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도 하는 일을 왜 정부는 못하나

 

때로는 각각 떨어진 사안들이 하나의 문화적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요즘 들어 연일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 계속 회자되는 두 단어가 있다. 하나는 백종원, 다른 하나는 메르스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사진출처:MBC)'

이 둘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싶지만 그 사이에 소통이라는 단어 하나를 집어넣으면 그 연결고리를 쉬 알아차릴 수 있다. 메르스 사태는 갈수록 바이러스의 문제가 아니라 소통의 문제라는 게 드러나고 있다. 초동대처가 좀 더 빨랐다면, 또 감염 병원에 대한 정보가 빨리 공개됐더라면 지금처럼 문제가 확산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점이다.

 

사극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 이도(한석규)의 한글 유포를 막으려는 이유로 정기준(윤제문)은 미개한 백성들에게 한글은 혼동을 주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논리를 든다. <뿌리 깊은 나무>의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이 논리를 저 나치의 괴벨스에게서 가져왔다고 말한 바 있다. 정기준은 한글 같은 파괴력 있는 정보체계를 마치 전염병처럼 본다. 메르스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은밀히 저들끼리 해결하려다 오히려 세계 제1의 감염자를 낸 병원을 보면 여전히 정보의 소통에 대한 시대착오적 판단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가를 잘 보여준다.

 

조금 엉뚱해 보이지만 이 시기에 백종원이라는 인물이 소통의 아이콘으로 등장했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저 쿡방 열풍에 기댄 셰프의 한 사람으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는 소통의 달인이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그가 하고 있는 쿡방은 그래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소통의 한 상징처럼 보일 때가 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라는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이 개인방송들의 대결은 콘텐츠 대결이 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문을 열고 보니 그건 콘텐츠가 아니라 소통의 대결이었다. 제 아무리 좋은 콘텐츠도 혼자 독불장군식으로 보여주거나 밀고 나가면 시청자들을 우수수 빠져나간다. 결국 소통에 실패한 프로그램들은 폐쇄되고 만다.

 

백종원이 주목받게 된 것은 그가 애플보이라고 불리게 된 그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그 이유를 가늠할 수 있다. 시청자들은 그의 쿡방을 보며 별의 별 시시콜콜한 것까지 트집을 잡아 사과하라고 한다. 이를테면 그냥 초장에 찍어먹는 건 정말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고 초장에 사과하세요라는 댓글이 붙고, “믹서기가 영 시원찮다는 말에 믹서기 비하 발언이라고 사과하란다. 또 카메라를 고정시키기 위해 고추를 꽂았다는 표현을 해 ‘19금 발언이라고 지적받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얼토당토않은 사과 요구에도 그는 선선히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애플보이는 그렇게 만들어진 닉네임이다.

 

이건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사과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무거운 무게를 갖고 있는가를 가늠해보면 백종원에 대한 그 무수한 사과 요구, 그럼에도 소통을 끊지 않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 주고받음이 대중들에게 주었을 훈훈한 미소를 그려보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에 이어 메르스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 사태에 대해 책임지고 사과하는 모습을 우리는 본 적이 있었나. 남 탓하기 바빴던 것은 아닌가.

 

백종원은 방송에서 종종 카메라를 향해 은근한 미소를 날리며 구수한 멘트로 직접 시청자들과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괜찮쥬?”하고 묻기도 하고, 때로는 살짝 투정을 부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 아닌 진짜 소통을 위한 과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지금 백종원이 셰프 그 이상의 신드롬을 만들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소통에 실패하면 모든 걸 실패하게 된다는 사실은 저 일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일이다. 하물며 국가와 국민의 소통이랴. 국민들은 많은 걸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들어주고 반응해주며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는 모습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건 백종원도 하는 일이다.

 

윤은혜의 남장여자 연기 살린 ‘커프’의 공유

‘커피 프린스 1호점’을 만나기 전까지 공유가 거쳐온 역들은 그가 가진 개성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물론 특별 출연한 것이지만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감사용(이범수)과 나란히 달리기 경주를 하는 박철순(공유) 역에서도 그의 개성은 숨겨져 있었다.

최근에 했던 드라마, ‘어느 멋진 날’에서의 서건 역은 지나친 무게의 옷을 입혀 공유의 연기 운신을 너무 어렵게 만들었다. 공유 특유의 투정이나 어리광을 부리고 장난기가 가득한 소년 같은 이미지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의 한결을 만나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이 드라마는 무엇보다 그 중심에 윤은혜가 해야하는 고은찬이란 남장여자 연기가 서게 된다. 그것이 어색하게 틀어지게 되면 드라마는 긴장감을 잃고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더 어려운 것은 그녀가 남장여자란 사실을 시청자는 물론 극중 배역들까지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드라마의 재미를 배가시키기 위해 한결 만은 끝끝내 몰라야 한다는 점이다.

윤은혜라는 연기자가 이 남장여자의 연기를 자기 속에 있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잘 버무려 연기해낸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이것은 어찌 보면 시청자와 드라마 사이의 어떤 약속과도 같다. 그녀는 여자인데 남자행세를 하게 되는 것이고 그걸 한결은 모른다는 암묵적 동의다.

이 부분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한결이란 캐릭터다. 한결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고은찬은 영원히 남자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여자로서 함께 사랑에도 빠지게 될 수 있는 것. 고은찬이 남장여자가 되는 것은 사실 그녀가 남자처럼 행동하고 건들댈 때가 아니라, 공유가 그녀에게 다가가 ‘한번만 안아보자’고 말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이건 쉬운 문제가 아니다. 연기자의 이미지가 너무 진지하다면 상황 자체가 너무 무거워지고, 그렇다고 너무 가벼웠다가는 캐릭터의 매력이 떨어지게 된다. 게다가 시청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즉 고은찬이 여자라는 사실을 오로지 그만 모르면서 가슴 설레고 힘겨워하는 연기를 한다는 것은 자칫 과장의 늪에 빠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공유는 자신이 가진 소년 같은 이미지를 제대로 활용한다. ‘이 감정 도대체 뭐야’ 하고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거나, 감촉을 잊지 못해 난감해하는 그의 얼굴이 보일 때, 시청자들이 쿡쿡 웃으면서 청춘의 설렘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건 바로 그 소년의 이미지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웃음을 동반한 풋풋함에서부터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지는 감정 속으로 빠져들면서 남자라도 상관없다는 투로 “끝까지 가보자”고 말하는 그에게서 어느 누가 애정을 갖지 않을 수 있을까. 극중 배역인 한결은 소년 같으면서도 상처를 갖고 있고, 능력도 있는데다가 때론 세심한 배려(특히 가족에 대한)도 보여주는 여성들의 환타지를 자극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공유가 이렇게 제 몸에 맞는 한결이란 옷을 입게 된 것이 우연이었을까. 이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연기자에게서 끌어낸 이미지의 결과 드라마의 캐릭터를 제대로 엮어낸 이윤정 PD의 연출력이다. 미니시리즈 첫 여성 연출자라는 꼬리표에서 드러나듯 그녀가 가진 여성적인 섬세함과 꼼꼼함이 만들어내는 드라마의 파괴력은 대단하다.

이것은 딱히 공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윤은혜는 ‘궁’이 성공했지만 늘 가수출신 연기자라는 연기논란을 일으켰고, 이선균은 ‘하얀거탑’에서 김명민이 연기한 장준혁이란 캐릭터 속에서 억울하게도 힘 한번 써보지 못하는 최도영이란 캐릭터의 연기를 해야했던 경험이 있다. 게다가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더 많은 채정안은 ‘해신’ 등에 등장했지만 그다지 주목받는 역할은 맡지 못했던 연기자다.

하지만 이들이 중심이 되어 엮어 가는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의 캐릭터들은 과거의 어떤 연기보다 이들의 몸에 딱 맞아 보인다. 본래 최한성(이선균)이 한유주(채정안)에게 피아노 연주를 하게 되어 있던 대본을, 이선균이 피아노를 잘 못 친다고 하자 보다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차라리 전화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으로 바꾼 에피소드는 이윤정 PD가 어떻게 연기자에게 맞는 캐릭터 옷을 입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게 이윤정 PD라는 연출자에 의해 조탁된 한결을 연기한 공유의 이미지는 과거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늘씬한 키에 조각 같은 몸매를 과시하듯 늘 초반부에 웃통을 벗어 젖히고 나오는 이미지로 굳어있던 공유는 이제 섬세한 결을 가진 소년 같은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남자라고 해도 날 사랑해준다는 남자, ‘커피 프린스 1호점’의 한결이 선물한 공유의 이미지는 한동안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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