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법남녀’, 정재영과 정유미의 쿨&핫 케미가 만든 매력

MBC 월화드라마 <검법남녀>의 상승세가 심상찮다. 첫 회는 시청률 4.5%로 지상파 3사 드라마 중 꼴찌로 시작했지만 4회 만에 6.5%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2위인 SBS <기름진 멜로>의 6.8% 시청률에 거의 육박하고 있다. SBS <기름진 멜로> 역시 5%대에서 6%대로 올라섰고,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KBS <우리가 만난 기적>이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며 10%대로 떨어진 만큼 지상파 3사의 월화드라마 판도는 향후 어떤 변화가 생겨날지 예측하기가 어렵게 됐다.

하지만 이 변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검법남녀>다. 최근 들어 MBC 드라마가 월화수목을 통틀어 3%대를 넘지 못했고 심지어 월화에 편성됐던 <위대한 유혹자> 같은 경우 1%대를 전전했던 걸 떠올려보면 <검법남녀>가 이틀 만에 6%대를 회복한 건 놀라운 반전이다. 지난 10년 간 벌어졌던 MBC의 퇴행이 최근 사장이 바뀌며 정상화의 길로 들어섰지만 그 후유증이 만만찮아 드라마의 경우는 연말이나 되어야 어느 정도 효과를 보일 거라 예측됐던 게 사실이다. 도대체 <검법남녀>의 무엇이 이런 반전을 만들어낸 걸까.

가장 큰 것은 <검법남녀>가 지금의 드라마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장르물이라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위대한 유혹자>나 <손 꼭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 같은 작품은 그 작품의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소재적으로 시청자들의 손이 선뜻 가지 않는 작품이다. 어딘지 지금의 트렌드와는 잘 맞지 않는 옛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검법남녀>가 취하고 있는 검사와 법의관이 등장해 사건을 추리해가는 CSI류의 장르물은 그래도 트렌디한 작품으로 시선을 끈다. 

사실 이제는 장르물 역시 너무 많아져 그저 그런 법정극이나 형사물로는 이내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법남녀>가 상승세를 기록한 건 이 작품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매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건 다름 아닌 이 드라마의 남녀주인공인 법의관 백범(정재영)과 신입검사 은솔(정유미)의 캐릭터가 주는 매력이다. 

남편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당해오던 한 여성의 사망을 두고 벌어지는 법정 싸움에서 은솔은 신입검사로서 냉정을 유지하기보다는 분노를 드러내며 ‘촉’을 더 믿는 그런 인물로 등장한다. 그래서 누가 봐도 범인인 남편을 어떻게든 증거를 찾아 살인죄로 구속시키려 한다. 사건을 들여다보게 되는 시청자들로서는 바로 이런 은솔의 분노에 공감하며 몰입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가 증거를 찾아 ‘법꾸라지’인 범인을 잡아넣기를 바라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분노는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주기보다는 오히려 가리는 쪽으로 작용한다. 이 부분을 채워주는 인물이 바로 법의관 백범이다. 법의학은 죽은 자의 마지막 목소리를 듣는 일이라고 했던가. 그는 감정적인 판단을 유보하고 법의학자로서 사체가 말해주는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는 인물이다. 그래서 은솔의 분노에 좀체 이 과학적 판단은 쉽게 동조해주지 않는다. 

결국 이 사건은 남편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당해오던 여성이 자살을 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남편을 범인으로 만들기 위한 자작극이었다는 걸로 결론이 난다. 쉬운 카타르시스를 전하기보다는 법의학과 법 정서 사이에 놓여져 있는 긴장감을 첫 번째 이야기를 통해 드러낸 것. 바로 이 점은 <검법남녀>라는 법의학을 담은 장르물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준 대목이다. 섣부른 판타지가 아니라 진실을 밝힌다는 보다 진지한 이 직업의 진정성을 담으려 했다는 것.

<검법남녀>는 뜨거운 신입검사 은솔과 냉정한 법의관 백범의 상반된 캐릭터가 서로의 빈 구석을 채워주는 그 상보적 관계로 기대감은 높이고 있다. 물론 냉정한 척 하지만 자신의 법의학적 판단에 의해 범인을 살인죄가 아닌 특수폭행으로 기소하게 된 후, 마치 숨겨진 분노를 풀어내기 위해 사격을 하는 백범은 그 속에 숨겨진 뜨거움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은솔과 티격태격하면서도 어떤 동조의 감정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사실상 ‘저주’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MBC 드라마가 최근 겪고 있는 난항은 쉽게 풀릴 기미를 좀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어서일까. <검법남녀>가 만들어내는 이런 심상찮은 상승세는 미세먼지 가득한 MBC 드라마의 공기를 잠시나마 숨 쉴 수 있게 만들어준 단비처럼 느껴진다.(사진:MBC)

<아수라>의 호와 불호를 나눈 것들

 

영화 <아수라>는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안남시의 집들을 부감으로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그 집들에는 안남시장 박성배(황정민)는 물러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리고 카메라는 곧바로 이 안남시장 박성배의 가 되어 일하고 있는 형사 도경(정우성)으로 옮겨간다. 재개발, 시장, 비리형사, 조폭. 시작 부분의 몇 장면은 이 영화의 이야기가 어떤 것이 될 것이라는 걸 대부분 이야기해준다. 재개발을 하기 위해 조폭들과 비리형사들까지 싸그리 제 손아귀에 쥐고 흔들어대는 절대 악 박성배의 갖가지 비리들을 덥기 위해 도경은 손에 피를 묻힌다.

 

사진출처:영화<아수라>

그런데 그의 앞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박성배를 끌어내리려는 검사 김차인(곽도원)이 나타나면서 그는 박성배와 김차인 양자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꼬여버린다. 도경은 회복되기 어려운 병으로 병원생활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아내를 위해 박성배의 손을 잡고 있지만, 그의 비리를 꿰고 점점 압박해 들어오는 김차인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그가 시키는 일들을 한다. 결국 중간에 끼어 양쪽에서 두들겨 맞는 도경의 얼굴은 갈수록 망가져간다.

 

<아수라>가 보여주려는 건 그래서 명확하다. 시장도 깡패도 검사도 형사조차도 믿을 수 없는 아수라판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정치와 손을 대고 있는 시장과 검사의 권력 다툼 사이에 끼어 새우등이 터지는 도경의 현실은 아마도 우리네 현실의 극화된 상징을 보여주는 것일 게다. 흔히들 말하는 하라는 민생은 안하고 쌈질들이나 하고 서민들만 죽어나가...”는 현실.

 

이처럼 <아수라>가 하려는 이야기는 분명하지만 영화는 스토리적인 개연성에 있어서는 많은 허점을 보인다. 즉 액션이 보여주는 막연한 현실 환기는 분명히 있지만 그것이 영화 속에서 인물들이 갖는 좀 더 구체적인 이유나 근거 같은 것들이 별로 제시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박성배는 왜 재개발을 하기 위해 그토록 극악한 짓을 하는지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고, 이는 또한 김차인이 그토록 박성배를 잡으려고 하는 이유 또한 구체적이지 않다. 그나마 구체성을 띤 인물은 도경이다. 그는 병으로 죽어가는 아내 때문에 모든 것들이 절실해진 캐릭터다.

 

이렇게 좀 더 확실하고 구체적인 개연성들이 제시되지 않은 상황을 이 영화는 이러한 누아르가 가진 클리셰로 넘어가고 있다. 첫 장면에 등장한 재개발, 시장, 조폭, 형사 같은 누아르물이 으레 우리에게 전하는 클리셰들. 대신 영화는 그 클리셰들을 김성수 감독 특유의 피가 철철 흐르는 잔혹함과 동시에 미학적으로 느낄 수 있는 영상 연출을 통해 넘어서려 한다.

 

실제로 이번 <아수라>에서 김성수 감독이 보여준 액션 연출은 독보적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추격신에서 카메라가 차에서 차로 넘나드는 장면은 지금껏 우리네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액션 연출이었다. 하지만 개연성이 잘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 겹쳐지는 과할 정도로 피가 튀는 살벌한 장면들은 영화에 빠져들게 하기 보다는 어떤 불편함을 만들어낸다.

 

그나마 이러한 빈약한 개연성을 온전히 채워주는 건 연기자들의 명연기다. 황정민, 정우성, 주지훈, 곽도원, 정만식, 김원해... 한 명만 데리고도 티켓파워가 어마어마할 그들은 <아수라>에서 한 마디로 명불허전의 연기를 보여줬다. 보는 이들을 치가 떨리게 만드는 악역을 완성한 황정민, 어설픈 형사에서 점점 조폭의 잔인함에 물들어가는 과정을 제대로 연기한 주지훈, 황정민과 대응해 전혀 밀리지 않고 압도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낸 곽도원이나 마치 마동석 같은 단단한 액션을 보여준 정만식, 그리고 이 영화의 작대기라는 캐릭터로 초반 강렬한 인상을 남긴 김원해가 그렇다. 물론 주인공인 정우성의 미친 듯한 신들린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즉 영화는 호불호의 요소들이 분명하다. 김성수 감독 특유의 누아르 연출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그 끝점을 경험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피가 철철 흐르는 영화가 제 취향이 아닌 분들이라면 그 액션들이 너무 과하다 여겨질 수 있다. 영화가 말하려는 서민들만 등터지는현실 이야기에 대한 공감이 있고 무엇보다 명배우들의 명연기는 보는 이들을 소름 돋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남는 구체성이 결여된 개연성의 부족은 아쉬움으로 남는 작품이다. <아수라>는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뉠 수밖에 없는 영화다.

<검사외전> 강동원, 복수극 속에서 그가 빵빵 터트린 이유

 

<검사외전>은 어떻게 설 명절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무려 5백만을 훌쩍 넘기는 관객을 동원하고 있을까. 사실 이 스토리는 그리 새로운 것도 아니다. 흔하디흔한 복수극.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된 검사가 그 안에서부터 치밀한 계획 하에 복수를 하는 이야기다.

 


사진출처: 영화 <검사외전>

장르적 유사성이나 이야기 구조상으로 보면 <베테랑>이나 <내부자들>과 크게 다른 느낌이 아니다. 거기에는 부패한 권력이 있고 부조리한 법 정의가 있으며 무고한 희생자가 있다. 사회 현실의 답답함을 영화 속으로 끌어와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것. <검사외전>은 거기에 충실한 오락영화다.

 

아무리 좋은 것도 여러 번 보게 되면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야기 구조나 정서에 있어서 <베테랑>이나 <내부자들>과 그리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검사외전>은 만일 그것 만이었다면 쉽게 성공하기 어려웠을 영화다. 하지만 <검사외전>에는 강동원이 있었다. 그저 살 생긴 강동원의 팬덤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그가 연기하는 재욱이라는 귀여운 사기꾼 캐릭터가 <검사외전>만의 독특한 재미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재욱은 사기꾼이다. 돈 많은 여자나 후려내는 그렇고 그런 인물이지만 그가 보여주는 특유의 허세는 강동원이라는 연기자와 맞아 떨어지면서 관객들에게 시원한 웃음을 선사하는 캐릭터로 거듭난다. 잘 생긴 외모로 한껏 허세를 부리는 모습도 우습지만, 그런 그가 주먹이 무서워 찌질한 모습을 드러낼 때는 더욱 웃기다. 사기꾼이기는 하지만 어딘지 속내는 착해 보이고 어떤 면에서는 당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점은 그가 밉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건 정치인과 검사가 맞붙는 이 거창한 복수극 속에서 그가 위치한 어딘지 방관자적인 태도다. 그는 물론 억울하게 감방에 들어온 변재욱(황정민)을 돕는 입장에 서지만 사회 정의라던가 부조리에 대한 고발 같은 거창한 목적 따위는 그에게 없다. 그저 돈이 앞서고 그것이 아니라면 살아남기 위해 뛰는 것이며, 그저 가끔씩 인간적인 정 때문에 일에 뛰어들 뿐이다.

 

재욱의 위치는 정확히 서민들의 시선을 만들어낸다. 도대체 저 사회 정의고 어쩌고 하는 거대담론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그게 우리네 서민들에게 어떤 희망을 준 적이 있는가 하고 그는 되묻는 듯하다. 그런 거대담론과 대결하기 보다는 그저 눈앞의 삶을 잘 살아가는 것이 더 갈급한 일이라는 걸 재욱이라는 캐릭터는 대변하고 있다.

 

그러니 복수극이라는 무거운 틀 속에서, 그것도 썩은 정치와 검은 돈과 유린되는 법 정의라는 어마어마한 사건들 속에서 일종의 냉소를 날리는 듯한 재욱의 캐릭터는 그 자체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잔뜩 긴장한 대치 상황 속에서 그가 등장하기만 하면 빵빵 터지는 건 그래서다. 그러면서도 어딘지 정의가 이기기를 바라는 재욱의 모습에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빙의되어간다.

 

<검은 사제들>이라는 영화가 결코 대중적일 수 없으면서도 흥행에 성공한 이면에 많은 이들이 강동원의 존재감을 얘기한다. 다른 이도 아니고 강동원이 사제복을 입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관객들의 마음이 움직였을 거라는 것이다. <검사외전>도 마찬가지다. 강동원이 과거 <전우치>에서 보여줬던 그 냉소적이면서도 허세가 가득하고 그것이 기분 좋은 유쾌함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그 면면들이 <검사외전>에서도 빛을 발한다. 흔히들 강동원은 늘 옳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왜 그런가를 확인시켜주는 영화다.

정의와 진실, 요즘 대중들의 갈망

 

센 놈들 잡으려면, 뭐가 필요한지 아냐. 다른 힘센 놈의 허락이다.” <오만과 편견>의 문희만(최민수) 부장검사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사를 강행하려는 구동치(최진혁)에게 이렇게 일갈한다. 이 대사 속에는 우리네 검찰이 처한 쓰디쓴 현실이 묻어난다. 정의를 구현해야할 검찰이 사실은 권력에 의해 휘둘리는 모습을 <오만과 편견>의 문희만(그래서 이름이 의미심장하다) 부장검사는 보여준다.

 

'오만과 편견(사진출처:MBC)'

검사는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외부에 공표할 수 없다. 죄송하다.” <펀치>에서 검찰총장의 인사청문회에 서게 된 신하경(김아중)은 결국 눈물을 머금고 총장의 비리를 폭로하지 못했다. 전 남편이 자신이 데리고 살고 있는 딸 예린이(김지영)의 양육권을 갑자기 들고 나오며 그녀를 협박했기 때문. 이 장면 속에는 검찰이라는 조직이 가진 권력적인 속성이 묻어난다. 쟁취하기 위해서는 딸까지 볼모로 내세우는 것.

 

누군가 그러더군요. 사람들은 피노키오가 진실만 말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또 사람들은 기자들도 피노키오처럼 진실만을 전한다고 생각합니다. 피노키오도 기자들도 사람들이 자기 말을 무조건 믿는다는 걸, 그래서 자기 말이 다른 사람들 말보다 무섭다는 걸 알았어야죠. 그걸 모른 게 송기자님의 잘못입니다... 13년 전 그런 일을 겪고도 아직도 임팩트를 운운하시는 걸 보니 송기자님은 13년 전과 똑같은 기레기시네요.”

 

<피노키오>에서 국민의 알권리 운운하며 자신은 기자로서 할 일을 했다 말하는 송차옥(진경)기자에게 그녀의 딸인 최인하(박신혜) 기자는 기레기라는 강한 표현을 쓴다. 여기에는 과잉 취재 경쟁 속에서 팩트보다 임팩트가 더 중요해진 우리네 언론의 현실이 묻어난다. 바로 그 임팩트는 어떤 경우에는 한 가족을 풍비박산 내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하다.” <힐러>의 정의로운 기자 김문호(유지태)는 노조파업 현장에서 분신한 노동자의 병원을 찾아 그렇게 말했다. 귀 기울여주지 않는 세상에 분신이라도 해서 자신들의 말을 들어달라고 했던 것이지만 아무도 병원을 찾지 않았다는 노동자의 이야기에 김문호가 기자로서 사과한 것. 물론 김문호라는 인물은 판타지에 가깝다. 그 판타지 속에는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라는 서민들의 갈증이 느껴진다.

 

최근 주중 드라마들은 왜 이렇게 연달아 검찰과 기자를 드라마의 소재로 다루고 있을까. 드라마가 대중들의 정서를 반영한다고 보면 이 두 직종이 환기하는 건 정의와 진실에 대한 서민들의 갈망이다. 언젠가부터 정의를 구현하기보다는 권력기관처럼 받아들여지게 된 검찰에 대한 서민들의 감정은 그다지 좋지 않다. <오만과 편견>이나 <펀치> 모두 검찰의 비리 척결을 주요 주제로 다루는 건 그래서다.

 

한편 검찰만큼 믿지 못하게 된 것이 바로 언론이다. 팩트보다는 임팩트를 강조하고, 때로는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언론을 대중들은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니 <피노키오><힐러>가 다루는 언론의 문제는 자기반성으로 가득 차 있다. 잘못된 언론의 뉴스나 조명하지 않는 사건들이 누군가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자각이 그 밑바닥에는 깔려 있다.

 

검찰과 기자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에서 대중들이 기대하는 건 정의와 진실의 승리다. 하지만 흥미로운 건 이들 드라마들이 과거와 달리 손쉽게 정의와 진실의 손을 들어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현실은 더 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미 대중들이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같은 허구 속에서나마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도 버거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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