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닥터>, 어째서 모든 게 현 시국으로 읽힐까

 

SBS 수목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탄핵 정국을 미리 읽었던 걸까. 마치 현 시국을 예견이라도 했던 것처럼 <낭만닥터 김사부>의 이야기들은 그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드라마가 아무리 빨리 기획되고 제작된다고 해도 최소 1년 정도의 시간은 필요하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이 작품이 읽어낸 우리 사회의 치부들이 놀라울 정도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병사외인사냐를 두고 진실을 밝힐 것인가 아니면 눈 한 번 감는 것으로 출세를 지향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강동주(유연석)의 이야기는 지금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고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에 병사로 기록된 사망진단서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낭만닥터 김사부>가 이런 일을 예상했을 리 없다. 하지만 인터넷 창에 외인사를 치면 이제 백남기라는 이름과 함께 낭만닥터 김사부도 연관 검색어로 뜨게 됐다.

 

출세 만능의 시대. 출세를 위해서라면 양심도 생명도 이해타산에 밀려버리는 시대.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타인의 희생조차 정당화해버리는 사람들. 힘이 없다는 이유로 힘 있는 자들에게 찍히고 싶지 않아서 반쯤 눈감은 채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 그러한 이들의 비겁한 결속력이 기득권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군림하고 있었으니.” 지난 5회에 등장했던 이 내레이션에서 비겁한 결속력’, ‘기득권’, ‘군림같은 단어들은 우리에게 최순실 게이트로 낱낱이 드러난 그 비겁한 결속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난 10회에는 도로에서 벌어진 6중 추돌사고로 인해 현장과 돌담병원 응급실이 긴급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드라마는 그려냈다. 절체절명의 순간들 속에서 김사부(한석규)는 감사팀에 의해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진료를 할 수 없게 된 상황이었지만 그 순간 그는 외친다. 환자들을 살리는 게 자신의 룰이라고. 이 장면 속에서 우리가 떠올린 건 지금 현재 다시 이슈화되고 있는 세월호 7시간 부재했던 콘트롤타워와의 비교점이다. 김사부 같은 리더만 있었더라도.

 

물론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이나 최순실 게이트같은 것들을 <낭만닥터 김사부>가 미리 예견했을 리 없다. 그리고 지금 같은 탄핵 시국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 드라마가 마치 지금의 고구마 시국을 읽어내듯 사이다 드라마로 쓰여질 수 있었을까.

 

이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이런 일들이 지금 갑자기 터진 사안이 아니라, 이미 예전부터 잠재적인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로 존재하다 최순실 게이트라는 어떤 촉발점에 의해 밖으로 터져 나온 것이라는 걸 확인시켜준다. 고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이전에도 우리는 이미 병사냐 외인사냐를 두고 벌어진 많은 논란들을 마주한 바 있고, 특히 군에서의 가혹행위로 인해 벌어진 사건사고들을 접한 바 있다. 그 당시 그 사건들은 과연 제대로 그 진실이 알려졌던가.

 

가진 자들이 기득권이라는 이름으로 갑질하는 모습들은 무수한 논란들로 터져 나왔던 바 있다. ‘땅콩 회항같은 사건들이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건 가진 자들의 횡포 앞에 분노하는 서민들이 아니던가. 콘트롤 타워의 부재는 이미 세월호 참사 이전에도 그 많고 많은 사고들이 천재가 아닌 인재였다는 것에서 여러 번 지목됐던 것들이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그런 점에서 보면 독특한 의학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병원에서 벌어지는 의사들과 환자들의 이야기지만, 이 드라마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면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사이다 드라마로 자리해 있다. VIP 환자 때문에 먼저 왔지만 제 때 수술을 받지 못해 사망한 환자의 딸이 강동주를 살인자라고 지목하며 치를 떨 때, 그가 진심으로 그녀에게 사죄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더 깊은 감흥을 주는 건 진정한 사과라는 그 행위가 지금 같은 시국에는 더더욱 진중한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고구마 시국에 이런 사이다 드라마가 없다.

<썰전>은 풍자도 격이 다르다

 

최순실씨가요 해도 해도 너무한 게 간섭 안한 곳이 없어요. 되게 바빴어. 대한민국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었어. 여기저기 먹어야 되지, 간섭해야지 인사도 해야 되지. 그리고 원수도 갚아야지. 연설문도 고쳐야 되지. 천도제도 지내야 되지. 그 많은 일들을 어떻게 했나 몰라. 딸 말도 태워야지.” “아 그리고 무당 찾아가서 굿도 해야지.”

 

'썰전(사진출처:JTBC)'

JTBC <썰전>에서 최순실이 한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유시민이 해도 해도 너무했다며 그 사안들을 줄줄이 늘어놓자 전원책 변호사도 한 마디씩 끼워 넣으며 빠진 걸 채워 넣어준다. 사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이 그러할 것이다. 해도 해도 너무 했다는 것. 하지만 뉴스로 이런 사안들이 계속해서 보도되고 그러면서도 당사자들은 부인을 하는 모습을 그냥 바라보기만 하는 시청자들의 마음은 얼마나 답답할까. 마치 그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이 유시민과 전원책은 시원스런 이야기를 던져준다. <썰전>의 유시민과 전원책 변호사는 그래서 일종에 국민의 대변인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물론 이런 사안들은 <뉴스룸>을 통해 공식적인 보도의 형태로 방영된 것들이다. 하지만 그 공식 보도에 빠져 있는 한 조각은 그걸 바라보는 국민의 입장이다. <썰전>이 이번 사태에 즈음해 그 존재의 이유를 확실하게 드러낸 게 바로 이 지점이다. 국민의 입장을 대변해 그 답답한 속을 대신해 낱낱이 풀어보겠다는 것.

 

지난 12일 광화문 촛불집회에 모인 시민이 100만 명이 아니라 26만 명이라고 발표한 경찰청의 집계에 대해서 바로 그 경찰청의 기준을 들어 계산을 하나하나 해보고 왔다 간 시민까지 계산하면 100만 명이 맞다고 굳이 꼼꼼히 따지는 건 그것이 바로 지금 국민들이 갖고 있는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풀어낼 수 있다 여기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그 계산 방식을 상세히 설명한 후 경찰청에서 자기 기준에 따라 제대로 했는지 구글맵이랑 항공사진 가지고 잘 판독해 보라고!” 일갈했다. 거기에 전원책은 이번 주에는 수능시험을 끝낸 고3 학생들까지 포함해 비가 오거나 영하 5도가 되지 않는 한 100만 명이 또 모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리처방 논란이 불거진 김영재 의원과 차움 병원에 대한 여러 의혹에 대해서도 유시민은 논리적인 접근으로 왜 국민이 그런 의심을 하게 됐는가를 분석해주었다. 프로포폴투약에서 전부 사용되지 않고 반납되어야 할 약물이 빼돌려지는 일이 잦았고 이 두 병원이 특히 이 향정신성의약품 관련해서 문제가 많은 병원이었다는 걸 알려준 후, 대통령과 관련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사실은 관계가 없는 거여야 되는데. 항간의 의혹이에요. 최순실씨 일가가 출입을 자주 했던 병원이고, 대통령이 프로포폴을 투약 받은 게 아니냐는 억측, 추측, 소문들이 번져 있는 거예요.”

 

<썰전>의 이야기들이 뉴스와는 다른 시원시원함을 담고 있는 건 사안에 대한 이야기에서 마치 보통 사람들이 하는 목소리로 이어지는 풍자가 있기 때문이다. “최순실, 차은택 두 사람은 학력을 포장하려고 그렇게 애를 쓰고 수준을 과시하기 위해서 만드는 회사 이름마다 이름의 해석이 안 되는 ‘The Playground communications’ 이거 뭘 의미하는 겁니까? 운동장에서 통신하자는 겁니까?” 전원책이 이렇게 쓴 소리를 던지자 유시민이 슬쩍 한 마디를 덧붙인다. “측근들의 놀이터. 그게 청와대를 의미하는 거예요.” 그러자 전원책이 아 그게 그런 깊은 뜻이!”라며 갑자기 개그계의 김병조 선생님의 유행어로 자신의 심경을 얘기한다. “나가 놀아라앙- 정말 그러고 싶어.”

 

전원책 변호사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니 장관해줘요 하면 장관해주고, 청와대 교문수석 해줘요 하면 교문수석 해주고, KT 임원 해줘요 하면 임원 해주고, 대사 해줘요 하면 대사 시켜주고...” 그러면서 자신이 몸통이라는 말을 안 좋아하는데 할 얘기는 해야겠다며 말한다. “계속 이런 결과가 나오면 이 전체 게이트는 박근혜 게이트고 몸통은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내일 내가 명예훼손으로 감옥에 가더라도 이 말을 해야 되요.”

 

새누리당의 향후 거취 문제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역시 국민들이 갖고 있는 새누리당에 대한 감정을 두 사람은 풍자로 풀어냈다. “누런 황태나 버쩍 마른 북어나 퍼등퍼등 살아있는 생태나 명태인 것은 똑같습니다. 그 인간들이 그 인간들이라는 얘기에요.”라고 전원책 변호사가 일갈하자, 유시민은 그래도 생태와 코다리는 맛이 좀 다르기는 하죠.”라고 말했고 그러면서 어느 걸 더 좋아하냐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썰전>의 풍자는 웃지 못할 현 시국에 사이다 웃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미 국민들의 마음은 지난 광화문 집회의 1백만 촛불로 전달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는커녕 부인하고 심지어 그 순수한 촛불의 마음을 왜곡시키는 발언들까지 나오는 시대착오를 보며 국민들의 마음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혹자들은 지금의 시국을 우울증에 걸린 듯한 나날이라고 표현한다. 만일 지금 같은 고구마 시국에 <썰전> 같은 사이다마저 없었다면 어땠을까.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다

<국수의 신>, 고구마는 가득한데 사이다는 언제쯤?

 

KBS <국수의 신>은 한 마디로 극성이 세다. 인물마다 자신의 욕망이 뚜렷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부딪침이 많다. 갈등은 도처에서 벌어진다. 그리고 사람은 쉽게 죽고, 폭력은 도처에서 벌어진다. 지상파 드라마지만 심지어 성폭력이 등장하기도 하고, 성적 유혹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마스터 국수의 신(사진출처:KBS)'

1,2회에 김길도(조재현)라는 악마의 탄생을 촘촘히 그려내면서 네 사람이 그의 손에 죽고 한 명은 식물인간이 된다. 그런데 그 다섯 사람 중 한 사람은 아버지고 다른 한 사람은 장인이며 무명의 부모는 아이의 눈앞에서 불타 죽었다. 이 정도로 세다. 목적을 위해 존속살인은 물론이고 청부, 아이도 마다않는 인간이다.

 

만일 이 드라마가 연출을 세련되게 만들지 않았다면 단박에 막장의 비난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 드라마는 이 정도의 자극을 갖고도 막장 논란이 안 나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연출에 공을 들였다. 어쨌든 이렇게 강력하게 악마 김길도를 세운 덕에 이 드라마는 복수극의 명분을 얻었다.

 

고아원에 들어간 무명이 친구인 태하(이상엽)와 재영(고길용)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 여경(정유미)을 만나는 건 이 복수극을 위한 사전포석이다. 이들은 함께 훗날 복수극으로 도와주거나 대결하게 되는 운명을 갖게 될 인물들이다. 이들이 함께 힘을 합쳐 김길도와 대결하는 건 기대감을 자아내게 하는 구도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밝혀진 바대로 여경의 어머니를 죽인 자는 태하의 아버지다. 태하는 이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김길도는 그런 태하에게 부하가 될 것을 권유했다.

 

복수의 대상인 김길도가 장인인 고대천을 식물인간 만들고 서울 강남에 짓는 궁락원은 무명과 그 친구들이 부숴나갈 악마의 소굴 같은 곳이다. 무명이는 어떻게든 궁락원으로 들어가 안으로부터 그 소굴을 무너뜨려 김길도에게 복수하려 한다. 들어가는 과정이나 그 속에서 복수하는 과정은 결국 국수 만드는 비법 대결 같은 틀로 이뤄지게 될 것이다.

 

사실 이 정도면 이야기가 촘촘하고 전개도 빠르며 극적인 상황들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왜 시청률은 응답하지 않는 걸까. 화제성도 그다지 높지 않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이 드라마를 보면서도 느껴지는 이상함이다. 인물들은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데 정작 보는 마음은 무덤덤하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그 첫 번째는 아무래도 이런 식의 복수극과 음식 소재의 대결 이야기 같은 것들이 어디서 많이 봤던 기시감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드라마 시작부터 나왔듯 <국수의 신><제빵왕 김탁구>가 만들어낸 음식 복수극과의 비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드라마가 지금까지 너무 게임처럼 흘러왔다는 점이다. 이야기는 아귀가 맞고 사건은 빠른 속도로 이어지지만 인물들이 느끼는 아픔 같은 감정들이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는 건 연출이 이야기 전개는 세련되게 하고 있지만 인물들의 감정을 거기에 잘 얹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다. 복수심은 알겠지만 다양한 감정들은 잘 묻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사건은 실감이 느껴지기보다는 게임을 하듯 일정한 거리감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또한 연기가 몰입이 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애초에 만화 원작이 갖고 있는 그 만화적인 느낌을 드라마로 가져오면서 좀 더 현실성을 바탕에 깔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무명은 그 당한 일들을 떠올려보면 쳐다보는 것조차 동정심을 유발할 정도로 강렬한 느낌을 줘야 하지만 상대적으로 너무 차분하게 느껴진다.

 

물론 이것도 보다 본격적인 복수극을 위한 하나의 포석일 수 있다. 실제로 이제 <국수의 신>은 무명이 궁락원에 들어가고 여경이 검사가 되어 사건을 파헤치는 등 본격적인 복수극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과정이 너무 길었다는 느낌이 짙다.

 

문제가 무엇이든 드라마에 현실적인 느낌을 좀 더 실어내지 못한다면 제 아무리 사람을 몇 명씩 죽인다고 해도 시원찮은 반응을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실 자극적인 장면보다 더 강력한 건 그 사람의 내면에 대한 깊은 공감이 아닐까. 이 불쌍한 청춘들이 그들을 짓누르는 어른들의 세계를 철저히 부숴버리는 그런 사이다는 언제쯤 등장할까.

<리멤버> 남궁민, 분노유발자이자 드라마의 동력

 

역시 이번에도 고구마인가. 속 시원한 한 방을 보여주는 이른바 사이다전개를 원하지만 드라마는 마치 도돌이표를 돌리듯 답답한 고구마전개로 돌아간다. SBS 수목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이하 리멤버)>의 시청자들은 그래서 볼수록 답답해진다. 절대 악역인 남규만(남궁민)이 한 방 먹는 장면을 보고 싶지만 <리멤버>는 그걸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아니 그럴 생각도 없는 것만 같다.

 


'리멤버 아들의 전쟁(사진출처:SBS)'

<리멤버>에서 남규만은 분노유발자이자 이 드라마의 동력이다. 그는 살인을 저지르고 그 살인죄를 서진우(유승호)의 아버지에게 뒤집어씌우는 인물이다. 그 아버지는 교도소에서 심한 복통을 호소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남규만이 분노를 유발하는 건 그 범죄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그가 보여주는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식의 안하무인격 갑질은 시청자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개미로 태어난 것들은 개미로 살다 뒤져야지.” 주식을 갖고 장난을 쳐 용돈벌이라도 하자며 무심코 던지는 이런 말들은 개미의 입장일 수밖에 없는 서민들에게는 뒷목을 잡게 만드는 말이다. 그는 친구인 안수범(이시언)을 비서로 두고 친구 이하의 취급을 하는 인물이고, 절친이라는 배철주(신현수)에게도 금수저라고 다 같은 금수저인 줄 아냐고 말해 금수저 그 이상의 특권의식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이러니 분노유발자가 되지 않을까.

 

게다가 남규만은 서진우에게 마음의 빚을 갖고 있는 박동호(박성웅)마저 돈으로 옭아매는 인물이다. 박동호 역시 자신의 아버지가 죽게 된 이유가 바로 그 남규만의 아버지인 남일호(한진희)라는 걸 알게 되고 복수를 꿈꾸게 되지만 그는 지금껏 남규만의 변호사로서 그의 더러운 입이 되어왔다. 박동호가 서진우와 함께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시청자들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도 결과적으로 보면 남규만이라는 악의 축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 남규만을 잡기 위해 서진우는 갖가지 방법들을 동원하지만 그는 그 때마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 마약파티를 하고 있는 남규만을 잡기 위해 서진우와 그 동료들이 진을 치고 있었지만 그는 마약에 취한 채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간다. 그가 타고 있다고 여긴 차를 급습하지만 대신 안수범이 타고 있었고 경찰차들이 운집한 곳을 살짝 비껴 차를 몰고 나오는 남규만은 마치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비웃음을 던진다.

 

남규만이라는 분노유발자와 그를 무너뜨리려 하지만 번번히 실패하는 서진우라는 구도는 아마도 <리멤버>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갑질하는 현실의 답답증을 느끼는 시청자들은 남규만이라는 인물에 그 현실을 투사하고 그가 철저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기를 원한다. 하지만 서진우와 박동호는 그 시청자들의 바람을 쉽게 이뤄주지 않는다. 시청자들이 사이다 전개를 바라면 바랄수록 드라마는 고구마 전개로 나아간다.

 

그러면서 아주 조금씩 사이다 전개의 가능성을 풀어놓는다. 이를테면 안수범 같은 남규만의 비서가 어쩌면 배신을 할 것 같은 뉘앙스를 깔아놓는다거나, 그동안 남규만의 변호사를 해온 박동호가 이제는 본격적으로 그와의 대결을 예고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것은 살짝살짝 풍기는 뉘앙스일 뿐 그 속도는 결코 빠르지 않다.

 

<리멤버>가 이처럼 현실의 답답함을 드라마적 판타지로 쉽게 이뤄주지 않는 건, 그것이 현실적이어서이기도 하지만 드라마의 동력이 사실은 바로 그 답답함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드라마의 실질적인 힘은 남규만이라는 희대의 악역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실이 얼마나 답답하면 현실의 분노유발 요소를 그대로 가져와 집대성한 듯한 남규만이라는 인물이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철저히 응징당하기를 바랄까. 그 커다란 현실에 대한 분노가 이 드라마에 대한 몰입을 만드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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