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삼각멜로를 넘어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

 

SBS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그 제목에 이미 삼각멜로가 예고되어 있다. 그 유명한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의 이야기가 전사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슈만에 의해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었던 브람스는 그의 아내인 클라라를 평생 옆에서 바라보며 사랑하다 독신으로 생을 마감한다.

 

드라마 속에서는 채송아(박은빈)와 박준영(김민재)이 모두 그 브람스의 위치에 서 있다. 채송아는 친구이자 바이올린 선생님이었던 윤동윤(이유진)을 좋아하지만 그의 베프인 강민성(배다빈)이 그와 사귀었고 또 여전히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다. 박준영은 자신의 절친인 한현호(김성철)가 자신이 좋아하는 이정경(박지현)과 연인이 되어 나타나자 마음을 접었지만 뉴욕 공연장을 찾아온 이정경이 갑자기 자신에게 입맞춤을 하면서 그 마음이 혼란스러워진다.

 

채송아도 박준영도 그래서 그들과 함께 있으면 어딘지 마음이 쓸쓸해진다. 아마도 자신이 처한 상황과 유사해서였을까. 박준영, 한현호, 이정경의 피아노 트리오 커뮤니케이션을 맡게 된 채송아는 이정경을 향한 박준영의 남다른 느낌을 알아차린다. 노래 신청을 하라는 말에 채송아가 아무 생각 없이 신청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통해서였다. 그 곡은 이정경을 생각하는 박준영의 마음이 담긴 곡이었고, 순간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의 이야기가 겹쳐지며 박준영의 상황을 채송아는 알아채게 됐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순한 멜로의 맛을 보여준다. 삼각멜로에서 밀려나 있는 채송아와 박준영이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는(그래서 그것이 사랑으로까지 이어질 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 다소 뻔한 삼각멜로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갖게 만들지만, 그런 생각을 지워내게 하는 특별한 지점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이들의 사랑이나 아픔, 슬픔 같은 감정들이 그저 대사나 행동으로 처리되는 게 아니라 브람스, 슈만 그리고 클라라의 이야기와 거기 얽힌 클래식 음악들을 통해 전해진다는 점이다. 실로 이 드라마에서 클래식 음악은 또 하나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극의 스토리 전개나 극중 인물들의 감정을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자신이 겪고 있는 아픔 때문에 마치 자신의 모습처럼 여겨지는 브람스를 연주하기 싫어하는 박준영의 상황은 멜로와 더불어 한 예술가의 성장담을 그 안에 담아 넣는다. 그의 연주를 들은 마에스트로는 이렇게 말한다. "너무 모든 사람들 마음에 들게 연주하려고 애쓰지마. 콩쿨 심사위원 전원에게서 8점 받으면 물론 1등 할 수 있겠지만 때로는 한두 명에게 10점 그리고 나머지에게 6,7점을 받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그렇다면 그 한두 명에겐 평생 잊지 못할 연주가 될 수 있으니까. 아무 것도 겁내지 말고 너의 마음을 따라가 봐."

 

박준영은 피아노 연주를 이미 잘 하는 피아니스트지만 거기 자신의 마음을 먼저 담기보다는 듣는 이들을 먼저 신경 쓰게 됐다. 그건 가난해 포기하려 했던 자신을 후원해준 정경은 재단에 대한 마땅한 보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좀 더 적극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드러내지 못해 옆에서 가슴앓이만 하고 있는 그의 심경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연주가 끝나고 함께 길거리에 남게 된 채송아에게 박준영은 그 날의 연주가 어땠냐고 묻는다. 그러자 좋았다고 말하며 채송아는 거꾸로 되묻는다. "다른 사람 말고 준영씨 마음엔 드셨어요?" 라고. 채송아는 리허설룸에서 그가 쳤던 슈만의 트로이메라이가 더 좋았다고 말한다. 채송아의 그 이야기는 마에스트로의 이야기와 겹쳐지고,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살아가는 박준영의 마음을 건드린다.

 

이 드라마가 순한 멜로이면서도 빠져들게 만드는 건 그 안에 클래식 음악을 통해 담아내는 예술가 혹은 인간의 성장담이라는 휴먼드라마적 요소들이 더해져 있어서다. 채송아는 경영학과를 다니다 4수 끝에 음대에 들어와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었다. 잘 하지는 못하지만 좋아하기 때문에 그 길을 선택하고 걸어가게 된 것. 반면 박준영은 이미 인정받는 피아니스트지만 자기 스스로 좋아해 연주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생계를 위해서 또 도와준 분들을 위해서 인정받으려 연주해왔지만 진정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담아 연주하지 못했던 것.

 

이 즈음에서 다시 이 드라마의 제목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제목은 물론 이 드라마가 삼각멜로를 소재로 담고 있다는 걸 드러내지만, 그것을 넘어서 박준영이 자신의 상처를 이겨내고 진짜 좋아하는 마음으로 브람스를 연주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과연 클래식 음악을 매개로 채송아와 박준영은 서로의 엇나간 관계에 의해 갖게 된 상처들을 보듬어주고 서로를 성장시킬 수 있을까. 이 순한 멜로의 앞으로의 이야기가 기대되는 이유다.(사진:SBS)

‘꽃파당’, 졸지에 왕이 됐지만 개똥이를 그리워한다는 건

 

사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사극은 이제 익숙해졌다. <성균관 스캔들>에서부터 <해를 품은 달>, <구르미 그린 달빛> 게다가 최근에는 <신입사관 구해령>까지. 이들 사극들은 구체적인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다만 조선이라는 배경만을 활용한다. 그 위에서 벌어지는 로맨스는 그래서 다분히 현대적인 관점을 담아내기 마련이다.

 

그 현대적인 관점이란 현재의 청춘들이 겪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무언가 열심히 노력하려 해도 바뀌지 않고 공고한 어른들의 세상은 그래서 이들 조선시대 배경의 로맨스 사극이 사랑이야기를 통해 담아내려는 주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들은 사랑하려 한다. 하지만 조선이라는 배경은 사적인 사랑의 선택을 좀체 용납하지 않는다. 신분이 다르고 정파와 얽혀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JTBC에서 새로 시작한 월화드라마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이하 꽃파당)>도 그 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평범하게 살아가다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 개똥(공승연)과의 혼삿날에 궁으로 끌려와 졸지에 용상에 앉게 되는 이수(서지훈)와, 사라진 그가 혹여나 잘못되진 않았나 걱정하며 찾아다니는 개똥이. 그리고 이들의 혼사를 맡았던 조선 최고의 중매쟁이 마훈(김민재), 고영수(박지훈), 도준(변우석)의 혼담공작소 꽃파당.

 

결국 이야기는 서로의 운명이 달라 헤어지게 된 개똥이와 이수가 그 신분의 차이를 넘어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일 게다. 거기에 꽃파당이 개입하면서 생기는 사건들이 있을 테고. 아마도 이수와 개똥이 사이에 끼어들게 된 마훈과의 삼각관계가 갖는 긴장감 또한 펼쳐지지 않을까 싶다.

 

이야기는 흔한 로맨스 사극의 틀을 가져왔지만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면면들은 흥미로운 지점들이 있다. 이를 테면 왕이 됐지만 그 왕노릇보다 개똥이를 잊지 못해 그리워하는 이수라는 인물이 그렇다. 그가 그 자리에 오게 된 건 자신의 뜻이 아니라 왕과 세자가 죽고 비어버린 왕좌에 허수하비처럼 그를 앉혀 놓고 국정을 농단하려는 마봉덕(박호산) 같은 야심가 때문이다. 그래서 이수의 행동은 마치 신물 나는 정치보다는 개인적인 행복(사랑 같은)이 더 중요하다 여기는 지금의 청춘들의 정서를 담고 있다.

 

이것은 마봉덕을 아버지로 두고 있지만 어쩐 일인지 그 집을 뛰쳐나와 남자 매파라는 일을 하고 있는 마훈에게서도 똑같이 보이는 면면이다. 정치가 백성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헬조선에서 마훈은 마치 개개인들의 사랑을 이어주는 것으로 그나마 손에 잡히는 행복이 더 중요하다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가장 사적인 것이 또한 정치적이라고 했던가. 이들의 사적인 행복 추구는 그걸 가로막는 어른들의 정치적 행보 속에서 그 자체가 정치적인 행위가 되어버린다. 이수가 왕의 위치에 머문다는 건 마봉덕의 허수아비로 살아가는 걸 거부하고 저잣거리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던 개똥이를 찾아가는 이야기는 그래서 정치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물론 <꽃파당>이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건 로맨스 사극이 갖는 그 달달함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달달함을 가로막는 조선 사회의 억압들이 신분제 사회가 갖는 무게감으로 드라마가 하려는 메시지를 그려낼 것으로 보인다. 현실에 치여 사랑을 하는 일조차 버거워진 지금의 청춘들이, 그 이유가 정치 같은 어른들이 해온 일련의 잘못된 선택들 때문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 그 각성은 그래서 지극히 사적인 사랑이야기를 정치적인 이야기로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사진:JTBC)

'최고의 한방', 희비극이 잘 엮어진 예능드라마

짠한 데 웃음이 나고, 우스운데 짠하다. KBS <최고의 한방>은 희비극이 무엇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주는 드라마다. 최우승(이세영)이 사귀던 남자친구가 자신의 룸메이트와 바람을 피우는 걸 박스 안에 숨어서 보다 들키는 시퀀스는 이 드라마가 가진 웃음과 짠함의 정체를 드러낸다. 자존심 상하고 창피한 우승이 박스를 뒤집어쓴 채 집밖으로 나가려 하고 그걸 막으려는 남자친구와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은 짠한데 웃음이 난다. 코미디가 가진 양면성, 즉 비극 속에 담겨진 희극적 요소가 주는 페이소스가 이 드라마에는 도처에 묻어난다. 

'최고의 한방(사진출처:KBS)'

힘겨운 공시생의 삶을 살아가는 우승은 일 년 간의 노력 끝에 들어간 시험장에서 갑자기 배탈이 나 결국 시험을 포기하게 된다. 그 상황 자체가 주는 절망감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 비극적 상황을 웃음으로 풀어낸다. 배탈을 애써 버텨내려는 우승에게 시험 문제지의 글자들, 즉 ‘고비, 폭발, 쏟아지는, 산사태, 배출, 터져 나온다’ 같은 단어들이 그녀를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만든다는 설정은 웃음이 난다. 

매달 평가와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일상으로 살아가는 기획사의 독종 연습생 혜리(보나)를 지훈(김민재)이 자꾸 자살하는 줄 알고 오해하는 장면이 반복되는 시퀀스들도 코미디적으로 처리되어 있지만 사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죽도록 연습을 해도 앞이 보이지 않는 그 청춘들의 땀과 눈물이 느껴진다. 그러니 그 연습생을 하도 오래해 ‘조상’으로 불리게 된 지훈이 월말 평가에서 대놓고 떨어지라 요구받은 랩에 자신의 심정을 담아내는 모습은 그토록 짠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엉뚱하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버텨내고, 눈물이 흘러도 눈물샘이 막혀 생긴 질환이라고 말하며 넘어가는 이 청춘들이 어느 날 가로등 아래서 진짜 힘겨움을 슬쩍 드러낼 때 그 무표정이 사실은 온통 세상의 무게를 버텨내고 있는 얼굴이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이런 청춘들에게도 한 방의 기회는 과연 올 것인가. 

<최고의 한방>은 여기에 특별한 판타지 설정을 집어넣었다. 그것은 1990년대의 아이돌 스타 유현재(윤시윤)가 그 시대에서 갑자기 20년을 뛰어넘어 현재로 타임리프한 것이다. 유현재는 당시 최고의 스타로서 화려한 청춘을 구가했지만, 20년을 뛰어넘은 현재의 그는 어쩌다 지훈의 옥탑방에 얹혀 지내는 신세가 된다. 왜 <최고의 한방>은 최근 드라마에 많이 등장해 자칫 식상하게 느껴질 우려가 있는 타임리프 설정까지 굳이 집어넣어 90년대의 청춘과 현재의 청춘을 연결시킨 걸까.

그것은 아마도 현재의 청춘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 과거 한 때는 청춘이었던 지금의 중년들이 살아왔던 삶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일 게다. 지금의 현실은 과거들이 중첩되어 만들어진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과거의 청춘 유현재가 현재의 청춘 지훈과 가까워지고 소통하고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나아가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려는 그 과정은 이 드라마가 그려내려는 ‘한방’의 실체가 되지 않을까.

짠한 상황 속에서도 웃음으로 그것을 전하려는 이 드라마는 그래서 힘겨워도 웃으며 버텨내려는 청춘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닮았다. 그 웃음을 따라가다 보면 그 밑에 깔려 있는 청춘들의 절망감이 공감된다. 유현재는 이제 중년이 된 시청자들의 시선이 되어 현재를 다시 돌아보게 해주고, 지훈과 우승은 지금의 청춘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래서 그 유현재와 지훈이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은 청춘이라는 공유점으로 세대 간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최고의 한방>은 ‘예능 드라마’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어 전면에 드러나 있는 건 코미디적 상황들의 연속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시트콤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자잘한 코미디적 상황들이 숨기고 있는 ‘한방’이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청춘의 아픈 현실에 대한 공감과 위로라는 묵직한 메시지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