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이지만 대체불가의 신 스틸러, 고규필

 

고규필이란 배우는 도대체 언제부터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된 걸까. 사실 그 역할이 작품의 중심에 서 있던 적은 거의 없다. 거의 모든 작품에서 그는 조연이거나 엑스트라에 가까웠다. 하지만 MBC 드라마 <검법남녀>를 통해 고규필은 자기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어딘지 어눌하고 늘 당하는 입장에 서 있으며 뚱뚱한 몸집에 걸맞게 먹을 걸 찾는 <검법남녀>에서의 정성주라는 역할을 연기한 고규필은 절대 웃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는 백범(정재영)과 너무나 잘 어우러졌다. 백범이 주인공으로서의 긴장감과 진지함을 놓치지 않는다면, 정성주는 자칫 지나치게 빠져들 수 있는 긴장에 웃음을 더해 어떤 여유를 만들어주는 역할이었다.

 

특히 검시관이라는 직업에 별의 별 일을 다 시키는 백범 앞에서 구역질을 하기도 하고 괴로워하면서 억지로 일을 수행하는 정성주의 모습은 압권이었다. 게다가 먹는 걸 밝혀 항상 뭔가를 먹으려 할 때 백범이 “일하러 가자”고 해 못 먹게 되는 상황의 반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웃음의 코드가 되었다.

 

이렇게 독보적인 신 스틸러의 면면을 보여준 고규필에게 SBS 드라마 <열혈사제>는 확고한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입에 항상 빵을 물고 다니는 이 요한이라는 캐릭터는 이 드라마에서 참 많은 직업을 가진 인물이었다. 편의점 알바에서부터 기업인 시상식 뷔페 알바, 왕맛푸드 공장직원, 라이징문 클럽 서빙직원, 열정분식소 직원이 모두 그의 직업이었다. 다분히 만화적인 캐릭터였지만 고규필은 여기서도 신 스틸러다운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냈다.

 

쏭삭, 장룡 같은 유독 독특한 캐릭터들이 많았던 <열혈사제>에서 고규필이 연기한 요한은 단연 두드러졌고, 작품의 스토리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었다. 중대한 사건이 벌어지는 곳이면 언제든 짠하고 등장해 웃음을 주는 인물. 그걸 유쾌하게 납득시킨 건 다름 아닌 고규필이라는 배우의 독특한 개성 때문이었다.

 

고규필은 최근 방영되고 있는 tvN <시베리아 선발대>에도 합류해 예능에서도 신 스틸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김남길은 <열혈사제>에서 거의 짝패처럼 연기를 했던 고규필을 당연하다는 듯 그 선발대에 추천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금세 드러났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가는 결코 쉽지 않은 여정에서 표정 하나만으로도 웃음을 주는 존재가 바로 고규필였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선발대>는 그 특성상 화면이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 물론 간간히 정차하는 공간에서 이국적인 러시아의 바깥 풍경들이 보이곤 하지만, 대부분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내부가 주 무대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규필은 의외로 입맛이 까다로워 현지에서 산 소시지 빵을 한 입 베어 물고 잔뜩 인상을 쓰는 모습만으로도 웃음을 줬다. 늘 배가 고프다며 먹을 찾는 모습이지만, 의외로 까다로운 입맛이 보여주는 반전 웃음.

 

사실 배우의 연기란 그 사람이 가진 고유의 개성과 무관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연기경력 27년 차인 고규필의 연기가 대중들에게 조금씩 각인되게 된 건, 늘 당하는 역할이면서도 투덜대면서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 때문이 아닐까 싶다. 주연들만 가득한 세상, 조연이지만 대체불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고규필에게서 어쩌면 우리가 의외로 위로를 받고 있는 지도.(사진:SBS)

‘검법남녀’, 다 좋았는데 멜로가 옥에 티였다

MBC 월화드라마 <검법남녀>가 종영했다. 인물들 모두가 저마다의 해피엔딩을 맞았고 새로운 출발을 그 엔딩에 담았다. 주인공 백범(정재영)이 죽은 줄 알았던 과거 사랑했던 약혼녀(한소희)와 10년 만에 마주하고 그 마지막을 보내주는 장면은 역시 법의학을 다룬 <검법남녀>다웠다. 의사가 환자의 사망을 선고하듯 사인을 얘기하며 오열하는 장면은 법의관으로서 소명을 다해온 그렇게 집착적으로 일에만 빠져왔던 마음 속 상처를 드디어 떠나보내는 장면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검법남녀>는 그것이 엔딩의 끝이 아니었다. 갑질을 일삼던 재벌2세가 궁지에 몰리자 차를 몰고 가다 사망한 것처럼 꾸며진 현장에서 시커멓게 타버린 사체를 검시실로 가져와 백범이 다시 검시를 시작하는 그 장면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야기는 계속된다’는 자막이 더해졌다. 시즌2를 예고한 것이다. 

사실 지금은 드라마에 있어서도 시즌제에 대한 가능성이 어느 정도는 열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검법남녀> 같은 다양한 사건들을 소재로 삼아 병렬적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드라마의 경우, 시즌제는 그 어떤 작품보다 용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실증적인 자료들을 이야기 소재로 삼고 있다는 건 <검법남녀>가 이만한 성과를 낸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니 <검법남녀>의 시즌2는 그 어떤 작품보다 현실성이 있다고 볼 수 있고 또 기대감이 크다. 하지만 시즌2를 만약 한다면 시즌1에서 보여줬던 약점들을 보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법의학이 가진 과학수사의 장르물로서의 묘미는 계속 이어서 더 발전시켜야 하겠지만, 시즌1에서 옥에 티처럼 들어간 멜로 부분은 차라리 빼는 편이 나을 듯 싶기 때문이다. 

주인공 백범이 그려낸 멜로가 그렇다. 너무 뻔하게도 그 멜로는 아버지의 결혼 반대라는 틀에 박힌 장애요소를 끼워 넣었다. 백범의 약혼녀가 백범의 아버지가 헤어지라는 말에 엉뚱한 선택을 하고 그 과정에서 친구인 강용(고세원)이 그 약혼녀가 잉태한 뱃속 아이를 자신의 아이라고 거짓말을 하게 하는 대목은 사실 설득력이 별로 없다. 너무 오래된 멜로의 틀을 가져왔고 현실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멜로 부분은 백범이라는 캐릭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쉽게 다뤄질 부분은 아니었다. 여러모로 장르물로서 가진 좋은 소재들과 긴장감 넘치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온 <검법남녀>가 가진 옥에 티가 바로 멜로 부분이었다는 것이다. 

<검법남녀>는 이러한 아쉬운 부분이 분명히 존재했지만 그것을 덮어버릴 만큼 사건 전개는 빈틈이 없었다. 그러니 시즌2로 돌아온다면 굳이 멜로에 대한 강박은 내려놓는 편이 낫지 않을까. 굳이 제목에 ‘남녀’를 붙인 데서도 찾아지게 되는 모든 드라마들이 여전히 갖는 멜로에 대한 강박. 

지금은 본격적인 장르물만으로도 충분히 시청자들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시대다. <시그널>이나 <비밀의 숲> 같은 작품을 떠올려 보라. 멜로는 어떤 면에서는 몰입을 방해할 수 있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그것보다는 우리 사회의 많은 병변들을 검시를 통해 찾아낼 수 있는 소재를 담아내는 것이 <검법남녀> 시즌2가 성공할 수 있는 길이다. 만일 시즌2로 돌아오게 된다면.(사진:MBC)

‘검법남녀’, 오만석 투입이 만들어낸 톡톡한 효과

MBC 월화드라마 <검법남녀>는 4.5%로 시작해 9%까지 최고 시청률을 찍었다. 애초 예상과 달리 지상파3사 드라마 중 1위 기록이다. 워낙 흥미진진한 법의학의 세계를 깊이 있게 다루면서도, 그 소재를 드라마틱한 사건들 속에서 잘 풀어낸 결과다. 무엇보다 백범이라는 법의관을 까칠하면서도 독특한 매력을 지닌 캐릭터로 구현해낸 정재영의 연기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특이한 건 이렇게 잘 나가는 드라마에 갑자기 오만석이 투입됐다는 점이다. 이는 ‘긴급수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검법남녀>의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등장인물의 관계도를 보면 어디에도 오만석의 자리는 애초에 없었다. 그러니 필요에 의해 긴급 투입된 상황이다. 어째서 오만석이 출연하게 된 걸까.

가장 큰 건 백범이라는 확실한 자기 색깔을 가진 법의관과 함께 수사를 해가면서도 각을 세울 수 있는 인물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애초 이 역할은 강현 검사(박은석)의 몫이었다. 과거 자신의 형이 백범에 의해 살해됐다는 심증을 갖고 오래도록 뒤를 캐왔던 인물이다. 검찰의 조사관이 비슷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자 그는 백범을 긴급 체포해 수사한다. 

강현 검사는 백범을 살인범으로 몰고 가며 사건 수사의 발목을 잡는 역할을 한다. 결국 그것이 모두 잘못된 심증이었다는 게 밝혀지고 강현은 자신이 검사 자격이 없다며 옷을 벗는다. 사실상 하차의 성격을 갖는 행보지만, 그렇다고 박은석의 출연이 그것으로 끝난 건 아니었다. 그 후 강현은 자신의 형의 죽음이 얽힌 과거사건을 추적한다.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백범의 연인 한소희가 식물인간 상태로 10년 째 백범의 아버지의 돌봄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강현이 검찰에 사표를 내고 새롭게 투입된 도지완 검사(오만석)는 백범과 시작부터 대결구도를 만들면서 은근한 긴장감을 선사했다. 살해된 사체의 손을 묶은 끈을 풀려고 하자 그러면 안될 것 같다며 각을 세운 것. 그런데 도지완 검사는 강현과는 사뭇 달랐다. 백범과 의견을 달리하지만 수사에 있어서 살인범을 잡기 위해서는 공조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결국 벌어진 살인사건이 30년 전 우성연쇄살인사건과 연관 있다는 걸 주장하며 거기에 포인트를 맞춰 수사하는 도지완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체로부터 증거를 찾아내려 하는 백범은 방향성은 달라도 범인을 잡겠다는 그 의지 하나는 같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은 강현이 과거 사건에만 집착해 현재의 사건 수사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가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리고 다른 건 캐릭터만이 아니다. 이를 소화해내는 연기도 사뭇 다르다. 강현 역할의 박은석이 핏대를 세우고 소리를 지르며 백범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오만석은 다소 느물느물하지만 웃으면서도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리는 만만찮은 캐릭터를 소화해내고 있다. 

액면대로 말한다면 <검법남녀>는 캐스팅이 전반적으로 약했던 게 사실이다. 정재영이 드라마를 혼자 끌고 가는 듯한 느낌을 줬던 것. 그런 점에서 보면 카운터 파트로서 오만석의 투입은 드라마에 적절한 긴장감과 균형을 만들어주고 있다.(사진:MBC)

‘검법남녀’, 망자의 목소리를 통해 분노하게 된 건

70대 노인이 집에서 잠을 자다 사망했다. 누가 보면 호상이라고도 할 만한 상황. 하지만 자식들의 모습이 어딘가 수상하다.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는 비용 문제로 병원을 옮기고, 사인은 ‘심근경색’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 알고보니 ‘심근경색’에 의한 사망은 보험금 특약사항이어다. 결국 보험금을 타기 위해 자식들이 서둘러 ‘심근경색’을 주장했던 것. 하지만 ‘심근경색’이라고 사인을 쓸 수 없다는 의사가 사인불명을 선언하자 시신은 결국 법에 의거해 부검을 하게 됐다. 

그런데 부검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노인의 발목에 결박흔이 드러난 것. 노인은 넥타이로 발목이 묶인 채 방에 감금되어 있었다. 텅 비어 있는 위는 노인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생활해왔다는 걸 말해줬다. 노인학대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노인과 함께 살았던 차남이 구속되었고 그가 전자화폐 투자로 모든 돈을 날려버렸다는 사실이 나왔지만 그는 범인이 아니었다. 평소 치매를 앓고 있어 묶어 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

차남은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그 집에서 발견한 쥐와 고인에게서 동시에 복어독이 발견되면서 횟집을 운영하는 며느리가 용의선상에 올랐다. 며느리는 사업 실패로 시아버지에게 집을 팔아 돈을 융통해달라 했지만 이를 거부당하자 복어독을 좋은 약이라며 갖다 주었던 것. 하지만 복어독 역시 사인은 아니었다. 치사량이 아니었던 것이다. 

MBC 월화드라마 <검법남녀>가 다룬 70대 노인의 사망사건은 이 드라마가 우리네 현실을 다루는 독특한 방식이 담겨져 있다. 법의학을 소재로 삼고 있는 이 드라마는 매 회 사체 부검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사체들이 몸에 남긴 흔적으로 전하는 말들이 아프고도 씁쓸하게 다가온다. 사체를 해부하고 있지만 사실을 우리 사회를 해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주판알만 튕기는 자식들. 고인에 대한 애도가 아닌 보험금에 반색하는 자식들. 어떻게든 조의금을 더 받아낼까를 고민하고, 받아낸 조의금을 서로 자기 거라고 가져가려 싸우는 자식들. 만일 그 아버지가 자식들의 이런 모습을 안다면 얼마나 큰 상처일까. 그것은 어쩌면 죽음보다도 더 큰 아픔이 아닐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하지만 법의학에서 이 말은 틀렸다. 법의학은 죽은 자의 말을 듣는 학문이다. 그래서 사체 해부라는 어찌 보면 눈으로 보기 힘든 과정들이 실로 엄숙하고 경건하게 다가온다. 치매를 앓고 있었지만 발목이 묶인 채 방 안에서 넋을 놓고 앉아있는 이 아버지가 느꼈을 회한의 목소리를 법의학은 듣는다. 혹여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했을 수 있는 망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바로 법의학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검법남녀>는 그래서 긴박한 사건들과 드러나는 증거에 따라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이야기가 그려지지만, 그 밑바탕에 한 사람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만큼의 무게를 갖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깔아두고 있다. 남편의 학대에 못 이겨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여인과, 1등만을 외치는 성적 사회에 짓눌려 신음하던 학생, 그리고 방에 감금되다시피 있으면서도 자식들 사진을 옆에 두고 있던 노인이 망자가 되어 그 사연을 전한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돈 계산만 하는 자식들의 이야기에 씁쓸함을 넘어 분노하게 되는 건 그 안에 우리네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서다.(사진:MBC)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