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트하우스'가 불쾌한 건, 가난 혐오가 도를 넘어서다

 

"저게 얼마짜리 조각상인데 왜 하필 저기 떨어져 죽느냐고 왜?" 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민설아(조수민)는 헤라펠리스 고층 건물에서 누군가에게 밀쳐져 추락했고 조각상 위에 떨어져 사망한다. 그런데 조각상 위에서 사망한 민설아를 올려다보며 이 헤라펠리스에 살고 있는 이른바 0.1% 상류층이라는 이들은 한 생명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 건물을 세운 주단테(엄기준)는 조각상 걱정이 먼저고, 강마리(신은경)는 이런 사건이 집값을 떨어뜨릴까 걱정한다.

 

민설아가 떨어져 죽는 그 순간, <펜트하우스>는 1주년 파티를 하고 있는 헤라펠리스 사람들을 교차 편집해 보여준다. 마치 베르사이유 궁정의 파티를 연상시키는 의상에 가발까지 쓴 이들이 무도회를 즐기고, 불꽃놀이 폭죽까지 터트려 올릴 때 민설아는 그 꼭대기에서 누군가에게 쫓기다 밀쳐져 추락해 사망한다. 이런 교차 편집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사이코패스나 다름없는 헤라팰리스 사람들의 악마 같은 욕망들을 드러내고 그들에 의해 처참한 죽음을 맞게 되는 가난한 한 인물의 비극을 부각시킴으로써 시청자들의 공분을 일으키려는 의도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여기서 더 나아가 민설아의 사체를 끌어내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 꼭대기에서 홀로 비관해 자살한 것처럼 꾸미고, 심지어 집에 불을 지른다. 한 생명이 살해당했고 그 사체가 유기됐으며 심지어 그가 살던 집에 방화까지 벌어졌지만, 헤라펠리스의 파티는 계속된다.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사체 유기를 도운 이들의 몸에는 저마다 민설아의 피가 흔적처럼 묻었지만 그들은 아무런 죄의식이 없다. 심지어 그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파티에 참석한 시의원 조상헌(변우민)은 화재 소식을 듣고도 "내가 소방관이야" 라며 가난한 이들이 사는 곳의 화재 따위는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펜트하우스>가 시청자들의 공분을 끄집어내 불편하고 불쾌하지만 계속 보게 만드는 방식은 끊임없이 '가난 혐오'를 끄집어내는 것이다. 민설아라는 캐릭터는 사실상 '가난 혐오'의 대상으로 등장해 지속적인 괴롭힘과 폭력에 시달리다 결국 살해되고 사체마저 유기되는 것으로 그 공분을 끌어내기 위해 탄생한 인물이다. 게다가 드라마는 이 인물이 주단테에 의해 바뀐 심수련(이지아)의 친 딸이라는 걸 드러낸다. 눈앞에서 자신의 딸이 떨어져 죽는 걸 목격한 심수련의 피의 복수가 예고되는 대목이다.

 

<펜트하우스>에 대한 논란이 시작부터 거셌던 건, 여기 등장하는 중학생 아이들이 민설아에게 저지르는 폭력만큼, 이들이 갖고 있는 '가난 혐오'가 보기 불편할 정도로 시청자들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부자라는 이유로 선민의식까지 가진 이들은 자식의 미래까지 돈으로 척척 결정해버리지만, 없는 자가 실력으로 그 곳에 오르려하면 "어디서 감히"라며 짓밟는 천민자본주의의 민낯을 드러낸다.

 

그래서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명백하다. '가난 혐오'의 막장을 보여주는 인물들에 대한 극도의 분노와 처절한 복수가 그것이다. 화려해 보이지만 천박하고 더럽기 그지없는 그들의 민낯을 끄집어내 폭로하고, 헤라펠리스의 추악함을 드러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드라마가 취하는 방식은 너무나 작위적이고 의도적이다. 민설아라는 한 인물을 마음껏 유린하다 버리는 그 방식은 이 작가가 갖고 있는 작품에 대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 목적을 위해서는 뭐든 있는 대로 끄집어내는 것.

 

문제는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목적만을 위해 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 과정이 주는 납득할만한 공감대를 충분히 제시하지 않으면 목적을 이룬다한들 그 과정이 보여준 불편함을 지워낼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단 한 순간의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불편함과 불쾌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 이것이 김순옥 작가의 <펜트하우스>를 보는 시청자들이 겪는 일이다.

 

드라마의 목적은 바로 그 '가난 혐오'에 대한 복수를 담는 것이지만, 너무나 자극적인 과정들은 오히려 '가난 혐오'의 시각을 드라마가 드러내고 있다는 인상을 만든다. 본말이 전도됨으로써 생겨나는 일이다. 다소 뻔한 틀을 가져오고, 상투적 상황들을 반복하지만 불편함과 불쾌함이 주는 자극의 강도는 더 세진 <펜트하우스>를 보며 느끼게 되는 우려도 그 자극만큼 더 커졌다. 과연 이래도 괜찮은 걸까.(사진:SBS)

'전참시' 방송 파문, 제작진 몰랐다는 게 면죄부 될 순 없다

과연 MBC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의 제작진은 사전에 몰랐던 것일까. 예능 프로그램에 세월호 참사 보도 장면이 ‘조미료’처럼 편집되어 들어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시 보고 또 봐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 장면이 예능 프로그램이 만들어내려는 웃음의 재료로 쓰였다니. 어떤 변명을 해도 상식적으로 결코 납득될 수 없는 일이다.

이 비상식적인 장면은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이영자가 어묵을 먹는 장면에 삽입되었다. 마치 속보라도 들어온 것처럼 뉴스 보도 장면에 ‘[속보] 이영자 어묵 먹다 말고 충격 고백’이라는 자막이 붙여 웃음을 주려 했던 것이었다. 보도 앵커 뒤편에 담겨진 세월호 침몰 장면은 블러 처리되어 있었지만 그 장면이 세월호 참사 보도였다는 게 밝혀지면서 논란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하필이면 어묵을 먹는 장면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도 대중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어묵은 일베 일부 회원이 세월호 희생자분들을 모욕하는데 활용됐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건이 불거지고 나서 대중들은 MBC에 일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이미 해당 장면이 블러 처리되었다는 사실과 일베를 연상케 하는 어묵 장면에 삽입됐다는 점은 제작진이 사전에 알고 한 의도적인 행위가 아니냐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제작진은 해당 장면을 ‘자료 영상을 담당하는 직원으로부터 모자이크 상태로 제공 받은 것’이라고 했다. 즉 제작진은 그 장면이 세월호 참사 보도 장면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제작진은 사과와 함께 ‘삭제조치’ 그리고 향후 이 문제를 MBC 내부에서 엄밀히 조사해 합당한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 아무리 모자이크 상태로 제공 받은 것이라고 해도 이를 인지하지 못한 것 역시 책임을 모면하기는 어려운 일이 된다. 편집과 자막은 결국 최종 제작진의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선택에는 그 자료의 선별과정 또한 포함되는 일이다. 파문이 커지자 MBC 최승호 사장이 직접 SNS에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여러분 그리고 시청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는 글을 게재했다. 또 “관련자의 책임을 묻고 유사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방지책을 강구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일베 논란을 일으킨 많은 사건들이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 바 있다. 그 때마다 방송사들은 내부적인 책임자 처벌과 향후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자체 검증 시스템을 갖추겠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 검증 시스템은 늘 구멍을 보여왔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렇게 된 건 방송, 특히 예능 프로그램에 있어서 ‘자료화면’을 통한 편집이 갈수록 비중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특히 ‘관찰카메라’ 형식이 이제 대세로 자리 잡은 예능 프로그램은, 현장에서 찍어온 영상을 어떻게 편집하고 자막을 얹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질감의 웃음이 만들어지는 결과를 보이게 됐다. 평범한 장면도 편집을 통한 일종의 ‘조미료 치기’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게 된 것.

문제는 이게 과도해질 때다. 적절한 조미료야 원 재료의 맛을 돋워줄 수 있지만, 아예 조미료만으로 맛을 낼 때는 과한 인위적인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런 조미료에 대한 강박은 이번 사건 같은 말 그대로의 ‘방송 참사’가 빚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검증 시스템을 강화하는 건 이제 부수적인 일이 아니라 방송 프로그램의 성패를 결정짓는 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편집과 자막이 사실상 그 프로그램의 생사를 가르는 일이 된 지금, 그 검증에도 그만한 인력과 노력이 투여되고 있는지 반드시 점검해봐야 하는 시점이다. 또한 과도한 편집과 자막에 대한 강박 역시 결국은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제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지적 참견 시점>처럼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는 프로그램이라면 더더욱 그렇다.(사진:MBC)

<돌아저씨>, 복수극 아닌 공감의 방식을 택한 까닭

 

만일 웃음을 걷어냈다면 SBS 수목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는 얼마나 슬픈 드라마가 됐을까. 뼈 빠지게 회사에서 온 몸을 바쳐 일하다 덜컥 죽음을 맞이하게 됐지만 그것 역시 자살로 덮어버리려는 현실. 돌연사니 과로사니 하는 사인들이 분명하지만 그 노고를 인정해주기는커녕 부정하고, 그 노고의 과실 또한 가로채는 현실. 무엇보다 모두의 기억 속에 그런 식으로 마지막을 남겨버리고 떠나는 이의 마음이라니. 아마도 억장이 무너질 이야기다.

 


'돌아와요 아저씨(사진출처:SBS)'

또한 이러한 가장의 죽음은 그 가족의 슬픔이자 비극이기도 하다. 김영수(김인권) 과장의 죽음으로 그의 가족들은 냉혹한 현실에 내몰린다. 당장 살 길이 막막한 그의 아내 다혜(이민정)는 발도 딛기 싫을 남편이 죽은 그 백화점에서 일한다. 무엇보다 자살로 알려진 사인은 가족을 충격 속에 빠뜨린다. 가장의 자살이라면 그 가족에게 남을 깊은 죄책감과 부채감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

 

너무나 큰 비극이지만 <돌아와요 아저씨>는 이 비극을 그저 비극으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물론 그 비극은 슬프고 나아가 당사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지만 이 드라마는 그 이야기를 코미디의 형태로 담아낸다. 인물들은 과장되어 있고, 상황은 판타지다. 이미 죽은 자들의 이야기라면 그 자체로 비극일 수밖에 없지만, 드라마는 여기에 코미디와 판타지를 엮어 이들을 되살려 놓는다.

 

죽음 앞에 그 사람의 존재보다 더 큰 가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심지어 생명보다 더 큰 가치인 양 내세워지는 돈보다 더 큰 가치다.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그것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 살아내야 하는 당장의 삶과 나아가 큰 돈의 유혹은 모든 걸 덮어버리기도 하니까.

 

이해준(정지훈)의 몸으로 역송된 김영수가 결국 그것이 자살이 아니었다고 스스로 밝혀내지만 회사를 대표하는 차재국(최원영)은 거액의 돈으로 이를 덮어버리려 한다. 그 돈이면 다혜네 가족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살 수 있다. 하지만 다혜는 이를 거부한다. 그것이 마치 남편의 죽음을 돈으로 가치 매기는 듯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최근 그토록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가진 자들의 갑질을 담은 무수한 복수극과 소재적으로는 그리 다르지 않다. 결국 최근 많아진 범죄 스릴러 장르에서 우리가 공분하는 건 가진 자들이 생명조차 돈 몇 푼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태도다. 어찌 보면 자본화된 세상의 극단에 대한 비판이 최근의 무수한 범죄 스릴러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정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의 소재라고 해도 <돌아와요 아저씨>는 그 시선이 사뭇 다르다. 이 드라마에서 우리가 느끼는 건 그런 현실에 대한 복수가 주는 판타지적인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돌아온 자들이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다시금 알게 되면서 갖게 되는 위로와 위안이다. 적어도 그들은 돈이 아닌 자기 자신의 존재를 더 귀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

 

판타지를 담은 코미디 장르로 변환되면서 역송된 이들은 한 가지 지켜야할 약속을 갖게 된다. 그것은 복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가가 이런 설정을 집어넣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여겨진다. 복수를 통한 해결이 아니라 이 드라마는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 커져가는 사회적 분노와 그것을 반영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흔한 복수극들과는 사뭇 다른 이 드라마만의 가치다. 어쩌면 자본 세상에 고군분투하다 그렇게 어이없이 세상을 등지게 되었지만 기사 한 줄 없이 기억 속에 사라져버린 그들의 입장을 다시금 공감해보는 일. 그래서 그들을 위해 잠시나마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 코미디의 가벼운 웃음을 주는 이 드라마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다.

<리멤버> 남궁민, 분노유발자이자 드라마의 동력

 

역시 이번에도 고구마인가. 속 시원한 한 방을 보여주는 이른바 사이다전개를 원하지만 드라마는 마치 도돌이표를 돌리듯 답답한 고구마전개로 돌아간다. SBS 수목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이하 리멤버)>의 시청자들은 그래서 볼수록 답답해진다. 절대 악역인 남규만(남궁민)이 한 방 먹는 장면을 보고 싶지만 <리멤버>는 그걸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아니 그럴 생각도 없는 것만 같다.

 


'리멤버 아들의 전쟁(사진출처:SBS)'

<리멤버>에서 남규만은 분노유발자이자 이 드라마의 동력이다. 그는 살인을 저지르고 그 살인죄를 서진우(유승호)의 아버지에게 뒤집어씌우는 인물이다. 그 아버지는 교도소에서 심한 복통을 호소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남규만이 분노를 유발하는 건 그 범죄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그가 보여주는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식의 안하무인격 갑질은 시청자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개미로 태어난 것들은 개미로 살다 뒤져야지.” 주식을 갖고 장난을 쳐 용돈벌이라도 하자며 무심코 던지는 이런 말들은 개미의 입장일 수밖에 없는 서민들에게는 뒷목을 잡게 만드는 말이다. 그는 친구인 안수범(이시언)을 비서로 두고 친구 이하의 취급을 하는 인물이고, 절친이라는 배철주(신현수)에게도 금수저라고 다 같은 금수저인 줄 아냐고 말해 금수저 그 이상의 특권의식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이러니 분노유발자가 되지 않을까.

 

게다가 남규만은 서진우에게 마음의 빚을 갖고 있는 박동호(박성웅)마저 돈으로 옭아매는 인물이다. 박동호 역시 자신의 아버지가 죽게 된 이유가 바로 그 남규만의 아버지인 남일호(한진희)라는 걸 알게 되고 복수를 꿈꾸게 되지만 그는 지금껏 남규만의 변호사로서 그의 더러운 입이 되어왔다. 박동호가 서진우와 함께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시청자들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도 결과적으로 보면 남규만이라는 악의 축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 남규만을 잡기 위해 서진우는 갖가지 방법들을 동원하지만 그는 그 때마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 마약파티를 하고 있는 남규만을 잡기 위해 서진우와 그 동료들이 진을 치고 있었지만 그는 마약에 취한 채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간다. 그가 타고 있다고 여긴 차를 급습하지만 대신 안수범이 타고 있었고 경찰차들이 운집한 곳을 살짝 비껴 차를 몰고 나오는 남규만은 마치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비웃음을 던진다.

 

남규만이라는 분노유발자와 그를 무너뜨리려 하지만 번번히 실패하는 서진우라는 구도는 아마도 <리멤버>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갑질하는 현실의 답답증을 느끼는 시청자들은 남규만이라는 인물에 그 현실을 투사하고 그가 철저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기를 원한다. 하지만 서진우와 박동호는 그 시청자들의 바람을 쉽게 이뤄주지 않는다. 시청자들이 사이다 전개를 바라면 바랄수록 드라마는 고구마 전개로 나아간다.

 

그러면서 아주 조금씩 사이다 전개의 가능성을 풀어놓는다. 이를테면 안수범 같은 남규만의 비서가 어쩌면 배신을 할 것 같은 뉘앙스를 깔아놓는다거나, 그동안 남규만의 변호사를 해온 박동호가 이제는 본격적으로 그와의 대결을 예고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것은 살짝살짝 풍기는 뉘앙스일 뿐 그 속도는 결코 빠르지 않다.

 

<리멤버>가 이처럼 현실의 답답함을 드라마적 판타지로 쉽게 이뤄주지 않는 건, 그것이 현실적이어서이기도 하지만 드라마의 동력이 사실은 바로 그 답답함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드라마의 실질적인 힘은 남규만이라는 희대의 악역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실이 얼마나 답답하면 현실의 분노유발 요소를 그대로 가져와 집대성한 듯한 남규만이라는 인물이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철저히 응징당하기를 바랄까. 그 커다란 현실에 대한 분노가 이 드라마에 대한 몰입을 만드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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