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2’, 가난해도 당당한 한인들, 보기만 해도 먹먹해지는 이유

파친코

“근데 아빠가 하고 싶은 말은 아빤 그 큰 집은 그립지 않아. 거기서 살았던 사람들이 그립지. 진짜 부자는, 모자수야.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이란다.”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2’에서 오랜 감옥 생활 끝에 망가진 몸으로 돌아온 선자의 남편 이삭(노상현)은 아들 모자수가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말에 그렇게 답한다. 이삭 역시 그렇게 큰 집에서 살았던 사람이지만 그 곳을 떠나 가난하고 힘겨운 이들을 위해 한 평생을 헌신한 인물이었다. 삶의 불이 점점 꺼져가는 순간에도 그는 남은 사람들을 걱정하고 용서하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는 심지어 자신을 밀고해 감옥에 보낸 것이 바로 목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를 불러 용서하려 한다. 목사는 이삭을 질투한 거였다. 부모마저도 자신을 버리고 유일하게 유목사가 자신을 거둬주셨는데 이삭이 나타나면서 그 사랑이 희미해졌고 그래서 밀고했다는 것. 하지만 밀고한 후 그는 후회했다고 했다. “이게 변명이 안되는 거 압니다. 절대 용서 못하시겠지만...” 목사는 그렇게 용서를 구하기조차 어렵다는 걸 안다고 말하지만, 그 순간 이삭은 곧바로 말한다. “용서합니다. 용서합니다.” 

 

옆에서 그 말을 듣던 이삭의 아들 노아(김강훈)은 자신이 믿고 따랐던 목사가 아버지를 밀고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이 충격을 받고 어떻게 용서하냐고 절규하지만, 이삭은 말한다. “너희에게 물려줄 거라곤 이 망가진 몸뚱이밖에 없지만 그래도 이건 꼭 기억했으면 한다. 후 목사와 우리들의 운명이 다 같은 처지에 놓인 거야. 노아야. 자비는 선물도 권력도 아니야. 자비는 인정하는 거야. 살려면 항상 대가가 따른다는 거.” 그는 후 목사의 잘못조차 끌어안는 사람이었다. 

 

이민진 작가가 쓴 ‘파친코’ 원작의 첫 문장이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로 시작하는 건 아마도 이 작품이 이삭 같은 당시 한인들의 의연함을 그리려 하고 있다는 걸 말함이었을 게다. 다 같은 비극적인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던져져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그래서 후목사 같은 이에게도 용서와 자비를 베풀 수 있는 것. 그는 사람에게 중요한 건 버텨내고 살아내는 것이고, 거기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며 그걸 인정하는 것이 바로 자비라고 말한다. 

 

이삭이 자신을 밀고한 후목사를 용서하는 장면은, 땅 주인 한금자(박혜진)를 찾아가 그 땅에 군사시설이 있었고 거기 무수히 많은 이들이 죽어 묻혔다는 사실을 듣고는 그것조차 이용해 아베를 곤경에 빠뜨리려 하는 선자의 손자 솔로몬(진하)의 이야기와 교차 편집된다. 솔로몬은 아베에게 그 땅을 판 후 이 소문을 내면 콜튼 호텔 측에서 개발을 포기할 거라며 당하기만 하지는 않겠다는 복수의 마음을 드러낸다. 그런 비극적인 이야기조차 이용하려는 솔로몬에 한금자가 혀를 차자 솔로몬은 자책하는 말을 한다. 한금자도 또 선자도 자신을 경멸의 시선으로 보는 게 당연하다고 한다. 

 

“이런 꼴을 볼려고 그렇게 살았나? 네? 다 쓸데 없었다 하시겠죠.” 솔로몬이 그렇게 말할 때 한금자는 저 이삭이 보여준 그 의연한 모습을 드러내며 단호하게 말한다. “후회없어 그렇게 산 거. 충분히 값진 인생이었어.” 한금자도 선자도 또 이삭도 그 모진 세월을 살아내며 그 속에서도 자식들을 키워낸 것만으로도 그 인생은 충분히 값진 것이라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이삭이 죽기 직전 선자와 나누는 대사는 인간의 위대함과 고귀함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절감하게 한다. 이삭은 그 상황에서도 이 모든 비극이 자신 때문인 양 용서해달라고 말하고, 이에 대해 선자는 이삭의 삶이 얼마나 숭고했는가를 말해준다. “뭘 용서합니까. 안 계신 몇 년 동안 내한테 와가 당신이 자기들한테 잘해줬다고 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으예.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입니더. 14년 전에 처음 봤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예. 시상은 변했어도 당신은 안변한 거라예.” 그러면서 이삭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다. “내는 내 남편한테 사랑받고 존중받았으예. 전부 다 받은 거라예.” 

 

죽으면서도 아이들 걱정하는 이삭에게 걱정말라며 남편의 죽음을 직시하는 선자의 눈빛은 강인하다. 그 죽음을 피하지도 또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저 받아들이며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릴 뿐이다. ‘파친코’가 우리의 마음을 매혹시키는 건 바로 이 인간의 숭고함이 주는 뭉클함 때문이다. 비극적인 역사의 소용돌이 깊숙이 들어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의연한 그 모습 앞에 누구나 감복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애플TV+)

‘언니네 산지직송’, 여성 예능이 보여준 색다른 정경

언니네 산지직송

“분위기가 오늘... 갯장어 잡는가 보다.” tvN 예능 ‘언니네 산지직송’에 나온 차태현은 예능 고수답게 정확하게 그 날 그들이 해야할 일을 꿰뚫어본다. 사실 그건 시청자들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남해의 멸치와 단호박, 영덕의 복숭아와 물가자미에 이어 고성으로 이어진 ‘언니네 산지직송’을 통해 그들이 아침에 먹는 음식에 그 날 해야할 일이 들어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갯장어 음식점에 먼저 들어온 차태현이 금세 분위기를 파악해버린 이유다. 

 

하지만 차태현이 이토록 예능 눈치가 빨라진 건 그가 꽤 많은 프로그램들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1박2일’ 시즌2와 시즌3를 함께 했고 ‘용띠클럽’, ‘거기가 어딘데?’, ‘서울촌놈’, ‘어쩌다 사장’까지 차태현은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쇼 시절의 예능 단골 출연자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언니네 산지직송’에 게스트로 출연하자 새삼스레 현재 변화된 예능의 풍경이 그려진다. 차태현이 맹활약해온 예능의 시대에 당연한 듯 보였던 남성 출연자들이 주축이 되던 풍경과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니네 산지직송’은 누가 뭐래도 염정아가 그 중심이고 그를 받쳐주는 박준면, 안은진과 더불어 막내 덱스가 청일점으로 고정 출연한다. 남성 출연자들로만 채워지던 ‘1박2일’이나 여성 출연자가 한두 명씩 들어가 있던 ‘패밀리가 떴다’, ‘런닝맨’ 같은 프로그램과 비교해보면 이 구도는 정반대다. 여성 출연자들이 주축이고 오히려 덱스 같은 남성 출연자가 한 명 더해진 구도이니 말이다. 

 

사실 제목부터 ‘언니네’를 붙인 것 자체가 이 프로그램이 애초 기획한 여성 예능의 면면을 드러낸다. ‘삼시세끼’ 산촌편에 윤세아, 박소담과 함께 출연하면서 보여줬던 염정아의 매력적인 면면이 ‘언니네 산지직송’에는 중요한 기획 포인트였다고 생각된다. 이른바 뭐든 많이 요리해내는 ‘손 큰 언니’로서의 매력이 그것이다. 이런 인물이 산지에서 바로 나온 식재료로 음식을 해먹는다면 장관(?)이 펼쳐지지 않겠는가. 제작진은 그렇게 생각했을 게다. 

 

실제로 염정아는 ‘언니네 산지직송’에서도 식욕을 자극하는 요리들을 크게 크게 선보였다. 생멸치를 튀기고 구워 내놨고, 물가자미를 통째로 전을 부쳤다. 또 없는 재료로도 뚝딱 한 끼 요리를 해내는데, 계란탕 하나를 끓여도 계란 한 판을 더 쓰고, 참치비빔밥을 만들어도 캔 몇 개를 따서 넣는 손 큰 면모들을 보여줬다. 

 

염정아가 중심을 잡으니 베짱이들이지만 열심히 언니를 돕고 또 감성 충만한 면모로 색다른 매력을 드러내는 박준면과 안은진 또한 프로그램에 점점 익숙해졌다. 특히 예능 프로그램이 처음인 안은진은 갈수록 발랄하고 당찬 모습이 두드러진다. 플러팅의 고수라는 덱스가 막내로 들어왔지만, 흔한 남성 예능들이 해왔던 멜로적 분위기 대신 티격태격하는 남매 케미를 보여준다. 비상금을 만들기 위해 민들조개를 캐러 가자는 안은진에게 덱스가 차라리 데이트가 하고 싶다고 말하라며 농담을 하자 순간 “인성 문제 있어?”라고 받아치는 안은진의 재치가 그것이다. 

 

염정아가 중심이 되어 세워진 여성 예능의 틀이어서인지 ‘언니네 산지직송’은 게스트들의 면모도 남다르다. 직접 일을 해서 식재료를 얻는 콘셉트를 갖고 있어서 그런 면도 하지만, 게스트들은 모두 일 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건 일터에서도 그렇지만 함께 지내는 숙소에서도 마찬가지다. 황정민도 박해진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깔끔하게 청소를 하거나 요리를 하는 모습으로 염정아가 엄지척을 하게 만든다. 집안 일도 잘하는 남성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는데 이것은 남성예능에서 출연자들이 베짱이 콘셉트로 주로 웃음을 주려 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양상이다. 

 

사실 ‘언니네 산지직송’이 굉장히 색다른 소재나 시도를 하고 있는 에능이라고 보긴 어렵다. 우리가 늘상 봐왔던 여행 예능에 노동과 쿡방, 먹방이 더해져 있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평이해보이는 프로그램을 새롭게 하는 건 다름 아닌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풀어가는 여성예능의 풍경이다. 염정아라서 열리게 된 색다른 정경이 아닐 수 없다. (사진:tvN)

‘더 인플루언서’가 꺼내 보여준 인플루언서들의 민낯

최근 넷플릭스에서 흥미로운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내놨다. ‘더 인플루언서’가 그것이다. 77인의 인플루언서들이 한 자리에 모여 특정 미션을 수행하며 끝까지 살아남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런데 그 과정을 보면 이들이 어떻게 성공했고 살아남았는가가 엿보인다. 

더 인플루언서

관심으로 생존하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더 인플루언서’의 포스터에는 ‘관심으로 생존하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이 한 줄이 사실상 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아프리카TV 등 소셜 플랫폼에서 내로라하는 인플루언서 77인이 한 자리에 모여 끝까지 살아남는 1인을 뽑는 프로그램이다. 인플루언서들은 각자의 구독자수에 비례해 3억원이라는 총상금 액수를 나눈 수치가 ‘몸값’으로 찍히는 목줄을 차고 한 자리에 모인다. 그리고 시작된 서바이벌. 그건 소셜 플랫폼에서 구독자와 조회수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들의 삶을 보다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축소판처럼 보인다. 

 

77인이 저마다 ‘좋아요’ 15명, ‘싫어요’ 15명씩 투표하는 첫 번째 미션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우리 같은 보통의 상식으로 본다면 ‘좋아요’를 얼마나 많이 받고 ‘싫어요’를 적게 받느냐가 이 미션의 관건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즉 ‘좋아요’ 수에서 ‘싫어요’ 수를 빼서 누가 더 많은 수를 얻느냐가 이 미션의 승리자일 거라 여겨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그걸 이러한 서바이벌 게임을 많이 제작해옴으로서 브레인 중의 브레인이라고 불리는 진용진은 정확히 꿰뚫어본다. 결국 관심을 얼마나 많이 끄느냐가 관건인 인플루언서들에게 ‘좋아요’든 ‘싫어요’든 많이 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른바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는 이 관점은 실제로 이 미션의 진짜 목표가 된다. 그걸 간파한 이들은 이제 ‘좋아요’가 아닌 ‘싫어요’를 받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인다. 처음 구독자수가 많아 가장 많은 상금을 가진 이들이 ‘싫어요’의 타깃이 되었지만, 진용진의 이 생각이 전파되면서 이제는 ‘싫어요’를 요구하는 이상한 풍경들이 생겨난다. 치열하게 ‘싫어요’를 받아낸 장근석과 빠니보틀은 그래서 이 미션에서 나란히 1,2위를 차지한다. 

 

‘관심으로 생존하라’는 그 문구가 사실상 이 서바이벌의 색깔이라는 걸 이 첫 번째 미션이 드러낸다. 재미있는 양질의 콘텐츠가 인플루언서들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이 착각에 불과하다는 걸 이 미션은 말해준다. 그보다는 어떻게든 더 많은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이야말로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그 후 9년

2015년 MBC에서 방영됐던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이러한 인플루언서들의 세계가 이미 도래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 전조였다. 물론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지상파에서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인터넷 방송으로 넘어가는 그 과도기의 겹쳐지는 부분이 상당부분 담겨진 예능이었다. 거기에는 김구라, 초아, 홍진영 같은 연예인들이 참여했지만 동시에 이말년이나 황재근, 차홍, 정샘물 같은 인플루언서적인 파워가 느껴지는 비연예인들도 참여했다. 스튜디오에 꾸려진 여러 방들에 들어가 저마다 인터넷 방송을 하고 가장 시청률이 높은(평균 시청률과 최고 시청자수로 계산) 출연자가 우승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현재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박진경 PD와 함께 연출했던 이재석 PD가 기획, 연출한 ‘더 인플루언서’는 그간의 시간만큼 변화된 콘텐츠의 환경을 보여준다. 일종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넷플릭스 버전처럼 보이는 이 프로그램은 이제는 소셜 플랫폼에서 유명해져 많게는 연간 수십 억의 수입을 얻게 된 인플루언서들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준다. 두 번째 미션으로 치러진 라이브 방송 미션을 보면 그 위상을 실감하게 된다. 가장 많은 시청자를 확보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이 미션을 위해 몇몇 인플루언서들은 이제 거꾸로 연예인들을 섭외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도서관은 배우 설인아를 섭외했고, 준우는 가수 에일리를 섭외했다. 무엇보다 이 거꾸로 뒤집어진 영향력을 말해주는 건 장근석이 초보 크리에이터로 참여해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도전에 뛰어들고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사실이다. 연예인들에게도 인플루언서는 이제 하나의 워너비가 되고 있는 현실을 말해준다. 

 

콘텐츠보다 관심이 더 앞서는 현실

그런데 막상 ‘더 인플루언서’에서 여러 미션들을 통해 살아남는 생존자들을 보니 그것이 콘텐츠의 경쟁력이라기보다는 오로지 ‘관심’이 우선이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예를 들어 라이브 방송 미션에서 진용진은 콘텐츠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뉘앙스를 풍기거나, 자신의 수익을 공개한다거나 하는 식의 관심 끌기에 집중했다. 장근석이 매운 음식들을 땀을 뻘뻘 흘려가며 먹방을 하고, 뷰티 크리에이터인 이사배가 분장에 가까운 화장술을 보여주는 콘텐츠로서의 방송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결과는 영알남(영어 알려주는 남자)이나 차홍처럼 콘텐츠로 승부하는 이들은 탈락하고, 진용진은 살아남았다. 또 벼랑 끝에 몰려 넷플릭스 욕을 하는 것으로 시간을 채운 장지수는 끝내 살아남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이른바 시쳇말로 ‘어그로’를 끄는 것이었다. 

 

이런 미션 방식과 결과들은 그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2인1조 팀전으로 치러진 피드 사진 미션에서도 평가단 100인의 시선을 가장 오래 머무르게 하는 건 사진의 내용이 아니었다. 궁금증을 자극하는 모습이나 글귀들이 더 높은 주목도를 낳았고, 인플루언서들은 살아남기 위해 더 자극적인 사진을 시도하기도 하고 나아가 아예 사진이 아닌 글귀로만 채워진 피드도 올라왔다. 또 SNS를 통해 최대한 많은 댓글을 받는 미션에서도 선물 공세를 한다거나, 고양이 사진을 올리고 이름을 다는 이벤트를 하는 등의 시도들이 이어졌다. 댓글을 유도하기 위한 이들의 노하우가 드러나긴 했지만 그것이 자연스러운 콘텐츠를 통해 주고받는 소통이라는 댓글 본연의 기능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마지막 최종 라운드에 올라온 오킹, 장지수, 빠니보틀 그리고 이사배 중 끝까지 살아남은 이사배와 오킹의 대결에서 결국 오킹이 3억원 상금의 주인공이 된 사실은 인플루언서들에게 콘텐츠만큼 중요한 게 관심을 유도하는 노하우라는 걸 확인시켜준다. 화장법을 알려주는 콘텐츠로 승부한 이사배는 즉각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오킹의 선거전을 방불케 하는 방송과 먹방, 즉석 소개팅 등에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또한 ‘더 인플루언서’는 우승자가 된 오킹이 그간 인기만큼 크고 작은 논란의 주인공이고 최근에도 코인 관련 논란을 일으켰던 장본인이라는 점에서도 들여다볼 지점이 있다. 이것은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해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조차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이 세계의 높은 영향력에 비해 갖는 낮은 책임감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건 상대적으로 연예인들보다 이들의 영향력이 낮다는 전제 하에 가능한 이야기지만, 최근 방송이 이제 유튜브 같은 소셜 플랫폼으로 헤게모니가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 이상 적용되기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실제로 피식대학이 지역 비하 논란으로 순식간에 많은 구독자들의 이탈을 경험한 건 영량력이 높아진 이들에게도 그만한 책임을 요구하게 된 현실을 잘 말해준다. 

 

엄청난 관심을 받고, 그것이 돈으로 환산되어 천문학적인 돈을 벌기도 해서 부러움을 사지만 ‘더 인플루언서’를 통해 보는 그들의 세계는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관심을 끌어야 하는 SNS 시대의 씁쓸한 현실이다. 인플루언서는 그 극단화된 사례지만, 이런 일들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글:시사저널, 사진:넷플릭스)

“대신 사람은 죽이지마.” 추창민 ‘행복의 나라’

행복의 나라

“왕이 되고 싶으면 왕 해. 돈이 갖고 싶으면 대한민국 돈 다 가져. 대신 사람은 죽이지마.” 추창민 감독의 영화 ‘행복의 나라’에서 변호사 정인후(조정석)는 합수단장 전상두(유재명)에게 독기에 찬 시선으로 그렇게 말한다. 1979년 10월26일 벌어진 대통령 암살 사건에 상관의 명령으로 개입하게 된 박태주(이선균). 사실상 재판을 뒤에서 좌지우지하는 전상두에 의해 그는 소신을 꺾지 않으면 사형을 당할 처지다. 박태주는 군인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게 소신이고, 그래서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거라고 말하는 타협 없는 인물이다. 정인후는 어떻게든 사형만은 막기 위해 박태주에게 법정에서 유리한 증언을 제안하지만 그는 끝내 이를 거부한다.  

 

10.26 사건에 연루되어 군사재판을 받았던 박흥주 대령의 실화를 극화한 이 작품은 ‘사람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박태주가 죽을 걸 알면서도 끝까지 고집하는 소신은 그를 변호하는 정인후를 미치게 만들지만, 거기에는 생사 앞에서도 굳건한 사람의 위대한 가치가 엿보인다. 박태주의 그런 선택은 그 정반대에 서 있는 전상두라는 인물의 가치를 보잘 것 없게 만든다. “니가 무슨 짓을 하든 그 놈은 죽어.” 제 권력과 욕심에 눈 멀어 생명과 소신 따위는 귀하게 여기지 않는 그는 괴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로 왕이 절대 권력을 갖던 시대에 사람의 가치는 그 말 한 마디에 생사가 바뀔 수 있을만큼 가벼웠다. 돈이 절대적인 힘이 되어버린 시대에서도 사람의 가치는 돈 앞에서 폄하되곤 한다. 정인후가 굳이 권력과 돈을 다 가져도 좋지만 사람만은 죽이지 말라고 애원하는 건 그래서다. 제 아무리 사람의 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해도 끝내 지켜야 할 한 가지가 바로 생명이니 말이다.(글:동아일보, 사진:영화'행복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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