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발광 오피스’, 당신은 어떤 회사를 원합니까

“회사란 게 꼭 자식 같습디다. 작은 것을 키울 땐 내 것 같지만 크고 나면 내게 아니에요. 직원들 거고 우리 제품 찾는 소비자 거고.” MBC 수목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에서 허구동 과장(김병춘)이 주선해 서우진(하석진)이 만난 하우라인의 회장은 자신이 생각하는 회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건 이 드라마가 진짜로 하려던 이야기일 것이다. 

'자체발광 오피스(사진출처:MBC)'

사실 <자체발광 오피스>가 지금껏 포커스를 맞춰 온 건 은호원(고아성)을 중심으로 한 인턴들의 이야기였다. 당연히 청년 실업에 대한 갈증들이 첨예하게 담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어쨌든 하우라인이라는 회사에 들어와 한 솥밥을 먹기 시작한 이들이 처한 새로운 문제는 회사 자체의 시스템에 대한 것일 수밖에 없다. 결국 그것이 청년 실업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저는 뭐 누구 라인 이런 거 되고 싶은 생각 없습니다. 저한테 하우라인은 사주의 전횡 없는 좋은 회사란 이미지가 있고 제가 일한 만큼 인정받고 제 동료직원들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상식적인 직장이길 바랄 뿐입니다.” 회장이 회사를 “자식 같다”고 표현하자 서우진은 “상식적인 직장”을 이야기한다. 그렇다. 언제 직원들이 회사에 대단한 것을 바랐던가. 적어도 상식이 지켜지는 회사를 바랐던 것이 아니었던가. 

회장을 만나고 온 서우진에게 허구동 과장은 자신이 그를 회장과 만나게 한 이유에 대해 솔직한 속내를 드러낸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허구동 과장은 옛날 직장생활의 이야기를 꺼낸다. “부장님은 모르시죠? 월급날 누런 봉투에 월급 받아 이번 달에는 얼만지 침 묻혀가며 세고 속 주머니에 월급봉투 들어앉은 그 뿌듯하고 든든한 기분.” 계좌로 직접 입금되는 요즘과는 달리 어딘지 정이나 가족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그 때의 회사.

“월급날 그 봉투 생각이 많이 납니다. 저한텐 그 때가 회사는 내 집 같았고 동료들은 내 식구 같았고 그런 회사로 다시 되돌리고 싶습니다.” 허구동 과장이 말하는 회사는 지금은 너무 멀리 와 기억에서도 가물해진 그런 과거의 회사다. IMF 이후 칼바람에 사라져버린 ‘사람 냄새 나는 회사’. <자체발광 오피스>가 은근슬쩍 꺼내놓는 새로운 판타지. 

“부장님 지금까지 비겁하게 도망만 치지 않았습니까. 맘에 안 들면 사표내고 더러운 꼴 피하시고 그래서 우리 회사로 오신 것 아닙니까. 이젠 바꿔보시죠. 맘에 안 들면 고치고 더러운 건 잘라내고 좋은 직장 자랑스러운 회사 만들어서 열심히 일해요. 여기서 왜 사장까지 못합니까. 집이 더러우면 자기가 치우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우라인 우리가 그렇게 한번 만들어 보십시다.” 

허구동 과장의 이 말과 그 말을 음미하며 어떤 각성을 하는 서우진. <자체발광 오피스>는 이제 은호원을 중심으로 하던 청년 실업 문제에서 나아가 서우진을 중심으로 펼쳐나가는 좋은 회사 만들기라는 새로운 직장인들의 판타지를 건드리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젊은 세대의 공감은 분명했지만 중년층의 공감대가 애매했던 이 드라마에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자체발광 오피스>라는 제목은 애초에 그 이중적인 의미로 좋은 회사에 대한 비전을 담고 있었다고 보인다. 즉 발광할 정도의 미쳐 돌아가는 비상식적인 회사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회사로의 변신. 서우진의 각성은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가 하려는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다시 모인 ‘역적’, 미친 세상에 그들이 대적하는 법

“예. 저는 소 키우고 콩 보리 심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 아린이 형님들까지 다 무사할 줄 알았습니다. 헌데 그게 아니었소. 우리가 잘 사는 게 우리 손에 달린 일이 아니더란 말입니다.”

'역적(사진출처:MBC)'

MBC 월화드라마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의 길동(윤균상)이 드디어 각성했다. 그는 아버지 아모개(김상중)가 건달로 사는 것이 싫었고 그래서 아버지와 조용히 농사를 지으며 살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렇게 잘 사는 것이 제 뜻대로 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비싼 대가를 치르고서야 알게 되었다. 익화리에서 아모개가 그토록 힘겹게 일궈놓은 터전이 하루아침에 충원군(김정태)의 말 몇 마디로 초토화되었고, 함께 살아가던 가족과 이웃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는 면천하려다 어머니를 보냈고 충원군의 심부름을 안했다가 무릎이 박살났소. 이제 저도 압니다. 세상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사람 꼴로 사는 것을 도저히 두고 보지 않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그 놈들이 대단히 나쁜 놈들이어서가 아니오. 그 놈들 눈에 우리가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 겁니다. 허면 그게 그 놈들 잘못입니까. 아니 우리 잘못이오.”

길동은 남 탓 세상 탓하며 그저 순응하며 살아가려던 것이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순응하며 살아가려 해도 가만 놔두지 않는 게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제 이것을 저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이려 한다. 우리 손으로 고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놈들이 우리보고 인간이 아니라는데 예 인간 아니라고 엎드려 있으니 그 놈들 역시 저것들은 인간이 아니구나 하는 것 아닙니까. 사람으로 태어나서 나 사람 아니오 하고 사는 놈들하고 뭐가 다릅니까.... 성님들 차라리 앞으로 인간으로 살지 않겠다고 하십시오. 그 놈들이 인간 아닌 것들은 살려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님들. 그리 사시겠습니까? 인간 말고 짐승으로 그리 사시겠습니까?”

<역적> 길동의 각성은 우리에게는 익숙한 ‘개 돼지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 어째서 그들이 그저 나라에 순응하지 않고 저들과 대적하려 했는가 하는 이유가 거기 들어있다. 그것은 권력을 잡거나 나라를 뒤집겠다는 대단한 목적이 아니다. 그저 ‘인간으로 살겠다’는 것이다. 더 이상 ‘짐승 취급당하며 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저 길거리에 나온 촛불들의 뜻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게다. 

<역적>은 이제 아모개의 시대에서 홍길동의 시대로 넘어간다. 아모개가 겨우 겨우 노비 신세에서 벗어나 익화리에 그들만의 터전을 만들어 오순도순 살아가려 했다면, 홍길동은 그것이 이 미친 세상에서는 불가능한 꿈이라는 걸 알게 되고 따라서 세상에 자신들이 개·돼지가 아닌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려 한다. 

지금도 촛불을 마치 ‘역적’ 대하듯 하는 발언들이 흘러나온다. 그들은 여전히 나랏님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들을 어떻게 대해왔는가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역적>의 길동의 각성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스스로 인간임을 증명하지 못할 때 결국은 개, 돼지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