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반대로 가는 ‘천리마마트’, B급의 반격인가

 

“인생 토너먼트 탈락자. 팔린 들 어떠하리, 안 팔린 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와 같이 맘 편하게 팔아보세.” 갑자기 ‘수라묵’이라는 이름으로 기존 시세의 세 배나 되는 가격의 묵을 마트에서 파는 걸 반대하는 문석구(이동휘) 점장에게 정복동(김병철) 대표는 뜬금없이 ‘하여가’를 패러디한 시조 글귀로 그렇게 말한다. 가격을 조금이라도 낮추려고 모두가 혈안이 되어 있다고 문석구는 말하지만, 정복동은 팔리니 안 팔리니 걱정 말고 맘 편하게 팔아보라 한 것.

 

그런데 이 얼토당토않은 정복동의 지시는 엉뚱하게도 천리마마트에 또 다른 대박을 안겨준다. 늘 싸게만 하라는 지시를 받았던 묵 제조업 사장님이 세 배의 가격을 쳐주겠다고 하자, 가격이 아닌 최고의 품질을 가진 묵을 만들겠다 결심하고 결국 가업의 비기였던 ‘수라묵(임금님이 먹고 빠져버렸다는)’을 내놔 세 배 가격에도 대박을 쳤던 것. 심지어 외국인들까지 몰려들어 천리마마트는 문정성시를 이뤘고, 정복동은 대통령 표창까지 받게 됐다.

 

이것은 tvN 드라마 <쌉니다 천리마마트>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스토리텔링 방식이다. 현실이라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하면 최저가격을 맞출 것일까만을 고민했을 게다. 실제로 대형마트에 가서 우리가 늘 발견하는 건 자신들의 매장이 가장 싸다는 주장들이 아닌가. 하지만 천리마마트는 정반대로 간다. 차라리 망하기를 작정한 듯 보이지만, 그런데 의외로 장사는 대박이 난다.

 

이런 일은 천리마마트로 좌천되어 정복동 대표가 오면서부터 계속 벌어지는 일들이다. 말도 안 되는 이들을 정직원으로 모두 채용하고, 그잖아도 적자에 허덕이는 마트에 최대한 비용을 아끼지 말라고 정복동은 지시한다. 문석구는 그 때마다 현실적으로 그건 안 되는 일이라고 말리지만 모든 일들은 의외로 잘 풀리고 심지어 대박이 난다.

 

물론 이런 일은 현실에선 결코 벌어지지 않는 일이다. DM그룹 같은 대기업이 아예 대놓고 방치하고 있는 자그마한 마트는 그냥 내버려둬도 망하는 게 현실일 게다. 하지만 <쌉니다 천리마마트>에서는 이 마트를 망하게 하기 위해 권영구 전무(박호산)와 김갑(이규현)이 적극적으로 나선다. 권영구 전무는 문석구에게 본사 발령을 미끼로 정복동을 배신하라 말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정복동은 또 의외로 그럴 수 없다 말하고, 권영구가 자신 아니면 정복동을 선택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할 때 둘 다 견마지로를 다하겠다는 말로 혼란에 빠뜨린다.

 

<천리마 마트>의 이런 황당함은 B급 정서가 담긴 병맛 코미디에서 나온다. 이 드라마는 이른바 A급들이 말하는 전형적인 서사나 캐릭터 또는 전형적인 성공방정식을 모두 무시해버린다. 저 상황에서는 반드시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철저히 반대로 행하거나 선택하면서 그런 전형적 사고를 무너뜨린다. 그러면서 그런 선택으로도 오히려 대박나는 의외의 결과를 보여준다.

 

아마도 우리는 가진 자들이 내세우는 그들의 법칙이나 상술에 지쳤던 게 아닐까.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그 황당함에 저도 모르게 키득키득 웃고 있다 보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모든 게 생존경쟁이고 이쪽이 아니면 저쪽이며, 누군가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선택들이 난무하는 현실 깊숙이 들어와 있다 보니, “이런 들 어떠하리 저런 들 어떠하리”라 말하는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B급 정서에 점점 빠져들게 되는 게 아닐까.(사진:tvN)

‘천리마마트’, 의외로 잘되는 장난 같은 역발상의 카타르시스

 

도대체 정복동(김병철)의 속내는 뭘까. 그는 진짜로 천리마마트를 망하게 하기 위해 온 것일까. 아니면 그보다 큰 그림이 있는 걸까. tvN 드라마 <쌉니다 천리마마트(이하 천리마마트)>의 정복동이 천리마마트로 좌천되어 와 하는 일련의 행보들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만성적자에 허덕이는 마트에 직원들을 대거 신규채용한다. 그것도 정직원으로.

 

그런데 그 정직원의 면면이 황당하다. 정리해고당해 대리운전을 하며 살아가는 가장, 만년 가수지망생, 전직 조폭 심지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빠야족들까지. 게다가 이렇게 뽑은 오합지졸들을 쓰는 정복동의 용병술은 더더욱 황당하다. 전직 조폭에게 곤룡포를 입혀 고객만족센터에 앉혀놓고 부족한 카트 대신 빠야족들을 손님들에게 일대일로 붙인다.

 

하지만 정복동의 황당한 마트 경영은 이게 끝이 아니다. 사장이 대뜸 직원들을 모아놓고 노조위원장을 뽑으라며 그 특전으로 마치 프로레슬러들이 할 것 같은 벨트와 망토처럼 쓰는 깃발을 준단다. 이 자리를 놓고 벌인 전직 조폭 오인배(강홍석)와 빠야족장 피엘레꾸(최광제)의 대결을 벌인다. 결국 피엘레꾸가 오인배의 급소를 때려 이긴 후 노조위원장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황당해 보이는 정복동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천리마마트의 매출은 급증한다. 놀랍게도 빠야족들이 의외의 능력을 발휘하며 손님들을 끌어 모아서다. 그들은 광어 해체쇼를 보여주기도 하고 인삼매장에서 손님들로 하여금 줄을 서서 사게 만들 정도의 수완을 발휘한다.

문석구 점장(이동휘)이 마트 활성화를 위한 문화행사를 추진하려 하자 정복동은 가수지망생 조민달(김호영)을 무대에 세우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절대 안된다는 문석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무대는 그러나 데스메탈을 하는 조민달의 그룹 무당스의 공연으로 찾아온 마을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때 무대로 뛰어든 오인배가 조민달을 제압하자 민달의 아들이 올라와 눈물로 호소하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마을사람들의 반응은 반전되었다. 그것이 하나의 뮤지컬 퍼포먼스라 오인하게 된 것. 결국 문화행사를 성공적으로 끝났다.

 

정복동은 심지어 천리마마트의 문이 너무 손님이 들어오기 쉬운 ‘개방적’인 구조라며 이른바 ‘친환경 에너제틱 회전문’으로 교체했다. 일단 들어가며 손으로 회전축을 돌려 충전이 되어야 문이 열리는 구조. 문석구는 그것 또한 말도 안 되는 조치라고 했지만 마침 천리마마트로 파견되어온 조미란(정혜성)은 그 문에 갇혔나 나온 후 의외로 재밌다며 다시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결국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문이 오히려 천리마마트의 화제가 될 것을 예감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정복동이라는 미스터리 한 인물이 지시해 만들어내는 황당한 상황들은 우리가 웹툰 등을 통해 익숙한 병맛 가득한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드라마로서는 공감하기 어려운 이 병맛 가득한 황당한 장면들이 보면 볼수록 피식피식 웃게 만들다가 급기야는 빵빵 터지게 만든다. 어째서 이 황당한 설정들이 묘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걸까.

 

세상 일이 어디 쉬운 일이 있을까. 장사는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죽어라 노력한다고 해도 잘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니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라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천리마마트>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대충 대충해도 다 잘 된다고. 아무렇게나 해도 잘 된다고. 그건 물론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지만 잠시나마 그렇게 대충해도 잘 되는 천리마마트를 보는 맛은 강력한 판타지를 준다. 황당하지만 빠져드는 이유다.(사진:tvN)

‘천리마마트’, 처음엔 낯설어도 익숙해지다 빵빵 터지는

 

이거 도대체 뭐지? 아마도 원작 웹툰을 잘 모르는 시청자라면 tvN 드라마 <쌉니다 천리마마트>를 보며 당혹스러웠을 지도 모르겠다. 대뜸 대마그룹 회장이란 사람이 자사 주력 상품이라며 가져온 ‘털이 나는 광택제’를 내놓는 에피소드부터 시작하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할 법 하다.

 

그 말도 안되는 상품에 회장 눈치 보며 동조하는 권영구 전무(박호산)에 모든 이사들이 찬성할 때, 반대의사를 들고 나온 정복동(김병철). 회장은 갑자기 이것이 이사들을 시험해보기 위한 일이었다며 충언을 할 줄 아는 정복동을 추켜세우지만, 갑자기 ‘털이 나는 광택제’가 출시돼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오면서 상황은 역전된다. 결국 정복동은 이 얼토당토 않은 일로 대마그룹의 유배지나 다름없는 ‘천리마마트’ 사장으로 좌천되게 된다.

 

그런데 황당함은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망하기 일보직전인 천리마마트에 직원들을 더 뽑겠다 나선 정복동은 가수 지망생과 은행에서 명퇴 당한 대리기사, 전직 깡패 심지어는 빠야족 족장과 부족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한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 힘겹게 대마그룹의 천리마마트에 점장으로 취직한 문석구(이동휘)는 정복동이 온 후로 놀라운 마트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부족한 카트 대신 카트 역할을 하는 빠야족들이 마트 곳곳에서 맹활약(?)을 하고, 고객만족센터에서 일하게 된 전직깡패 오인배(강홍석)는 조선시대 왕이 입던 곤룡포를 입고 왕좌에 앉아 불만을 갖고 온 손님을 발밑에 무릎 꿇리며 그 불만사항을 들어준다. 심지어 “오늘은 꽃이 되자”는 정복동은 스스로 해바라기 분장을 하고 직원들은 꽃 분장을 한 채 손님들을 맞는다.

 

이 정도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드라마의 리얼리티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한 참 멀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도대체 대마그룹 같은 대기업이 어디 있고, 천리마마트나 정복동 같은 사장이 어디 있으며, 그런 곳에 오인배 같은 전직 깡패나 심지어 빠야족 사람들까지 정직원으로 채용된다는 일이 어찌 벌어질 수 있을까.

 

이쯤 되면 <쌉니다 천리마마트>라는 드라마의 정체를 이제 받아들이게 된다. 병맛으로 가득한 웹툰의 세계가 고스란히 드라마로 들어와 있는 것. 그러니 현실성이나 리얼리티를 따질 필요는 없어진다. 대신 우리가 알고 있던 현실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이 천리마마트의 기상천외한 풍경들을 보며 웃을 준비만 하면 되는 것.

 

그래서 처음엔 기존 드라마들이 갖던 리얼리티와의 부조화로 약간의 낯설음과 당혹감을 느끼다가 조금씩 리얼리티를 포기하는 순간부터 빠져드는 기이한 병맛의 세계를 시청자들은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 리얼리티의 정반대를 그려내는 마트의 풍경이 의외로 우리네 현실에 대한 은근한 풍자를 담고 있다는 걸 확인하면서, 병맛 뒤에 숨겨진 날카로움 같은 묘미도 감지하게 된다.

 

제 아무리 노력해도 하늘에 별 따기가 되어버린 정직원이 되는 길이나, 한 때 잘못된 길로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게 만들어진 현실, 심지어 외국인노동자로서 살아가면서 대접을 받는 일이 요원한 우리네 현실을 투영해보면, 천리마마트의 병맛 풍경은 의외로 짜릿한 판타지를 제공한다. ‘고객이 왕’이 아니라 ‘직원이 왕’이라는 이 마트의 상상초월 성장기가 자못 궁금해지고 기대되는 건 그래서다.(사진:tvN)

‘닥터 프리즈너’, KBS도 이런 웰메이드가 가능한데 어째서

 

KBS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가 종영했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전개였다. 나이제(남궁민)와 이재준(최원영)의 대결은 결국 나이제의 승리로 돌아갔다. 되돌아보면 약자들 위에 군림해 권력을 휘두르며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들던 이재준 같은 인물이 제대로 처벌받기 위해서는 얼마나 힘겨운 싸움이 필요한가를 보여준 드라마였다. 엔딩에 이르러 감옥 속에서 이재준이 끝까지 나가겠다고 의지를 밝히고, 나이제가 “그냥 거기서 죽어”라며 짓는 미소는 사이다 엔딩이면서도 씁쓸함을 줬다. 결국 복수를 끝내고 성공한 나이제 역시 어딘가 저들을 닮은 미소를 짓고 있으니 말이다.

 

<닥터 프리즈너>는 최고 시청률 15.8%(닐슨 코리아)를 기록했고 방영 내내 화제성도 뜨거웠다. 처음에는 나이제의 선민식(김병철)과의 대결을 보여주더니 그 다음에는 이재준과의 대결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이재준이 공동의 적이 되면서 나이제와 선민식이 손을 잡았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선민식이란 캐릭터는 극을 뻔하지 않게 만들었다.

 

감옥과 병원이라는 공간을 이어 붙여 이 두 공간이 만들어내는 장르적 특징을 이색적으로 결합한 면도 <닥터 프리즈너>의 성취였다. 흔히 감옥드라마라고 하면 탈옥 혹은 탈출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의학드라마라고 하면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두 장르를 이어 붙이자 전혀 다른 결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감옥은 VIP들의 형 집행 정지가 시도되는 공간이 되었고, 누군가를 살리는 의사가 아닌 죽이는 의사들이 등장했다.

 

나이제라는 인물은 ‘복수의 화신’으로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독특한 캐릭터로 그려졌다. 그래서 드라마는 단순한 선악구도 혹은 갑을대립의 형태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건 이 드라마가 바라보는 현실인식이 그만큼 무거웠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한 선의로만 바뀌지 않는다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었다. 저들처럼 독해지지 않으면 성실한 악을 결코 처단할 수 없다고.

 

<닥터 프리즈너>의 성취는 KBS 드라마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지워버리기에 충분했다. 최근 들어 KBS 드라마라고 하면 뻔한 멜로거나 흔한 출생의 비밀이거나 여전히 가족드라마의 범주 안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어떤 성취를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지난해에는 그래도 실험적인 장르드라마들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시청률에서 난항을 겪으면서 올해는 수목 시간대에도 <왜그래 풍상씨> 같은 주말에 어울릴 법한 드라마를 편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험적이면서도 완성도도 높은 <닥터 프리즈너>의 성공은 KBS 드라마도 그만한 투자가 전제된다면 좋은 장르물을 편성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KBS라고 해서 뻔한 드라마들만 세워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 다소 복잡해 보이는 장르물이라도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에는 채널과 상관없이 시청자들이 찾아본다는 걸 <닥터 프리즈너>의 성공은 말해준다.

 

<닥터 프리즈너>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KBS 드라마는 위기다. 물론 이건 KBS만이 아니라 지상파들이 모두 처한 위기지만, 그걸 깨칠 수 있는 건 역시 보다 완성도 높은 드라마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닥터 프리즈너>의 성취가 KBS 드라마에 시사하는 건 바로 그것이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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