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공감 너머 개념 예능이 뜬다

 

예능은 무조건 재미있으면 된다? 천만의 말씀이다. 물론 예능에서 재미는 필수적인 요소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 <남자의 자격>의 폐지와 그 이후에까지 여전히 여진이 멈추지 않는 혼수 방송 논란은 예능이 단지 재미만을 추구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인간의 조건'(사진출처:KBS)

아마도 좀 더 비싼 혼수품을 걸고 하는 게임은 그만큼 더 자극적인 재미를 줄 수 있으리라 믿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종의 상황극을 연출했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 상황극에 불과했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그대로 방영했다는 것은 대중들의 정서를 염두에 두지 않은 제작진의 큰 실수가 아닐 수 없다.

 

예능에서 재미만큼 중요해진 것이 개념이 되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인간의 조건>이다. 이 특별한 예능 프로그램은 하나의 사안에 대한 절대적인 공감대를 바탕으로 세운 후에 비로소 그 위에 웃음을 얹는다. 즉 파일럿 프로그램의 미션에서는 휴대전화, 인터넷, TV 없이 일주일 간 살아보는 것으로 이렇게 편리한 문명의 이기가 사실은 가리고 있었던 많은 인간적인 것들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정규 프로그램이 되어 한 첫 번째 미션으로 시도된 쓰레기 없이 살기는 우리가 무심코 버린 쓰레기들이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만 않을 뿐 결국은 우리 환경에 쌓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 미션은 자동차 없이 살기다. 자동차의 편리함 뒤로 사라져버린 인간적인 교류와 빠른 속도에 묻혀져 버린 삶에 느림의 행복을 되새기게 만드는 미션이 아닐 수 없다.

 

즉 <인간의 조건>은 그 미션 주제 자체가 개념이 있고 공감이 가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마음을 그만큼 쉽게 열게 만든다. 그리고 그 위에 재미가 얹어진다. 개그맨들만으로 출연진을 제한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제목만큼 무거울 수 있는 이 예능의 개념 주제와 미션들을 이들이 주는 가벼운 웃음으로 상쇄시켜보겠다는 의도였을 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의도가 상쇄되기보다는 오히려 거기 출연한 개그맨들의 ‘개념’을 알게 된 바가 크다. 상승효과가 생긴 것이다.

 

양상국은 <개그콘서트>에서는 그저 촌놈이었지만 <인간의 조건>에서는 그 촌놈의 아날로그적인 매력을 한껏 드러내는 개념 개그맨이 되었다. <인간의 조건>이 부여한 아날로그적 삶 속에서 드러나는 ‘씁쓸한’ 상황을 보여주는 김준호는 웃음과 공감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저 뚱뚱한 것으로 대중들을 포복절도시키는 존재로만 생각했던 김준현은 기타를 치며 의외의 감성을 보여주었고,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정태호는 가족처럼 출연진들을 챙기는 엄마 같은 자상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잘생긴 개그맨 허경환의 인간적인 모습이나, 고참 개그맨 박성호의 부드러운 변화는 또 어떻고.

 

결국 여기 출연한 개그맨들이 모두 이전 <개그콘서트>의 이미지에서 좀 더 인간적이고 훈훈한 이미지로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조건>이 미션 그 자체에서 깔아놓은 누구나 동감할 수 있는 ‘개념’ 덕분이 아닐 수 없다. 쓰레기 없이 살기 미션이 끝났지만 여전히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양상국의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진심어린 웃음과 응원의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리고 이런 개념어린 행동과 미션은 그 자체로 시청자들까지 변화하게 만든다. 예능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최근 공감을 넘어 이른바 개념 예능이 뜨는 이유다.

 

이렇게 된 것은 예능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예능을 이제 더 이상 그저 웃고 즐기면 그만인 것으로 치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무한도전>이 가끔씩 보여주었던 사회 공적인 기능들, <개그콘서트>가 담았던 현실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 등은 예능에 개념을 요구하게 되었던 어떤 전조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재미와 펀(fun)이 새로운 가치로 떠오르는 드림 소사이어티에서 이제 그 재미에 개념이 탑재되기 시작했다. 공감할 수 있는 개념 자체가 재미일 수 있다는 것. 놀라운 일이 아닌가.

 

최근 예능 프로그램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축의 이동은 이런 변화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일련의 연예인 신변잡기에 머물던 토크쇼들의 추락은 무언가 의미 있는 토크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에서 비롯된 바가 크고, 한 때는 최고의 주가를 올렸던 <남자의 자격>이나 <1박2일>이 최근 폐지되거나 변화를 모색하는 이유도 너무 반복되다 보니 희석되어버린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해야 하는 시점에 와있기 때문이다. 이제 예능의 관건은 재미만큼 개념이 되었다.


'SBS연예대상', 어떻게 모두를 배려했나

'SBS연예대상'(사진출처:SBS)

방송3사 연예대상 중 맨 마지막에 했기 때문일까. 올해 'SBS연예대상'은 방송3사 연예대상 중 그나마 가장 논란이 적은 시상식이 되었다. 'KBS연예대상'의 대상이 애초 후보에도 없던 '1박2일' 팀 전원에게 돌아감으로써 거센 반발에 직면하게 됐고, 'MBC연예대상'이 대상을 개인이 아닌 '나는 가수다'에게 주자 생겨난 '무한도전' 팀의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인해 논란을 겪은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KBS연예대상'이 너무 배려가 없었던 반면, 'MBC연예대상'이 너무 퍼주기식으로 시상을 했던 것도 문제가 되었지만, 'SBS연예대상'은 그런 비판 또한 빗겨가게 됐다.

그렇다고 'SBS연예대상'이 여느 시상식과 크게 달랐던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한 해 고생한 예능인들이 골고루 상을 나눠가졌고, 결국은 상을 타야할 이들이 상을 탄 지극히 당연한 결과를 보여줬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SBS연예대상'이 돋보이게 된 데는 타 방송사의 연예대상과의 비교점 때문이다. 'KBS연예대상'이 배제했던 김병만은 'SBS연예대상'에서 최우수상(버라이어티 부문)을 받음으로써 더 주목받을 수 있었고, 'MBC연예대상'에서 대상이 아닌 최우수상을 받음으로써 어딘지 부족한 느낌을 주었던 유재석은 대상을 거머쥠으로써 더 도드라진 인상을 주었다.

게다가 물망에 오른 이승기, 이경규를 한 해의 공과에 따라 각각 최우수상(토크쇼 부문)과 프로듀서MC상을 준 것도 적절했다 여겨진다. 이로써 대상 후보에 오른 인물들은 대상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제외되는 상황 없이 전원 상을 받아가게 되었다. 이것 역시 타 방송사의 시상과는 다른 모습이다. 또 골고루 나눠 갖는 양상 속에서도 특별히 한 해 주목되었던 프로그램에 대해 더 많은 상을 준 것도 시상식에 균형을 만들어주었다.

즉 '런닝맨'은 대상은 물론이고 최우수 프로그램상, 우수상(김종국, 송지효), 베스트 엔터테이너상(하하), 방송작가상(박현숙), 신인상(이광수)을 거머쥐었고, '정글의 법칙'은 최우수상에 이어 공로상을, '강심장'은 최우수상, 우수프로그램상, 네티즌 최고인기상(이승기), 우수상(붐, 이특)을, 또 '키스 앤 크라이'는 최우수상, 특별상(김연아), 베스트 엔터테이너상(박준금)을 받았다. 그 외에 올해 SBS에서 주목되는 프로그램들도 잊지 않았다. 올해 가장 화제를 몰고 왔던 '짝'이 우수 프로그램상을 받았고, '힐링캠프' 역시 프로듀서MC상(이경규), 신인상(한혜진)을 받았다.

'SBS연예대상'이 개념시상식이 된 이유는, 올해 타 방송사에서 배제되었거나 홀대받은 인상을 준 김병만, 유재석, 이경규에게 골고루 상을 줌으로써 마치 전체 시상식의 아쉬움을 채워준 듯한 인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특히 유재석과 김병만에게 각각 대상과 최우수상을 준 SBS는 이 두 예능인에 대한 대중들의 응원을 고스란히 가져갈 수 있게 됐다. 또한 올해 잠정은퇴한 강호동을 그리워하는 방송3사의 예능인들이 유독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SBS연예대상'의 수상소감을 통해 유재석이 언급한 강호동 이야기는 가장 주목되는 화룡점정이 되었다.

한 해의 시상식이 올해의 공을 상찬함으로써 내년을 바라보기 위한 목적이라면 여러모로 'SBS연예대상'은 올해 운이 좋았다고 여겨진다. 배제되는 이도 없었고 특별히 억지스런 구석도 없었다. 게다가 올해 유독 논란이 많았던 KBS와 MBC의 연예대상을 밑바탕에 깔아놓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에 'SBS연예대상'은 그 논란과 아쉬움을 채워주는 시상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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