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아침드라마에서 흔히 사용하는 막장의 기술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답답하다’는 것이다. 아니 ‘답답하다’는 걸 넘어서 ‘해도 너무한다’는 것.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건 드라마 전개가 끝없는 도돌이표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흘러온 구성을 보면 지독하게 당하는 박정우(지성)가 그걸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지만 번번이 차민호(엄기준)에 의해 그게 좌절되는 상황의 무한반복이다. 

'피고인(사진출처:SBS)'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자신이 아내를 죽인 범인이 아닌가 하는 그 충격적인 상황에서 간신히 기억을 찾아 벗어나고, 차민호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딸이 살아있다는 걸 알고는 스스로 칼에 맞아 병원으로 이송되어 딸을 만나게 되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감옥으로 돌아오고, 그래서 결국 탈옥한 후에는 어렵게 딸을 만나 자수함으로서 반전의 기회를 갖지만 차민호가 결정적 증거를 조작하고 심지어 박정우를 돕기 위해 자수한 성규(김민석)마저 죽음을 맞이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무한 도돌이표. 게다가 그 이야기 전개는 거의 막장에 가깝다. 차민호의 부친인 차영운 회장(장광)이 힘을 써서 박정우의 무고를 증명할 결정적 증거인 칼에 대한 국과수의 조사를 조작하는 이야기는 그게 어떻게 이뤄진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저 차회장은 그런 것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게 이 드라마가 던지는 설명이다. 또한 자수한 후 진실을 밝히려던 성규가 구치소에서 살해당한다는 것에도 그다지 그럴 듯한 개연성 있는 설명은 없다. 다만 차민호라면 그 정도 힘은 당연히 발휘할 수 있다는 식으로 처리되어 있을 뿐이다. 

즉 이런 개연성 없는 마구잡이식의 반전을 노리는 전개는 사실 시청자들을 낚기 위한 작가의 의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 끊임없이 박정우의 반격을 저지시키고 지연시킴으로써 시청자들을 답답하게 만들고 그래서 뒷부분에 이어질 사이다에 대한 갈망을 증폭시키려는 의도. 이건 아침드라마에서 흔히 사용하는 막장의 기술이다. 

하지만 이렇게 막장 전개가 가속화될수록 <피고인>의 시청률은 갈수록 치솟는다. 25% 시청률을 넘긴 이 드라마는 이제 30%를 넘기지 않을까 조심스런 예측을 내놓고 있다. 시청자들은 어째서 이런 막장드라마가 이렇게 시청률이 높을까 이야기하지만, 해답은 그것이 바로 막장드라마이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개연성을 무시하고 드라마의 충실한 이야기 전개보다는 시청자들을 잡아끌기 위한 낚시에 몰두함으로써 당연히 가져가는 수치. 그게 막장드라마의 유일한 존재의미가 아닌가. 

<피고인>은 여기에 일종의 위장술 같은 걸 사용한다. 그건 실체인 막장드라마를 가리기 위한 방법이다. 그 첫 번째는 연기에 있어서 믿고 보는 연기자인 지성을 주인공으로 세워 몰입도를 높여놓았다는 점이다. 설마 지성이 저런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는데 막장이겠어, 하는 착시효과가 이 드라마의 초반 몰입을 만들어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지성의 존재감이 드라마에서는 결정적으로 중요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기존의 막장드라마들이 흔한 가족드라마의 변형으로서 불륜과 출생의 비밀이 덧붙여진 가족복수극을 그려냈던 것과는 달리, <피고인>은 장르물에 막장드라마의 기술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시청자들로서는 미드에서나 많이 봐왔던 소재인 감옥이야기라는 장르적 외피를 보며 이 드라마가 주는 몰입감이 막장드라마의 기술 때문이라는 걸 부인했을지 모른다. 

<피고인>이 만들어낸 막장 장르극이라는 새로운 형태는 그래서 시청층의 외연을 넓혀놓았다. 막장드라마의 주 시청층이었던 중년 여성들에게는 익숙한 전개를 제공하면서도 이 드라마는 그간 막장드라마에 시큰둥했던 중년 남성시청자들마저 장르의 외피로 위장된 막장드라마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여러모로 <피고인>의 성공은 막장드라마와 장르극의 혼합이라는 새로운 막장드라마의 시대를 예고하게 한다. 장르물이 갖는 미드적인 세련됨에 막장드라마가 갖는 빠른 전개, 그리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함으로써 몰입감을 높이는 방식. 그래서 높은 시청률을 가져가지만 시청자들로서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보다는 어딘가 작가가 쳐놓은 거미줄에 걸려 있는 듯한 불편함을 주는 드라마. 과연 이러한 변칙적인 드라마의 탄생은 괜찮은 일일까.

‘피고인’ 해도 너무한 고구마 전개, 개연성 부족

감옥에서만 빠져나오면 좀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은 박정우(지성)가 탈옥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감옥 안과 다른 느낌이 없다. 그러고 보면 <피고인>의 지지부진한 전개와 답답함은 단지 감옥이라는 틀에 주인공이 갇혀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던 듯싶다. 어떤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 전개 그 자체보다는 시청자를 고구마 감옥에 가둬두고 질질 끌고 다니려는 의도가 더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피고인(사진출처:SBS)'

<피고인>이 시청자를 낚는 그 능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 박정우를 한없이 힘겨운 상황으로 몰아넣음으로써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가 그 상황을 벗어나기를 희구하게 만든다. 하지만 박정우의 소망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다분히 의도된 전개다. 소망을 이루는 것을 지연시킴으로써 시청자들이 참기 어려운 갑갑함을 느끼게 만들고 아주 조금씩 소망을 향해 나아가게 해준다. 

처음에는 자신이 아내와 딸을 죽였다는 자책감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하고, 기억을 서서히 되찾으면서 그 진범을 알게 되고는 복수를 소망하게 만든다. 또 감방에서 박정우가 도움을 줬던 성규(김민석)가 마치 아내와 딸을 죽인 것처럼 오인하게 만들고 사실은 그가 딸을 데리고 보살피고 있다는 걸 나중에 알려준다. 복수에 대한 소망과 딸을 만나고 싶은 소망 그리고 탈옥에 대한 소망을 계속 갖게 만들고 그걸 지연시킴으로써 시청자들을 붙잡아두는 전개. 

탈옥을 한 후에도 이런 전개는 변함이 없다. 딸 하연(신린아)이를 만나기 위해 박정우가 그를 추격하는 경찰들을 따돌리는 등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드라마 마지막에 보여주는 건 그의 딸이 차민호(엄기준)에게 먼저 붙잡혔다는 사실이다. 탈옥을 하면 무언가 고구마 전개에 있어서 숨통이 트일 것으로 여겼던 시청자들로서는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런 지연 전개와 함께 <피고인>의 문제로 지목되는 건 자칫 막장으로 흐를 수 있는 개연성 부족이 너무 많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죽은 걸로 알려져 있는 박정우의 딸이 이렇게 몇 달 째 가족들과 떨어져 성규와 함께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게다가 어찌된 일인지 하연이는 이 모든 상황들을 다 받아들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탈옥해 금방이라도 붙잡힐 것처럼 보이던 박정우가 갑자기 나타난 서은혜(권유리) 변호사의 차를 타고 도주하는 설정도 그렇다. 서은혜라는 인물이 왜 이렇게 위험한 일에 뛰어들어 심지어 탈옥을 돕고 있는가 하는 점은 아무런 설명도 되어 있지 않다. 간수인 윤태수(강성민)가 탈옥하는 박정우와 그 일행에게 총을 겨누는 다른 간수를 제지하는 장면도 너무 간단히 처리되어 있다. 탈옥이나 탈옥을 돕는 일이 그렇게 간단한 일일까.

물론 드라마라고 해도 완벽하게 개연성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청자를 고구마 감옥에 가두는 지연 전개를 하기 위해,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엔딩에 박정우를 절규하게 만드는 반전상황을 집어넣기 위해 개연성이 무시되는 건 문제로 지목될 수밖에 없다. 지금 <피고인>은 끝없이 시청자를 붙잡아 두기 위한 것에만 더 몰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고구마 전개는 언젠가 끝날 것이다. 어쨌든 드라마는 어떤 갈등과 문제를 해결해야 끝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18부작으로 2부를 연장시킨 <피고인>이 18부 마지막까지 고구마만 던지다 끝에 가서 겨우 사이다 한 잔을 주는 전개를 보인다면 시청자들로서는 허탈해지지 않을까. 그것도 어떤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기보다는 그저 시청률을 얻기 위한 목적에 그치게 된다면.

‘피고인’과 ‘역적’, 시청률과 호평 왜 따로따로 놀까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의 시청률이 갈수록 치솟는다. 7회 만에 20%를 넘기더니 8회에는 22.2%(닐슨 코리아)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압도적 시청률만큼의 호평은 가져가지 못하고 있다. 매회 기억을 잃은 박정우(지성)가 그 망각의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단서 하나씩을 얻어가는 이야기 구조는 고구마 전개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게 만든다. 게다가 그 박정우를 제거하기 위해 쌍둥이 형을 죽인 살인자이자 그 사장 자리를 꿰찬 재벌3세 민호(엄기준)가 감옥, 그것도 박정우가 있는 방으로 들어온다는 설정은 현실성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피고인(사진출처:SBS)'

그런데 어째서 <피고인>은 이런 개연성을 깨는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치솟는 걸까. 그건 박정우라는 인물이 겪는 고통에 시청자들이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여기에 지성의 연기는 절대적이다) 예상을 깨는 스토리가 주는 반전 효과의 힘이 적지 않다고 여겨진다. 박정우가 같은 감방에서 도와줘 풀려난 성규(김민석)가 갑자기 자신이 그의 딸을 죽였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고, 알고 보니 그가 차마 그의 딸을 죽이지 못하고 데리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또 시청자들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반전이라고 해도 재벌3세가 사형수를 직접 제거하기 위해 감옥을 저 스스로 찾아들어온다는 설정의 이야기는 나가도 너무 나간 느낌이다. 즉 이것은 <피고인>이 시청자들이 상상할 수 없는 더 센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의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고 있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당연히 시청률은 오른다. 개연성을 파괴하는 이야기만큼 자극적인 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래서는 호평이 따를 수는 없다. 

반면 MBC 월화드라마 <역적>은 연일 호평이 쏟아지는 것에 비해 시청률은 10%에서 답보 상태다. 경쟁작이 <피고인>이기 때문에 이 시청률은 물론 <피고인>과의 대결구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역적>의 이야기는 그 세세한 면들을 들여다보면 홍길동전을 재해석한 요소들이 많이 보이지만, 전반적으로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정도로 쉽다. 그런데도 왜 시청률은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걸까. 

<역적>은 사극의 틀을 갖고 있지만 굉장히 진보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모개(김상중)라는 노비가 주인을 살해하고 면천되어 잘 살아가는 모습은 체제 반항적인 이 사극의 방향성을 분명히 해준다. 무엇보다 홍길동이 반쪽 양반의 피를 물려받은 서자가 아니라 순수 노비 아모개의 아들이라는 설정은 <역적>이 갖고 있는 계급성을 분명히 한다. 아모개가 길동에게 장수가 되라고 하고, 그의 형인 길현에게는 과거시험을 보라고 하지만, 그들이 모두 이를 거부하고 방물장수가 되고 아버지 일을 돕는다는 이야기도 기존 시스템에 편입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드라마의 의지처럼 읽힌다. 

그래서 <역적>은 요즘 같은 시국에 더 많은 호평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금수저 흙수저 하지만 흙수저들이 금수저의 시스템에 편입되기보다는 저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기 때문이다. 여기에 시청자들을 공분케 하는 악역으로 등장한 참봉부인 박씨(서이숙)의 면면들은 작금의 현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충”을 내세우며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아모개와 그 식솔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현재의 ‘애국’을 내세워 진실을 외면하려는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역적>은 이처럼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들과 그 속에서 시스템을 거부하고 스스로 역적이 되어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현재의 시청자들로 하여금 호평을 쏟아내게 만든다. 하지만 시청률이 따라주지 않는 건 아무래도 사극의 주시청층이라고도 할 수 있는 보수적인 장년층들에게는 드라마가 너무 리버럴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터넷에 쏟아지는 호평은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많지만, 역시 지상파 드라마의 시청률이란 보수적인 장년층의 힘을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몇 년 동안 보수화되어버린 MBC의 이미지 역시 <역적>과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게 사실이다. 

시청률은 <피고인>이 가져갔지만 호평은 <역적>에 쏟아진다. 물론 완성도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지만 그럼에도 <피고인>도 <역적>도 근본적으로는 시대정신을 잘 담아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무고한 이들이 감옥에 들어가거나 고초를 겪는 상황이 어째서 현대극인 <피고인>이나 사극인 <역적> 모두에서 등장하고 있을까. 시청률과 호평은 따로 놀고 있지만 두 드라마의 정서적 지반이 비슷한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영애의 ‘사임당’, 첫 방이 남긴 가능성과 문제들

SBS 새 수목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는 굳이 타임슬립 설정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사임당>은 그저 사극으로서 사임당이라는 인물을 재조명하지 않고, 굳이 현재의 인물인 서지윤(이영애)이 여러 사건을 통해 과거 사임당이었던 때로 돌아가는 설정을 갖고 있다. 서지윤은 펀드매니저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 그리고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시간강사로서 교수임용을 간절히 바라는 워킹맘. 그녀는 교수를 시켜주겠다던 지도교수 민정학(최종환)으로부터 버려진 후 사임당의 기록으로 추정되는 일기와 미인도를 발견하면서 점점 사임당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교통사고 후 무의식중에 사임당 시절로 돌아간 그녀는 그것이 단지 꿈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사임당, 빛의 일기(사진출처:SBS)'

이렇게 현재의 서지윤과 사임당이 타임슬립 설정으로 묶여지게 만든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이유는 명백하다. 서지윤이 처한 현모양처 워킹맘으로서의 삶을 과거 사임당이라는 인물을 통해 되돌아보려는 것이다. <사임당, 빛의 일기>는 우리에게 현모양처 이미지로 5만원권에 박제된 사임당을 깨워 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가이자 워킹맘으로서의 그녀의 이야기를 다시금 쓰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History’가 아닌 ‘Herstory’로. 

그러니 이렇게 굳이 타임슬립 설정을 사용한 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임당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들을 깨기 위함이다. 현모양처 사임당이 아닌 자신의 예술세계를 끝까지 밀어붙인 당당한 예술가로서의 그녀를 재조명하겠다는 것. 또한 서지윤이 사임당 시절로 돌아가는 그 이야기는 현재의 인물인 서지윤이 스스로 현모양처이자 워킹망으로 살아가려 안간힘을 쓰는 그 삶 자체를 사임당이라는 인물을 통해 되돌아보는 일이 되기도 한다. 즉 타임슬립 설정은 판타지지만 사임당이란 인물에 대한 재조명과 현재의 여성으로서의 삶 양측을 함께 들여다보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하지만 의도는 의도일 뿐, 드라마는 시청자들이 몰입할만한 스토리의 개연성의 힘으로 굴러가는 것이다. 따라서 <사임당>이 먼저 해야 하는 건 이 갑자기 등장한 서지윤이 과거로 돌아가 사임당이 되는 타임슬립이 부자연스럽지 않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그만한 이유와 근거가 있다는 걸 밝히는 일이다. 만일 이 부분이 그럴듯하지 않으면 그 의도는 자칫 너무 자의적인 일이 되어버리고 나아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갖게 만들 위험성도 있다. 

남편 사업이 망하고 초라해져버린 집안의 아내이자 며느리, 엄마로서의 삶과 또 그토록 교수가 되기를 바랐지만 이용해먹을 대로 이용해먹고 버린 지도교수로 인해 시간강사 자리조차 빼앗기게 된 워킹우먼으로서의 삶, 여기에 지도교수가 주장했던 안견의 ‘금강전도’가 진품이 아니라는 의심을 하면서도 묵과했던 학자로서의 삶. 이런 것들이 서지윤이라는 인물의 절박함을 만들어내고 그로 인해 과거 사임당 시절로 타임슬립하는 것이지만, 그 계기가 교통사고 같은 지극히 평이하고 어찌 보면 다른 타임슬립 장르에서 무수히 써온 방식을 답습한 건 조금 안이한 느낌을 준다. 이 부분이 시청자들에게 이 드라마의 근간이 되는 타임슬립 설정을 설득시키는 중요한 신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좀 더 개연성에 신경 써야 했던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타임슬립이란 설정은 파격이다. 다른 인물도 아니고 사임당은 특히 최근 들어 주목되는 인물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곡해되기도 쉬운 인물이다. 게다가 사임당을 연기하는 배우 이영애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굳이 현대적 인물이 사임당이 되고, 그 사임당 역할을 이영애가 연기하는 그 사실들 역시 곡해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런 오해들을 뛰어넘으려는 것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지만 그러려면 타임슬립 같은 파격적인 설정보다는 그저 그 인물을 정면으로 재조명하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이제 겨우 2회가 끝났을 뿐이다. 그러니 향후 현재의 인물인 서지윤의 삶과 사임당의 우리가 몰랐던 삶이 겹쳐지면서 만들어낼 이중적 효과, 즉 과거 사임당에 대한 재조명과 현재의 여성 서지윤의 각성이 어쩌면 의외의 몰입을 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다시금 이 타임슬립 설정이 왜 필요했는가를 인물의 심리적 개연성을 통해 충분히 납득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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