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콘>, 노예, 거지 캐릭터 전성시대 왜?

 

“지가 마님 옷을 떨어뜨렸슈.” “우리 목도 떨어지겄구만.” “옷이 찢어졌슈.” “내 사지도 찢어지겄어.”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새 코너 ‘노애’는 드라마 <추노>의 상황을 패러디한다. ‘분수도 모르고 종놈들끼리 눈 맞으면’ 개죽음을 당하는 그 상황에 송영길과 허안나는 격렬한 사랑의 감정을 액션(?)으로 표현한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빨려던 마님의 옷을 떨어뜨린 별 것도 아닌 일에 자신들의 목도 떨어질 거라고 말하는 송영길의 모습은 그 과장된 처절함 때문에 웃음을 준다. 하지만 고작 웃전의 옷 하나 때문에 사지가 찢어질 것을 걱정하는 이 노비들의 죄를 들은 마님의 반응은 이들의 상황을 더 처참하게 만든다. “나 이 옷 안 그래도 질려서 버리려던 참인데. 이거 개집에나 깔아줘라.”

 

누군가에게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물건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개집에 버리는 그런 물건. 하지만 그렇게 버리려는 물건을 허안나는 굳이 자신이 챙겨 입겠다고 한다. 그러자 송영길은 만류하며 이렇게 말한다. “글쎄 입지 말라면 입지 말란 말여. 그거 입으면 하늘나라로 올라가 버릴 거잖여. 너는 선녀니께.”

 

분노의 빗자루질로 사랑을 표현하는 송영길과 먹다 버린 고기를 챙겨먹으려는 허안나의 처절과 분노가 과장되게 뒤섞인 이 개그는 그러나 어느 한 사극 속의 한 대목을 패러디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그 웃음 속에는 양극화로 시름하는 현실의 처절함이 공감대로 깔려 있다. 우리는 이 웃전들의 옷 한 벌에 또 고기 한 점에 온 몸을 떠는 노비들의 삶에 빵 터지지만, 그 뒤에 남겨진 씁쓸함을 공감하게 된다.

 

“궁금해요? 궁금하면 오백원.” 이 대사 하나로 대중들의 뇌리에 확실히 각인된 ‘거지의 품격’이 거지가 되어버린(어쩌면 과거에는 어떤 품격을 갖추었던 평범한 사람이었을) 삶을 유쾌하게 뒤집어 웃음을 주었다면, ‘노애’는 그 노예가 되어버린 처절하며 분노에 찬 삶을 과장되게 드러냄으로써 웃음을 준다. 그래도 ‘거지의 품격’이 낭만적인 구석이 있었다면 ‘노애’는 그런 여유가 보이지 않는 절절한 사랑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이제 첫 코너로 등장한 ‘노애’가 주목받는 것은 그 캐릭터가 공감가기 때문이다. 웃전이 씹다 질겨서 뱉어버린 고기를 서로 먹으려 아옹대는 모습에서는 날선 풍자가 느껴진다. 한 편에서는 ‘정여사’ 같은 이들이 질려서 버리며 흥청망청 살아가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바꿔줘”를 연발하는 천민자본주의가 횡행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돈 한 푼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 현실이 아닌가.

 

“아들 아들 아빠 회사에서 잘렸어. 너도 곧 유치원에서 잘릴 거야.” “저는 아들 갈비도 못 사주는 쓰레기니까요.” ‘갑을컴퍼니’의 홍대리(홍인규)가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던지는 이 말은 그래서 그 공감 때문에 웃음이 터지지만 한참을 곱씹어보면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진다. 도대체 그 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극과 극의 삶을 만들어냈단 말인가. 이건 해도 너-무한 삶이다. 그러니 ‘정여사’의 말을 빌어 한 마디 던져볼밖에. “바꿔줘.”

<개콘>, 여전히 시청률은 1위지만

 

<개그콘서트>는 전체 예능 시청률 1위다. 한때 17%까지 시청률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 8주째 20% 선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매주 기록하고 있다. 코너들도 그런대로 화제가 되는 것들이 적지 않고, 이 코너들이 쏟아내는 유행어도 꽤 많다. 무엇보다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는 개그맨들의 위상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제 <개그콘서트> 출신 개그맨들을 다양한 CF에서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이렇게 전체적으로 안정된 지표들이 존재하지만 실상 <개그콘서트>의 내용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렇게 안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코너들이 전체적으로 적체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고, 이미 만들어진 유행어와 상황의 반복으로 웃음을 주고는 있지만 무언가 새롭다거나 신선하다는 인상은 별로 없다. 어떻게 보면 몇몇 유행어와 개인기 혹은 상황 연기로 이미 뜬 개그맨들이 매주 비슷한 아이디어의 코너들을 그저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다.

 

대표할만한 이른바 잇(it) 코너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개그콘서트>의 위기상황을 잘 말해준다. <꺾기도>는 이번 주 불방됐지만 이미 너무 맥락 없이 반복되는 바람에 그 기력이 소진된 아이템이기도 하다. <핑크레이디>는 노래와 상황만 제시될 뿐 아이디어가 보이질 않고, <좀도둑들> 역시 유행어의 반복에 머물러 있다. <아빠와 아들>은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것이지만 그 ‘뚱뚱하다’는 아이템 하나에 집중되어 있어 다채로운 느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여배우들>은 김영희가 새롭게 투입되었지만 박지선이 근근히 코너를 살리고 있는 정도이고, <어르신>도 이른바 소고기 개그를 하는 김대희가 주목될 뿐이다. <갑을컴퍼니>는 그 상황극 자체가 괜찮은 아이디어지만 그걸 매주 살려내는 한 방이 부족하게 여겨진다. <생활의 발견>은 좀 더 다양한 상황이 가능하지만 남녀의 이별 상황에만 매몰되다 보니 신보라가 스스로 비판하듯 ‘게스트빨’에 ‘홍보의 발견’이 되어가고 있다. 이승기가 출연한 이번 주 분량은 물론 이승기 본인이 살린 부분이 많았지만 여전히 그의 노래와 광고를 홍보하는 느낌이 강했다.

 

꽤 주목을 끌었었던 <용감한 녀석들> 역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때 박성광과 이승건 PD의 대결구도가 화제가 되었지만 그것은 코너가 가진 본질적인 재미는 아니다. 김준현을 탑으로 끌어올린 <네가지>도 예전처럼 빵빵 터트리는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나마 허경환의 <거지의 품격>과 정태호의 <정여사>가 <개그콘서트>의 얼굴이 되고 있지만 이것 역시 반복적인 유행어에 점점 의지하는 인상이 짙다.

 

새로운 코너가 잘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은 <개그콘서트>의 위기 상황이다. 새로 시작한 최효종의 <주부9단>은 검사인 아들과 의사인 딸을 둔 주부가 뭐든 못하는 게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웃음을 주는 코너지만 과거 그가 했던 특유의 공감개그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코너가 계속 해서 생겨나고 적체된다 싶은 코너는 과감히 사라지던 그간의 방식과 비교해보면 지금의 <개그콘서트>는 어딘지 변화를 두려워하는 듯한 모습이다.

 

신랄한 현실 풍자 같은 날선 느낌과 힘겨운 서민들을 대변하는 듯한 그 헝그리 정신은 모든 코너에서 상당 부분 희석되어 있다. 여장남자 캐릭터가 너무 많은 것도 어떤 시대의 트렌드라기보다는 아이디어 부족을 얘기하는 것만 같다. <좀도둑들>의 김혜수 분장을 하고 나오는 이상훈, <갑을컴퍼니>의 희숙대리 김지호, <생활의 발견>의 김준현, <정여사>의 정태호, 김대성, 그리고 새로 시작한 <주부9단>의 최효종까지 여장남자 캐릭터는 넘쳐난다. 이렇게 많은 여장남자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은 물론 여성 캐릭터에 대한 수요가 높은 반증이기도 하지만 이들 코너가 그런 느낌을 살리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개그콘서트>는 여전히 시청률은 1위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이 주는 체감은 예전만 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것은 코너들의 순환이 잘 되지 않는 것 때문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몇몇 톱스타 개그맨들 중심으로 코너들이 유지되는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청률 1위와, 배우나 가수 못지않게 잘 나가는 개그맨들(물론 여전히 빛을 보지 못하고 힘든 개그맨들이 대부분이지만)에 도취된 나머지 생겨나고 있는 매너리즘이다. 이를 사전에 극복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개그콘서트>가 계속 예능 전체의 수위를 차지할 것이란 보장을 하기가 어렵다. 위기는 항상 최고 정상에 있을 때 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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