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 김설진이 깨준 건 춤에 대한 선입견만이 아니다

애초 목적은 <무한도전> 멤버들의 식상한 춤을 고치겠다는 거였다. 방송 복귀를 공식 선언한 이효리가 현대무용가 김설진까지 섭외해 춤을 제대로 배워보겠다고 한 것은. 물론 여기에는 분명 <무한도전> 멤버들의 ‘예능에 최적화된 춤들’이 주는 웃음을 기대하는 면이 있었다고 여겨진다. 이효리, 김설진과 비교되는 멤버들의 말도 안되는 춤이 줄 웃음 폭탄.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그래서 ‘효리와 함께 춤을’ 특집은 그 오래도록 반복해온 <무한도전> 멤버들의 ‘식상해진’ 춤들이 주는 웃음이 있었다. 자유롭게 추라는 김설진의 주문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전형적인 메뚜기춤으로 회귀하는 유재석이나 쪼쪼댄스로 돌아가는 박명수, 안면을 찡긋거리는 부담 백배 춤을 추는 정준하 그리고 ‘양세바리’ 춤으로 돌려 막기를 하는 양세형이 주는 웃음들.

하지만 그 와중에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춤에 대한 선입견들이 깨져나갔다. 그것은 김설진이 말하고 보여준 춤의 세계 덕분이었다. 보여주려는 춤과 표현하는 춤이 있다고 한 김설진의 지적이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춤을 보여주려는 것으로만 안다는 것. 즉 김설진은 자신의 마음을 동작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 춤이라는 걸 새삼 일깨워줬다. 

또 대부분 춤을 즐거운 흥으로만 생각하는 것도 선입견에 불과하다는 걸 그는 보여줬다. 춤은 슬픈 감정이나 분노, 기쁨 등등 다양한 감정들을 담을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에너지가 춤의 3요소라며 직접 동작을 통해 그 의미를 전해준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시간이 박자 같은 의미를 담는다면 공간은 동작을 의미하고 에너지는 거기에 감정을 담는다는 것.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춤이 그 사람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지적한 부분이었다. 큰 동작을 반복하는 유재석의 경우는 ‘과한 에너지’를 보여준다고 했고, 끊임없이 동작을 이어가는 양세형의 경우는 ‘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 대목이다. 즉 춤은 그저 동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동작이 그 사람의 일상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이효리의 경우, ‘섹시 아이콘’으로 춤 역시 섹시한 면면이 강조되었지만, 김설진은 그것이 조금 과하다는 걸 지적했다. 그리고 젊은 친구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과해진 것 아니냐는 농담 섞인 말을 덧붙였다. 조금만 더 절제하면 더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는 것. 

춤을 배우는 것이었지만 어찌 보면 김설진의 춤에 대한 교정은 <무한도전> 멤버들에 대한 조언처럼 다가오는 면이 있었다. 벌써 12년이다. 그 긴 세월을 쉬지 않고 달려온 그들이 갖고 있는 어떤 강박 같은 것들이 있었고, 그것이 춤 동작에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났다. 그래서 김설진이 춤을 교정해주는 이야기는 고스란히 <무한도전> 멤버들이 좀 더 오래도록 앞으로 달려 나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았다. 

유재석의 그 과한 에너지는 어쩌면 <무한도전>이라는 무게감을 버텨내기 위한 고군분투일 수 있었다. 양세형의 ‘쉬지 않음’ 역시 빈자리를 채우려는 그의 안간힘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그들의 강박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훨씬 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더 오래도록 시청자들과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바라보면 김설진이 <무한도전>에 나와 깨준 건 단지 춤에 대한 선입견만이 아니었다. 춤으로 드러나는 <무한도전> 멤버들의 강박들을 발견하게 해주었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더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는가를 알려주었다.

시청자들은 김은숙의 로맨틱한 멜로에 이병헌을 허용할 수 있을까

누가 뭐래도 김은숙 작가는 지금 현재 가장 대중들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드라마 작가다. <태양의 후예>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까지 그 영향력을 확보한데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의 대성공으로 대중성과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작가가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차기작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사진출처:영화<싱글라이더>

그리고 김은숙 작가가 <미스터 선샤인>이라는 작품으로 1900년대를 배경삼아 우리가 기억해야할 의병들의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보도는 그 기대감을 더욱 높여 놓았다. 개항 시절, 그 이질적인 문화들이 혼재하는 시대가 먼저 드라마틱하면서도 로맨틱한 작품을 선보이는 김은숙 작가와 너무나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발표와 함께 팬들은 저마다 그 주인공을 두고 가상 캐스팅을 벌이기도 했다. 강동원, 조인성, 김수현 등등 쟁쟁한 연기자들이 거론되었다. 하지만 이런 예상과 달리, 그 주인공으로 낙점을 받은 연기자는 이병헌이었다. 

이병헌이 <미스터 선샤인>의 남자주인공으로 확정되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이병헌이라는 배우에게는 아직도 지난 사생활 문제로 논란이 되어 생긴 이미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안은 끝났지만, 배우에게 남은 이미지는 쉽게 사라질 수 없었다. 

물론 그런 논란이 터진 후에도 이병헌은 여러 작품에서 발군의 연기력을 보여줘 사생활과는 별개로 배우로서 인정받기도 했다. 실제로 <내부자들>, <마스터> 그리고 <밀정>까지 그가 최근 출연했던 영화들 속에서 이병헌은 확실히 세계적인 배우의 면모를 톡톡히 과시했다. 사생활에 대한 비판 여론은 여전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출연한 영화가 그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던 건 그 연기력이 한 몫을 차지했다.

하지만 시시껄렁한 건달이나 희대의 사기꾼 혹은 독립군 수장 역할은 연기력을 통해 넘어설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아직까지 멜로는 쉽지 않다는 걸 보여준 작품이 <싱글라이더>였다. 물론 대작이라 할 수는 없는 작품이지만 <싱글라이더>는 이병헌이라는 거물 배우와는 상반되게 저조한 기록을 남겼다. 이 부분이 김은숙 작가의 차기작인 <미스터 선샤인>에 남는 우려다. 과연 시청자들은 김은숙 작가 특유의 로맨틱한 멜로에 이병헌을 허용할 수 있을까. 

김은숙 작가처럼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작가가 왜 차기작에 분명 논란과 소음이 일어날 이병헌을 캐스팅했는가 하는 데 대한 이유는 분명히 있다. 그것은 작품의 배경이 이병헌 같은 국제적인(?) 인물과 맞아 떨어지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김은숙 작가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작품이 “신미양요 때 의병이었던 남자 주인공이 미국 군인 신분으로 훗날 자신을 버린 조국으로 돌아와 주둔하며 벌어지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영어를 할 줄 아는 배우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런 기능적인(?) 요소가 가진 장점만큼 이병헌이라는 배우에게 드리워진 불편한 이미지의 부담감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작품이 나오지 않아 어떤 결과가 이어질 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심지어 ‘갓은숙’이라고 불릴 정도로 주인공들을 시대의 아이콘으로까지 만들어놓는 김은숙 작가가 이번 이병헌을 캐스팅해 그 로맨틱한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알쓸신잡’, 무엇이 이렇게 신비한 느낌을 줄까

‘알아두면 쓸데없는’ 이야기 같다. 경주로 간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 거대한 능들이 밀집되어 있는 대릉원에서 화려한 금관을 보며 그 많은 금들이 어디서 왔을까를 상상하다, 당시 실크로드의 종착지가 경주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무역을 통해 들어온 금이라는 것. 그러더니 불쑥 박물관의 우물 관련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다가 유물들 속에서 소의 흔적은 찾을 길 없고 말의 흔적만 있더라는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의 이야기가 나오고 박물관 유물들은 지배계급의 것밖에 없다는 이야기로 흐르더니 천마총의 천마장식은 지금으로 치면 페라리의 엠블렘 같은 것이 아니었겠냐는 의미심장한 농담이 덧붙여진다. 

'알쓸신잡(사진출처:tvN)'

경주가 고향인 유시민은 예전에는 그 유적들에서 뛰어 놀았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제한된 수의 사람들을 감당할 수 있었던 유적들이 이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서다.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너무 많이 늘어난 ‘호모 사피엔스’의 문제로 귀결된다.

유적에서도 느껴지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들의 격차나, 너무 인구가 늘면서 이제는 뛰어 놀 수 없고 멀리서 바라 봐야만 하는 유적들의 이야기는 묘한 쓸쓸함을 만들어낸다. 경주에도 새롭게 생겨 커져 가고 있는 황리단길에서 원주민들이 오히려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아이러니가 거론되고, 그걸 막으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아무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유시민의 말에, 그러나 그것이 슬럼화된 도시를 다시 깨어나게 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점에서 단순하게 바라볼 문제가 아니라고 김영하가 덧붙인다. 

천년 전의 신라인들과 지금 우리들이 생물학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지만 생각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는 걸 유시민이 지적하자 정재승은 그것이 뇌의 놀라운 능력이라고 말한다. 뇌는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반응을 한다는 것. 그래서 만일 지금 신라인이 여기로 와서 우리와 이야기를 해도 금세 말이 통할 것이라고. 

이런 걷잡을 수 없이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희열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는 그 사실에 “속상하다”는 속내를 드러낸다. 하지만 그런 유희열에게 김영하는 한 가지 희망 섞인 이야기를 덧붙인다. 마침 녹화가 있던 날이 6월 10일. 6.10항쟁 30주년이라는 걸 상기시킨 후, 30년 전 이런 날이 올 거라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 짧은 30년 사이에 나아진 것들이 분명히 있으니 희망을 가져도 된다고.

<알쓸신잡>의 지식 수다가 ‘알아두면 쓸데없는’ 것처럼 마구 쏟아져 나오다가 어느 순간 ‘신비한’ 느낌을 갖게 되는 건 이래서다. 그 많은 수다들이 그저 맥락 없이 마구 나온 것 같지만 많은 것들이 이어져 있고, 지금 그 작은 공간에서 몇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 속에는 지금도 흘러가는 수천 년 인류 역사의 흐름이 담겨져 있다. 

그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그 광경 자체가 신비롭게 다가온다는 것. 정재승 교수가 말했듯 어찌 보면 이 우주에서 먼지 정도밖에 되지 않는 우리들이 그 우주를 이야기한다는 데서 오는 신비함이 그것일 게다. 유시민 작가는 농담을 더해 이를 ‘먼부심(먼지의 자부심)’이라고 불렀다. 아마도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알 수 없는 신비함은 바로 이 먼부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천년 전 달을 보며 살았을 신라인들의 삶과, 천년 후 같은 달을 보며 나누는 이야기가 묘하게 겹쳐지는 신비한 느낌.

'트랜스포머', 무려 3천억 원을 들여 졸작을 만들다니

영화 <트랜스포머> 시리즈에 어느 정도의 혹평이 따라붙는 건 으레 있는 일이다. 전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블록버스터이니 평가들도 보기에 따라 제각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트랜스포머> 시리즈나 이 시리즈를 계속 연출해온 마이클 베이 감독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그래서 실제로도 세계 흥행 기록에서 우리나라의 흥행실적이 높게 나오기도 했다. 

사진출처:영화<트랜스포머:최후의 기사>

하지만 이번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에 쏟아지는 혹평은 그 성격이 다르다. 진심어린 혹평이다. “스토리도 엉망이고 기억나는 장면도 없고 돈이 아깝네요.”, “예고편만 수십 편 보고 나온 느낌”, “그냥 로봇 만화 실사판 수준” 같은 평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심지어는 “<트랜스포머> 보다 잤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니 말이다. 상상이 가는가. 끊임없이 터지고 깨지고 무너지고 지구가 종말에 가까운 지경에 이르는 장면들이 쏟아지는데도 졸음이 온다는 것이. 

그래서 설마 그 정도일까 하고 의구심을 가진 채 영화관을 찾은 이들은 실제로도 영화가 졸립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다. 영화 전반부에 너무 많은 이야기들, 인물들이 마구 뒤섞여서 나오는 바람에 관객들은 누구에 몰입해야 할 지를 알지 못한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로봇들의 액션이 터지지만 몰입 대상이 없는 액션은 산만의 극치다. 그래서 그 한 시간은 즐겁기 보다는 정신없기 마련이다. 

그나마 괜찮게 보였던 아서왕과 트랜스포머를 연결시킨 도입부분은 현재 시점으로 들어오면서 지리멸렬해진다. 액션 신들을 잡아놓고 스토리를 연결한 것인지, 아니면 너무 많은 스토리를 잡아넣다 보니 그 연결고리가 허술해진 것인지, 영화는 끊임없이 인물들의 입을 통해 상황을 설명하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관객이 몰입할 대상을 찾지 못하고 인물들은 상황설명을 하고 있으니 영화는 지루해질 수밖에 없다. 

몰입이 떨어지게 되면 <트랜스포머> 같은 CG 기반의 영화는 졸지에 만화 같은 느낌으로 전락하게 된다. 실제로 옵티머스 프라임이 자신의 창조주에 의해 인류의 적으로 돌변했다가 마지막 부분에 정신을 되찾고 되돌아와 “오토봇들이여!”하고 일장연설을 하는 장면에서는 그 갑작스런 변화와 과한 진지함에 실소가 터진다. 세상에 옵티머스 프라임에게서 웃음이 터지는 상황이라니.

트랜스포머의 실질적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옵티머스 프라임이 이 정도니 다른 인물들은 더 심각하다. 주인공들은 물론이고, 안소니 홉킨스 같은 대배우가 출연하고 있지만 그 역시 영화 속에서 그다지 인상적인 느낌을 주지 못한다. 고아 소녀 이사벨로 모너는 간간히 멋진 장면을 연출하지만,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져 있는 바람에 중간에 사라졌다 마지막에 갑자기 다시 등장한 그녀는 조금 생뚱맞아 보인다. 

무려 제작비 3천억 원을 들인 대작이라지만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는 그 과잉이 부족함만 못하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 졸작이 되었다. 스토리가 부실하다기보다는 스토리가 과잉이라 어떤 캐릭터에도 몰입이 되지 않는 작품이 되었다. 어느 정도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우리나라에서 꽤 좋은 성적을 거둬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이번 시리즈도 그런 결과를 가져갈 수 있을까. 의구심이 남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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