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나게 된 꽃밭. 한 편에 놓인 원두막이 이채로워 잠시 쉬어가는 유재석과 조세호. 꽃들 사이로 날아다니는 나비들이 하늘하늘 마음까지 설레게 만든다. 그 길 가에서 만난 한 꽃에 물을 주고 계신 할머니. “어째서 여기가 이렇게 예쁩니까?”하고 묻자 대뜸 “사람이 예쁘니까 예쁘지”라고 답하신다. 그 말씀에서 벌써부터 어딘가 남다른 깊이가 느껴진다.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이 찾아간 인천의 어느 마을. 그 마을은 특이하게도 한 가운데 커다란 꽃밭이 있고 원두막도 있다. 그 꽃밭에 “주인이 있느냐”는 유재석의 질문에 할머니는 “주인은 없어”라고 말씀하신다. 대신 그 곳에 어떻게 꽃밭이 되었는가하는 그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쓰레기가 너무 많이 차는 거야. 그래서 꽃을 자꾸 심다 보니까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이 오더라고.”

 

본래는 관광지가 아니라 황무지였고, 쓰레기 때문에 꽃밭이 생겼다는 그 말은 너무나 역설적이다. 마치 한 편의 동화를 듣는 것만 같은 이야기. 보라색 라벤더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그 곳에서 유재석과 조세호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경탄하며 들었다.

 

“여기 포도나무 심어놨더니 어떤 도둑님이 와갖고 지난해 싹 다 따갖고...” 서운함이 있을 이야기지만 너무나 천진하게 말씀하시는 그 모습에서 할머니가 생각하는 삶의 모양이 그려진다. “우리 포도 따먹은 도둑님은 배 안 아프셨는지 좀 묻고 싶습니다. 올해는 따가지 마십시오. 동네 사람 나눠먹게.” 밝게 웃으며 그렇게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사람에 대한 할머니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인터뷰 해봐야 별 볼일 없다며 손사래 치시는 68세 꽃밭 요정 하유자 할머니와 나누는 이야기. 이름이 별로 안 예쁘다며 할머니는 “아버지가 나를 가진 지 3개월 만에 돌아가셔서 유복자라서 유자라고 지었다”는 이름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신다. 아버지가 없어 나물죽을 먹을 정도로 어려웠다는 당시 열아홉 소녀는 낯선 서울로 돈 벌러 오게 됐다고 한다. “공순이였지 말하자면.” 그러다 지금 사는 집을 사게 됐을 때 굉장히 행복했더란다.

 

그리고 할머니가 사시는 동네 자랑이 이어진다. 알고 보니 그 꽃밭은 현재 ‘도로부지’로 언제 개발이 될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마을을 관통하는 8차선 도로의 부지였던 것. 도로 하나가 마을들 사이에 놓여 왕래를 끊어버릴 수 있다는 소식에 세 사람이 뭉쳐서 반대를 하기 시작한 거라고 했다. 할머니는 이 꽃밭이 앞으로도 이대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도심 속에 ‘작은 쉼표’ 같은 공간이 아니냐며.

 

유재석은 오랜 만에 나비를 봤다고 했고, 조세호는 산새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세 분이 나서서 시작된 일이지만 마을 사람들이 사비를 들여 무려 7-8년 간이나 가꾸게 된 꽃밭.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아요. 꽃 피워주고 새싹 피워주고 내가 해준 것만큼 저 꽃송이들이 커요. 내가 물 주고 사랑 준 것만큼... 사는 게 뭐 별거 있나. 여기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참 좋아요.”

 

지우개로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냐는 질문에 하유자 할머니는 딸에 대한 미안함을 털어놨다. “내가 인자 식당을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데 우리 딸이 엄청 힘들었어요. 맨날 미안해. 다 못해줘가지고.” 딸 역시 당시의 어려움을 회상했다. “저희 어머니는 가게 식당을 하셨는데 저는 초등학교 때도 말 그대로 쟁반 들고 배달을 나가야 됐었어요.” 할머니는 끝내 딸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을 보였다. “우리 정은이한테 내가 많이 미안해요. 어릴 때는 앞만 보고 살아서. 우리 딸한테 미안한 거 밖에 없었요. 아유 눈물 나.”

 

하지만 딸은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했다. “항상 엄마는 나한테 많은 거를 베풀어주셔서 감사해요. 정말 괜찮다고. 괜찮다는 얘기가 제일 하고 싶어요. 엄마가 가지고 있는 거 뭐든 최선을 다해줬다고. 조금 쉬셔도 될 것 같다고. 엄마. 괜찮아. 그리고 많이 고맙고. 많이 사랑한다고 얘기 못해줘서 미안해요. 엄마 사랑합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걸 느끼게 되는 모녀의 애틋한 마음이라니.

 

이 날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부제로 ‘개화(開花)’라 붙였다. 인천이라는 지역이 가진 ‘개항’의 의미, ‘개화기’의 의미가 더해져 붙여진 부제처럼 보였지만, 그건 꽃밭이 된 황무지를 뜻하는 것이기도 했고, 그 꽃밭을 만든 꽃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20회를 지나오며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나가야할 길을 말해주는 것처럼 들렸다. 세상에 넘쳐나는 아름다운 저마다의 삶을 꽃피운 사람들을 찾아가 피워내는 일. 그렇게 하다보면 어느 새 많은 이들이 찾아와 쉬어갈 수 있고 위안 받을 수 있는 꽃밭이 되어 있으리라는 것.(사진:tvN)

‘검법남녀2’가 보여주는 시즌제에 대한 필요충분조건들

 

MBC 드라마 <검법남녀>가 시즌2로 돌아왔다. 그간 괜찮은 드라마가 끝날 때마다 시즌2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늘 존재했다. 하지만 실제로 시즌2가 제작된 사례는 많지 않다. 물론 케이블 채널은 이미 시즌제가 어느 정도는 도입되어 있는 상황이다. tvN <막돼먹은 영애씨>가 무려 시즌17을 제작했고, OCN <보이스>와 <구해줘>도 각각 시즌3과 시즌2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지상파에서도 시즌제 드라마는 시도된 바 있다. KBS <추리의 여왕>, <동네변호사 조들호>가 그 드라마들이다. 하지만 이들 지상파 드라마들의 시즌2는 생각만큼 좋은 성적을 가져가지 못했다. <동네변호사 조들호> 시즌2는 심지어 고현정의 연기력 논란까지 나왔고, <추리의 여왕> 시즌2 역시 전편에 비해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렇다면 <검법남녀> 시즌2는 어떨까. 첫 회를 통해 들여다보면 이 드라마만큼 소재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시즌제가 적합한 드라마가 있을까 싶다. 법의학자와 검사의 공조 수사를 소재로 하고 있는 <검법남녀>는 일단 그 소재가 너무나 다양하고 풍부하다. 그만큼 실제 벌어진 특수한 범죄들이 많다는 것인데, 이런 소재들을 이 드라마는 쉽게 끌어와 녹여낼 수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로 등장한 직장 내 성추행으로 고통 받던 여직원이 자해를 통해 상사에게 누명을 씌우는 이야기는 소재 자체가 현재 이슈화된 위계에 의한 성폭력의 문제를 사건을 통해 보여준다. 아직 확실히 그것이 자해로 밝혀진 건 아니지만,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여직원이 겪은 고통이 어느 정도인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칼로 찔러 상사에게 누명을 씌우고 싶을 만큼의 고통.

 

두 번째 에피소드가 다루고 있는 마약사건도 마찬가지다. 마약을 삼켜 반입해 들어온 조직원 2명이 사체로 발견되고, 마약을 꺼내려 배를 가르고 장기를 꺼낸 흔적을 발견한 법의학자 백범(정재영)이 갑자기 나타난 조직원들에게 위협을 받는 상황이 전개된다. 이 에피소드 역시 최근 버닝썬 사태 이후 급증한 국내 마약 사건에 대한 관심으로 남다른 주목을 끌게 만든다.

 

즉 <검법남녀>는 여러 사건들을 가져와 법의학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그 진실을 찾아가는 재미를 담아내는 드라마다. 하지만 여기서 수많은 사건들 중에 왜 하필 그런 소재의 사건이 다뤄지는가 하는 건 그 사건이 가진 사회적 의미와 관련이 있다. 이처럼 <검법남녀>는 법의학의 관점으로 보는 사건이자, 동시에 사회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검법남녀>가 가진 사건과 사건들이 병렬적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이 드라마가 얼마든지 시즌을 이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만큼 다룰 수 있는 사건들의 소재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한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전체 시즌을 꿰뚫고 이어지는 하나의 큰 사건과 인물의 변화 혹은 성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시즌2에서는 시즌1의 끝을 장식했던 오만상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 큰 방향성을 가질 것으로 보이고, 주인공인 백범 캐릭터에도 변화가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검법남녀2>는 굉장히 주목을 끌만큼 커다란 야심을 담은 드라마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새로운 시즌이 이전 시전만큼의 일정한 성취를 가져갈만한 작품이다. 게다가 그 시즌제는 잘만 운용된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만일 <검법남녀2>가 충실한 시즌제 드라마로서의 성공을 이을 수 있다면, 그것은 국내 지상파 시즌제 드라마의 새로운 전범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것만으로도 이 드라마의 성패가 무척 궁금해지는 대목이다.(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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