄 수 없다고 말한다. 동수가 그러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뭐냐고 외치자 박무진이 말한다. “들어줄 수 있잖아. 동희 이야기 들어줄 수 있잖아. 난 우리 아들 이야기 듣고 싶은데 들어줄 수가 없어. 들어줄 수 있었는데 기회를 놓쳤어. 그게 얼마나 후회되고 괴로운 줄 알아?”

 

우리는 과연 제대로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가 매일 같이 치열하게 뛰어다니고 누군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 삶은 과연 우리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박찬홍 감독과 김지우 작가는 전작이었던 <기억>에서부터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들의 근원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마도 세월호 참사가 가져온 충격이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기억>이 기억을 지워내려는 시스템 속에서 결코 지워내선 안 되는 기억의 문제가 있다는 걸 드러냈던 것처럼, <아름다운 세상>은 어떤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파악해내는 일과, 그런 정의가 존재한다는 걸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일이 진정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있다.(사진:JTBC)

마블 마니아들부터 보통 관객까지 매료시킨 캐릭터의 전시장

 

열풍이라기보다는 광풍에 가깝다. 모이면 영화 <어벤져스:엔드게임> 이야기를 한다. “봤냐?”는 이야기로 시작된 영화 이야기는 그간 이 시리즈가 채워 넣은 무수한 캐릭터들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10여년 가까이 쏟아져 나온 마블의 슈퍼히어로물들을 꾸준히 챙겨봤던 사람이라면 한 챕터를 끝내는 이 작품에 대한 소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시리즈의 ‘마지막’이라는 의미가 이토록 우리네 대중들에게도 깊게 여운을 남기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의 무엇이 우리 대중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것일까.

 

영화 시작 전부터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고, 사전 예매율이 치솟았던 건 두 가지 요인 때문이었다. 그 하나는 이번 편이 이 시리즈의 마지막이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지난 ‘인티니티 워’의 타노스에 의해 슈퍼히어로들이 재처럼 사라져버리는 충격적인 엔딩과 그로 인해 지금껏 무수히 쏟아져 나왔던 마지막 편에서의 반전에 대한 추측들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요인이 겹쳐지자 대중들 입장에서는 안보고는 못 배기는 작품이 되었다.

 

이 정도 되면 <어벤져스:엔드게임>에 대한 기대감은 최고조로 올라왔다고 볼 수 있다. 때로는 이런 기대감이 자칫 영화를 망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즉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시작부터 빵빵 터트리며 시선을 잡아끌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 같은 걸 만들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놀라운 건 <어벤져스:엔드게임>은 이러한 부담감 자체를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듯, 평소대로의 편안한(어찌 보면 오히려 더 평온한) 시작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게다가 영화는 시각효과의 과잉을 담기보다는 마치 ‘마지막’이 갖는 어떤 쓸쓸한 정서 같은 걸 담아내면서 관객의 마음을 툭툭 건드리기 시작한다. 물론 마블 슈퍼히어로물에서 빠질 수 없는 유머들도 곳곳에 채워진다. 그래서 관객들은 볼거리의 자극이 아니라 ‘마지막’이 주는 울컥하는 감정들과 동시에 이를 깨치기 위해 애써 노력해 던져지는 유머가 주는 웃음의 정서 속에 자연스럽게 빠져든다. 물론 이건 뒤로 갈수록 점점 거대해지는 스펙터클한 영상들을 위한 밑그림 같은 것이지만.

 

<어벤져스>라는 기획 자체가 그렇지만 이번 마지막 시리즈에는 무수히 많은 마블의 캐릭터들이 거의 ‘융단폭격’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쏟아져 나온다. <아이언맨>이나 <헐크>, <캡틴 아메리카>, <토르> 같은 시리즈는 물론이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캡틴 마블>, <블랙팬서>, <스파이더맨> 등등 마블이 그간 해왔던 시리즈의 캐릭터들이 거의 이 한 작품 안에 꽉꽉 채워져 있다. 전부를 보지 못했어도 그 중 한두 작품에서 캐릭터의 매력을 느꼈던 관객이라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 저마다 시공간 자체가 다른 캐릭터들이 한 작품 안에 녹아들 수 있었던 건 마블의 독특한 세계관 덕분이다. 시간을 뛰어넘고 지구와 지구 반대편의 우주라는 공간을 뛰어넘는 상상력의 세계는 이 모든 캐릭터들의 공존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저마다 한 세계씩을 평정하고 있는 슈퍼히어로들의 이야기를 싱겁지 않게 만들어주는 건 인물들이 가진 결함들과 그로 인해 그들끼리 갈등하는 이야기 구조 덕분이다.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에 이어 지난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에서도 등장한 것이지만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대결구도는 이번 마지막편으로까지 이어지고 그것을 해결해가는 과정 또한 이 영화를 흥미롭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무엇보다 이 거대한 전쟁을 가능하게 만든 건 슈퍼히어로들의 총합인 어벤져스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타노스라는 절대적인 캐릭터를 창조해낸 점이다. 세계를 파괴하는 존재지만 단 한 번도 ‘사적인 감정’이 들어간 폭력을 휘두른 적이 없다는 이 캐릭터는 그래서 희대의 빌런이지만 마치 주어진 숙명을 받아들이는 신화적 존재처럼 그려진다. 이 막강한 빌런이 세워지면서 <어벤져스:엔드게임>의 슈퍼히어로들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가능해졌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네 대중들은 마블의 세계에 이토록 열광하게 된 것일까. 거기에는 영화 자체가 주는 재미와 더불어 지금의 중장년층들이 가진 키덜트적인 취향에 마블의 세계가 조응한 면이 있어서다. 그래픽 노블이 보여주듯이 이 만화적 세계는 결코 유치하지 않고 또 너무 뻔한 권선징악의 구조로 되어 있지도 않다. <캡틴 마블>의 여성 슈퍼히어로와 <블랙팬서>의 흑인 슈퍼히어로처럼 무엇보다 다양한 캐릭터들이 상징하는 인물군들의 이야기가 새로운 시대의 생각들까지 잡아넣는다. 그러니 아이부터 젊은 세대는 물론이고 중장년까지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세계가 된 것. 열풍을 넘어 광풍이 부는 이 현상이 공감가는 대목이다.(사진:영화'어벤져스:엔드게임')

'녹두꽃' 윤시윤이 든 성냥, 그리고 조정석이 들 횃불

 

시작부터 뜨겁다.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이 첫 회부터 활활 타올랐다. 탐관오리들에 의해 착취당하고 굶주리며 길바닥에 나뒹굴던 민초들은 그 손에 농기구 대신 횃불과 죽창을 들었다. 녹두장군 전봉준(최무성)이 이끄는 민초들은 조선의 봉건적 틀을 벗어나 ‘사람이 곧 하늘(인내천)’인 후천개벽의 세상의 기치 아래 모여들었다. <녹두꽃>에는 근대가 열리는 그 시점의 뜨거움이 시작부터 전개되었다.

 

사실 사극에서 혁명 같은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기까지는 꽤 많은 전조를 깔기 마련이다. 굶주리고 피폐한 민초들의 삶이 조명되고 그와 반대로 호의호식에 주연을 일삼는 탐관오리 조병갑(장광) 같은 인물과, 그 권력에 덧대 백성을 수탈하는데 앞장서며 자신의 치부만을 위해 살아가는 백가(박혁권) 같은 아전의 이야기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녹두꽃>은 이런 이야기의 서두를 길게 잡지 않았다. 첫 등장에 말을 타고 유학에서 돌아오는 백이현(윤시윤)이 길바닥에 주저앉아 굶어 죽어가는 민초에게 밥 한 덩이를 던져주는 장면만으로 그 많은 이야기들은 충분히 설명되고도 남았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지옥이 누군가에게는 극락”이라는 전봉준의 말 한 마디와 더불어, 저잣거리의 피폐된 민초들의 모습과 관아에서 주연에 빠져있는 조병갑과 호의호식하는 백가의 모습을 대비해 보여줬다.

 

이 양극단의 풍경은 탐관오리의 수탈이 민초들의 피폐한 삶의 원인이라는 걸 말해주는 것이고, 전봉준이 횃불을 들고 봉기하게 되는 이유를 그대로 설명해준다. 물 흐르듯 빠른 전개로 이어진 드라마는 그 안에 백이강(조정석)과 백이현이라는 배다른 형제의 상반된 캐릭터를 부각시켰다. 한 아버지인 백가로부터 나온 두 인물이지만 백이강은 노비의 소생으로서 백가를 대신해 갖은 악행을 저질러온 인물이다. 반면 백이현은 정실의 아들로 일본에 건너가 신문물을 배우고 돌아온 인물로 자신의 형인 백이강이 그런 삶을 살아온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는 인물.

 

백가라는 도저히 상종하기 어려운 아버지를 두고 있는 형제로서 둘 다 그 삶에 분노하고 있지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 상황을 받아들인다. 백이강이 어머니를 위해 그저 자신을 학대하듯 민초들을 괴롭히며 백가의 앞잡이로 살아가는 반면, 백이현은 백가 앞에서는 웃지만 사실은 어떻게든 그로부터 벗어나 조선을 ‘개화된 세상’으로 바꾸고 싶어 한다. 결국 백이강 역시 그런 삶에서 벗어나 동학군의 별동대장이 될 거라는 점은 이 형제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버지에 항거하는 삶을 선택한다는 걸 말해준다.

 

<녹두꽃>은 이처럼 백가라는 아버지 밑에서 이를 깨치고 나오려는 백이강과 백이현의 이야기로 당대 조선의 상황을 그대로 담아낸다. 왕을 어버이라 여기던 봉건사회. 그래서 그 어버이가 잘못된 길을 가도 받아들여야만 했던 그 사회로부터 벗어나, 잘못된 걸 바꾸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근대를 열어가려던 동학혁명의 그 과정이 이 집안의 이야기로 그려져 있다.

 

흥미로운 건 백이현이 유학에서 가져온 성냥과 백이강이 눈앞에서 목도했고 앞으로 자신도 들게 될 그 횃불이 가진 상징성이다. 백이현은 불씨 하나를 꺼뜨려도 소박을 맞는 조선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성냥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개화’를 꿈꾼다. 반면 백이강과 동학농민들은 수탈에 당하고만 살아왔던 민초들이 이제 그 잘못된 세상을 뒤집고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는 ‘혁명’을 꿈꾼다.

 

지금껏 사극들이 무수히 많은 조선시대의 역사들을 가져왔지만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가져오지 못했던 건 왜였을까. 그것은 사극이 과거의 역사를 그저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요구에 의해 재현되는 장르라는 걸 말해준다. 무수한 촛불을 경험하고, 그 힘들이 모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현재가 동학농민혁명을 다시금 소환해 그 의미를 되묻고 있다는 것. 촛불 이전에 횃불이 있었다는 걸 <녹두꽃>은 성냥을 가져온 백이현과 횃불을 들게 되는 백이강을 통해 그려내려 하고 있다. 그 면면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유다.(사진:SBS)

‘유퀴즈’,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보통 사람 이야기들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어느 날, 용산으로 나선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그 곳에서 유재석과 조세호는 누굴 만나고 무엇을 이야기했을까. ‘라 비 앙 로즈(장밋빛 인생)’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슬쩍 스케치해서 보여주는 이 날 이 곳에서 유재석과 조세호가 만난 사람들의 면면은 훈훈함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거기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거나 지나쳤을 식당 아주머니도 있고 건강원 아주머니, 철도원, 방앗간 사장님 등의 모습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담겨 스쳐간다. 아마도 매일 출퇴근하며 마주쳤을 그 분들은 저마다 그 곳에서 자신들만의 ‘역사’를 쌓아가고 있었을 게다. 가까이 다가가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용산이라는 특유의 공간이 주는 느낌 때문일까. 용산에 있는 한글박물관에서 유재석과 조세호가 만난 정기훈씨부터 이 날의 만남에 대한 기대감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역사전공자로서 이 곳에서 청년 멘토로 일한다는 정기훈씨는 “역사란 뭐라 생각하시냐”는 질문에 “역사는 한 공간 안에서의 시간의 축적”이라는 의미심장한 답을 남긴다. 그런데 그 답변은 마치 이 날 이 프로그램이 찾아간 용산의 오래된 골목길에서 만날 분들에 대한 복선 같았다. 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축적하며 살아오신 그 분들.

 

용산은 재건축이 이뤄지며 거대한 랜드마크가 들어섰지만, 그 뒤편에는 마치 시간을 뒤로 되돌린 듯한 개발이 되지 않은 옛 거리가 남아있다. 유재석과 조세호는 고층 건물들 아래 여전히 자리한 그 골목을 걸어 나간다. 랜드마크는 시간을 밀어내고 미래를 쌓아올렸지만, 그 골목에는 여전히 시간과 거기 축적된 역사들이 옛 모습 그대로 반가운 얼굴을 내민다.

 

오랜 세월을 함께하다보면 닮아가기 마련이라던가. 비 오는 날이라 손님이 뜸한 감자탕집 사장님 부부는 얼굴부터가 닮았다. 집안일에는 도움이 안되지만 집 바깥 일 봉사 같은 데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아내 앞에서 반은 겸연쩍고 반은 미안한 남편은 시종일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웃으며 연중무휴 가게를 지키느라 해외여행 한 번 못 가봤다는 아내는 남편이 자신은 몇 번 갔었다는 말을 금시초문이라는 듯 들으면서도 연실 웃음을 지어 보이신다. 어차피 자신은 식당을 비울 수 없다며 웃는 그 모습에서 그간 이 분이 살아오신 삶의 무게 같은 게 느껴진다. 그런 아내가 못내 안 쓰러운지 퀴즈 대결에서 돈을 벌면 아내 여행자금으로 주겠다 말씀하시는 남편에게서는 잘 드러내지 않았을 아내 사랑이 느껴진다.

 

한쪽에 거대한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어 개발이 되지 않는 곳은 그 그림자에 가려지고 있는 이 골목은 감자탕집 사장님 말씀대로 “장사를 안 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장님은 동네가 활성화되어 다 같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며 “더불어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이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사장님은 “사람도 정서가 없어지고 옛날 그런 게 없어지니까 어딘가 한 군데는 예스러운 게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야기 배경으로 슬쩍 깔린 영상은 지금도 이런 곳이 남아있을까 싶을 철길과 건널목 풍경이다. 워낙 예스러운 거리라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했던 용산 백빈 건널목의 광경.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이선균과 아이유가 퇴근길에 건너다녔던 그 건널목이다. 지친 하루의 발걸음이 집으로 향하는 시간, 땡땡 소리를 내며 기차가 지날 동안 내려져 있는 건널목 차단기가 잠시 동안이나마 모두를 멈춰 세우며 쉬어가라 말하는 듯 했던 그 공간이다.

 

길을 가다 우연히 들르게 된 자전거 가게 사장님은 속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장님은 자동차여행은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게 많고 도보여행은 진행 속도가 너무 느려서 세계일주를 하려면 10년에서 15년이 걸릴 거라고 했다. 반면 자전거로 하면 3년이면 세계일주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느리지만 그렇다고 아주 느리지도 않은” 그 자전거의 속도가 좋다고 했다. 그 이야기에서 문득 삶의 속도를 떠올려본다. 우리는 어떤 속도로 달려가고 있을까. “개발이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감자탕집 사장님의 말씀이 다시금 들려오는 듯 하다.

 

슬쩍 보여줬던 백빈 건널목을 찾아온 두 사람은 드라마에 나왔던 장면을 떠올리며 그 ‘땡땡거리’라 불리는 곳에서 상근하시는 철도원 아저씨에게 인사한다. 2~3분마다 기차가 지나간다는 그 곳은 아마도 살기 그리 좋은 곳만은 아니었을 게다. 하지만 유재석이 말한 것처럼 이런 곳이 이제는 “점점 귀한 곳”이 되어간다. 맛난 닭갈비에 막국수 그리고 밥까지 볶아 든든히 배를 치운 유재석과 조세호는 다시 길을 나서고 그 곳에서 39년째 방앗간을 한다는 아저씨와 드라마 같은 그 삶을 듣는다.

 

10남매가 사는 시골집에서 농사짓는 게 힘들어 어린 나이에 무작정 집을 나와 상경했다는 아저씨는 어느 식당에 갔던 게 인연이 되어 50년 넘게 방앗간 일을 하게 됐다고 했다. 홀로 상경해 느꼈을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까. 그 어린 소년을 식당 주인이 방앗간에 소개했고, 그곳에서 13년 동안 든든히 밥을 먹을 수 있는 게 행복해서 일을 배우게 됐다는 사장님은 그 후 독립해서는 부러울 게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새벽 3시 반이면 나와 일을 한다는 사장님이 그 50년 넘게 부대끼며 살아왔을 방앗간에서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느껴진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어느 길거리라는 공간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이지만,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자신들의 시간을 보여준다. 그 시간은 작아보여도 위대한 저마다의 역사들이다. 때론 공간들이 밀려나고 사라져도 그 사람들이 기억에 담고 있는 시간들은 여전히 남는다. 유재석과 조세호라는 유쾌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느껴지는 어떤 훈훈한 정서는 바로 그 곳에 사는 분들이 그 삶의 이야기로 전하는 온기 때문이다. 퀴즈가 전면에 세워져 있고 유재석과 조세호 같은 베테랑 예능인들이 나서고 있지만 진짜 주인공은 바로 그 분들이다. 그 보통 사람들의 위대한 삶의 역사만큼 생생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을까.(사진:tvN)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