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감우성·김선아의 사랑은 묘하게도 병을 닮았다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의 사랑, 어딘가 병을 닮았다. 그 병은 거부하려고 해도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전염된다. 손무한(감우성)은 안순진(김선아)에게 이끌리면서도 그 마음을 거부하려 했다. 자신이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안순진을 사랑하게 됐다. 마치 원하지 않아도 병이 찾아오는 것처럼.

안순진은 손무한을 ‘숙주’로, 자신을 ‘기생충’으로 불렀다. 그건 물론 농담 섞인 이야기였지만, 자신의 속내 깊은 곳에 사랑보다 더 절실한 게 삶이었기 때문에 나온 말이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고 내일은 기대하지도 않는 ‘오늘만 사는 삶’. 그래서 그는 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부정하고 자신은 그저 손무한에 붙어먹는 병 같은 존재라 치부했다. 하지만 손무한이 그 이야기를 듣고 며칠 집을 비운 사이 안순진은 그를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키스 먼저 할까요?>는 삶과 사랑에 대한 문학적 상징이 잘 녹아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 굳이 ‘어른 멜로’라는 수식어를 쓴 건 그저 19금의 성적인 의미가 아니다. <키스 먼저 할까요?>라는 다소 도발적으로 느껴지는 제목은 그래서 스킨십을 대놓고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스킨십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진짜 삶과 사랑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는 도발이다. 

손무한이라는 인물의 시한부 판정도 마찬가지다. 그건 우리가 늘상 봐왔던 멜로의 시한부 설정이 갖는 통속적인 이야기를 꺼내놓기 위함이 아니다. 병이 들었을 때 비로소 삶이 보이듯, 언제까지고 이어질 듯한 삶이 문득 끊어질 거라는 걸 감지하는 순간, 진짜 사랑이 보인다. 내일도 필요 없고 당장 지금 눈앞에 있는 그와 즐거운 시간을 갖는 그 순간순간들이 진정한 사랑으로 다가온다. 

시한부 삶을 알게 된 손무한의 사랑은 그래서 아이러니하다. 처음 그가 안순진에게 불쑥 결혼하자고 했던 건, 자신은 안순진을 사랑하지만 안순진은 사랑이 아닌 결혼이 필요한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그저 숙주일 뿐이라고. 한 달이면 곧 죽을 몸, 손무한은 그렇게 해서라도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어떤 잘못을 사죄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죄로 시작한 그 마음은 어느새 사랑이 되었고 안순진 역시 단지 ‘손무한에 붙어먹는 병 같은 존재’로 치부했던 마음이 사랑으로 변했다. 그러자 이제 손무한은 빨리 혼인 신고를 하고 안순진에게서 멀어지려 한다. 그것이 자신이 그를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한부 삶은 그래서 이들의 사랑도 시한부로 만들어버리지만, 그래서 그 사랑은 더 진실해진다. 결국 우리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건 단지 육체적인 끌림이나 종족을 이어가고픈 본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길건 짧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오는 유한한 삶을 짊어진 시한부가 우리네 존재의 숙명이라는 걸 공감하기 때문일 게다. 결국 사라져가는 존재에 대한 소중함을 새삼 느끼는 그 지점에서 우리는 어쩌면 사랑에 빠지는 것일 지도 모른다. 

혹자는 삶이 한 평생으로 이어진 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런 생각은 삶이 무가치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더 사랑하고 더 행복하게 살아가라는 뜻이다. <키스 먼저 할까요?>의 손무한과 안순진의 삶과 사랑은 그래서 더 진실하고 절실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숙주’의 모든 걸 내주는 사랑이란 ‘무한’일 수도 있으니.(사진:SBS)

‘키스 먼저’가 만일 멜로 그 이상을 숨기고 있었다면

도대체 손무한(감우성)이 안순진(김선아)에게 갖는 죄책감은 무엇 때문일까.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 손무한이 안순진의 아픔을 끌어안고 결국 결혼까지 한 것이 그저 사랑 때문 만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그것은 드라마 초반부터 에필로그를 통해 이 두 사람이 과거에 어떤 사건으로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었고, 이제 그 사건이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어서다.

10년 전 안순진은 무슨 일인지 아이를 잃었고, 그 잃은 아이 앞에서 순진의 어머니는 마치 자기 잘못인 양 죄인 같은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그리고 묘소에서 아이를 보내는 순진의 모습을 바라보는 손무한이 있었다. 그가 그 자리에 있는 건 마치 우연적인 일처럼 보였지만 어찌 보면 자신과 연루된 일로 아이가 죽게 됐다는 죄책감 때문일 수도 있다는 심증이 생겨난다. 

그런데 손무한의 직업은 광고 카피라이터다. 그가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죽게 했다기보다는 그가 쓴 카피가 그걸 방조하거나 혹은 누군가를 오인시켜 결과적으로는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 8년 전 안순진이 손무한을 찾아왔던 회상 장면은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해준다.

“아폴론 제과에서 적반하장으로 나온다고 한다. 애가 잘못됐는데.”라는 대사가 말해주듯 안순진의 아이는 제과에서 나온 제품 때문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손무한은 그 제품 광고를 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아폴론 제과와 안순진은 법정싸움을 하며 사채 빚까지 쓰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8년 전의 손무한은 냉정한 광고 카피라이터였다. “내가 법원 오갈 시간이 어디 있냐. 그게 내 탓이냐. 차 광고 하고 사고 나면 광고 탓이냐. 아파트 광고하고 붕괴되면 우리 탓이냐. 우리는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거다.”라며 안순진의 요청을 거절했다. 

이 정도의 이야기에서 번뜩 떠오르는 사건은 국내에서 벌어졌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다. 잘못된 제품이지만 그 피해가 일파만파 커졌던 건 안전성을 먼저 고려하지 않고 상품성만을 강조했던 광고가 일조한 면을 부정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직접 이 살균제를 넣은 가습기가 작동하는 광고의 한 장면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광고로 인해 많은 소비자들은 안심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 장면이 그토록 끔찍하게 여겨지지만.

<키스 먼저 할까요?>는 본격 어른 멜로를 표방하고 있고, 실제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어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중년의 사랑을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혹시 이 드라마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같은 사안을 떠올리게 하는 사회적 의제 또한 숨겨놓고 있는 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멜로의 차원을 넘어서 인간이 인간에게 갖게 되는 죄책감과 그 죄책감을 위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그 과정들까지를 담는 이야기로 확장될 수도 있을 것이다. <키스 먼저 할까요?>라는 제목이 스킨십 따위는 이들의 사랑에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드러내듯, 인간애의 차원에서 보면 남녀의 사랑이나 결혼 그 이상의 중요한 일이 있다는 걸 혹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마도.(사진:   SBS)

“나랑 놀아요”, ‘키스 먼저’가 말하는 일상의 가치

“원치 않는 일이면 좀 쉬는 게 어때요. 나도 시간을 내 볼 테니까 나랑 놀아요. 우리 못 놀고 살았잖아요.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영화도 보고 남들 하는 거 우리도 해봐요. 그만 열심히 삽시다 우리.”

“자러 올래요?”에 이은 “나랑 놀아요.”인가.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 손무한(감우성)이 툭 던진 그 말에 안순진(김선아)의 마음이 촉촉해진다. ‘놀자’는 아무 것도 아닌 일상적인 그 말에 담겨진 마음의 무게가 느껴져서다. 

베테랑 스튜어디스로 일하다 퇴직한 안순진이 굳이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건 “열심히 일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의 친구인 미라(예지원)가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주겠다고 했지만 그렇게 하면 소개받았다는 것 때문에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게 된다며 그게 싫다고 그는 말한 바 있다. 

그러니 손무한이 툭 던지는 “그만 열심히 삽시다 우리”라는 그 말이 얼마나 가슴에 콕콕 박혔을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이런 일상적인 말들이 남다른 느낌으로 전해지는 건 <키스 먼저 할까요>라는 드라마가 가진 특별한 지점이다. “자러 올래요?”라고 묻고 거기에 어떤 의도를 파악하지도 않고 무의식적으로 “네”라고 말하는 그런 지점에서 느껴지는 특별함. 일반적으로는 육체적 욕망이 먼저 떠오르는 그 말이 몸이 아닌 마음을 반응시키는 특별함이 이 드라마 속에는 있다. 

이런 특별함이 더해지게 된 건, 손무한과 안순진이라는 조금은 쉽지 않은 삶을 살아온 이들의 경험치가 얹어져서다. 10년 전 아이를 잃고 이혼까지 하는 그 아픈 상처를 겪고 수면제 없이는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는 삶을 살아온 안순진에게 “나랑 놀아요”라는 말은 그 어떤 청혼 프러포즈보다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손무한의 청혼이 진심이 아니라 가여워서라는 강석영(한고은)의 말에 안순진은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요. 나도 그 사람이 가여우니까. 가여워서, 혼자인 게 두려워서 시작되는 사랑도 있더라고요.” 보통 사랑이 아닌 동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실망하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워낙 많은 상처를 겪고 나이든 안순진에게 그런 ‘가여운 마음’은 어쩌면 ‘사랑의 시작’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사랑이 아닌 죄책감 때문이라는 모호한 강석영의 말에 안순진 역시 손무한을 10년 전 동물원이 아닌 그 이전에 만난 적이 있을 거라는 의심을 하게 되지만 그런 불안감 또한 결혼을 막지는 못했다. 또 손무한이 말기암 환자라는 사실을 알려주려 하는 백지민(박시연)에게도 안순진은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그 사람과 “더 놀고 싶어서”였다. “지금 돌이키면 나 그 사람이랑 못 놀아. 그 사람이랑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책 읽어주는 그 사람 목소리 더 듣고 싶어. 나를 바라보는 그 사람 시선 속에 조금 더 살고 싶어.”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하루하루를 일에 치여 살아가는 삶. 그런 삶들이 부질없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내일 후회하지 않기 위해 오늘 죽어라 내일을 준비하는 삶을 사는 게 우리 보통의 사는 모습이 아닌가. 그러다 보니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린 후에야 그 중요한 것이 일상 속에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하다못해 잠을 자는 일이나 노는 일 같은 너무나 쉬워 보이는 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는 더더욱.

“일생이 후회인데, 내일 후회하더라도 오늘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내일이 아니라 오늘. 거창한 행복이 아니라 일상의 행복. 그런 것들을 <키스 먼저 할까요>는 툭툭 건드리며 꺼내놓는다. 하지만 ‘세상의 끝’에 서 있는 듯한 두 사람이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던지는 그 이야기들은 남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누구나 도달하지만 흔히들 부정하며 살아가는 삶의 끝을 상정했을 때에만 나오는 일상의 가치들이 거기에는 반짝반짝 빛난다.(사진:SBS)

‘키스 먼저’ 감우성·김선아, 종점커플에겐 위로가 사랑이다

버스, 오래된 디스크맨, 김동률의 노래 그리고 같이 앉은 연인. 이런 풍경 속에서라면 누구나 새로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마치 영화 <건축학개론>의 그 아련했던 첫사랑이 절로 떠오르니 말이다. 하지만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의 손무한(감우성)과 안순진(김선아)이 이 풍경 속에서 주는 느낌은 어딘가 처연하다. 손무한의 어깨에 살포시 기대고 노래를 듣다 잠이 들어버린 안순진과 그를 깨우지 않고 끝내 종점까지 함께 가는 손무한에게서 삶의 피로 같은 게 느껴져서다. 수면제 없이는 잠 못 드는 안순진의 그 피로를 그저 가만히 기대게 해주는 것이 어쩌면 그에게는 커다란 위로가 될 것이다.

종점을 향해 달려가는 버스처럼, 그들도 이제 인생의 막판을 향해 가고 있다. 결혼을 했고 배신을 겪었고 이혼했지만 여전히 그들의 마음속에는 크디 큰 상처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래서 그 큰 집에 손무한은 ‘은둔형 도토리(?)’가 되어 이제 나이 들고 병들어 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반려견 별이와 함께 살아간다. 그는 오래된 것들을 좀체 바꾸거나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차도 오래된 차를 끌고 다니고, 끝내 저 세상으로 가버린 반려견도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한다. 기억도 그렇다. 안순진과 10년 전 겨울 동물원에서 겪었던 기억을 그는 지금껏 간직하고 살아간다. 

안순진 역시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슨 일인지 아이가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났고 그 상처는 그 부부의 파경으로까지 이어졌다. 전 남편이었던 은경수(오지호)는 백지민(박시연)을 만나 그 지옥 같은 과거의 상처로부터 빠져나오지만, 안순진은 그 집안 가득 옛 물건들을 가득 채워 넣은 채 버리지 못한다. 내일을 기약하지 않는 삶. 그저 오늘 하루만 살자는 그런 삶 속에서 그가 원하는 건 단 한 시간이라도 잠드는 일일 게다. 그것이 잠시라도 그 아픈 기억 바깥으로 나가는 길일 테니.

그래서 이 두 사람이 버스를 타고 종점에 다다르고, 버스기사마저 내린 버스에 앉아있는 장면은 ‘세상의 끝’에 서서 비로소 그 앞에 있는 누군가를 바라볼 때 느낄 그런 감정들을 끄집어낸다. 손무한은 그래서 안순진에게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대신, “사랑할까 해요”라고 말하고, 안순진 역시 “사랑해요”가 아닌 “사랑해주세요”라고 말한다. 그건 단지 남녀 간의 사랑이라기보다는 ‘세상의 끝’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그 끝의 아픔이나 아련함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그 마음을 담아낸다. 

종점에서 돌아오는 길 반려견 별이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듣고, 동물병원을 찾아간 손무한에게 의사는 별이가 아파도 주인을 위해 아픈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손무한은 그 아픔을 속으로 삭이며 별이에게 마지막 진통제를 놔달라 말하고, 그 순간 안순진은 눈물을 흘린다. 아마도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그 마음을 안순진 만큼 잘 이해할 수 있는 인물도 없을 게다. 손무한의 그 눈물조차 흘리지 않는 얼굴 이면에 담긴 아픔을 그는 깊게 공감한다. 그래서 이제 별이를 보내주는 손무한에게 “잘 보내주라”며 그 날 밤은 “같이 자자”고 말한다. “혼자 자지 말고 같이 자자”고.

그 날 밤 초인종이 울리고 인터콤 저편에서 안순진은 토끼 문양이 새겨진 잠옷을 입고 귀엽게 토끼 귀를 들어 올려 보인다. 그 옷차림에서 손무한은 그 마음을 읽어냈을 게다. 별이가 떠난 그 자리에 토끼 같은 모습으로 애써 들어와 그 마음을 어루만지려는 안순진의 마음을. 그래서 이 텅 빈 공간 속으로 들어와 그저 손무한을 꼭 껴안아준다는 것을. 이 종점커플에게 위로만큼 큰 사랑이 있을까.(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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