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7 (20)
주간 정덕현
“가라, 가서 마음껏 실패하라.” 이종필 ‘탈주’북한의 최전방 군부대에서 10년 만기 제대를 앞두고 있는 규남(이제훈)은 탈북을 꿈꾼다.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고, 제대 후에도 그의 출신성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하급 노동’뿐이다. 이미 미래가 결정되어 그 어떤 선택들도 가능하지 않은 삶. 규남이 철책을 넘어 지뢰지대를 뚫고 남으로 가려는 이유다. 하지만 규남의 탈북을 어떻게든 막으려는 현상(구교환) 역시 그 상황이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귀족에 해당하는 출신성분으로 러시아 유학까지 다녀와 보위부 소좌로 권력을 누리고 있지만, 그 역시 피아노에 대한 꿈을 접었다. 무엇 하나 선택할 수 없고 정해진 운명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 이종필 감독의 ‘탈주’는 그 감옥 같은 삶으로부터 탈주하려는 청춘들의..
‘서진이네2’로 돌아온 이서진의 곰탕 같은 매력“곰탕집 하나 할까봐요.” 10년 전 정선에서 처음 tvN 예능 ‘삼시세끼’가 문을 열었을 때 자급자족을 해먹으라는 제작진의 요구에 이서진은 커다란 솥단지에 소꼬리와 뼈를 넣어 오래도록 끓여낸 곰탕을 만들었다. 손님으로 찾아와 그 맛을 본 신구, 백일섭 할배들이 유명한 곰탕집보다 낫다는 평가를 내놓자 이서진은 특유의 보조개로 환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10년 후 현실이 됐다. ‘서진이네2’로 아이슬란드에서 열게 된 한식점 ‘서진뚝배기’의 메인 요리가 바로 이서진이 끓여내는 꼬리곰탕이 됐기 때문이다. 나라 이름만 들어도 한기가 느껴지는 아이슬란드와 뜨끈한 우리의 정이 느껴지는 꼬리곰탕의 만남. 그 사이에는 10년의 세월을 거쳐 진국으로 우러..
‘돌풍’은 왜 정치드라마가 아닌 정치 활극을 선택했을까2010년 방영된 드라마 ‘대물’에서 선거 유세 중 서혜림(고현정)이 테러를 당하고 병원에 누워 있다 깨어나 “유세장은요?”라고 했던 대사는 당시 큰 화제가 됐다. 그 대사는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했다는 “대전은요?”와 너무나 유사했기 때문이다. ‘대물’은 이외에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소재로 내세웠다는 점이나, 대통령 탄핵, 잠수함 침몰, 아랍지역에서의 피랍사건 같은 소재들로부터 멀지 않은 과거 정치사의 한 장면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외압이 있었던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이 작품은 초기에 작가와 PD까지 교체되는 일이 벌어졌고 그것이 정치라는 소재의 민감한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 박근혜 전 대통..
‘탈주’, 이제훈과 구교환 그리고 홍사빈이 담아낸 처절한 청춘들의 상황극(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이종필 감독의 영화 ‘탈주’는 우리네 청춘들의 상황극에 가깝다. 군사분계선 너머의 북한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곳을 탈출해 남한으로 넘어오려 하는 규남(이제훈)의 처절한 사투를 그리고 있지만, 이를 통해 정작 하려는 이야기는 우리네 청춘들이 처한 감옥 같은 속박과 그 곳에서 탈주해 뭐든 스스로 선택하는 삶에 대한 욕망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이라는 배경은 일종의 상황이고, 그 곳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규남이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은 하나의 상황극처럼 보인다. 치밀하게 지뢰지대에 매설된 지뢰 위치를 밤마다 일일이 표시해놓고 탈주의 거사를 치를 계획을 짜는 규남이 왜 그토록 탈북을 하..
없던 카드나 동전이 나타나고, 한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순식간에 옮겨가며, 비둘기가 튀어나오고 그 비둘기가 둘로 갈라져 두 마리가 되는 마술의 세계. 그 신기함에 시선을 빼앗기던 마술쇼는 한 때 방송가에서도 뜨거웠던 프로그램 트렌드이기도 했다. 마술, 기예 심지어 서커스까지 방송을 통해 보여지며 온 가족들을 한 자리에 모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옛날 일이 됐다. 때때로 데이비드 커퍼필드가 나타나 만리장성을 뚫고 지나가는 블록버스터 마술을 보여주거나, 유리겔라가 스푼을 휘는 마술로 전 국민을 놀라게 만들었던 이른바 ‘마술의 시대’는 지나간 것처럼 보였다. 그 때 이은결과 최현우가 나타나 다시 국내 마술을 부흥시켰지만, 그 빛에 가려져 후예들의 이름은 좀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 빛나는 후예들은..
“비가 와서 그런지 미세먼지가 없네요.”- 봉준호 ‘기생충’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동익(이선균)이 사는 번듯한 2층집에 하나둘 기생하며 살게 된 기택(송강호)의 가족 이야기를 그렸다. 신분을 속이고 기택은 운전기사로, 기우(최우식)는 과외선생으로, 기정(박소담)은 미술치료 교사로, 그의 아내 충숙(장혜진)은 가정부로 들어온다. 동익이 누리고 사는 집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눈에 보이지 않게 그림자 속에 숨어 살아가는 기택 가족의 세상이 된다. 하지만 캠핑을 떠나 빈집에 남은 기택의 가족이 마치 제 집처럼 술판을 벌이고 놀 던 날 그 착각은 깨진다. 마침 폭우가 쏟아지면서 동익의 가족이 돌아오자 바퀴벌레들처럼 숨게 된 것. 그리고 그 폭우는 낮은 지대에 있는 기택의..
‘하이재킹’으로 또다시 극한의 상황 연기 선보이는 하정우이번에도 또 극한의 상황이다. 그런데 이 배우 극한 상황에만 들어가면 펄펄 난다. 하정우 이야기다. 지난 21일 개봉한 영화 ‘하이재킹’에서 하정우는 여객기 조종사 태인 역할을 맡았다. 제목에서부터 무슨 이야기일지 짐작이 가는 이 영화에서 조종사 역할인 하정우는 하이재킹을 시도해 북으로 넘어가려는 테러범에 맞서 끝까지 싸우는 민항기 조종사 태인(하정우)이라는 인물을 맡았다. 폭탄이 터져 바닥이 뚫려버린 비행기를 무사히 조종해내야 하고, 테러범의 위협을 받는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순간적인 선택들을 해야 하며, 나아가 테러범과 협상을 시도하기도 해야 한다. 비행기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영화이고, 또 하정우로서는 극 중 거의 조종..
‘핸섬가이즈’, 오컬트와 B급 코미디도 A급으로 만드는 이성민과 이희준 이 영화 수상하다. ‘핸섬가이즈’라는 제목과 강렬한 인상을 강조한 이성민과 이희준의 예사롭지 않은 얼굴에 ‘왜 다들 우리집에서 죽고 난리야’라는 문구가 들어간 포스터를 보면 어딘가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같은 섬뜩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 섬뜩한 얼굴은 어딘가 피식피식 웃음이 피어나게 만든다. 도대체 저 섬뜩함을 뒤집어 얼마나 웃기려고 작정들을 한 걸까 하는 예감 때문이다. 그 예감은 영화를 보면 적중한다. 살벌한 인상과는 달리 너무나 순박하고 착한 재필(이성민)과 상구(이희준)는 그 강렬한 얼굴을 과장될 정도로 무섭게 드러내는 것으로 먼저 웃음을 만들어낸다. 마치 귀신의 집에 들어가서 오금이 저려 쩔쩔 매는 사람들을 보며 웃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