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박은빈이 절감하는 시간의 장벽을 넘는 법

 

"정경씨랑 사이에 그러니까 그 시간들 사이에 제가 들어갈 자리가 있어요?" SBS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채송아(박은빈)는 박준영(김민재)과 이정경(박지현)이 함께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채송아는 박준영을 사랑하지만 박준영과 이정경 사이에 오래도록 함께 해왔던 시간의 장벽을 절감한다.

 

그것은 채송아에게 뒤늦게 시작한 바이올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졸업 후에도 계속 바이올린을 연주할 거라는 채송아에게 박성재(최대훈)는 아픈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다. 아주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한 다른 친구들의 그 시간을 도저히 채송아는 따라잡을 수 없을 거라고.

 

함께 한 시간은 실제로 헤어진 연인인 이정경과 한현호(김성철)에게도 여전히 오래도록 남아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이정경과 연인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한현호는 이수경(백지원) 교수의 채임버 단원에서 제외된다. 이수경 교수가 이정경을 데리고 있는 송정희(길해연) 교수와 알력이 있어서다.

 

이정경과 한현호는 헤어졌지만, 친구가 없어 홀로 술을 마시러 갔다는 이정경이 어느 술집을 갔는지도 정확히 알고 찾아온다. 그리고 술에 취해 쓰러진 이정경을 호텔방에 눕혀주고 방을 나선다. 헤어졌지만 그들이 함께 했던 시간들은 그들 사이에 여전히 흐른다.

 

채송아는 박준영에게 연습하던 곡을 바꿀까 고민한다고 말한다. 잘 할 것 같았는데 해낼 수 없는 곡이란 생각에 자신이 없어져서란다. 박준영은 자신도 그런 적이 있었지만 바꿔도 나아지지 않더라는 얘기를 꺼낸다. 놓아버린 곡에 대한 목마름과 괴로움과 그리움이 남는다고, 채송아는 그 말에서 박준영과 이정경 사이에 놓인 시간을 떠올린다. 바꾸려 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는 박준영의 말이 그래서 채송아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늦게 시작했다고, 그만한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다고 꿈도 사랑도 늦었다 말하는 현실 앞에서 채송아는 우울하다. 그런 그에게 이수경 교수는 무리한 부탁까지 한다. 사고 싶은 물건을 중고거래로 사려는데 대전까지 직접 가서 물건을 받아오라는 것. 하지만 우울하게 대전까지 가는 길은 박준영이 함께 하면서 즐거운 시간으로 바뀐다.

 

이정경과 함께 할 연주 시간을 빼내 채송아와 대전까지 다녀오는 그 함께 한 시간 속에서 박준영과 채송아는 그들만의 시간을 쌓아간다. 그 누구에게도 숨기고 싶었던 것들을 공유한다. 식당에서 일하는 박준영의 엄마를 우연히 만나 그 곳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채송아는 자신이 대전까지 온 진짜 이유가 이수경 교수의 그런 부탁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꺼낸다. 그 상처에 대한 시간들은 그들이 공유함으로써 위로받는다.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서로 기대고 있는 두 사람 사이의 시간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채송아를 통해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늦게 시작해 꿈도 사랑도 채워지지 않는 시간들. 하지만 드라마는 그런 지나간 과거의 시간들보다 앞으로 이들이 꿈꾸고 사랑해갈 시간이 더 소중하다는 걸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시간을 통해 담아낸다. 늦은 꿈도 사랑도 없다며.(사진:SBS)

 

'브람스', 무례한 세상이어서 김민재의 조심스러움이 이해된다

 

"이정경, 한현호, 이 두 사람과는 피아노 트리오 이제 그만 하죠. 이 두 사람과는 취미로만 하세요. 준여 씨한테 득 될 게 없는 조합입니다. 뭐 다이렉트로 말씀드리자면 준영 씨와 급이 안 맞습니다." 경후재단에서 나와 박준영(김민재)을 매니지먼트하는 기획사의 한국지부를 맡게 된 박성재(최대훈)는 대놓고 박준영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들이 오랜 친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급'을 이야기한다.

 

SBS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는 세상을 급으로 나누고 성적순으로 세워놓고 이른바 '낮은 급'의 사람들에게 무례한 박성재 같은 이들이 등장한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이 성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어른들 때문에 고통 받는 건 다름 아닌 청춘들이다.

 

이제는 퇴물에 가깝지만 옛 명성에 기대 그 인맥으로 살아가는 송정희(길해연)나, 채송아(박은빈)에게 대학원 제의를 하며 자신의 조교로 일하게 한 지도교수 이수경(백지원) 그리고 박준영이 쇼팽 콩쿠르에 입상할 때까지 가르쳤던 유태진(주석태) 교수가 그런 어른들이다. 송정희는 대놓고 급을 나누며 채송아를 무시하고, 이수경은 도와주는 척 하면서 채송아를 이용해먹으려고만 한다.

 

유태진은 박준영이 아티스트로서 성장해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그를 콩쿠르에서 우승시켜 자신의 입지를 마련하는 것만이 관심일 뿐. "학생 반주 한 번 해줬다고 내가 무슨 어린 애들 반주 전문인 줄 아네. 어이가 없네. 야 너도 너 만난다는 여자애나 뭐 다른 누구와도 반주해주네 뭐 그런 생각 하지도 마. 급 떨어지는 애들 반주 해줘봤자 너도 같이 급 떨어지는 것밖에 안돼." 유태진은 만일 박준영이 채송아의 반주를 해줘 '인생연주'를 하게 된다 해도 그것이 전부 박준영의 '연주빨'이라는 얘기밖에 못 듣는다고 말한다.

 

답답하지만 세상이 그 모양이다. 모든 것을 순위로 나누고 급의 차이를 이야기한다. 좋아해서 하는 음악이 아니라 성과를 내기 위한 음악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채송아는 힘겨워한다. 오케스트라의 자리 배치도에 맨 꼴찌로 들어가 있는 자신의 이름이 몹시도 걸린다. 그래서 박준영과 만나면서도 그와의 급 차이를 의식하게 된다. "월드클래스 아티스트랑 학교 오케스트라 끝자리에 앉는 사람은 아무래도 급이 안 맞을까요?"

 

하지만 박준영은 그런 거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며 채송아가 그런 일에 마음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한다. 하지만 늘 맨 끝자리에 앉던 채송아에게 급의 벽은 높게만 느껴진다. "오케스트라 자리요, 의미 없지 않아요. 너무 큰 의미에요 나한테. 그래서 연연해요. 한 자리만 더 옆이었으면 한 줄만 더 앞이었으면. 지난 4년 내내 그랬어요. 이해 안 되죠? 아마 평생 이해 못할 거예요. 그래서 내가 어쩌면 내가 준영 씨하고 나란히 서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신이 좀 없어져요."

 

채송아의 이런 자격지심에 대해 박준영은 실망하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무례한 어른들의 면면들은 왜 그가 그렇게까지 주눅이 들었는가를 공감하게 한다. 뒤늦게 바이올린이 좋아졌고 그래서 하던 공부도 접고 새로 시작한 음악의 길이다. 더 오래 음악을 해온 다른 이들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급을 나눠 무시하고 헛된 꿈이라 싹조차 밟아버리는 게 상식적인 일인가.

 

물론 그런 어른들만 있는 건 아니다. 재단의 최고참 차영인(서정연)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대하는 어른이다. 인턴으로 들어온 채송아에게도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인물. 그는 흔들리는 채송아에게 자신을 믿어보라고 조언한다. 한번 마음을 주면 절대 먼저 걷어갈 아이가 아니라며. 그리고 박준영이 왜 그렇게 답답할 정도로 자기 생각을 잘 말하지 않는가의 이유를 들려준다. 그 이유는 그가 늘 자신을 후순위에 두기 때문이란다.

 

이 드라마에서 박준영은 사실 조금 답답한 면이 느껴질 정도로 표현을 안하는 캐릭터다. 하지만 그 이유는 차영인이 말하듯 그가 급 따위는 나누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말 한 마디 하는데도 조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송아처럼 늘 급으로 나뉘어 차별받아온 인물은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넘길 수가 없다. 그래서 박준영이 이정경(박지현)의 독주에 친구로서 반주를 해주고 싶다는 얘기를 했을 때 채송아는 실망감을 드러낸다. 결국 그 마음을 알게 된 박준영은 채송아가 듣고 싶은 말 "좋아한다"는 말을 하고 키스를 함으로써 진심을 표현한다.

 

음악을 좋아하고, 또 심지어 누군가를 좋아하는데도 급을 나누는 무례한 세상. 채송아와 박준영이 그저 좋아하고 함께 연주를 하는 것조차 커리어에 누가 된다며 막는 그런 세상이다. 그러니 별 의도 없이 던져지는 말 한 마디도 누군가에는 돌맹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박준영의 답답할 정도로 조심스러운 말들은 그래서 이해되는 면이 있다. 그건 이미 무례해진 세상에서 애써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그 마음 때문이니까.(사진:SBS)

가진 게 없다고 꿈도? '브람스'가 멜로에 담은 진짜 메시지

 

"저 언니 계속 꼴찌래. 서령대에서 바이올린 한다고 다 바이올리니스트인가?" 같은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하지만 유명 변호사 딸 조수안(박시은)은 채송아(박은빈)를 그렇게 낮게 바라보며 해서는 안 될 말까지 꺼내놓는다. 구두를 가져오지 않아 채송아가 자신의 구두를 빌려주고 슬리퍼를 신고 무대 뒤에서 서 있는 동안, 조수안은 무대에서 연주를 한다. SBS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이 장면은 가진 것과 꿈 사이에 놓인 엄청난 현실적 격차를 그 자체로 보여준다.

 

뒤늦게 바이올린에 대한 꿈을 갖게 되어 다니던 경영대를 포기하고 4수 끝에 음대에 들어온 채송아(박은빈)에게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고 묻는 질문에 그의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좋아해서"라는 것. 너무 좋아해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라는 채송아는 연주할 때마다 가슴이 설레고 그래서 평생을 하고 싶다고 했다. 반면 그의 절친이자 바이올린 스승(?)이었던 윤동윤(이유진)은 자신이 바이올린을 접고 악기를 만드는 쪽으로 진로를 바꾼 것이 더 이상 연주가 설레지 않아서였다고 했다. 그는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너무 좋다고 말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제목에 들어간 '브람스'라는 단어에 담긴 것처럼 서로 엇갈린 남녀들이 겪는 사랑을 다루고 있지만, 그 멜로 속에 담겨진 또 하나의 메시지는 '좋아한다'는 것의 의미다. 채송아는 바이올린을 좋아한다. 그래서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마다 설레고 행복하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세상은 그가 좋아해 더 나아지려 노력하려는 바이올린 연주를 평가하고 때론 모욕적인 말로 그 꿈이 현실성이 없다고 짓밟는다. 그는 가난해 가진 것도 없고 재능이 특별난 것도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꿈도 가난해야할까.

 

학생들과의 토크콘서트에서 노력하면 타고난 재능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박준영(김민재)은 안타깝게도 음악은 재능이 중요하지만 꿈을 꾼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재능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말에서 채송아는 그것이 마치 자신을 위로하는 말인 양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토크콘서트가 끝나고 함께 걸어가며 나누는 대화 중 "재능은 없는 게 축복"이라는 박준영의 말에 채송아는 처음으로 정색하며 말한다. 좋아하고 노력해도 재능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데 재능 없는 사람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박준영이 "재능은 없는 게 축복"이라고 말한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그는 재능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재단의 후원을 받아 왔지만, 그것은 그에게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가난한 처지 때문에 또 사업에 보증을 잘못 서 끝없이 돈을 요구하는 아버지 때문에 그는 하고 싶어서 연주를 한 게 아니었다. 후원을 받은 것에 대한 책임감으로 그리고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연주를 했던 거였다. 그는 재능은 있지만 좋아서 연주를 할 처지가 아니었다.

 

재단을 찾아와 자신의 아이가 오디션에 왜 떨어졌느냐고 따지는 지원 엄마가 그 날 그 현장에 있었던 채송아에게 자신의 아이의 연주가 어땠냐고 묻자 채송아는 이렇게 말해준다. "제가 생각하기에 지원이는요. 대단한 재능을 가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요 어머니. 지금 오디션에서 붙느냐 떨어지느냐는 지원이에게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콩쿨과 오디션 중요하죠. 그렇지만 저는 지원이가 등수나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어머니께서 지원이를 묵묵히 믿고 지켜봐주신다면 반드시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채송아는 "그렇게 재능이 있고 잘하는 걸 좋아하지 못하게 되면 안되잖아요."라고 말한다. 채송아는 알고 있다. 바이올린을 하는 데 있어 재능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재능이 있어도 '좋아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 때문에 힘겨워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박준영이 그런 것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오디션, 합격, 성적 같은 것들로 누군가의 삶을 무례하게 재단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좋은 것을 하고 싶어 꿈을 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고, 어떤 이들은 심지어 재능을 갖고 있어도 그걸 좋아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것이 어디 꿈에 있어서만 그러할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조차 세상은 그가 가진 것들로 재단한다. 좋아해도 좋아한다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고, 저 혼자 포기하려던 채송아가 어느 날 다시 만나게 된 박준영에게 도저히 참지 못하고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각별히 슬프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어쩌다 우리는 꿈도 사랑도 가진 것에 의해 재단되는 세상에 살게 된 걸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그래서 단순한 청춘 멜로로만 볼 드라마는 아니다. 거기에는 그들의 꿈과 사랑을 제 멋대로 가로막고 재단하는 세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이 저 밑바닥에 깔려 있다. 잔잔한 클래식 선율로 다가와 우리의 마음을 툭툭 건드리지만, 그러다 어느 순간 울컥 눈물이 터지게 되는 건 그 음악 언저리에 어른거리는 냉정한 세상에 이토록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청춘들의 신산한 삶이 느껴져서다.(사진:SBS)

'브람스', 의외로 센 김민재식 음악 멜로의 묘미

 

음악은 과연 누군가의 위로가 될 수 있을까. SBS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채송아(박은빈)는 자신이 상처받을까봐 애써 윤동윤(이유진)과 강민성(배다빈)이 술에 취해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을 숨기려 한 박준영(김민재)에게 그 마음은 알겠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고 말한다. 상처받는 것보다 바보 되는 것이 더 싫다는 것.

 

그런데 돌아서려는 채송화의 귀에 박준영이 치는 베토벤의 '월광'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채송아가 좋아한다고 했던 곡이다. 채송아는 그 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그 곡을 듣고 싶지 않다고 멈춰 달라 하지만 박준영은 계속 연주를 이어간다. 그런데 중간에 갑자기 곡이 슬쩍 생일 축하곡으로 변주한다. 박준영은 그 날이 채송아의 생일이라는 걸 알았고 그래서 그 곡은 그가 건네는 생일선물이었다.

 

박준영은 큰 위로를 받아 멍하니 서 있는 채송아에게 대뜸 "우리 친구해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일어나 다가가 채송아를 안아주며 이렇게 말한다. "아니 해야 돼요 친구. 왜냐면... 이건 친구로서니까." 그 순간 채송아는 생각한다. '나는 음악이 우리를 위로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정작 내가 언제 위로 받았었는지는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만은 알 수 있었다. 말보다 음악을 먼저 건넨 이 사람 때문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이 인상적인 장면은 이 드라마가 그려가는 멜로의 색다른 질감을 잘 보여준다. 제목에 담겨 있듯이 이 드라마는 음악이 인물들 간의 감정과 관계를 표현해내는 매개 역할을 한다. 박준영은 천상 피아니스트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런 그의 성격과는 달리 보다 적극적으로 구애한 그의 친구 한현호(김성철)와 연인이 된 이정경(박지현)은 박준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이미 친구의 연인이 된 이정경을 그는 받아들일 수 없다.

 

박준영에게 슈만의 '트로이 메라이'는 이정경에 대한 애증이 담긴 곡이다. 이 곡이 들어있는 '어린이의 정경'을 좋아해 거기서 따와 이름 지어진 이정경을 위해 한때 박준영은 트로이 메라이를 연주하곤 했지만, 이제 친구의 연인이 되면서 그 곡은 더 이상 치고 싶지 않은 곡이 됐다. 어쩌다 한현호와 이정경이 다 모인 자리에서 채송아가 그 곡을 신청했을 때 박준영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연주를 했다. 그건 박준영이 채송아에 대한 마음을 접고 있다는 걸 에둘러 표현한 것이었다.

 

박준영이 브람스를 싫어한다고 말하는 대목은 자신의 상황이 브람스의 상황 같기 때문이었다. 평생 클라라를 사랑했지만 슈만의 아내인 그를 옆에서 바라보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브람스. 브람스를 연주하지 못하는 건 피아니스트로서 넘어야할 장애물이기도 하지만, 관계에 있어서도 풀어야할 숙제이기도 했다.

 

박준영에 대한 마음을 점점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정경으로 인해 이를 알게 된 한현호는 준영에게 그 아픈 마음을 꺼내놓고, 이들 세 사람의 관계는 점점 불편해진다. 드라마는 이들의 불편해진 관계를 함께 협연하는 과정에서 합을 맞추지 못하는 에피소드로 풀어낸다. 연주를 시작하려다 이건 아니라는 이정경에게 뭐가 문제냐며 문제를 해결하고 가자는 한현호 그리고 뭐든 맞추겠다는 박준영. 그건 협연에 대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그들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이처럼 음악을 통해 인물들의 감정변화를 표현해낸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주목되는 인물은 박준영이다. 그의 말로 직접 쉽게 하지 않는 성격은 음악으로 에둘러 표현하는 이 드라마의 멜로 방식을 잘 담아낸다. 박준영은 '서서히, 조금씩(포코 아 포코)' 다가오지만 '진심으로(이니히)'로 음악을 통해 마음을 전하고 '지나치지 않게(논 트로포)' 그 마음을 건넨다. 그 사랑법은 느린 듯 보여도 의외로 세다.

 

채송아에 대한 박준영이 마음을 전하는 방식은 에둘러 표현되어서 오히려 더 강한 여운을 남긴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송아씨를 만나야겠다. 송아씨를 만나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 그래서 덕분에 알겠어요. 제 생각이 틀렸었네요. 낮에 학교에 갔던 게 사실은 웃고 싶었던 거였네요. 같이 있으면 즐겁고 자꾸 웃게 되니까... 송아씨가 보고 싶었던 거였네요."(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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