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은 없어’, 연기자들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작품인데 왜

비밀은 없어

“다 갖다버리는 게 낫겠는데요? 고기는 엄청 질기고 양념은 너무 자극적이에요. 아, 어머님이 욕하는 데만 집중을 하시느라 음식은 아들, 며느님께서 모양만 내서 나오시는 거 아닌가요? 이런 게 꼭 있어야 사진이 잘 나오는 건가? SNS에 올릴 비주얼만 남기고 맛은 하나도 안 남았는데. 여기 20년도 더 된 맛집이잖아요. 맛이 너무 많이 변했어요.” 

 

JTBC 수목드라마 ‘비밀은 없어’에서 송기백(고경표)은 대타로 출연한 맛집 탐방 프로그램에서 욕쟁이 콘셉트를 애써 연기하고 있는 가게 주인 할머니에게 그렇게 돌직구를 날린다. 알고보니 송기백은 대학 때 이 가게에 자주 왔었던 모양이었다. 그 가게에서 “갈비찜 소짜 하나 시켜놓고 남자 녀석들이 우르르 몰려 와 갖고 공깃밥 비벼서 죽어라 먹고 있으면” 그 할머니가 국물 더 주는 척하면서 고기도 더 얹어주고 그랬다고 말한다. 

 

그제서야 할머니는 어색한 욕쟁이 연기를 내려놓고 표정이 한껏 누그러진다. “아들 같은 학생들이 와서 그러고 있는데 그걸 어, 어떻게 그냥 둬.” 그게 할머니의 진심이다. 하지만 요즘 애들 입맛이 달라졌고, 또 “입으로 안먹고 눈으로 먹는다”는 말에 요리를 자식들이 하게 내준 모양이었다. 송기백의 돌직구와 작가로 참여한 온우주(강한나)의 설득으로 할머니는 직접 자신이 요리를 하겠다며 재촬영을 하자고 제안한다. 

 

이 짧은 에피소드는 ‘비밀은 없어’가 일관되게 그리고 있는 ‘진심’에 대한 이야기를 방송을 소재로 드러낸다. 이미 ‘트루맛쇼’ 같은 다큐멘터리가 폭로한 것처럼 한 때 맛집 방송 중에는 거짓 콘셉트를 세워 맛집인 척 포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비밀은 없어’는 이런 사례 중 하나를 소재로 가져와 그런 포장보다는 진심으로 다가가야 진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온우주가 방송작가이고, 송기백은 프리랜서 아나운서이며 또 김정헌(주종혁)은 ‘국민사위’로 불리는 톱스타인 ‘비밀은 없어’는 당연히 방송가의 이야기들을 에피소드로 가져왔다. 온우주와 송기백 그리고 김정헌의 삼각관계가 만들어진 것 역시 온우주가 기획했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결국 송기백은 자신을 선택하지 않으면 방송을 다 망쳐버리겠다는 민초희(한동희)를 어쩔 수 없이 선택하고, 온우주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지만 방송이 끝난 후 송기백과 온우주는 서로 좋아하는 마음을 확인하게 됐다. 

 

이로써 온우주는 방송에 비춰지는 모습과 실제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게 됐다. 방송이 나가고 전국민이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진짜로 받아들이게 될 수 있지만, 만일 온우주와 송기백의 다정한 모습이 누군가에게 드러나게 되면 자칫 거짓방송을 한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어서다. 하지만 결국 ‘비밀은 없어’는 제목처럼 두 사람의 솔직한 마음이 드러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전기 충격을 받고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된 송기백과, 과거 연인이었지만 온우주를 위한다는 이유로 거짓말을 했던 김정헌의 대비 역시 이 작품이 하려는 이야기가 결국 진심에 대한 것이라는 걸 감지하게 만든다. 거짓으로 포장하려 하는 건 결국 진실이 드러나기 마련이고, 그렇기 때문에 진심으로 다가가야 마음이 전해질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아쉽게도 시청률은 1%대에 머물러 있지만, ‘비밀은 없어’가 보는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주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드라마 역시 꾸미지 않고 진심을 드러내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가 아닐까 싶다. 특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꺼내서인지 너무나 러블리한 강한나와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연기를 보여주는 고경표 그리고 삼각관계에 끼어든 캐릭터지만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먹먹하게 만드는 연기를 선사하는 주종혁의 진심어린 연기는 이 작품을 계속 바라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 되어주고 있다. (사진:JTBC)

“당신, 피해자 아니에요.” 김세휘 ‘그녀가 죽었다’

그녀가 죽었다

“나쁜 짓은 절대 안 해요, 그냥 보기만 하는 거예요.” 영화 ‘그녀가 죽었다’에서 공인중개사 구정태(변요한)은 고객이 맡긴 열쇠로 그 집에 들어가 그 내밀한 삶을 훔쳐보는 취미에 대해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제아무리 열쇠를 위임받고 집을 소개해 주는 일을 하고 있어 집주인이 없을 때 남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하지만, 그 일의 목적을 벗어난 사적인 취미(?)는 ‘나쁜 짓’이다. 그건 가택침입에 해당하는 범법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정태는 이것이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집주인을 해코지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눈에 띠지 않는 작은 물건 하나를 가져와 수집하는 ‘취미’를 가졌을 뿐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한 짓이 범법행위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이 인물은, 어느 날 문을 따고 들어간 자리에 SNS 인플루언서 한소라(신혜선)가 피를 철철 흘린 채 죽어 있는 모습을 발견한 후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에 억울함을 호소한다. 마치 자신이 피해자나 되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이것은 거짓된 관종의 삶을 살아가는 인플루언서 한소라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은 “내가 제일 불쌍해”다. 그는 자신이 하는 행위가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에는 별 관심이 없다. 자신을 피해자라 착각하며 변명들을 늘어놓는다.

 

자신이 저지른 나쁜 짓에 무지하고 그래서 스스로를 피해자라 착각하는 이들의 삶은 현재 우리사회의 부조리한 단면을 보여준다. 잘못을 자각해야 변화가 생길텐데, 그 자체에 무지하니 자신 또한 피해자라는 착각 속에 사회는 변화의 기회를 잃는다. 형을 살고 나와서도 자신의 나쁜 짓을 자각하지 못하는 구정태에게, “당신, 피해자 아니에요”라 일갈하는 형사의 말은 그래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면이 있다.(글:동아일보, 사진:영화'그녀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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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산다’로 시청자들 사로잡은 구성환의 ‘러브 마이셀프’

나 혼자 산다

“진정한 사랑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True love begins with loving yourself).” 2018년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은 UN에서 연설을 하며 그런 말로 화두를 삼았다. ‘러브 마이셀프(Love myself)’를 주제로 한 이 연설에는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대목이 나온다. “어제 실수를 했을 지라도 어제의 나 역시 나입니다. 과거의 실수들이 모여 만든 오늘의 나도 나입니다. 지금보다 아주 조금 더 현명해질 수 있는 내일의 나 역시 나일 것입니다.... 저는 오늘의 나이든 어제의 나이든 앞으로 되고 싶은 나이든 제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라’는 이 메시지는 사실상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의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가장 큰 요인이다. 결코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 속에서 쉽지 않은 현실을 버텨내며 자칫 그것이 자신의 잘못인 양 자책하는 젊은이들에게 그건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그러니 자책 할 것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라는 것. 여기에 전 세계 대중들의 마음이 하나로 묶어졌다. 

 

최근 방송된 MBC ‘나 혼자 산다’에서 방송을 탄 배우 구성환이 의외로 큰 호응과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건 바로 이 ‘자신을 사랑하는’ 삶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사실 특별한 일이 벌어졌던 하루는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 청소를 하고 매 끼니를 챙겨먹고 루틴으로 자리한 운동을 하며 반려견 꽃분이를 챙기는 게 그 하루였다. 특별한 이벤트라면 꽃분이와 함께 한강으로 산책을 갔던 것 정도랄까. 보통 누군가의 하루라면 별 기억에도 남지 않을 평범한 하루 그 자체였다. 그런데 달라보였다. 혼자 10년 째 사는 삶이고 그래서 매일 외부 일이 없을 때면 반복되는 하루였을 테지만, 청소를 하고 매 끼니를 챙겨먹는 일 하나하나에 구성환은 정성을 들이는 모습이 역력했다. 바닥을 닦는 일에도 정성을 들였고, 식사도 제대로 챙겨 먹으며 꼼꼼하게 설거지를 하고 정리를 하는 모습이 몸에 배어있었다. 그러면서 그 하나하나를 제대로 느끼고 즐기려는 자세가 묻어났다. 옥상 평상에서 버너로 물을 끓여 믹스커피를 마시는 것 하나에도 행복감이 느껴졌고, 벌러덩 누워 쏟아지는 오수를 즐기는 모습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여유가 느껴졌다. 

 

물론 하루 종일 그저 뒹굴뒹굴 대는 것이 끝이 아니었다. 나름의 자기관리도 빼놓지 않았다. 옥상 한 편에 마련되어 있는 조촐한 운동기구들을 이용해 그는 쉬지 않고 크로스핏을 했다. 생각보다 그게 운동효과가 클까 싶을 정도로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줘 큰 웃음을 줬지만 그는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운동에 임했다. 그런 모습은 이미 2022년 ‘제1회 주도인 클럽’이라는 콘셉트로 이주승을 중심으로 ‘나 혼자 산다’ 패밀리들이 모였을 때 갑자기 동네형처럼 등장했던 구성환이 큰 웃음을 줬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체시력을 훈련하고 쉬지 않고 체력훈련을 선보이는 다소 황당한 콘셉트의 체력 훈련 모임에서 이주승의 동네 절친인 구성환은 조교 자격으로 출연해 의외의 ‘저질체력’으로 빵빵 터지는 웃음을 선사했다. 그 모습이 특히 웃음을 줬던 건 모두가 웃는 그 와중에도 홀로 시종일관 진지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건 마치 모두가 예능을 하고 있는데, 혼자 그 콘셉트의 연기를 애써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2004년부터 연기를 해온 연기자로서의 진지한 태도가 읽혀졌다. 

 

20년의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연기를 해왔지만 사실 구성환의 연기 필모는 거의 최근에 와서야 그 존재감이 드러날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다. ‘나 혼자 산다’의 스튜디오에 출연했을 때 다른 출연자들이 “조폭 아니냐”는 농담을 던졌던 건 그의 필모와도 관련이 있다. 스무살에 극단에 들어가 무대 만드는 일을 하며 생활하다 임권택 감독의 99번째 영화 ‘하류인생’에 오디션을 본 게 그의 연기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그 후로 ‘바람의 파이터’, ‘상어’, ‘무방비도시’, ‘강철중’, ‘26년’ 등등 다양한 작품에서 강한 인상의 악역을 주로 맡았다. 2016년 웹툰 원작 웹드라마 ‘통 메모리즈’에서 씨름 선수 출신 고등학생 깡패 공소민 역할로 좋은 반응을 얻었고 그 후에는 영화 ‘택시운전사’부터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스토브리그’, ‘지리산’ 등 좀더 존재감이 드러나는 역할들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특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 구성환은 토막살인범 황대선 역할로 강렬한 연기를 선보여 호평받았다. 

 

하지만 그가 해온 연기들의 대부분은 미식축구 복장을 입어야 겨우 맞는 넓은 어깨와 우락부락하면서도 순박한 느낌을 주는 인상에 걸맞는 조연이거나 악역이 대부분이었다. 어찌보면 배우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역할을 했다기보다는 주인공들을 빛나게 해주는 역할을 해왔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그가 ‘나 혼자 산다’에서 보여준 일상의 소중함을 하나하나 제대로 느끼고, 그 행복함을 표현하는 모습은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꽃분이와 함께 한강에 자신이 자주 간다는 아지트에 돗자리를 펴고 직접 만들어 싸가지고 온 햄버거 두 개를 야무지게 챙겨먹고는 벌러덩 누워 이것이 최고의 힐링이라고 말하는 소박함이라니. 집으로 돌아와 옥상에서 자신이 준비한 고기와 타이거새우를 구워 즐기는 저녁은 그래서 이제 호화로운(?) 만찬처럼 보인다. 굳이 알전구를 늘어뜨리고 불을 켜 한껏 분위기를 내면서 “이것이 미장센”이라는 구성환은 혼자 먹는 쓸쓸한 저녁이라도 자족할 줄 아는 사람만이 비로소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저는 이 삶이 정말 하루하루가 낭만이 있고 행복해요. 진짜 행복해요. 오늘 하루만 해도 먹고 싶은 음식 다 먹었고, 한강에 꽃분이랑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이게 무슨 호사일까...’ 안 행복한 게 뭐냐 물어보면 없는 거 같아요. 다 행복해요. 내 자신이 너무 행복하고 고민이 없다는 거.” 그는 그렇게 말하며 “저는 제가 제일 이상적이에요”라고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했다. 

 

어쩌다 더 많은 걸 갖고 더 많은 걸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의 기준처럼 되어 버린 시대에 구성환이 어느 하루의 일상을 통해 보여준 건 소박해도 그 삶 자체를 사랑하는 것에서 비로소 진정한 행복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짧은 방송에 평범한 하루를 보여준 것만으로도 많은 대중들이 무한한 공감과 지지를 보여준 건 구성환에게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의 행복한 페르소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글:국방일보,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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