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태양’이 보여주는 조직의 비리 청산 그 어려움

검은태양

“그날 네 동료들을 죽인 건... 한지혁 바로 너야!” MBC 금토드라마 <검은 태양>에서 영상 속 한지혁(남궁민)은 그렇게 말한다. 국정원 임원들이 긴급 소집되어 있었고, 한지혁과 국정원 국내 파트 1차장 이인환(이경영)이 대치하던 상황이었다. 그 영상 속 한지혁의 말은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 특히 1년 전 중국 선양에서 동료들을 죽인 자와 이를 사주했을 국정원 내부 배신자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한지혁은 더더욱 충격에 빠졌다. 

 

과거의 자신이 현재의 자신에게 미리 찍어뒀던 영상을 순차적으로 보내 그 진실을 알린다. 바로 이런 장면은 <검은 태양>이라는 서사가 가진 특이한 지점이다. 국정원이 등장하고 중국에서 벌어진 공작들이 초반에 펼쳐져 애초에는 <아이리스> 같은 전형적인 스파이물처럼 보였던 게 사실이다. 또 항간에는 기억을 찾아가는 <본> 시리즈를 떠올리게 한다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밀항선에서 마치 지옥에서 돌아온 괴물의 형상으로 1년 전의 기억을 모두 잃은 채 한지혁이 등장하는 강렬한 장면은 그래서 다소 뻔한 스토리로 흘러가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 섞인 기시감조차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과거의 한지혁이 미리 찍어 자신에게 보낸 영상으로부터 차별화된 서사의 변곡점을 찍는다. 한지혁은 국정원 내부의 적폐세력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그들의 실체를 찾아가기 위해 돌아온 것이었다는 것. 드라마는 스파이 스토리가 아닌 추리극 형태로 바뀌었고, 한지혁이 그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국정원의 갖가지 비리들이 등장한다. 민간인 사찰, 대선 개입, 갖가지 간첩 조작사건 등등, 이미 우리에게 충격을 줬던 실제 국정원 비리들이 드라마 속 서사 속에서 얼굴을 내민다.

 

국정원 적폐세력의 몸통으로서 실체를 드러낸 인물은 바로 이인환이다. 그는 국정원 국정원이 선거 개입 등을 위해 민간인을 사찰했던 사건으로 궁지에 몰렸던 인물이다. 그는 이 여론을 뒤집고 선거 판도를 바꾸기 위해 ‘북풍’을 활용하려 한다. 북한 고위간부인 리동철의 망명을 계획한 것. 하지만 이 계획이 틀어지자 사건을 덮기 위해 모두를 제거한다. 그리고 그 후에도 이인환은 상무회를 통해 아르고스라는 비밀조직을 움직이고(과거 기업 플래닛이 해왔던 개인 정보 수집 선거 개입 등의 활동을 하는 것) 그것으로 정권에 휘둘리지 않는 힘(권력)을 가지려 한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우린 죽어서도 음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라는 거지. 내가 지금까지 이 조직에 있으면서 몇 명의 원장을 모셨는지 아나? 21명이야. 정권이 8번 바뀌는 동안 자그마치 21명의 원장이 손님처럼 여길 다녀갔어. 그리고 그들은 매번 우리 원이 자신들에게 충성하기를 바랐지. 선거에 개입하고 여론을 조작하고 사람들을 사찰하라고 지시했어. 그리고 사라져버렸지. 그 오명들을 모두 우리에게 뒤집어씌운 채! 근데 설명할 수도 변명할 수도 없었어. 그저 침묵해야만 했어. 그게 우리 숙명이니까.”

 

실체를 알게 된 한지혁을 마주하게 된 이인환은 자신이 왜 이런 일들을 벌이게 됐는가에 대한 이유를 그렇게 설명한다. 국정원이 그간 정권에 의해 갖가지 비리와 범죄를 저지르면서까지 이용되고, 사건이 터졌을 때도 결국 그 오명은 시킨 자들이 아닌 국정원이 뒤집어썼다는 것. 그렇지만 그걸 설명하거나 변명할 수도 없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이인환은 결국 이 모든 문제가 ‘힘’의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들이 휘둘릴 게 아니라 더 큰 힘을 갖는 독자적인 조직이 되려 한다는 것이다. 

 

“거기 편승했던 건 당신도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한지혁의 말처럼 이인환이 하려는 짓은 저들과 다르지 않다. 결국 이 독자적인 조직으로서의 힘을 갖기 위해 그는 여러 동료들마저 죽음으로 내몰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이인환 같은 악의 실체가 드러났다는 점이 아니라 그 뒤에 존재하는 검은 세력들(그건 아르고스 같은 사조직이 될 수도 있고 국정원의 힘을 이용해온 정권일 수도 있다)이 어떤 짓들을 해왔는가 하는 점이다. 

 

어찌 보면 이러한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중차대한 사건들을 수사하고 그 진실을 파헤치며 비리와 적폐를 청산하는 일이야말로 국정원이 본래 해야 될 일들이다. 하지만 명령 체계로 운용되는 조직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심지어 조직의 안위를 위해 같은 동료들에게도 총구를 겨누게 만든다. 한지혁 또한 그런 희생양이 됐던 인물이고, 유제이(김지은)의 아버지라 여겨지는 백모사(유오성)도 스스로 말했듯 한지혁과 비슷한 일들을 겪은 인물이다. 

 

앞서도 말했듯 <검은 태양>이 여타의 스파이액션과 차별화되고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과거의 자신이 무슨 이유에선지 기억까지 지워버린 후 자신을 국정원 안으로 보냈다는 사실이다. 그는 순차적으로 과거에 미리 찍어둔 영상을 현재의 자신에게 보내면서, 마지막 영상을 보기 전 반드시 국정원 내 배신자를 찾아내라고 강변한다. 결국 그 배신자는 이인환으로 드러나지만, 놀랍게도 동료를 죽인 진범이 바로 자신이었다는 마지막 영상 속 진술을 마주한다. 

 

그렇다면 한지혁은 왜 이렇게까지(기억까지 지운 채) 하면서 국정원 내 배후세력을 찾아내려 했던 걸까. 그것은 거꾸로 기억을 모두 가진 채 국정원 내부의 적폐와 대결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에둘러 말해준다. 조직원으로서 조직의 적폐를 척결하는 일이 ‘기억까지 지울 정도’가 아니면 어려운 일이라는 걸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스파이물처럼 보였던 <검은 태양>은 그래서 뒤로 갈수록 현실감을 드러낸다. 실제 2016년 국정원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갖가지 사건들이 이 드라마가 탄생한 이유로서 제시되고 있는 것. 매 대선 정국 때마다 북풍에서부터 시작해 댓글 조작 같은 방식으로 여론을 좌지우지하려 했던 조직이 있었고 거기에는 이들을 이용하려는 정권 또한 존재했다는 걸 <검은 태양>은 저격하고 있다. 그래서 국정원 스스로 적폐 청산을 하고 새로운 조직으로 탄생하겠다 선언한 그 변곡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과연 <검은 태양>처럼 국정원은 그 조직이 쇄신되고 있을까. 다가오는 대선은 어쩌면 이를 가름하는 시간이 될 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검은 태양>을 본 시청자들이라면 다가오는 대선에서 혹여나 벌어질 지도 모를 어떤 사건들조차 이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될 테니 말이다.(사진:MBC)

'언더커버', 프락치 지진희의 비애, 그리고 국가의 야만적 폭력

 

1990년대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가짜 신분으로 접근했다 사랑에 빠진 안기부 요원. JTBC 금토드라마 <언더커버>는 한정현(지진희)은 이석규라는 자신의 이름을 지운 채 사랑하게 된 최연수(김현주)와 가정을 꾸려 단란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이 한정현이 가진 '거짓 신분'은 언제고 터질 수밖에 없는 시한폭탄이었다.

 

인권변호사가 된 최연수가 공수처장으로 지목되자, 국정원 도영걸(정만식) 팀장은 한정현을 협박한다. 최연수가 공수처장이 되는 걸 막지 않으면, 그의 가족을 파탄 내겠다는 것. 한정현은 아내의 앞길을 막을 수도, 그렇다고 가족이 파탄 나는 걸 볼 수도 없는 곤경에 빠진다. 다행스럽게도 최연수가 스스로 공수처장을 수락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이런 선택은 그가 30년 넘게 재심 변론을 해왔던 황정호(최광일)의 간절한 부탁으로 흔들린다.

 

<언더커버>는 BBC 동명의 원작 리메이크 드라마지만, 우리 식의 해석이 담겨 있다. 90년대 학생운동과 당시 안기부의 공작들이 그 밑그림으로 들어가 있어서다. 이석규는 바로 당시의 안기부 요원 중 능력을 인정받아, 한정현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채 최연수에게 접근하는 인물이다. 프락치 활동을 하는 것이지만, 한정현은 점점 최연수에게 빠져들고 그래서 조직의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며 사직서를 쓴다. 하지만 이런 한정현을 그냥 놔둘 리가 없는 안기부다.

 

안기부는 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한정현이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아직 드라마가 보여주지 않았다. 다만 그 삶이 얼마나 비극적이었을 지는 그가 아버지를 우연히 거리에서 마주하는 장면에 들어 있다. 임무 때문에 자식이 해외에 나갔다 믿었던 아버지는 최연수와 가정을 꾸린 채 나타난 한정현이 아들이 아님을 부인하자 그 상황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한참 후에 한정현이 요양원에서 마주한 아버지는 치매에 걸려 아들을 알아보지도 못한다. 한정현은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바로 달려갈 수 없는 처지다.

 

한정현은 국가 기관이 만든 시대의 비극을 담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그 비극 속에서 쓸쓸하게 죽어간 아버지를 경험하면서도, 애써 지키려 한 건 바로 자신의 가족이다. 과거를 애써 잊으며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가려던 그지만, 그 과거가 갑자기 그의 앞으로 다시 툭 튀어나온다. 한정현은 이제 현재를 위해 과거와 싸워야하고, 가족을 위해 저 거대한 조직과 싸워야 한다.

 

궁금해지는 건 최연수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는 정의를 위해 거의 한 평생을 살아왔던 인권변호사다. 그런데 공수처장 수락을 앞두고 가족이 파탄 위기를 마주하게 된다. 그는 과연 남편의 거짓 신분을 알고도 그를 받아들일까. 가족이 위기에 처하는 상황 속에서도 정의를 위한 자신의 소신을 지켜나갈까. 그런 최연수를 바라보는 한정현은 또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언더커버>는 정체를 숨기고 살아온 남편의 실체가 드러나는 스릴러적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법 정의나 진실과 거짓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국가 기관이 만든 개인의 비극과 그래서 개인이 저 거대한 국가 기관과 마주해 싸우는 이야기. 특히 <언더커버>가 리메이크 되면서 강화한 부분은 가족이다. 결국 한정현도 최연수도 이 위기 속에서 가족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한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리메이크작이지만 이 드라마가 꽤 우리네 드라마 같은 정서적 공감대를 갖게 해주는 이유이기도 하다.(사진:JTBC)

'히트맨', 명절 특수 누릴 복병으로 떠오르나

 

권상우 주연의 영화 <히트맨>은 사실 제목부터가 그리 확 당기지는 않는다. 게다가 권상우가 총과 연필을 양 손으로 쥐고 전면을 노려보는 포스터도 어딘가 B급 유머의 뉘앙스가 풍긴다. 그래서 영화관을 찾은 관객 분들 중 이런 선입견 때문에 굉장한 기대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영화를 보는 내내 의외로 웃기고 의외로 액션 터지는 <히트맨>에 적이 놀랐을 게다. 도대체 어딘지 허술해 보이는 이 영화의 무엇이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하게 된 걸까.

 

한때 국정원에서 살인무기로 키워진 이른바 ‘방패연’의 전설적인 인물이었던 암살요원 준. 그는 웹툰 작가가 되고 싶어 죽음을 위장해 국정원을 탈출한다. 그리고 한 참의 세월이 지나 아내와 딸을 둔 웹툰 작가로 연재하는 작품마다 악플 신기록을 경신하던 그는 술김에 1급 비밀인 자신의 과거를 그린 작품을 공개해버린다. 하루아침에 초대박이 나지만 그건 암살요원 준을 노리는 이들과 국정원 사람들이 그를 찾게 되는 이유가 되어버린다.

 

전직 국정원의 전설적인 인물이 정체를 숨기고 생활고에 허덕이는 일상인으로 살아간다는 설정은 그리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영화는 다소 의도적으로 과장된 이야기와 연기, 연출을 더하면서 웃음을 만들어낸다. 뭘 그렇게까지 말하고 행동할까 싶은 장면과 대사들이 연달아 이어지고 연출 또한 과장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B급 코미디의 정서를 만들어낸다.

 

<히트맨>이 빵빵 터지기 시작하는 건 준(권상우)과 그를 키워낸 악마교관 덕규(정준호)가 다시 만나게 되고 국정원 요원들을 암살해온 제이슨(조운)과 그 일당들은 물론이고 국정원 형도(허성태)의 추격을 받게 되면서 벌어지는 거의 코미디 콩트에 가까운 상황들이 벌어지면서다. 두 사람은 웹툰 속 전설적인 인물들이지만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에서는 마치 어린아이들 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과장된 코미디는 역시 과장된 액션과 절묘하게 더해지면서 웃음과 동시에 액션이 주는 쾌감을 선사한다. 상황들은 웃긴데 액션은 의외로 고급지다.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건 역시 배우들이다. 권상우는 과거 <말죽거리 잔혹사> 이래 꾸준히 보여줬던 액션에 코믹한 캐릭터 연기까지 더해 마치 성룡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명절하면 떠오르던 성룡 영화가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시점, 권상우가 그 자리를 차지해도 충분할 것 같은 새로운 면모다.

 

정준호 역시 지금껏 봐왔던 어떤 역할보다 이 작품 속 망가지며 웃기는 코미디 연기가 제격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여기에 최근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를 통해 악역만이 아닌 코믹 연기도 잘 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던 허성태나, 역시 코미디 연기에 가능성이 더 보이는 이이경과 황우슬혜가 더해지니 연기만 봐도 웃음이 풍성하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귀요미 이지원의 연기. <스카이캐슬>에서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던 이지원은 이 영화에서 관객들을 울리며 웃기는 기이한 체험을 하게 만들어준다.

 

사실 이번 설 연휴에 압도적으로 관객의 시선을 잡아끄는 영화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남산의 부장들>이 이병헌이나 이성민, 곽도원 같은 굵직한 배우들을 통해 시선을 끌고 있지만 영화가 너무 무거워 명절 흥행을 보장한다 말하기는 어렵다. <미스터주>나 <해치지 않아> 같은 동물 소재의 영화들이 자리했지만 역시 관객몰이를 하기에는 확실한 재미를 주고 있는지가 의문이다.

 

그래서 이번 명절에 <히트맨>은 의외의 복병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남산의 부장들>에 이어 흥행 2위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 굳이 찾아서 볼 정도의 영화라 말하긴 어렵지만, 명절을 맞아 어떤 영화든 보겠다며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에게는 의외로 <히트맨>처럼 조금은 별 생각 없이 깔깔 웃고 시원한 액션을 볼 수 있는 작품이 선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사진:영화'히트맨')

‘배가본드’, 이승기의 화려한 액션에 담긴 절실함의 실체

 

SBS 금토드라마 <배가본드>의 액션은 웬만한 블록버스터 영화를 방불케 한다. 콘테이너 박스에 총알이 난사되는 장면이나,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차량 추격전이 그렇고, 건물과 건물 사이를 넘어 다니는 맨 몸 액션이 그렇다. 그 액션의 중심에 서 있는 건 역시 차달건(이승기)이다. 이승기는 이 온 몸을 던지는 역할에 전혀 사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배가본드>가 보여주려는 건 단지 화려한 액션만이 아니다. 그 액션에 가려져 있긴 하지만 어쩌면 더 중요한 건 왜 저들이 저토록 절실하게 온 몸을 던지고 있는가 하는 점일 게다. 부패한 국정원 요원들과 그 위에 국정원장, 국방위원장, 민정수석, 국무총리 심지어 대통령까지 연루된 거대한 게이트 속에서 민항기 테러라는 초유의 사태의 진실은 가려지고 묻혀진다.

 

거대한 권력의 힘은 언론은 물론이고 검경까지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니 진실은 가려진다. 진실을 말하려는 이들에게는 탈탈 털어서 나오는 먼지 하나까지도 끄집어내 협박하고 회유하는 저들이다. 그것조차 먹히지 않으면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우리는 차달건이 보여주는 놀라운 액션에 시선을 뺏겼지만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가 왜 그토록 위험한 불길 속으로 뛰어 들었는가를 잠시 놓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는 유족이다. 조카가 비행기 테러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그것이 사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찍이 알았고 그래서 진실을 밝히는 것만이 그 안타까운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죽을 수도 있는 그 위험한 길로 뛰어든다. 모로코까지 날아가 진상을 밝힐 유일한 증인인 저들과 결탁했던 사고 비행기 조종사를 체포하고, 그들이 돌아오는 걸 원치 않는 이들이 쏘아대는 총알 속을 뚫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법정까지 가는 길에 이제 경찰들까지 총을 들고 그들을 막는다. 심지어 저격수까지 기용된다.

 

차달건이 유족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건 법정 앞에서 더 이상 나갈 수 없을 거라 여겼던 그 순간에 유족들이 온 몸을 던져 그 길을 뚫어주는 장면 때문이다. 그들은 총을 들고 위협하는 이들에게 달려들고, 추격하는 차를 자신의 차로 들이받으며 저격범의 총격으로부터 증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방패로 세운다. 그들이 얼마나 진상규명을 절실히 원하는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총알 앞에서도 몸을 던지고 있으니. 되돌아보면 차달건이 지금껏 해온 액션의 실체는 바로 저들 유족들의 절실함이었다.

 

<배가본드>는 그래서 수백 명의 무고한 이들이 죽게 된 사건과 그에 대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 하지만 자신들의 이익 때문에 진실을 가리려는 세력의 이야기다. 그러니 이 구도만 보면 이 드라마는 액션 장르라기보다는 사회극에 가깝다. 그것도 우리가 최근까지 겪고 있는 현실 문제들을 환기시키는 사회극.

 

지금도 진상규명을 원하는 유족들이 여전하다. 현대사 속에서 희생된 너무나 많은 안타까운 죽음들이 진실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여전히 눈을 감지 못하고 있다. <배가본드>는 액션 장르에 바로 이런 안타까운 비극적 현실을 밑그림으로 깔아 넣었다. 그래서 이제 화려한 액션만큼 기대되는 건 어떻게 저 진실이 밝혀져 나갈 것이고, 그 가해자와 공모자들이 처벌받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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